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34화 (334/774)

334화. 칼자루는 피를 기억하지 않는다 (4)

“헉!”

혈전단주(血戰團主) 우영(羽永)은 깜짝 놀랐다.

“저, 저……?!”

“여어!”

마치 사이좋은 친구를 만난 듯 서량이 손을 흔들었다.

“댁이 혈전단인지 뭔지의 수장인가? 무공을 보니 그런 것 같구만.”

우영은 두 번 놀랐다.

처음엔 화정리 전체에 흐르는 죽음의 기운에 놀랐고, 다음엔 성의 교룡대장인 언양회의 목에 이름 모를 마인의 검이 겨누어졌다는 것에 놀랐다.

우영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혈전단원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하긴, 너무 쉽게 생각한 감이 있었지.”

서량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의천맹은 연합체야. 그래서 늙은이는 실권을 잡은 후, 맹 자체의 전력을 늘리기 위해 그리 애를 썼지. 하지만 본교와 철혈성은 달라. 무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세력 자체의 화력이 어디보다 뛰어나지.”

“네놈은 누구……?”

“그런 만큼, 철혈성 역시 본교처럼 숨겨 둔 고수와 부대가 많을 거야. 신창 언극의 아들놈이 마교의 작은 주인과 비요왕을 친다고 하니, 당연히 병력을 파견할 수밖에.”

“……?!”

“문제는 병력을 파견한 이유가 무엇이냐지. 애송이 창수를 구출하고 귀성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와 함께 비요왕을 잡아 죽이려는 것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우영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뭔가 말을 하려던 그는, 순간 한옆에 세워진 거대한 마차를 보았다.

여섯 마리의 한혈마와 평범한 마차보다 네다섯 배는 더 큰 마차.

그리고 선두에 선 청년의 장대한 체격까지.

“……염라마군?”

“그렇다. 내가 바로 신교의 소교주다.”

우영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당신이 이곳을 이리 만든 것인가?”

“그건 좀 섭섭한 얘기로군. 본교에 미친놈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짓까지 벌일 만큼 막장은 없어.”

확실히 이들이 흉수인 것 같지는 않았다.

우영이 허리를 바로 세웠다.

“쓸데없는 대화는 이쯤 해 두겠다. 성주님의 명이다. 당장 교룡대장을 풀어 주고, 어찌하여 그대가 이곳에 있는지 설명하라. 제대로 된 설명이 없을 시, 철혈성은 지금부터 천마신교를 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하하하!”

우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적으로 간주하겠다는데 돌연 웃음을 터트리다니? 저놈이 제정신인가?

“지금부터 적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그거 재미있는 말이군. 우리가 언제는 적이 아니었던가?”

“…….”

“그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놈이 있어 일시지간 손을 잡았을 뿐 본교와 철혈성, 그리고 의천맹은 항상 서로에게 창칼을 겨누고 있었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괜한 말로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시도였다면 실패일세그려.”

“다시 말한다. 교룡대장을 풀어 주어라. 그리고 왜 그대가 이곳에 있는지 설명하라.”

“싫다.”

차차차창!

우영이 신호를 내리기도 전에 혈전단 전원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혈전단이라더니, 무기도 제각각이었다. 도검창극은 기본이요, 철퇴나 쇠사슬을 꺼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기세가 살벌한 것이, 백전에서 살아남은 용사들인 것 같았다.

스륵.

마동필이 흑혈마검을 언양회의 목에 더욱 바싹 가져다 댔다. 검날에 닿은 목이 베어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언양회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창 언극의 아들내미라는데, 인질로서 별 효용 가치가 없는 모양이지?”

“가능하다면 구출하겠지만, 불가능할 경우엔 어쩔 수 없다. 인질 때문에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수치다.”

당당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우영은 물론 혈전단원들 역시 이런 사태에 무척이나 익숙한 모양이었다.

서량이 언양회를 힐끔거렸다.

“좀 섭섭하겠다?”

언양회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애써 당당하게 말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이상, 나 역시 그에 따른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바. 적의 손에 잡혀 인질 노릇을 할 바에야 죽는 것이 낫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 책임감과 당당함이 기껍다.”

고개를 끄덕인 서량이 우영을 보며 말했다.

“인질이랍시고 잡아 놓기는 했다만, 우리만 건드리지 않으면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킬 생각은 없다.”

“이미 충분히 악화되었다. 교룡대장을 인질로 삼은 그 시점에서.”

