332화. 칼자루는 피를 기억하지 않는다 (2)
두두두.
숲을 통과한 마차가 무서운 속도로 산동을 가로질렀다.
신교에서 나온 이래 가장 빠른 속도였다. 장강을 건넜을 때도, 화산 장문인을 잡으러 갔을 때도, 소림으로 향했을 때도 이리 빨리 이동하진 않았다.
“이랴!”
히히히힝!
신교에 있을 때도 잘 관리되던 한혈마다. 근골과 체력을 키우기 위해 영약까지 먹인 한혈마 여섯 마리가 전력으로 달리니, 어지간한 절정고수의 신법보다도 빨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붉은 땀을 흘리며 천 리를 달린다는 전설처럼, 한혈마들의 체력은 무시무시했다. 무려 반나절 동안 믿기지 않는 속도로 달리는데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동필과 나란히 마부석에 앉은 언양회는 힐끔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흔들리지 않는 표정에, 두 눈 가득 강렬한 광채가 감돈다. 맹렬한 목적의식으로 타오르는 눈빛은 마주하기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강하다.’
언양회는 내심 깜짝 놀랐다.
‘이 정도 고수가 마부 일을 한다고?’
마동필의 무공은 자신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보다 한 수 위일 것도 같았다.
그런 고수가 마부 일을 한단다. 철혈성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길이오.”
“…….”
“이보시오.”
“음? 아, 불렀소?”
마동필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멀리 갈림길이 있소. 본래라면 좌측 태안(泰安)으로 향하겠지만 거긴 너무 눈에 띌 것 같은데, 따로 은밀한 길은 없소?”
“태안으로 잡으시오. 그 길로 삼십 리를 더 가면 우측에 샛길이 하나 있소. 길이 좀 협소하지만, 마차 모는 실력을 보니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것 같군.”
“알겠소.”
그렇게 마차가 좌측 대로로 향했다.
언양회가 입을 열었다.
“굉장하군.”
“…….”
“한혈마를 본 적이 몇 번 있지만, 이토록 체력이 좋은 놈들은 처음이오. 평범한 마차보다 서너 배는 더 무거울 텐데, 용케 이 속도를 유지하는군.”
“본교의 제철 능력은 중원에서 손꼽히오. 거기에 장인의 도움을 받아 외벽의 강도는 극단적으로 높이고, 무게는 혁신적으로 감소한 것이 이 마차요.”
“장인?”
“그런 사람이 있소.”
잠시간 함께할 무인이지만, 교내 일을 자세히 알려 줄 순 없다. 하물며 그 장인이 당가의 독룡각주라면 더더욱.
가만히 마동석을 보던 언양회가 재차 입을 열었다.
“다 괴물들이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귀교엔 죄다 괴물들밖에 없냔 말이오.”
마동필이 힐끔 언양회를 바라보았다.
언양회의 얼굴에서 당혹스러운 기색이 묻어 나왔다.
“낯부끄러운 소리지만,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천재라 불리던 사람이오. 단 하루도 게을리 수련하지 않았다 자부하오.”
“그런 것 같소.”
“한데 그런 나보다 한참 어린 서 소교의 무공은 이미 일대종사, 극마에 달한 것 같소.”
“…….”
“서 소교도 괴물이지만, 당신 역시 보통 괴물이 아니오. 아직 불혹(不惑)에 이르지 않은 것 같은데 그리 강하다니.”
마동필은 대답하지 않았다.
언양회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헛살았군.”
참으로 오만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한 재능과 노력, 최고의 무공과 스승이 있었지만 결국은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 뿐이다.
세상에 나가 싸우는 것보다, 그 시간을 수련에 쏟아 지닌바 경지를 한 단계라도 더 끌어올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편협한 사고방식이었다. 세상에 나가서 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면, 숱한 좌절과 무력감을 느끼고 그것을 깨부쉈다면, 지금보다 더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러했다면, 비요왕의 수하들에게 부하들이 전멸당하는 일도 없었을 거라 생각도 들었다. 책과 강연, 훈련으로 연마된 전술보다 무수한 실전에서 얻는 것이 훨씬 컸을 것이다.
서량과 마동필의 무공을 보며, 비로소 언양회는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실전……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더 많은 것들을 배웠을 것이다. 위험이 클수록 얻는 것도 큰 것을…….’
그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다. 어떤 식의 배움이든, 결국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책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 배어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언양회는 그간 세상에 나서지 않은 자신의 행동이 사무치도록 후회스러웠다.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오.”
“음?”
마동필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언양회의 눈이 깊어졌다.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겠지.’
어차피 지금 고민해 봤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생각을 접은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 가는군.’
좌측에 기대어 세워 놓은 창을 꾹 쥐었다.
‘나는 지금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인가.’
