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39화 (339/774)

339화. 운명 (4)

황보세가.

산동에 자리를 잡은 후 오백 년이 넘도록 숱한 부침을 겪은 끝에, 비로소 강호 오대세가의 한 자리를 차지한 신권(神拳)의 가문.

온갖 일을 겪었으나 내원의 한복판에서 이런 무시무시한 전투가 벌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콰르릉!

폭풍처럼 뒤섞이는 막강한 경력이 일대에 지진과도 같은 충격을 주고 있었다.

쿠구궁! 콰앙!

튕겨 나간 경력의 파편이 건물의 기둥을 부쉈고, 흔들리는 대지에 놀란 말들이 사방으로 도주했다.

간신히 숨만 붙은 채로 사경을 헤매던 이들은 충격파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고, 쏟아지는 눈은 작은 화선지가 되어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데에 일조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의 격전.

아직 화경에는 이르지 못한,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무신(武神)의 초입에 들어선 초고수들의 공방은 그렇게나 화려하고 무서웠다.

콰콰쾅!

쏟아지는 경력의 홍수를 폭풍과도 같은 맹공으로 모조리 헤쳐 나가는 자가 있었다.

마동필.

강호의 절대마검인 흑혈마검의 주인이자, 염라마군의 호위대장인 그의 무공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그와 싸우는 이들 중 그보다 강한 자는 없을지라도 큰 모자람이 없는 이들만 열이 넘거늘, 그러한 고수들의 공격을 신들린 듯 격파하는 무적의 검도(劍道)를 보여 준 것이다.

까드드득!

매서운 공방 너머, 굵고 탄력적인 시위가 쭉 당겨졌다.

화아아아악!

기이하리만치 굵은 화살에 붉은 사기가 소용돌이쳤다. 비요왕 곽소교 휘하 최고의 고수라는 파산궁위의 패력시가 장전을 마친 것이다.

‘빠르군.’

궁위의 눈이 마동필의 움직임을 좇았다.

그는 제 자리에 서서 구장과 팔화, 칠사와 육운의 공격을 절묘한 검격으로 모조리 튕겨 내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방어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간간이 뽑아내는 예리한 검격은 완벽한 방어 이후, 치명적인 공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단숨에 무너져야 할 상대는 꿋꿋이 버티고 있었고, 오히려 공격을 가한 구장들 중 네다섯 명이 제법 깊은 검상을 입고 물러났다.

혀를 내두르게 되는 무위였다. 화경에 이르지 못한 무공으로 어찌 저런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광뢰궁술(光雷弓術)은 전 무림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궁술이었다. 거기에 패력시를 담아 내친다면, 화경의 고수라도 쉬이 피하거나 막을 수 없는 위력이 나올 것이다.

‘잘 가라, 이름 모를 검사.’

그때였다.

번뜩!

잔뜩 날이 선 검법으로 칠사의 공격을 흩어 낸 마동필의 눈이 궁위에게로 향했다.

순간 궁위는 등허리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날 주시하고 있다?!’

우연인가?

지금 저 검사 주변에는 사황유진이 펼쳐져 있었다. 사황유진은 사공을 익힌 자의 공력을 한계까지 증폭시키는 반면, 적의 감정을 흐트러트림과 동시에 내력까지 억제했다.

게다가 진법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감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부동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오감이 무뎌지며, 내력도 억제된다면 이는 본래 실력의 절반도 내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저 바위 같은 검사도 마찬가지일 터. 마기를 보니 마인임이 분명하지만, 마공과 사공은 또 다르다. 한참 떨어져 있는 건물 뒤에서 시위를 걸고 있는 자신이 보일 리가 없었다.

‘우연일 것이다.’

파산궁위는 자신의 힘을, 나아가 사신의 비학을 믿었다. 사황유진은 화경의 고수라도 깰 수 없다.

치이이이익!

활시위를 한껏 잡아당긴 그의 손가락에서 회색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잘 가게.’

티이이이잉!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패력시가 마동필의 흉부 세 치 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가히 번개가 따로 없었다. 벽력탄에 준하는 파괴력을 가진 화살이 속도까지도 빠르다.

궁위는 확신했다. 자신의 패력시가 저 검사의 흉골을 뚫고 심장을 박살 내는 것도 모자라, 등뼈를 쪼개고 땅에 깊숙이 박힐 것임을.

