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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33화 (333/774)

333화. 칼자루는 피를 기억하지 않는다 (3)

화정리(和情里)는 태안 인근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황보세가가 제남에 자리를 잡고 세력을 확장할 때, 그들에게 가장 먼저 길을 열어 준 마을이기도 했다. 덕분에 화정리에는 황보세가의 무인들 수십 명이 항시 거주하고 있었고, 마을은 일종의 분타 역할을 병행했다.

하지만 화정리는 더 이상 세상에 없었다.

화르르르륵!

가옥 하나가 불타고 있었다.

마을의 크기를 생각하면 아주 큰 화재는 아니었다. 게다가 불이 난 집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다른 가옥들과 달리 홀로 동떨어져 있었다. 불이 마을 전체로 번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화재가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우둑!

끔찍한 소리와 함께 한 여인의 목이 부러졌다.

여인의 목을 부러트린 사내가 음소를 터트리며 여인의 몸을 어딘가로 던져 버렸다. 여인이 떨어진 곳엔 이미 수백 구의 시신이 쌓여 있었다.

“크, 아쉽구만! 이게 마지막이라니!”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어깨 위로 삐죽 솟은 도병을 만지작거렸다. 죽은 시신을 토막이라도 칠 듯한 기세였다.

그때, 사내의 옆에 서 있던 작은 키의 여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야! 적당히 해!”

“어엉? 왜!”

여인이 씨익 웃었다.

“내 거거든?”

퍼어어어엉!

냅다 내지른 장력에 죽은 여인의 시신이 폭죽 터지듯 터져 버렸다.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년이? 왜 남의 밥그릇에 손을 대냐!”

“살풀이할 물건이 저것밖에 없었어.”

“썩을! 그새 다 처죽였냐?!”

“아니, 아직 서넛 정도 남았을걸?”

사내의 얼굴에 진한 탐욕이 일렁였다.

“어디냐? 당장 잡아다가 조각을 내 버려야겠다.”

“안 돼.”

“왜 안 돼? 설마 너 혼자 먹어 치우려고?!”

“하여튼 욕심만 많아서는. 내가 아니라 주인님 몫이야.”

사내가 움찔했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여인, 육마위(戮馬衛)가 입맛을 다셨다.

“아쉬워도 참아. 이제 곧 그분의 세상이 될 텐데, 그때가 되면 질리도록 놀 수 있을 거야.”

“크큭, 과연 그럴까?”

“응?”

“그분 욕심은 우리보다 만 배는 더할걸? 절대 우리 몫을 남겨 주지 않으실 거야.”

“너! 감히 주인님을……!”

“그러니까 기회 될 때 알아서들 제 몫을 챙기잔 말이야.”

그때였다.

굵직한 화살 한 대가 무서운 기세로 쏘아졌다.

피유우우웅! 퍼어억!

거대한 시체의 산을 단숨에 꿰뚫은 화살이 퍽! 하고 터졌다. 그러자 시체 더미가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내, 사도위(死刀衛)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단단한 체구의 사내가 활을 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사도위와 비슷한 연배인 듯했지만, 두 눈이 만년설처럼 차가웠다.

“너! 무슨 짓이야?!”

“닥쳐라.”

“뭐, 뭐라고?”

“주인님께서 유희를 즐기고 계시다.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하고 어서 모이도록.”

그 말을 끝으로 활을 든 사내, 궁위(弓衛)가 몸을 돌렸다.

사도위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저, 저 개 같은 놈! 내 언젠가 저놈의 심장을 뽑아 수십 조각을 내 버릴 거야!”

“참아라.”

“넌 화도 안 나냐?!”

육마위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어쩌겠어? 주인님께서 총애하는 녀석인데. 게다가 저 녀석의 무공은 우리보다 한 수 위잖아? 나는 괜히 주인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다.”

“제기랄!”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마구 뱉어 대지만, 결국 그들은 하란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투덜거리며 시체 더미 뒤편으로 걸어갔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널찍하게 정리가 된 공터.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제법 고풍스러운 의자에 여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뒤에 세 명의 남녀가 호위하듯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십여 구의 시체 사이에서 무릎을 꿇은 채 싹싹 빌고 있는 피투성이의 촌로가 있었다.

“이, 이 노친네의 목숨을 빼앗아서 무엇 하시겠습니까? 얼마 남지 않은 목숨, 부디 살려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라도……!”

“촌장.”

촌로가 헉! 하는 신음을 토해 냈다.

의자에 앉은 여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목소리지만, 동시에 오금이 저려 왔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목덜미를 콱 쥐고 흔들어 댔다.