차라리 철혈성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간다고 해도 서량이 보내 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이대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짧게는 오 년, 길게는 십 년 이상 함께해 온 부하들을 한순간의 실수로 모조리 잃었다. 부하들의 복수를 하기 전까지는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기, 저 샛길을 말하는 거요?”
“그렇소.”
마동필이 고삐를 당겼다.
히히히힝!
서서히 속도를 줄인 말들이 이내 샛길 쪽으로 빠졌다.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회전이었다. 마차의 크기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만큼 안정적이었다.
그때였다.
복잡한 눈으로 길을 보던 언양회의 눈이 번쩍였다.
“잠깐! 마차를 세우시오!”
히히힝!
마동필이 급하게 마차를 세웠다.
“무슨 일이오?”
언양회는 대답하지 않았다.
파악!
창을 잡고 마부석에서 뛰어오른 그가 길목 앞, 나무가 우거진 곳을 바라보았다.
가지들이 꽤 무성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정도는 되었다. 마동필의 실력이라면 반나절 동안의 질주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언양회가 본 것은 길이 아니라 나무였다.
“왜 그러시오?”
“……화살.”
“화살?”
“여기 와서 보시오.”
마동필이 마부석에서 내려와 언양회에게 다가갔다.
그가 선 나무 앞에 다다르자,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크다?’
나무 옆에 박힌 화살은 평범한 화살보다 훨씬 굵고 길었다. 마부석 좌측에 있던 언양회였기에 볼 수 있었던 흔적이었다.
‘이런 걸 여느 화살처럼 날릴 수 있다면,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아낼 것이다.’
하지만 강호에서 이런 화살을 쓰는 자는 들은 적이 없었다.
“파산궁위(破山弓衛).”
“음?”
“파산궁위의 화살이오. 흔적을 보니 하루 정도 되었군.”
“파산궁위가 누구요?”
언양회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비요왕의 최측근 중 하나요. 구장, 팔화, 칠사, 육운, 오위로 대변되는 고수 중 오위에 해당하는 고수외다.”
“오위?”
역시나 들어 본 적이 없다.
화살을 살피던 마동필의 얼굴에 은근한 놀라움이 깃들었다.
“굉장하군. 저 멀리 나무 하나를 뚫었음에도 여기, 이 나무 밑동에 절반이 넘도록 박혀 있군.”
“파산궁위의 궁술은 천하에서 손에 꼽힐 만큼 대단하오. 화살 없이 무형진기(無形眞氣)로도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최상위 궁수지.”
“그런 대단한 궁수가 왜 비요왕과……?”
“비요왕이 직접 키웠으니까.”
“비요왕이 말이오?”
“그렇소. 궁위만이 아니오. 구장부터 오위까지, 서른다섯 명의 고수 중 대부분을 비요왕이 직접 키워 냈소.”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비요왕에게 그만한 자원이 있었단 말이오?”
고수를 키우는 것은 단순히 무공이 강하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다.
뛰어난 무공은 물론, 시기에 따라 적절한 환경과 노력이 조성되어야만 한다. 한발 더 나아가면 영약이나 실전이 필요하기도 하다.
한데 서너 명도 아니고 서른다섯이나 되는 고수들을 키웠다니, 쉽게 믿기가 힘들었다. 천하에 알려지기를, 비요왕은 그 살벌한 성정 때문에 측근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그간 받은 보수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메운 것이겠지.”
“……?!”
“본성과 비요왕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주님과 비요왕 간의 관계는 무척 복잡하오. 어찌 되었든, 비요왕이 성주님의 명을 처리하면 성주님께선 비요왕에게 많은 보수를 주었소.”
언양회의 눈이 빛났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오. 문제는 이곳에 파산궁위의 패력시(覇力矢)가 박혀 있다는 것이오.”
“그렇군.”
마동필이 눈살을 찌푸렸다.
‘비요왕을 노리는 또 다른 세력이 있는 것인가?’
이 길이 비요왕에게 이어지는 빠른 길이라면, 그리 해석하는 것이 올바르다.
고심하던 그가 문득 땅을 바라보았다.
‘뭔가…….’
호위무사에게 예민함과 빠른 눈치는 기본 소양이다.
마동필은 호법원 최연소로 조장이 된 걸물이다. 극히 미세한 흔적만으로도 적의 숫자, 이동 경로는 물론 시간까지 유추해 낼 수 있다.
‘대체 무슨 흔적이지?’
그럼에도 그는 이곳을 지나간 자들의 무공 수위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이곳을 지나갔다는 것이다.
덜컹!
그때, 마차 문이 열리고 서량과 여상린, 앵화가 내렸다.
“무슨 일이야?”
“소교주님.”
마동필이 그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알렸다.
서량은 패력시를 보고, 저 멀리 구멍이 뚫린 나무를 본 뒤, 다시 땅을 내려다보았다.
