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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42화 (342/774)

342화. 복수라는 이름의 감로주 (2)

쿠르르릉!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멀 수 있는 황보세가의 내원.

그곳에서 터져 나오는 엄청난 기파의 충돌에 곡천삭의 얼굴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대체……?”

엄청났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괴력난신들의 겨룸이었다. 화경의 경지에 올라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곡천삭조차 감히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 공포의 전장이었다.

“어르신.”

곡천삭이 눈을 돌렸다.

우영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파에 몸이 얼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저 앞의 독무(毒霧)를 걷어 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황보세가의 외원 입구에는 구름과도 같은 연기의 장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검고 하얀 연기는 의지가 있기라도 한 양 휘몰아치는 눈보라에도 흩어지지 않고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어려울 것은 없네만, 자네 설마?”

“들어가야겠습니다.”

“자네, 이 기파가 느껴지지 않는 겐가?”

“느껴집니다.”

굳은 얼굴 위로 결연한 빛이 어렸다.

“그래도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서 어떻게 하려고? 저 싸움에 휩쓸렸다간 칼질 한번 못 해 보고 죽을 걸세! 개죽음을 당한단 말이야!”

“직접 보고 나서 판단하겠습니다.”

“바보 같은! 내 기감을 믿지 못하는 것인가? 저곳은 지금의……!”

곡천삭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조차 끼어들지 못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치솟는 자존심이 입을 막았다.

하지만 우영은 곡천삭의 표정에서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르신의 감각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기에 휩쓸리면 저와 혈전단원 모두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성주님의 명령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많은 무력 부대 중 하필이면 저와 혈전단을 보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복잡한 눈으로 그를 보던 곡천삭이 이를 갈았다.

“연기를 걷어 내 주지. 하지만 나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네.”

겁 많은 늙은이.

우영은 그리 욕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은 아군끼리 싸울 때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우우우우웅!

곡천삭의 왼손에서 강력한 진기가 흘러나왔다. 곤륜의 절기, 육양수(六陽手)의 경력이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카아아앗! 커허허헝!

후방 좌측과 우측에서 무지막지한 포효가 들려왔다.

거리가 한참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그 포효에서 느껴지는 기(氣)에 몸이 움츠러들 지경이었다. 쏟아 내는 음파에 세상을 뒤흔드는 영기(靈氣)가 담겨 있었다.

곡천삭이 뒤를 돌아보았다.

콰아아앙! 콰드드득!

바위를 부수고 달려오는 거대한 호랑이.

그리고 수십 그루의 거목을 부수며 날아오른 황금빛 여우가 있었다.

“저건 또 뭐야!!”

파아아앙!

우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빠르다!’

정체 모를 두 짐승의 돌진은 엄청나게 빨랐다.

마교 소교주 일행의 거대한 마차를 몰던 한혈마들보다도 더 빠른 것 같았다. 거대한 네 개의 발이 지면을 내리찍을 때마다 땅바닥에 쩍쩍 금이 갔다.

“전투 준비!”

차차차차창!

혈전단원 모두가 창칼을 빼 들었다. 삽시간에 피어오르는 군기(軍氣)가 그들의 단련 정도를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저런 규격 외의 짐승들과 대치해 본 적은 없었다. 살벌하게 피어오르는 군기 뒤로 한 줄기 당혹감이 느껴졌다.

콰아앙!

두 영수가 땅을 박찼다.

그들은 혈전단을 노리지 않았다. 그토록 커다란 몸이 하늘을 날아 곡천삭과 우영, 혈전단을 뛰어넘었다.

쿠우우웅!

대지로 내려선 금호와 호왕이 짙은 연기가 넘실거리는 외원의 대문 앞에 몸을 돌리고 서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곡천삭은 기가 막혔다.

“저건 또 뭔…….”

“염왕이수(閻王二獸)입니다.”

“뭐?”

우영이 침을 삼켰다.

자신들을 노려보며 으르렁대는 두 영물의 위압감은 초절정고수의 살기보다도 지독했다. 제아무리 영물이라도 이런 위압감을 뿜어낼 수 있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염라마군이 부리는 저승의 차사(差使)라고도 불리는 놈들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저놈들 하나하나가 구파의 장문인에 필적할 만한 전투력을 낸다고 하더군요.”