“내가 왜 지금까지 촌장을 살려 뒀는지 알아?”

여인의 외모는 목소리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도무지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다. 사람이 아니라 요괴가 둔갑한 것 같았다.

“촌장의 생존이 곧 황보 놈들을 부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살려 둔 거야. 촌장, 황보세가와 연락이 닿아 있지?”

순간 촌장의 눈이 흔들렸다.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아찔해지는 얼굴이었다.

“촌장을 죽여도 어차피 황보 놈들은 올 거야. 하지만 나는 참을성이 그리 깊지 않아. 일각이라도 빨리 놈들과 만나고 싶어.”

“……대체 당신은 누구시오?”

“곽소교(郭素嬌).”

곽소교? 곽소교가 누구지?

쿵!

촌장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려는 찰나, 언월도를 뽑아 든 사도위가 창봉으로 땅을 찍었다.

“추잡한 늙은이! 고개를 조아리지 못해?! 저분은 사신의 후계이자 천하제일인, 비요왕이시다!”

순간 촌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비요왕의 악명은 산골 마을에까지 전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하물며 화정리는 황보세가의 분타 역할을 할 정도로 무림과 가까웠다.

“처, 천하제일사(天下第一邪)……!”

무림은 정파와 사파, 마도로 삼등분된다.

그중 사파의 제왕은 누가 뭐라 해도 수라제 송금백이었다. 십대고수 중 의천맹주 담사영과 함께, 가장 천하제일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절대자가 그였다.

하지만 그는 거대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그 강함이야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제왕적인 면모가 부각됐기에 천하제일사라는 이름은 비요왕이 가져가 버렸다.

비요왕, 곽소교가 미소를 지었다.

“천하제일사라니? 농담이 심하네.”

“……?!”

“의심할 나위 없는 천하제일인, 그게 바로 나이니라.”

무서운 자신감이었다.

그 자신감에 확고부동한 진심이 어려 있어서 더 무섭다. 곽소교는 현 무림의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서슴없이 스스로를 천하제일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더는 긴말 않겠어. 황보가에 연락을 취해. 하면 늙은이의 목숨만은 살려 주지.”

“…….”

“어차피 황보세가는 올 거야. 늦고 빠르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쓸데없는 반항으로 얼마 안 남은 인생 마무리 짓고 싶진 않을 거라 믿어.”

촌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곽소교의 말이 맞았다. 이래도 오고 저래도 올 거라면, 당장 목숨만이라도 부지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제 방에 연통이 있습니다.”

“오호?”

“그중 파란색을 터트리면 황보세가의 정예가 반나절 안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게 끝이야?”

“그렇습니다.”

“되게 간단하네?”

촌장이 또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전까지 이런……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요.”

오대세가의 앞마당에서 활개를 칠 무림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촌장은 황보세가와 연관이 되었을 뿐, 무공 한 줌 익히지 않은 양민이었다. 복잡한 연락 체계가 필요 없을 터였다.

곽소교가 활짝 웃었다.

“현명하네.”

“이제 저를…….”

퍼어어어어엉!

촌장의 머리통이 폭죽 터지듯 박살 나 버렸다.

곽소교가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어차피 살날 얼마 안 남았으니까 지금 죽어도 상관없지? 고통은 없었을 거야.”

치명적인 아름다움만큼이나 순진해 보이는 그 웃음에 오위 모두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잔인함으로는 자신들도 누구 못지않았지만, 곽소교는 뭔가가 달랐다. 오위가 인세의 악마들이라면, 지금의 곽소교는 어떠한 선을 넘어 버린 것 같았다.

“궁위.”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곽소교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촌장이 말한 대로 하고, 애들한테 연락 오면 바로 말해 줘. 난 좀 자야 할 것 같아.”

애들이란 구장부터 육운의 고수를 말함이었다. 그들은 현재 화정리 주변을 돌며 경계 중이었다.

“알겠습니다. 시체들은 태울까요?”

“태우다니? 왜?”

곽소교가 히죽 웃었다.

“거기가 내 침실인걸?”

“……!”

시체들이 침실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곧이어 오위는 곽소교가 하는 말을 깨달았다.

스르륵.

화려한 옷을 입은 곽소교가 아직 태우지 않은, 또 다른 시체 더미 꼭대기에 올라섰다. 이내 대충 자리를 만들더니, 그대로 누워 버렸다.

곧이어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아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청한다. 그 모습만은 참으로 순수해 보였지만, 그를 본 오위는 지독한 공포에 몸을 떨어야 했다.

수백 구의 시체 위에서 그들의 주인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지독한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궁위가 중얼거렸다.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셨어.”