“아하?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물론. 더하여, 그대는 왜 이곳에 있는지 해명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사정은 봐주라고. 삼백이 넘는 고수들이 우글우글 달려오고 있는 판에 인질이라도 잡아 둬야지.”

“알 바 아니다.”

굉장한 배포였다.

우영의 무공은 일개 무력 집단의 수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강해도 서량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도 알고 서량도 안다. 그럼에도 이런 배짱을 보여 준다는 것은, 그만큼 곧은 심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가만히 우영을 보던 서량의 얼굴도 조금은 진지해졌다.

“나오라고 해.”

“무슨 말이냐?”

“너 말고, 책임자 나오라 하라고.”

“웃기는…….”

“변죽 울리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나?”

“…….”

“시작부터 인질 모가지 떨어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불러.”

우영의 눈가가 살짝 떨려 왔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어르신. 상황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푸헐! 그것참, 안 그래도 언제 나서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네.”

파아앙!

저 멀리 숲에서 새하얀 장포를 걸친 누군가가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왔다.

달린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날아온 것에 가까웠다.

펄럭이는 소매를 한 쌍의 날개처럼 쫙 펴고, 길쭉한 다리를 쭉 뻗은 채 다가오는 노인의 모습은 한 마리의 고고한 학과 같았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화경!’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 노인은 분명 화경에 이른 초고수가 분명했다.

서량이 입술을 티 나지 않게 달싹였다. 동시에 마동필, 여상린, 앵화의 눈이 반짝였다.

사라락.

노인이 우영 옆에 내려섰다.

그 먼 거리를 오면서 단 한 번도 내려서지 않았다. 신법의 경지가 실로 대단했다.

아니, 단순히 경지의 문제를 떠나 무학 자체가 극도로 수준 높은 것이었다.

“곤륜 사람이 아닌데도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을 구사한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문된 곤륜제자, 육양마극(六陽魔戟)이로군.”

노인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굉장하구만. 운룡신(雲龍身)을 한 번 보고 알아챈 것도 모자라, 내 정체까지 알아내?”

“뭐, 어려울 게 있나. 곤륜이 철혈성과 손을 잡았을 리는 없으니 자연 파문제자를 떠올렸을 뿐이야. 곤륜의 파문제자 중 가장 강한 사람을 뽑으라면 육양마극밖에 없지.”

“허허허, 저 마졸 놈이 눈치 한번 빠르구나.”

육양마극 곡천삭.

곤륜의 전대 고수로, 대사형을 죽이고 장문인직을 강탈하려다가 파문된 고수였다. 파문을 당하기도 전에 도주했기에 곤륜도 무공을 회수하지는 못했다.

그런 곡천삭이 철혈성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평생 숨어 살지 않을 거라면, 철혈성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긴 했을 것이다.

다만 놀라운 것은 곡천삭의 무공이었다.

이를 갈고 노력한 건지 따로 기연이 있었던 건지, 용케도 화경을 깨달았다. 무(武)의 한계를 뛰어넘은 경지라면 서량도 가벼이 볼 고수가 아니었다.

“나까지 불렀으니, 잡담은 이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구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서량이 언양회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웅.

곡천삭이 눈살을 찌푸렸다. 서량의 손에 깃든 흉포한 마기가 당장이라도 언양회의 머리통을 박살 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우영의 얼굴은 여전히 침착했다. 언양회를 이미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내 볼일은 비요왕에게 있다. 너희 따위가 아니야. 너희와의 일은, 내 일이 다 끝난 후에 처리했으면 한다.”

“헛소…….”

“정히 지금 붙고 싶다면, 이놈의 머리통부터 날려 놓고 너희를 차근차근 박살 내 주마.”

표정과 목소리,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위엄은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곡천삭이 우영을 바라보았다.

“어찌하고 싶은가?”

“합의는 없습니다. 저희는 그저 명령을 수행할 뿐입니다.”

“으흠, 그런가?”

“그 전에 어르신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우영의 눈이 깊어졌다.

“염라마군의 무공이 이미 극마에 달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어르신께서 저놈을 잠시 묶어 둘 수 있으신지요?”

“묶어 둘 수 있느냐고? 허!”

달칵! 달칵!

어디에 숨겨 놓았던 것일까.

풍성한 옷 안 어딘가에서 단봉 세 자루를 꺼낸 곡천삭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단봉을 조립했다. 철커덕하는 쇳소리와 함께 세 자루 단봉은 순식간에 한 자루의 장봉으로 변했다.