“허!”

곡천삭이 호왕을 바라보았다.

붉은 안광 위로 살의를 틔운 산중대왕의 눈빛. 화경에 올랐음에도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흉흉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금호.

‘……!’

금호와 눈이 마주친 곡천삭은 순간 심장이 콱 조여 오는 충격을 느꼈다.

호왕의 눈빛이 한없이 흉포하다면, 금호는 달랐다.

‘괴물……!’

몸집은 더 작지만, 저 여우는 대호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존재임이 분명했다. 요악하면서도 신비로운 눈빛이, 안광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영기(靈氣)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화경에 오른 절대고수만이 느낄 수 있는 차이였다. 곡천삭의 손에서 소용돌이치던 육양수의 경력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르신?”

침을 삼킨 곡천삭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지이잉!

곤륜의 신공을 자극하는 기묘한 감각에 곡천삭이 서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머나먼 곳.

그곳에서부터 풍겨오는 미약한 군기(軍氣)가 느껴졌다.

“어르신!”

“……제기랄.”

곡천삭이 이를 갈았다.

“그야말로 아귀들의 각축장이 되었군.”

* * *

펄럭!

곽소교가 겉옷을 벗어 던졌다.

까마귀 깃털로 멋들어지게 장식된 옷은 군데군데가 불타고 찢겨 흉하게 변해 있었다. 그녀의 공력이 아무리 출중하다 한들, 폭산충파경의 힘 앞에서 의복까지 보호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의복이 상했다는 분노 이전에, 곽소교는 당혹감을 느꼈다.

“네놈, 대체 누구길래 그 개자식의 무공을 쓰는 거냐?”

휘리리리릭! 탁!

미친 듯이 허공을 휘젓고 다니던 천마도가 다시 천하진의 손에 잡혔다.

천하진이 씨익 웃었다.

그는 곽소교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정체에 대해 충분히 말했고, 그것을 증명하기까지 했다. 곽소교 역시 자신이 살왕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환희를 끌어올렸다. 끓어오르는 분노만큼이나 환희도 커진 것이다.

화르르르륵!!

구유마공이 다시 타올랐다.

재차 소리를 지르려던 곽소교는 순간 마병을 휘감고 있는 마기에서 낯익은 감각을 느꼈다.

‘어?!’

저것은 분명 마공이다. 얼마 전, 자신이 대성한 사황극천공(邪荒克天功)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는 초상승의 무공이 분명했다.

하지만 왜일까? 저 마공에서 알 수 없는 익숙함이 느껴졌다.

가만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쇄골이 시큰거리는 듯한.

이 년 전, 자신의 육신에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큰 흉터를 만들어 준 죽일 놈의 칼날이 떠올랐다.

마치 적송대사가 구유마공에서 소림의 냄새를 맡은 것처럼 사신 비학 최후의 경지, 사신지경(邪神之境)에 오른 그녀이기에 느낄 수 있는 분명한 차이였다.

“그래, 깨달았군.”

“……!”

“보이나? 내 마공의 기반이 된 힘이?”

천하진이 크게 웃었다.

“그게 바로 암영기(暗影氣)다! 네년이 그토록 원했던 구파의 비기를 기반 삼아 만든 무공이니라!”

곽소교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구파의 비기를 기반 삼아 만들어? 내가 그리도 원했던 것이라고?

순간 그녀는 지금껏 흘려들었던 상대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 바로 네가! 너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년이 나를 죽였다! 네가 죽인 내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지금 네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 오로지 너를 죽이기 위해 왔다! 나 살왕이, 천하제일살수 천하진이 널 죽이기 위해 지옥에서 기어올라 왔느니라!”

“말도 안 돼!”

우우우웅!

곽소교의 두 눈이 짙은 사기를 뿌려 댔다.

“그놈은 분명 내 손에 죽었다! 내 열강조(裂鋼爪)로 온몸을 다져 놓고는 모가지를 뽑았어!”