패력시에 담긴 경력이 소용돌이치며 마동필의 상체를 산산조각 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믿음은 곧바로 깨져 버렸다.

피슉! 콰아아아앙!

패력시가 폭음을 터트렸다.

궁위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번쩍!

동시에 한 줄기 검풍(劍風)이 궁위가 은신해 있는 곳까지 날아들었다.

패력시보다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다. 하지만 궁위 입장에선 불의의 일격이었으며, 최소한 그 예기만큼은 패력시를 한참이나 넘어서고 있었다.

펑! 우지끈!

건물 외벽에 매끈한 구멍이 뚫렸다. 구멍 뚫린 외벽 안쪽에는 건물 후면을 지지하는 기둥이 숨겨져 있었다.

쿠구궁!

반파된 건물이 굉음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다.

파아아악!

순식간에 몸을 피한 궁위가 용미편운(龍尾鞭雲) 뒤에 자리를 잡았다.

궁위의 손이 재빠르게 시위를 당겼다.

티티티팅!

패력시를 걸지 않았음에도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광뢰궁술을 대성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무심뢰(無心雷)였다. 진기로 생성한 무형의 화살로 적을 꿰뚫어 버리는 비장의 수법이었다.

펑! 퍼펑!

마동필의 몸이 흔들렸다.

궁위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막았다?!’

저 흑색 마검의 검배는 그리 넓지 않았다. 중원의 여느 패검보다 약간 넓은 정도랄까.

그 좁은 검신에 자신이 날린 무심뢰가 모조리 막혀 버렸다. 패력시보다는 약하다지만 무려 사연발을 꽂아 넣었는데, 고작 두어 걸음 물러난 게 전부였다.

피이이잉!

다시 시위를 걸려던 궁위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자신을 향해 주먹만 한 돌멩이가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동필이 발로 찬 돌멩이였다. 하지만 그 속도가 무심뢰에 비해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안……!”

퍼어어억!

육운의 일인, 용미편운의 머리통이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티티티팅!

편운의 시체 뒤에서 자세를 잡은 궁위가 다시 한번 네 발의 무심뢰를 쏘아 냈다.

후웅! 펑! 후웅! 펑!

마동필을 맞추지 못한 무심뢰가 그저 빈 땅을 터트리고 사라졌다.

‘또 피하다니!’

번쩍!

놀랍게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심뢰가 어디에서 날아올지 정확히 알기라도 한 듯, 화살을 피함과 동시에 칠사의 앞까지 접근한 마동필이 구중마검세를 펼쳤다.

쿠르르릉! 퍼어억!

하늘이라도 뚫어 버릴 듯 강력한 검격이 칠사 중 셋의 흉부를 터트려 버렸다.

베는 것도, 찌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터트린다. 너무 강한 힘을 제어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예리함을 버리고 힘을 선택한, 그가 의도한 검격이었다.

흩뿌려지는 피, 파편이 되어 날아가는 흉골, 찢어지고 조각난 살점.

촤아아악!

그 모든 것을 뒤집어쓴 마동필의 몸에서 더욱 진한 황금빛 마기가 피어올랐다.

화아아아악!

이제는 숫제 괴물이나 다름이 없다.

활활 타오르는 금화(金火) 속, 육안으로 보이는 마기의 폭풍보다 훨씬 진한 마안(魔眼)을 피워 내며 본래 크기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이는 마검을 들고 구천의 검식(劍式)을 준비하는 초절정의 마인.

궁위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되겠군.”

치리링!

등 뒤에서 패력시 세 발을 꺼내 든 그가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내가 발을 묶어 둘 테니, 너희들은 최고의 수법으로 저자의 검을 봉인시켜라.”

신법과 검법을 막고,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무심뢰로 저격하겠다는 뜻이었다.

구장부터 오위까지, 살아남은 이십여 명의 고수들이 잔뜩 사기를 피워올릴 때였다.

“그만.”

스르륵.

마동필을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있던 사황유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러자 마동필의 마기가 출렁거렸다. 힘이 약해진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정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한도 끝도 없겠어.”

사박.

고운 당혜에는 피도, 살점도 튀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원 전체가 얼음 굴이라도 된 양 살벌한 분위기에 잠식되었다.

우우우우웅!

진법이 피워 내는 사기의 폭풍이 조금씩, 조금씩 그 기세를 잃었다.