“마차 잘 세웠다.”
“예?”
그가 여상린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네 빙공으로 이만한 크기의 얼음을 만들 수 있나?”
서량이 주문한 것은 자신의 상체 정도의 크기였다.
여상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여기, 이곳 땅을 완전히 얼려 봐. 천천히 얼리면 흙이 뭉개진다. 한순간에 얼려야 해.”
“한순간이라면…… 음, 어디 해 보죠. 못해도 욕하지 마세요.”
“걱정 마라.”
우우우웅.
여상린의 양손에서 강렬한 한기가 피어올랐다.
은은한 백색 광택이 감돌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었다. 언양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런 빙공을…… 설마 빙궁?!’
심사가 복잡해서 서량과 마동필 외의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저 여인은 빙궁의 사람인 모양이었다. 빙궁의 무공이 아니고선 이 정도로 강력한 빙공을 구사할 수 없다.
여상린이 신중하게 양손을 펼쳤다.
사라라락.
백색 한기가 사각의 틀을 만들어 냈다.
한기로 틀을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틀 안의 영역을 한순간에 얼리는 것이었다.
후우우웅!
양손에 어른거리던 백색 기운이 몸 전체로 뻗어 나갔다.
한기가 어찌나 강렬한지 앵화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마동필과 언양회조차 움찔할 만큼 강한 기운이었다.
여상린의 동공이 하얗게 물들었다.
“하압!”
쩌저저저적!
순간적으로 뿜어진 한기가 사각 틀 안쪽을 빠르게 얼렸다.
서량이 주문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땅이 얼어붙었다. 서리가 내려앉은 듯 표면이 허옇게 변한다 싶더니, 어느새 강철처럼 단단해 보이는 얼음이 지표면을 덮었다.
쩌저적! 푸스스스스.
이내 온전한 사각의 얼음덩어리가 생겨났다. 생성된 얼음에서 허연 연기가 흘러나왔다.
“후우.”
여상린의 얼굴이 다소 창백해졌다. 모든 내력을 쏟아부은 것은 아니지만, 단번에 발출해 낸 내력의 양이 상상을 초월했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핑 돌아 휘청이는 그녀를 서량이 부축했다.
“고생했다.”
“어윽, 토할 것 같아요.”
“처먹은 것도 많은데 토하면 난리 난다. 저기서 쉬고 있어.”
“말을 하셔도 꼭.”
비틀거리며 물러난 여상린.
서량이 얼음의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손끝에 닿는 순간 손목까지 서늘해질 정도로 한기가 짙었다.
쩌걱!
얼어붙은 땅덩어리를 한 번에 뽑아내 거꾸로 뒤집은 그가 주먹을 내질렀다.
쿵!
사각의 덩어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새하얀 얼음 위, 남아 있는 흙을 살살 털어 내곤 구유마기로 표면을 미세하게 녹인 서량이 눈을 번득였다.
“발자국이 엄청나게 옅군.”
“예?”
“거의 초상비(草上飛) 수준이야. 한데…… 일부러 펼친 게 아닌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초상비가 펼쳐지는 경지란 말이다. 보법에서만큼은 지금 나보다도 한 수 위야.”
마동필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소교주님보다 한 수 위라니? 그러한 고수가 이곳을 지나갔단 말인가?
“문제는 방향이야. 이곳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이 길목을 통해 대로로 빠져나간 거다.”
“……!”
“게다가 발자국이 다소 작군. 여인의 것이 확실해.”
자신보다 한 수 위의 경지, 게다가 여인.
사아아아악!
서량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여상린과 앵화는 말할 것도 없고, 마동필과 언양회조차 화들짝 놀라 삼 장 밖으로 물러났을 정도로 지독한 살기였다. 여상린의 한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독했다.
서량이 외쳤다.
“동필이와 창수는 비요왕의 거처로 가! 어서!”
파아아악!
두 사람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였다.
두 시진 후.
다시 돌아온 언양회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비요왕의 거처가 텅텅 비었소.”
서량이 손을 휘둘렀다.
콰르르릉!
무지막지한 권풍에 좌우 나무들이 밑동부터 터져 날아갔다.
“동필아! 마차 돌려!”
두 사람이 비요왕의 거처로 갔을 때, 그는 대로로 나와 사방의 흔적을 살폈다.
비요왕의 거처가 비었다면 이젠 확실하다. 언양회를 데리고 온 덕을 이리 빨리 볼 줄은 몰랐다.
“비요왕이 태안 쪽으로 향했다! 하루 거리밖에 되지 않아!”
“이, 이보시오! 잠깐 기다리시오! 비요왕이 이 길을 통해 갔다는 거야 그렇다 쳐도, 파산궁위가 왜 화살을 날렸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그건 나중에 알아보면 그만이야!”
서량이 마차에 올라탔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