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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40화 (340/774)

340화. 운명 (5)

곽소교는 엄청나게 커다란 손이 자신의 얼굴을 덮는 것을 느끼며,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빠르다. 그리고 강해.’

그녀 자신의 신법이 얼마나 지고한 경지에 올랐는지 알고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동이었다.

이놈은 강하다. 익히고 있는 신법과 보법 자체의 수준도 놀랍도록 뛰어나지만, 그러한 무공들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완전무결하게 구사하는 진짜 강자인 것이다.

극마의 고수였다. 그것도 갓 들어선 경지가 아니었다.

태산처럼 높고 깊은 극마라는 경지의 팔부 능선까지 오른, 자신과 비교해도 큰 모자람이 없는 극강의 고수인 것이다.

곽소교의 얼굴을 덮은 손이 그대로 전진했다.

파아아아앙! 콰르릉!

“헉!”

“이, 이럴 수가!”

가주전 주변에 둘러쳐진 성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곽소교가 벽을 뚫고 들어가 버린 것이다.

“소, 소가주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사마외도의 무리에게 본가가 점거를 당했소이다! 어찌 소가주님더러 피하라 하시오!”

“이런 무모한! 전대 가주님과 현 가주님조차도 손 한 번 써 보지 못한 괴물들이오! 목숨이나마 보전해야 하지 않겠소!”

“이이익!”

살아남은 황보의 고수들이 급박하게 움직일 때.

성벽 끄트머리에 선 황보준은 멍하니 서량을 바라보았다.

“저놈……!”

뽑힌 팔이 욱신거리는 듯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상대를 잘못 본 대가로 팔 하나를 잃었다. 목숨을 잃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외팔이가 되어 버린 황보준으로선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충격과 좌절을 맛봐야 했다.

한데 자신을 이리 만든 자가 저기 있었다.

“으아아아악!”

파아아앙!

“헉!”

“소, 소가주님!”

“안 돼! 막아라!”

그들의 외침은 너무나도 늦었다.

이미 황보준은 성벽에서 뛰어내려 천하진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것인지, 천중산 자락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죽엇!!”

우우우웅!

하나 남은 팔에서 무서운 경력이 휘몰아쳤다. 천하진의 몸통을 단숨에 부숴 버릴 생각인 것이다.

그때, 천하진이 황보준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찰나를 쪼갠 시간.

황보준은 자신을 향한 천하진의 눈빛을 보며,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후우우웅.

단전에 가득했던 내력이 모조리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바위도 일격에 부숴 버릴 강력한 권력(拳力)도, 발목에서부터 시작해 허리와 어깨, 팔까지 전달된 전사경(轉絲勁)도 순식간에 그 힘을 잃어 갔다.

‘이게 무슨…….’

퍼억!

황보준의 주먹이 천하진의 가슴을 때렸다.

‘으윽!’

황보준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천하진의 가슴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아무리 내력이 흩어졌다지만 돌처럼 단단한 주먹이 쪼개질 것처럼 아파 왔다.

“음?”

멍했던 천하진의 눈에 은은한 기광이 떠올랐다.

“넌 뭐냐?”

“뭐?”

황보준이 입을 쩍 벌렸다.

“네놈,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냐?”

천하진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실력이든 뭐든,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애송이였다.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황보준을 죽이지도, 그에게 욕을 하지도 않았다.

철저한 무시였다.

점점 멀어져 가는 천하진의 등을 보는 황보준의 눈이 잔뜩 충혈되었다.

“……개새끼!”

터어엉!

다시 한번 천하진을 공격하는 황보준.

그때였다.

푸화아악!

“컥!”

황보준이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가슴엔 주먹만 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궁위가 활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놈은 주인님 것이다. 네깟 애송이가 손댈 물건이 아니야.”

“끄르륵.”

부르르 떨던 황보준의 눈이 감겼다. 허망한 최후였다.

그때, 매서운 검풍이 궁위의 등을 노렸다.

쾅!

절묘한 신법이었다. 언제나 원거리 공격을 해야 하는 궁수에게 수준 높은 신법은 필수라지만, 확실히 궁위의 무공은 남다른 바가 있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마동필이 다시 황금빛 마안을 피워 냈다.

