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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37화 (337/774)

337화. 운명 (2)

“현재 하남과 호북에 자리 잡은 문파 중 팔 할 이상이 반정회(反正會)에 가입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남은 이 할 중 절반은 눈치를 보고 있으며, 나머지 절반은 본맹으로 집결 중이지만 이동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장강 이남 쪽 움직임은?”

“남궁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병력 이동은 없습니다만, 가주가 직접 반정회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남궁세가 역시 반정회에 가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구파와 오대세가 측은 흔들리지 않는가?”

“…….”

“흔들리고 있군. 그럴 만도 하지.”

“……일단 공야치에게서 온 정보에 의하면, 당황하고는 있지만 그들에게 손을 들어 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 역시 당연하네. 놈들로서도 기호지세 아닌가. 반정회의 존재는 남은 칠파와 사가에게 있어 극독과도 같네.”

담사영의 눈이 깊어졌다.

“구파일방, 오대세가에게는 힘보다 명분이 더 중요해. 소림과 무당, 남궁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은 하나같이 나와 뇌물을 주고받았네. 더하여 그중 대부분은 입에 담기도 힘든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지.”

담사영은, 적어도 구파와 오대세가에 관련된 일에선 한 치의 실수도 범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무엇을 받았는지, 무엇을 주었는지에 관한 온갖 증거들을 모아 둔 것이다.

만약 그게 터진다면 구파와 오대세가는 끝장이다. 힘보다 중요한 명분이 박살 난 정파 무림은 순식간에 붕괴하고야 말 것이다.

‘힘이나 고삐가 무서운 게 아니야.’

힘에서는 반정회가 의천맹을 따라잡을 수 없다. 막말로 정면 대결을 벌인다면, 의천맹은 손쉽게 반정회를 쓸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정회는 의천맹이 갖지 못한 명분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었다. 심지어 반정회에는, 정파를 넘어 사파와 마도에서까지 존경을 받는 정무쌍신(正武雙神)이 봉공으로 있었다.

‘참으로 귀찮게 되었군.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지만.’

의천맹의 비리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담사영이 의도적으로 세상에 퍼트린 것이기도 했다.

적당한 비리와 적당한 수습은 피지배층을 도리어 안심케 하기 때문이다. 담사영이 무결점의 영웅이 아니라, 천하제일의 권력을 쥔 무림황제(武林皇帝)가 되고자 했기에 의도한 정치이기도 했다.

정파 무림인들은 차츰 비리를 당연하게 생각했고, 적당한 수습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의와 협을 절대 가치로 여기던 그들은, 어느새 세상은 원래 그리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평온하게 흘러가던 세상에, 반정회의 존재는 철퇴와도 같았다.

잊고 있던 정도(正道)의 가치를 일깨워 준 신의 철퇴였다. 중소 문파의 약자들이 부르짖었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 생각했을 일이, 소림과 무당이 주도한 순간 당연한 것이 되었다.

반정회는 그렇게 탄생했다.

부덕과 악의로 점철된 세상에서, 마치 늪에서 핀 연꽃처럼 태어났다.

“칠파와 사대세가는 당연히 우리와 함께할 것일세. 그럴 수밖에 없지. 하지만…….”

“…….”

“고민의 시간을 줄여 줄 필요는 있겠지.”

담사영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모두에게 서신을 보내라. 소림과 무당이 반격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그대로 당해 줄 것이라고.”

“예?!”

“협의와 정의를 무기로 움직이는 상대를 나라고 어찌 상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맹주직에서 내려오라 한다면, 나는 내려올 수밖에 없다네.”

천지각주는 당황했다.

“매, 맹주님!”

“다만.”

스르륵.

담사영이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붉은 봉투에 감싸인 서신은 무척이나 불길해 보였다.

“내 죄가 명백하다면, 어찌 그 죄에서 눈을 돌리겠는가? 그간 내가 저지른 죄는 물론, 함께 배를 불린 이들의 죄도 심판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

“소림과 무당이 심판관 행세를 하겠다면, 나는 그저 당해 줄 수밖에 없네. 그리 적어서 보내게나.”

천지각주가 허리를 굽혔다.

“명을 받듭니다!”

이것이었다.

이런 순간을 위해서 담사영은 그간 온갖 치욕을 감내해 가며 고개를 숙여 온 것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약점을 잡을 때도 그는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지금.

담사영은 자신이 이룩한 위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음을 실감했다. 그래서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다.

“허허, 늑대들 싸움에 굳이 범이 끼어들 필요는 없는 게지.”

의천맹의 전력은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칠파와 사가만으로 반정회를 무너트리겠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될 것이다. 칠대문파와 사대세가는, 차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작정하고 반정회를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다 반정회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을 때.

바로 그때, 의천맹이 그들의 목을 날려 버리면 된다.

“이보시오, 쌍신 선배들. 잡것들이 받을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기 위해 놔두었을 뿐, 힘이 없어서 소림과 무당을 불사르지 않은 게 아니외다.”