무공도, 인성도.

* * *

다음 날 정오.

“우웨에엑!”

앵화가 구석으로 가서 연신 토악질을 했다.

여상린이 그녀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하지만 여상린도 얼굴이 극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언양회가 쥔 창이 부르르 떨렸다.

“……미쳤군.”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시체의 숫자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반쯤 썩어 버린 시체들이 여기저기서 산을 이루었는데, 무게에 짓눌려 흘러내린 피가 용암처럼 사방으로 흘러 굳은 흔적이 압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체만이 남겨진 사내들이 쇠꼬챙이에 꿰뚫려 시산(屍山) 주변에 장식처럼 꽂혀 있었다. 그 수가 삼백을 훌쩍 넘겼다.

하나같이 체격이 좋고 손이 큰 사내들.

“황보다.”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골격의 단련도를 볼 때, 정예 중의 정예가 분명해.”

“비요왕…… 정말 무서운 고수로군요.”

강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마동필 역시 숱한 전장을 전전했지만, 이토록 끔찍한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시신에 가까이 다가간 서량이 눈을 빛냈다.

“혼자 했다.”

“……예?”

“황보가의 고수들, 혼자서 처치했다고. 비요왕 혼자.”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이 많은 고수들을 말입니까?”

“그래.”

서량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땅 곳곳이 움푹움푹 파여 있었다. 막강한 권풍(拳風)이 대지를 갈아엎은 흔적들이었다.

하지만 결코 많진 않다.

이 많은 고수들이 진을 형성하며 싸웠을 텐데도 흔적이 많지 않다는 것은, 비요왕이 짧은 순간 이들 모두를 해치웠다는 뜻이었다.

“고작 하룻밤 새에 시체가 이 정도로 썩기는 쉽지 않아. 이 추운 날씨엔 더더욱. 본교의 마공에도 그런 마공이 있지. 하지만 이건 무학 자체의 특질 때문이 아니야.”

서량의 눈에 기광이 떠올랐다.

“사기(邪氣)가 선천(先天)의 영역 직전까지 도달했다. 신화(神化)로 진입하기 직전까지 연마된 사기라고 볼 수 있겠군.”

선천을 넘보기 직전의 영역.

진기(眞氣)의 숙성도가 서량의 마기와 거의 비슷할 만큼 짙다는 뜻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만약 그년이 사공을 완전하게 개방했다면…….’

일대가 지옥으로 변했을 것이다.

사기란 곧 마기에 종속된다고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 정도로 사기를 농축시켰다면, 서량에게도 상극의 이점이 없다고 봐야 했다.

물론, 붙어 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소교주님. 아무래도 비요왕이 황보세가를 노리는 듯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엔 무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무모해. 하지만 생각 없이 움직이는 건 아니야. 정예를 불러들였다는 건 최대한 힘을 빼 놓은 다음 공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 차근차근, 확실히 무너트리려 할 거다.”

서량이 언양회를 힐끔거렸다.

“뭐가 됐든, 성주가 원하는 대로는 되고 있는 것 같군.”

“……성주님께선 혹시 모를 황보의 공격을 막으라 했지, 공격하라고 하신 게 아니오.”

“뭐, 그도 그렇지.”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너무했군. 이걸 다 묻어 줄 수도 없고…….”

그때였다.

드르륵.

땅이 흔들렸다.

서량의 눈이 남쪽으로 향했다.

“또 뭐야?”

순간 언양회의 눈이 커졌다.

“헉!”

“왜 그러냐?”

“이 기운은…… 혈전단(血戰團)!”

“혈전단? 철혈성의 병력이냐?”

“그렇소!”

서량의 얼굴에 피로가 엿보였다.

‘씹어 먹을, 뭐가 이렇게 난잡해?’

그는 그저 비요왕을 빨리 잡고 싶었을 뿐이다. 그년부터 잡아서 이 들끓는 한을 해소한 후에, 다시 세상을 향해 한 발 내디디려 하였다.

흔적을 발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상하게 뭔가가 자꾸 꼬이는 것 같다. 적들의 행동 양식은 대부분 꿰뚫어 보았지만, 지금은 신교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와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별수 없군.’

서량이 입을 열었다.

“굉장한 고수가 끼어 있는데? 철혈성도 고수들을 꽁꽁 숨기고 있었나 보지?”

“당연한 것 아니오? 귀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본성도 의천맹처럼 세상에 보여 주지 않은 고수들이 많소.”

“음, 그렇군. 그렇다면 동필아.”

“……?”

“이 새끼 잡아.”

퍼어어억!

마동필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언양회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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