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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38화 (338/774)

338화. 운명 (3)

두두두두.

살왕기차가 천천히,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마차 안에 있던 여상린이 침을 삼켰다.

“앵화야.”

“네, 네!”

“내가 지붕 위에서 신호를 줄 테니까 그에 맞춰서 조작하면 될 거야. 신호가 없으면 무조건 대기해. 그리고…….”

“…….”

“절대로 나오지 마. 절대.”

“……네.”

덜컥!

마차의 문을 연 여상린이 후방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철혈성에서 파견한 병력, 혈전단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파라락!

여상린은 순식간에 지붕 위로 올라갔다. 뛰어난 몸놀림이었지만, 그녀는 마부석 쪽을 보고 서지 않았다.

가만히 전방을 주시하던 그녀가 손을 들었다.

휘이이이이잉!

한 송이씩 내리는 눈이 바람을 따라 그녀의 손으로 모여드는 듯했다.

우우웅! 우우우웅!

여상린의 오른손이 순식간에 백색으로 물들었다. 이전에 빙백수를 펼쳤을 때보다 기의 집결이 훨씬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그녀 스스로도 이유는 몰랐다. 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위압감 때문인지, 아니면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기존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무공을 구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때였다.

후욱!

“…….”

발목 위까지 내려온 치맛자락이 앞으로 펄럭였다.

목덜미와 등, 둔부가 화염에 휩싸인 느낌이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여상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등판을 쪼갤 것 같은 뜨거운 열기는 실제 화염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지독하고도 순수한 살기(殺氣)였다.

인간이 뿜어낼 수 없는 고농축된 살기가 마기로 제련되어 깊어지길 거듭한 끝에, 얼마나 깊어졌는지 추측조차 어려울 정도로 농밀해진 극살(極殺)의 기운이었다.

‘소교주님.’

여상린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살기는 열풍을 부르고, 열풍에 휩싸인 마음은 더 크고 왕성한 분노를 뽑아낸다. 극한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를 무한의 살기가 사방 천지를 에워싸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서량이 비요왕을 극도로 증오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서량이 한없이 비요왕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문득, 아쉬움을 느꼈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무지막지한 살기 앞에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왜 그렇게까지 비요왕을 증오하는지 끈질기게 물어봐 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알아도 그를 위로해 주진 못할 것이다. 그는 누군가의 위로를 받아야 할 만큼 약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것을 알아도 그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누군가의 이해를 필요로 할 만큼 자존감이 약한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여상린이 눈을 감았다.

‘그 원한이 바다처럼 깊다면, 부디 오늘 모든 한을 푸시길 바랄게요. 그리고…….’

우우우우웅!!

오른손을 가득 메운 백색의 한기가 왼손에서도 피어올랐다.

빙백쌍수경(氷魄雙手勁)이었다. 내공심법의 경지가 구 성을 돌파해 십 성의 경지에 올라서지 않으면, 감히 구현할 수 없는 절예였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 말해 주세요. 그럼 제가 술 한 병 좋은 놈으로 사 드릴게요.’

번쩍!

여상린의 눈이 뜨였다.

흑백이 또렷했던 그녀의 두 눈이 마치 요괴의 그것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벌어진 입술 밖으로 허연 김이 흘러나왔다.

“앵화야. 상천탄(霜天彈)과 금혼산(禁魂散)을.”

퉁. 퉁.

여상린이 발로 지붕 끝을 두 번 찼다.

치리링!

작은 금속성의 소음과 함께, 마차 후면부에 이십여 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각 구멍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튀어나오더니 일순 강한 폭음을 냈다.

퍼퍼퍼펑!

흑록색 탄환과 새하얀 탄환이 번갈아 가며 쏘아졌다.

여상린이 쌍장을 휘둘렀다.

파파파파팡! 푸스스스스스!

황보세가의 무너진 외원 입구에서 희고 검은 연기들이 터졌다.

놀랍게도 연기는 세찬 겨울바람 앞에서도 흩어지지 않았다. 폭음을 내며 터진 그 자리를 맴돌며, 안개와 같은 영역을 구축할 뿐이었다.

사아악! 까드드드득!