담사영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하나 굳이 저승길을 가겠다니 막지는 않겠소. 북숭과 남존, 태산북두가 사라지는 것은 당신들 탓이지 내 탓이 아니올시다. 허허허!”

듣기 좋은 웃음소리엔 세상에 다시없을 사악함이 그득했다. 정파 무림의 정점에 올라선 그는, 말 몇 마디로 천년의 역사를 이어 온 무림의 태양을 쪼개 버릴 힘을 얻게 되었다.

만약 소림과 무당까지 사라지게 되면, 정파 무림은 온전히 담사영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각이 지났다.

“맹주님!”

“다 보냈는가?”

“예! 그리고 급보가 왔습니다!”

“급보라니?”

담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천지각주의 얼굴이 심상치가 않았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황보가 공격을 받고 있답니다!”

“뭐라?!”

“철혈성 측의 공격으로 예상 중입니다만, 현재로선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습니다!”

담사영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려 왔다.

놀라운 얘기였지만,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독였다. 순식간에 감정을 다스린 그는 돌아가는 상황을 단박에 파악했다.

“황보…… 만약 황보를 공격한 것이 진정 철혈성이라면 다음은 팽가겠군.”

의천맹이 반정회를 상대하는 이때, 산동과 하북을 쳐서 중원 동북부를 장악하겠다는 생각인 것이 분명했다.

‘그간 이빨을 들이밀지 않아서 놔두고 있었거늘, 조용히 발톱을 갈고 있었던가.’

천지각주가 말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 하나가 더 보고되었습니다.”

“무엇인가?”

그때였다.

쿵!

허락도 없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담사영과 천지각주는 그를 나무라지 못했다.

“공야치?”

공야치가 담담하게 말했다.

“황보세가가 비요왕에게 공격을 당했습니다. 철혈성이 아닙니다.”

“뭐?!”

“그리고 마교의 소교주도 황보세가에 있습니다.”

“……!”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 소교는 비요왕을 끔찍하게 증오하고 있습니다. 소림과 무당에 힘을 실어 주었으니, 잠시 숨도 돌릴 겸 원한을 풀러 간 것이 분명합니다.”

“하면 철혈성은?”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만, 아마도 비요왕 때문일 것입니다.”

“비요왕?”

“비요왕은 철혈성주와 계약 관계에 있습니다. 그녀를 도울 명목이건 뭐건, 철혈성에서 병력을 파견한 것은 비요왕 때문일 것입니다. 혹은 비요왕과 황보, 둘 다일 수도 있지요.”

“……그렇군.”

“중요한 것은 비요왕이나 철혈성이 아닙니다. 마교의 소교주입니다.”

담사영의 눈이 번뜩였다.

공야치가 평온한 목소리로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었다.

“철혈성의 공격이야 땅따먹기라고 생각하고 넘겨 버릴 수 있지만, 소교주는 아니지요. 그자는 앞으로 큰 화근이 될 자가 분명합니다.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 버려야 함이 마땅하지요.”

“흐음.”

“어찌하시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철혈성을 쳐야겠네.”

순간 공야치의 눈이 반짝였다.

“철혈성을요?”

“물론이네.”

담사영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서량 그놈, 내 목을 노리는 게 확실하네. 그래서 반정회와 함께 움직이는 줄 알았지. 한데 느닷없이 산동에 있다니, 여러모로 사람 놀라게 하는 놈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러니 소교주부터…….”

“지금은 아니야.”

“예?”

“놈을 잡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네. 하지만 다른 고기를 얻자고 덫에 걸린 사슴을 놓아줄 필요는 없잖은가?”

“무슨 말씀이신지…….”

서량은 위험인물이다?

물론 그렇다. 담사영은 공야치의 말을 무시한 게 아니었다.

그저 그보다 더 멀리 내다보았을 뿐이었다. 반정회가 치고 들어오는 이때, 철혈성을 공략하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간 너무 격조하긴 했지. 반정회는 칠파와 사가에게 맡겨 두고, 난 철혈성 몸뚱이에 칼자국이나 몇 개 내 주어야겠네.”

* * *

“끄르르륵!”

“굉장한데?”

곽소교는 짐짓 놀랐다는 듯 말했다.

“명문의 저력이란 이런 것일까? 수백 년 동안 지역의 실세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엔 다 이유가 있었어. 설마하니 황보세가 따위에서 이 정도 고수를 만나게 될 줄이야.”

“크흡!”

희한한 광경이었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화려한 옷을 걸친 여인이, 본인보다 덩치가 두세 배는 큰 노인을 한 손으로 들고 있다.

“아쉽네. 거기서 한 발자국만 더 성장했다면 화경에 올랐을 텐데. 그럼 훨씬 더 재미있는 승부가 되었을 텐데 말이야.”

곽소교가 싱긋 웃었다.

“그래도 십 합을 버티지 못했겠지만.”

목이 틀어잡힌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노인.

잔뜩 충혈된 노인의 눈에서 순간 번뜩이는 전광이 일었다.

“이년!”

노인의 주먹이 곽소교의 얼굴을 후려쳤다.

퍼어어어엉!