“언사가 불경하다.”

“그래, 우리의 싸움도 남아 있었지.”

궁위가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성벽을 깨부수고 들어간 주인은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일대를 뒤흔드는 이 풍성한 사기에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고작 그 정도로 충격을 받을 분이 아닌 것이다.

“이 차전을 시작해 볼까?”

터어엉! 타아아앙!

비요왕의 수하들과 마동필이 다시 한번 충돌했다.

콰르르릉!

심상치 않은 경력이 내원을 폭풍처럼 뒤집어 놓았지만 천하진은 그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로지 무너져 내린 성벽의 안쪽을 향해 있었다.

과거의 그때보다 훨씬 왕성한 사기를 뿜어내고 있는, 보행조차 쉽지 않을 만큼 강력한 기파를 자랑하는 요신(妖神)만을 좇았다.

후두두둑.

곽소교가 일어났다.

짐작했던 그대로였다. 곽소교는 신기하리만치 멀쩡했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옷도, 새하얀 피부도, 정갈하게 말아 올린 머리도 이전과 똑같았다.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비범한 자태. 융통무애한 사기가 육신을 넘어 의복까지 방어할 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리라.

곽소교가 웃으며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굉장한걸? 내 지금의 경지에 오르고 나서, 당분간 나와 비견될 만한 자를 만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

“물론 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 너의 경지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다.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가히 천하제일인이라 불려도 무방했을 것이야.”

천하진은 대답 없이 그저 같은 속도로 걸어 나갔다.

곽소교의 미소가 짙어졌다.

“안타깝게도, 당금 천하에는 나라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너에게는 참으로 비극이라 할 만하구나.”

‘신기하군.’

천하진의 귀에는 곽소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담담해.’

비요왕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그는 폭발하려는 마공을 억눌러야 할 정도로 들떴었다.

육안으로 비요왕의 사기를 보았을 때, 그는 생애 다시 없을 살기를 뿜어내며 과거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비요왕을 눈앞에서 마주한 지금, 그는 오히려 차분해지는 스스로를 느꼈다.

분노가 폭발해서 이성을 잃지도, 너무나 기뻐서 웃음이 나오지도 않았다.

마치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조반을 먹으러 가는 것처럼.

조금은 상쾌하고 개운했으며, 너무나도 무덤덤했다.

“이제야 알겠어. 네가 마교주지?”

천하진이 미소를 지었다.

순진한걸? 나 정도 무공으로 교주가 될 수 있을 줄 알다니.

아마 이천상이라는 고금제일의 마신을 만나 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 마공, 나의 사공에 비해도 조금의 모자람이 없어. 사신의 비학과 견줄 만한 마공은 천마의 무공뿐이지. 분명 네가 마교주일 거야.”

곽소교가 활짝 웃었다.

“언제고 꼭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이리 빨리 만나게 될 줄이야. 이런 게 바로 운명이라는 거겠지.”

운명.

곽소교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천하진은 그것을 부인했다.

이것은 단순한 운명이 아니라 숙명이다.

숙명. 날 때부터 타고난,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절대적 운명.

오롯이 살왕 천하진이었을 때는 운명이었을지 모르나, 새로운 삶을 얻고 천마신교의 작은 주인이 된 지금의 천하진에게는 숙명이었다.

이유인즉, 그의 목숨을 끊은 것이 바로 비요왕이기 때문이다.

비요왕에게 죽고, 천마신교의 삼공자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숙명이 되는 것이다.

“궁금한 건 마교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이곳에 나타났냐는 것인데…….”

“나는 교주가 아니다.”

“응?”

곽소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주가 아니라고? 네가?”

“그렇다.”

“그럴 리가? 마교에서 제일가는 강자가 교주가 되는 게 아니었어?”

“맞다.”

“그럼 네가 마교주여야 하는데? 너 정도 강자는 나를 제외하고, 당금 무림에 서너 명밖에 안 될걸?”

“그래서 나는 교주가 아니다.”

“무슨 말이지?”