하지만 농도는 그대로였다. 잠시 멈춰졌을 뿐, 언제라도 다시 진이 발동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유지된 상태였던 것이다.

마동필의 눈이 빛났다.

어느새 자신의 앞에서 분투하던 고수들이 좌우로 쫙 갈라섰다. 그리고 그 사이로, 아리따운 여인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비요왕?’

두 남녀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흡!’

순간 마동필은 금강야차마공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충격을 느꼈다.

비요왕 곽소교의 눈빛은 아득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만큼 깊었다. 사공의 극치를 연마한 자임이 분명한데도, 어딘지 모르게 도(道)에 심취한 도사의 그것처럼 맑았다.

마동필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비요왕의 무공이 소교주님에 비해도 한 점 부족함이 없음을.

아니, 단순 무학의 성취 면에 있어서는 소교주님보다도 더 높은 곳에 거한 괴물이라는 것을.

“재미있는 마공이네?”

곽소교가 빙긋 웃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 어디에도 살의나 광기는 엿보이지 않았다.

“사황유진에 대항할 수 있는 마공은 천마의 마공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네 마공은 결코 천마의 무공이 아니야.”

곽소교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분명 불가의 무공인데…… 소림은 아닌데? 내가 알지 못하는 항마공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군.”

스르륵.

흑혈마검의 검첨이 곽소교의 미간을 향했다.

서량에 필적하는,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는 절대고수를 마주하고도 한 점 물러섬이 없었다. 마기는 흔들리고 있지만, 마검에서 피어나는 예기는 무섭도록 깊어지고 있었다.

그 예기를 느끼며, 곽소교는 깨달았다.

“그래, 너는 사황유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아니었구나.”

“…….”

“오히려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어. 다만 사기를 기반으로 마기 자체가 성장하고 있는 거야. 사공에 있어서는 가히 천적인 마공이로구나.”

마동필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게 기쁘기라도 한 듯 깔깔깔 웃음을 터트리는 곽소교의 모습은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미쳐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 보지 않은 언행에 광기는 없었다.

‘자신이 있는 거야.’

사공에는 천적인 마공을 익히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상대는 아니라는 확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서량 역시 마공에 상극이라는 도가 신공을 익힌 곡천삭을 일격에 날려 버렸다. 저 정도 고수에게는 무학 자체의 상극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곽소교의 눈에 짙은 흥미가 어렸다.

“아무리 상극인 마공을 익히고 있어도 네 실력에 이 정도까지 분전하기란 어렵지. 정신력이든 뭐든, 참으로 탐이 나는 녀석인걸?”

“닥쳐라.”

“어머? 험한 말도 할 줄 알고?”

우우우우웅.

곽소교의 눈이 빛났다.

이제 보니, 저놈이 들고 있는 검도 보통 검이 아니었다. 검신 전체에서 뿜어지는 마기가 해일과도 같았다.

범상치 않은 마공, 지닌바 실력을 몇 배나 상승시키는 정신력.

더하여 천하에 다시 없을 마병까지.

“마공이라…… 이제 와서 내게 별 의미는 없지만, 천하를 다스리는 데 너와 같은 아이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곽소교가 싱긋 웃었다.

순간 마동필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훅! 파아아앙!

한순간 불어닥친 매서운 바람에 마동필의 신형이 주춤거렸다.

‘……?’

마동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곽소교가 손목을 살살 돌리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마교 놈들이 분명하긴 한데, 이런 실력자가 있을 줄은 몰랐는걸?”

곽소교의 반응에 내심 의아했던 마동필은 순간 드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저벅저벅.

환하게 웃으며, 서량이 다가오고 있었다.

좌청우홍, 청홍의 마안을 빛내며.

“여흥은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곽소교의 얼굴에 더욱 짙은 흥미가 어렸다.

“아까부터 이 정체 모를 검사를 잡아채고 싶었지. 하지만 번번이 막혔다. 바로 너란 존재 때문에.”

저벅저벅.

“너는 누구지?”

저벅저벅.

“반로환동의 고수인가? 구대마존?”

“아니.”

파지지직! 화르르륵!

불과 번개를 뿜어내며 서량이, 아니 천하진이 말했다.

“네가 남긴 불씨이니라.”

“뭐?”

퍼어어어엉!

천하진의 손이 곽소교의 얼굴을 뒤덮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