거센 폭음과 함께 곽소교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철벽도 뭉개는 노인의 주먹에 맞고도 곽소교는 멀쩡해 보였다.

곽소교가 엄지로 입술을 훑었다. 살짝 찢어진 입가에서 핏물이 흘렀다.

“헤에, 발악이 제법인걸?”

깔깔깔 웃음을 터트린 그녀가 손에 힘을 주었다.

“컥!”

노인의 얼굴이 검붉게 물들었다. 얼굴로 몰린 피가 빠져나가지 않고 점점 차오르기만 했다.

오른손으로 노인의 목을 움켜쥔 곽소교.

천천히 들어 올린 그녀의 왼손이 창날처럼 뾰족하게 세워졌다.

“어디 보자.”

푸욱!

“허억!”

노인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곽소교가 매혹적인 미소를 띠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 봐. 어디…….”

우둑! 우둑!

잔혹한 손속이었다. 흉골을 부순 그녀의 왼손이 무척이나 느리게 노인의 상체를 파고들었다.

노인의 눈에서 점차 생기가 빠져나갔다.

“어머, 여기 있었구나?”

푸화아악!

거칠게 뽑아 든 왼손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왼손에 힘을 주었다.

파악!

터진 심장이 사방에 뜨거운 피를 흩뿌렸다. 곽소교는 자신의 옷과 얼굴에 피가 튀는데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달콤한 꿀이라도 되는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재미있었어, 늙은이.”

털썩!

노권사를 내려놓은 곽소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아아악!”

“아악!”

사방에서 끔찍한 비명과 함께 황보의 무사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제법 한 수가 있는 고수들은 곽소교의 손에 모조리 목숨을 잃은 뒤였다. 나머지 무사들을 구장과 팔화, 칠사와 육운, 오위가 해치우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비요왕의 가르침을 받은 고수라지만, 황보세가의 전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곽소교가 고수들만 골라서 죽인 뒤라 해도, 이리 쉽게 밀릴 전력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실력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곽소교가 어린아이처럼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괜찮네. 거봐, 얘들아. 통하잖니.”

우우우우우웅!

곽소교를 중심으로 넓게 퍼진 서른다섯 명의 고수들.

그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무형의 기운이 반경 이십여 장에 달하는 역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역장 내엔 너무도 은밀하고 자연스러운 사기(邪氣)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사기의 소용돌이가 황보 권사들의 부동심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이다. 권사들이 이리도 쉽게 밀린 것은, 본 실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진법이었다. 황보세가의 무공 역시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 정공(正功)임이 분명한데, 사공을 중심으로 삼은 진법에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황보가 이러할 정도면 다른 중소 문파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정도면 소림이나 무당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곽소교는 웃으며 내원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퍼어엉! 콰앙!

밀리고 또 밀리는 황보의 병력.

외원부터 여기까지, 무려 황보세가 전력의 칠 할을 불살라 버린 그녀였다. 근 삼십 년 내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피비린내 나는 전투였다.

곽소교가 고개를 들었다.

성벽은 아니지만, 마치 성벽처럼 세워진 가주전의 외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이 악독한 것들!”

외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황보윤의 얼굴은 극도로 창백했다. 뭣도 모르고 사도위를 공격했다가 화살을 맞은 탓에 외팔이가 되어 있었다.

곽소교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너무 많이 부서지면 나중에 다시 쌓기 힘들어. 그러니까 문을 열든 너희가 내려오든, 둘 중 하나만 선택해.”

“이년! 네년은 대체…….”

쾅! 퍼어엉!

외벽 끝이 동그랗게 파였다. 동시에 황보윤의 머리통도 사라져 버렸다.

“꺄아아악!”

“가, 가주님!!”

곽소교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러게, 소용없다니까.”

웅성거림이 커졌다.

가문의 전대 고수들도 전멸하고, 방금 가주까지 죽었다.

처음 습격을 받을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두 글자가 남은 권사들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멸문(滅門).

곽소교가 귀찮은 듯 손을 까딱였다.

“얘들아. 그냥 이 문 부수…….”

그때였다.

출렁!

“어?”

곽소교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분명 방금 사황유진(邪皇幽陣)이 멋대로 꿈틀거렸는데?

“너희들, 진 제대로 유지 안 할 거야?”

푸스스스스!

순간 곽소교의 눈이 번뜩였다.

재빨리 뒤를 돈 그녀의 눈에, 한 줄기 광채가 먹구름을 누비는 게 보였다.

콰르릉! 번쩍!

한 송이, 두 송이 눈이 내리는 날.

땅에서 솟구치는 뇌전이 하늘까지 닿는 듯했다. 시퍼런 뇌전을 붉은 화염이 감싸며 날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승천하는 용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지옥에서 올라온, 과거에서 흘러온.

피로 제련된 복수의 칼날을 완성한 마신의 울부짖음이었다.

“도위, 마위.”

파아아악!

두 남녀가 흉흉한 살기를 피워 내며 외원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퍼어어어어엉!

엄청난 폭음과 함께 산산이 조각난 도위의 시체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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