“나 정도 무공으로는 천마신교의 교주가 될 수 없어. ‘고작’ 무림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도로는 결코 신교의 주인이 될 수 없지.”

곽소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호호호! 너, 참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내 말이 재미있나?”

“재미있지!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 세상에, 나를 위해서 남을 깎아내리는 놈들은 많이 봤어도 조직을 위해서 나를 깎는 놈은 또 처음 보네?”

“깎아내리는 게 아니다. 현실이지.”

“농담도 자꾸 하면 재미없어. 아니?”

“농담 아니다. 그리고 난 너를 웃겨 주려고 온 것도 아니야.”

곽소교가 조소를 지었다.

“그럼 왜 왔는데?”

“…….”

“아니, 그 전에 넌 누군데?”

왜 왔는가. 그리고 넌 누구인가.

그 말을 들은 천하진은 걸음을 멈추었다.

‘…….’

뭔가, 가슴 안에서 울컥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덤덤했던 것이 거짓말이라도 된 양, 갑작스레 감정이 마구 요동쳤다. 손끝이 덜덜 떨리고, 구유마기와 군림마황기가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왜?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아…….’

이유를 찾던 천하진은, 마침내 깨달았다. 왜 자신이 비요왕을 마주하면서도 이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건지.

분노가 너무 강해서? 그게 아니었다.

‘저년은 몰라.’

곽소교는 모른다. 자신이 살왕 천하진이라는 것을.

철혈성의 사주를 받고 찾아와, 혈고를 제거해 주는 대신 구파의 절학을 내놓으라 외쳤던 비요왕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자신은 죽었고, 다시 태어났다.

다시 태어났기에 복수심을 불태울 수 있었지만, 상대는 달라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다.

그 작고도 미묘한 거슬림이 그의 감정을 막은 것이다. 나를 모르는 상대에게 복수를 해 봤자, 그것은 진짜 복수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과연 너 하나를 죽이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는 것을, 네가 뿌린 과거의 불씨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비요왕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복수의 대상에게 그러한 사실을 각인시켜 줄 수 있을까?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동필이 보는 앞에서?

저 멀리, 고군분투하고 있을 여상린과 앵화가 여기 있더라도?

만약 이천상이 옆에 있더라도, 나는 그러한 사실을 거리낌 없이 상대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콰아아앙!

곽소교의 눈이 커졌다.

휘이이이잉!!

자흑색 거대한 칼날 주변으로 미칠 듯한 광풍이 불어닥쳤다.

“네가 날 죽였다!!”

천하진의 외침은 가주전과 내원을 뚫고, 저 멀리 외원 너머까지 퍼져 나갔다

“바로 네가! 너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년이 나를 죽였다! 네가 죽인 내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지금 네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화르르르륵!

겁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유부 깊은 곳에서 난 균열, 그 균열 안쪽에서 넘실거리던 검붉은 화염이 세상 밖으로 폭발하듯 뛰쳐나오고 있었다.

“수백 밤을 설쳤으며, 수천 번을 이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지금! 네가 피운 작은 불씨는 거대한 산불이 되어 예까지 번졌다!”

휘이이이이잉!!

눈에 보일 리가 없는 바람이 사람의 육안으로도 보였다.

하얗기도 하고, 회색 같기도 한 바람이 쏟아지는 눈을 휘감으며 구름까지 닿았다. 먹구름 가득하던 하늘이 붉어지고, 땅에서부터 솟구쳐 오른 붉은 화염이 회오리를 타고 올라 소용돌이치는 불기둥을 만들어 냈다.

곽소교의 눈이 커졌다.

“어……?”

저 도법은? 저 바람은?

“왜 왔느냐고?! 내가 누구냐고?!”

콰아앙!

두 발로 대지를 초토화시킨 천하진이 괴물처럼 울부짖었다.

“오로지 너를 죽이기 위해 왔다! 나 살왕이, 천하제일살수 천하진이 널 죽이기 위해 지옥에서 기어올라 왔느니라!”

“뭐, 뭐라고?!”

“죽어!!”

콰아앙!

화염의 폭풍이 곽소교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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