빙백의 한기가 무너진 외벽 좌우로 얼음을 형성했다.

그 범위가 넓지는 않지만, 강도는 돌벽에 준할 정도로 단단한 얼음의 벽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상천탄의 한기를 받아 부풀린 수공(手功)이었다.

‘이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육양마극이 작정하고 뚫으려 든다면 지금까지 한 짓이 전부 무소용이 될 터였다. 다만 그러지 않을 경우, 혈전단을 막는 데에는 효과적일 것이다.

굳이 막을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상린은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흉흉함과는 상관없어.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감각으로 느끼는 것은 달라.’

이로써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여상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쪽은 걱정 말고, 시원하게 한을 푸세요.”

파아아아앙!

마부석에서 거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쏘아지는 두 줄기 기운. 너무나 넓게 퍼져서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절대의 마기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바위 같은 마기가 움직였다.

후우우웅!

마침내 곡천삭과 혈전단의 기세가 외원 성벽 코앞에까지 느껴졌다.

그때였다.

크허어어엉! 캬아아앗!

듣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무서운 포효가 좌우에서 뻗어 나왔다.

‘그래, 너희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지?’

황금빛 신수와 흑황의 마수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만약 소교주님이 원하지 않았다면, 저 두 영물도 이리 달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원래 서량은 저 두 괴물을 이 싸움에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상린과 앵화를 위해서 금호와 호왕을 불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짐승들이지만, 두 영물의 존재만으로도 이곳은 철옹성이 될 것이다.

크게 숨을 들이쉰 여상린이 목청껏 외쳤다.

“철혈성의 족당들은 똑똑히 들어라! 그 문을 넘을 경우, 네놈들은 빙궁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휘이이이잉!

새하얀 얼음 폭풍이 살왕기차 주변을 뒤덮었다.

* * *

하늘이 맑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조금씩 눈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서량이 보는 하늘은 맑기만 했다.

겨울의 삭풍은 봄바람처럼 느껴졌고, 어두운 세상은 햇볕 가득한 꽃밭처럼 느껴졌다.

우우우우우웅!!

칼이 울었다.

서량은 자신이 들고 있는 칼을 내려다보았다.

‘어?’

이상하다.

천마도 특유의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칼은 아무런 치장도 없는 투박한 장도(長刀)였다.

‘이건 살수도(殺手刀)?’

딱히 이름도 지어 주지 않은 과거 자신의 칼이었다. 제법 힘든 살행이 예상되거나, 퇴로를 뚫어야 할 암살일 경우 항상 챙겨 왔던 그만의 애병이었다.

천라지망에 갇혀 탈출할 때도 이 칼을 휘둘렀다. 비요왕과 의천맹 고수들의 합공에 결국 부러져 버렸지만, 그 전까지는 실금 하나 가지 않게 잘 관리했던 그만의 살병이었다.

‘아아.’

서량이, 아니 천하진이 탄식했다.

자신이 더 이상 살왕 천하진이 아님을 안다. 눈에 보이는 환상 너머로, 실제 세상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자신 역시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는 과거의 자신이 되어, 미래에 인연을 맺을 최고의 친구에게 말했다.

“동필아.”

“예, 소교주님.”

“네게 내린 명령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이 나를, 비요왕의 앞까지 안내해라.”

“목숨을 다해 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차아아아앙!

그 어느 때보다 장엄한 발검이었다.

묵왕검의 한계를 깨고 진명(眞名)을 얻은 흑혈마검이 주인의 살기와 절대자의 마기를 받아 스스로 불타올랐다.

콰아아앙!

마동필의 일장에 내원으로 가는 길에 쌓여 있던 시체 더미들이 박살이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였다.

후욱!

이름 모를 두 고수가 매서운 속도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느껴지는 무력이 실로 굉장했다. 인간의 한계를 뚫고 초절정의 영역에 들어서진 못했지만, 절정고수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느껴지는 무력 이상의 속도요, 패기였다.

뭔가 알 수 없는 역장이 두 사람의 힘을 배로 키워 주고 있는 듯했다. 짧은 시간, 서서히 줄어들고는 있으나 이 정도면 초절정고수 한 명과 싸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마동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적의 수준? 강함?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의 주인이 목숨을 다해서 길을 열라 명했다. 다급한 상황도 아니요, 교에서 명령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자신을 선봉의 칼로 점찍었다.