“그래서 말했잖느냐! 지옥에서 기어올라 왔다고!”

그녀는 다시 한번 외치고 싶었다. 어디서 개수작을 부리고 있느냐고.

하지만 그녀의 입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록 적이었지만, 살왕의 무공은 무척이나 고차원적이었다. 특히나 도법이 대단했다. 내공심법과 경신술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폭풍을 부르고 불기둥을 만들어 내는 도기공(刀氣功)은 전 무림에서 살왕만이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똑같은 무공을 이토록 깊게 연성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도 족히 십 년은 수련해야 실전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한데 눈앞의 어린놈은 그 무공을 썼다. 그것도 당시의 놈보다 더 수준 높은 기공을 선보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닥쳐!!”

곽소교의 눈빛에서 광기가 묻어 나왔다.

“설마하니 네놈이 이혼겁백(移魂劫魄)의 영술(靈術)을 썼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것은 전대 사신(邪神)조차 성공 가능성이 일 할 이하라고 했던, 술법계의 신화경(神化境)과 같은 경지다! 벌레처럼 하찮은 놈 따위가 쓸 수 있는 수법이 아니란 말이다!”

이혼겁백. 한 사람의 혼을 타인의 몸으로 옮기는 좌도방문(左道傍門)의 수법을 뜻한다.

그러나 좌도방문의 술수라 한들, 지금껏 그 수법을 실제로 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술법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어찌 사람의 혼을 타인의 몸뚱이에 옮길 수 있단 말인가.

치이이이익!

곽소교의 몸에서 회색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뜨겁게 달군 쇠를 물에 넣었을 때 나오는 김 같았다. 하지만 천하진은 느꼈다. 저것은 단순한 김이 아니라는 것을.

‘사기(邪氣)!’

그것도 무지막지한 농도를 자랑하는 사기였다.

지금껏 살아오며, 저만큼 지독한 사기를 본 적은 없었다. 새삼 저 망할 년이 이 년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다 그놈 무공을 얻어다가 흉내라도 내는 모양인데, 나를 화나게 할 작정이었다면 완전히 성공했다!”

쿠구구궁!

곽소교가 선 반경 삼 장 안의 땅에 금이 갔다.

화아아아악!

쩍쩍 갈라진 틈에서도 회색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천하진의 구유마기가 지옥의 유황불이라면, 그녀가 발산하는 연기는 유황불에 불살라진 귀신들의 비명 같았다.

“네놈이 누구든, 만 갈래로 찢어 죽여 네 영혼이 구천을 떠돌 수조차 없게 만들어 주마!”

“그래, 그거다.”

천하진이 씨익 웃었다.

그의 미소는 곽소교의 살기에 모자람이 없는, 오히려 그것을 압도하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줘야지, 비요 할매!”

곽소교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비요 할매? 참으로 생소한 호칭이다. 적어도 이 년 전, 그 망할 놈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자신을 저따위로 부른 적이 없었다.

- 주둥이만 나불댈 줄 아는 육십 먹은 할매 따위 뭐가 무섭다고.

이죽거리는 말투로 강력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화법.

콰앙!

곽소교의 장력이 천하진의 몸통을 후려쳤다.

이번 일격은 피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불의의 일격을 맞은 천하진이 훨훨 날아 땅에 처박혔다.

울컥!

핏덩이가 목구멍까지 치솟는 걸 겨우 삼켰다. 무겁진 않지만, 워낙 빠른 속도라 충격이 상당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음은 당연하고, 감각으로 깨우치는 것도 늦었다. 무서운 장법이었다.

그러나 천하진은 웃었다.

이 정도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껄껄껄 광소를 터트리며 천마도를 쥐었다.

“이제야 기억이 나느냐?!”

“닥쳐!”

퍼어어어엉!

곽소교가 무서운 속도로 접근했다.

그리고 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천하진 역시 그녀에게 돌진했다.

사실을 믿든 믿지 않든.

이제야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가진 바 모든 것을 아낌없이 퍼부을 만반의 준비를 마친 것이다.

파지지직! 화아아악!

지옥풍과 충파경, 열강조와 사황파(邪荒派)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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