그가 장봉의 끝을 돌렸다.

키이잉!

봉첨에서 길쭉한 창날이 튀어나왔다. 삼절곤(三絶棍)의 형태로 바뀔 수 있는 기병창(奇兵槍)이었다.

“나를 너무 무시하는구먼. 붙잡아 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을 뚫어 버릴 수도 있다네.”

화경을 이루었으나, 아직 수준 높게 단련하진 못한 그였다. 그의 무공은 아무리 잘 쳐줘도 십대고수의 말석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마인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곤륜의 무공은 소림, 무당의 무공만큼이나 뛰어난 극상승의 도가기공이었다. 말하자면 상극이란 것이다.

그가 자신감을 가질 만도 했다.

“좋습니다.”

우영이 손을 들었다.

“혈전단 전원은…….”

그때였다.

퍼어어억!

순간 곡천삭과 우영, 혈전단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양회가 얼떨떨한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서량의 장력에 맞은 자신의 팔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팔꿈치 아래가 통째로 터져서 허옇게 뼈가 드러났다.

“크아아악!”

언양회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마혈을 짚여서 목 아래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만일 움직였다면 살갗을 베어 낸 흑혈마검에 목이 완전히 잘려 버렸을 것이다.

“아, 실수.”

서량이 손을 흔들었다. 목소리는 장난스러웠지만,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머리통을 날려 버린다는 게 팔을 짜부라트렸군.”

“……잔혹한 놈!”

우영이 이를 갈았다.

“차라리 일검에 목을 따라!”

“내가 왜 네놈 말을 들어줘야 하나?”

“뭐, 뭣이?!”

쿠르르릉!

서량의 몸에서 붉은 마기가 치솟았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지독한 마기였다. 곡천삭의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너.”

서량이 지목한 상대는 곡천삭이었다.

“내 목을 뚫을 수 있다고 했느냐?”

느릿하게 움직이는 입술 밖으로 검붉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한순간에 전력으로 달아오른 구유마공. 천하 마공의 최정점이라는 군림마황기의 위엄과는 달리, 구유마공은 한없이 위험하기만 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볼까?”

콰아아앙!

어느새 천마도를 꺼내 든 서량이 곡천삭을 향해 질주했다.

곡천삭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런!’

예상보다 배는 더 빠른 속도.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신법이었다. 운룡대팔식에 비해도 조금의 모자람이 없는 신교제일의 경신술, 능공만리행이었다.

우영이 외쳤다.

“혈전단은 저들을 잡아라!”

콰아앙!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량과 곡천삭이 부딪쳤다.

천마도의 칼날을 창대로 막는 순간, 곡천삭은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미친!’

콰콰쾅!

곡천삭이 혈전단원들을 마구 넘어트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찌나 강력한 일격이었는지 사량발천근의 묘리로 힘을 걷어 낼 틈도 없었다. 그가 밟고 선 땅이 마구 박살 났다.

‘이 무슨 힘이란 말인가?!’

그때, 서량이 외쳤다.

“가라!”

파아아악!

여상린과 앵화가 재빨리 마차에 올라탔고, 언양회의 목덜미를 쥔 마동필은 마차 위로 올라갔다.

마차 천장에 올라선 마동필은, 누구도 상상 못 할 짓을 저질렀다.

깃발을 꽂을 수 있는 홈에 언양회의 창을 억지로 박아 넣고는, 그대로 언양회의 허벅다리를 창끝에 꽂아 버린 것이다.

퍼어억!

“크악! 크아아악!”

졸지에 언양회는 본인 창에 허벅지를 관통당한 채로 거꾸로 매달리게 되었다.

히히히힝!!

마부석으로 내려온 마동필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살왕기차를 몰았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살왕기차. 마차 후미 우측에는 언양회가 거꾸로 매달린 채 마구 비명을 질러 댔다.

가히 끔찍하기 짝이 없는 만행이었다.

우영은 더 이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죽일 놈들!”

“이왕 이렇게 된 거.”

파아아악! 콰아앙!

무자비한 도기로 곡천삭을 연신 밀어붙인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너희도 황보로 와라.”

파아아앙!

서량이 살왕기차를 쫓았다. 번쩍! 하고 나니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노옴!”

불의의 공격을 당한 곡천삭, 그리고 혈전단이 살왕기차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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