오로지 개인의 복수심을 위해서.

그 사실이 마동필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극한까지 불사르고 있었다.

콰아앙!

대지를 찍어 내린 발걸음이 황보가 전체를 뒤흔들었다.

좌수를 앞으로 내밀고, 우수에 쥔 검은 후방으로 향했다.

“크하아압!”

번쩍!

순식간에 내원의 외벽을 뛰어넘어 다가온 언월도의 사내가 마동필의 정수리를 향해 일도를 휘둘렀다.

빛살처럼 빠르고 태산처럼 무거웠다. 천하의 마동필이라도 가벼이 보기 힘든 일격이었다.

그렇다. 평소의 그였다면, 일 보 후퇴 후 삼검(三劍)의 쾌검으로 공략했을 것이다.

“……감히.”

황금빛으로 물든 마동필의 두 눈이 평행하는 곡선을 그렸다.

콰앙!

“컥!”

그대로 내리꽂힌 일격이 그보다 두 배는 더 강한 검격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상체 전체가 뒤로 밀려날 정도로 강력한 반탄력이었다. 일순간 자세가 무너지고, 척추가 한계까지 기울어졌다.

당황하여 삼 보 뒤로 물러나 이격(二擊)을 준비하는 사도위.

그러나 마동필의 검은 이미 사도위의 몸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신(神)의 행보를 막지 마라.”

사도위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흑혈마검의 검풍이 황금빛 폭풍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퍼어어어어엉!

박살 난 언월도와 수십 조각으로 흩어진 사도위의 시신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헉!”

뒤이어 쫓아온 육마위는 서둘러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눈이 마동필의 금빛 마안과 마주쳤다.

오싹!

‘괴, 괴물?!’

흑백의 구분 없이 몽땅 황금빛으로 물든 검사의 눈엔 지옥문을 지키는 수문장의 위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육마위는 재빨리 등을 돌렸다.

‘도주!’

주인님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명을 받았다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몸을 돌렸고, 도주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이성을 억누르는 황금빛 공포가 천사신공의 흉성마저 잡아먹었다. 육마위는 지금껏 주인님을 제외하고는 저토록 무서운 눈빛의 소유자를 본 적이 없었다.

파아아앙!

육마위가 재빨리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콰앙!

순간 두 발에 힘이 빠진 그녀가 땅을 굴렀다.

“헉!”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얼떨떨한 눈으로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마동필의 황금빛 마안은 그녀의 공포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가 어디로 도주할지도 확실하게 알았다.

극한까지 달아오른 금강야차마공의 마력이 육마위의 다리를 허공섭물로 묶어 버린 것이다. 평소 마동필의 무력을 한참이나 상회하는 무서운 기공술이었다.

마동필이 흑혈마검을 쳐들었다.

육마위가 입을 쩍 벌렸다.

“아, 안 돼!!”

콰아앙!

피와 살점이 폭발했다.

비요왕 휘하, 최고의 고수들이라는 오위 중 둘은 그렇게 죽었다. 너무도 허무하게, 그러나 허무한 죽음이 믿기지 않을 만큼 끔찍하게.

우우우우!!

흑혈마검이 부르짖었다.

마동필이 기합을 내질렀다.

“으아아압!”

퍼퍼퍼퍼퍼펑!

궁극의 검기공에 내원으로 통하는 대문과 외벽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무너진 잔해 위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때를 기점으로 조금씩 흩날리던 눈발이 점점 거세졌다.

“비요왕은 앞으로 나오너라!!”

멀찍이 떨어져 있던 곽소교의 얼굴에 살기가 어렸다.

“뭣들 하느냐?”

파아아아앙!

구장, 팔화, 칠사, 육운 그리고 남은 삼위가 마동필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사이.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 눈발이 몰아치는 날씨 속에서도.

천하진의 두 눈은 정확하게 곽소교를 포착했다.

“……드디어 만났구나.”

마동필의 구중마검세가 비요왕의 부하들을 향해 미친 듯이 퍼부어졌다.

콰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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