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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43화 (343/774)

343화. 복수라는 이름의 감로주 (3)

쩌어어어엉!

쇠와 쇠가 부딪치며 공명하는 소리가 십 리 밖까지 울려 퍼졌다.

천마도를 회수한 천하진은 생각했다.

‘과연.’

강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노가 끊임없이 타올랐지만, 상대가 자신을 제대로 인식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만큼의 냉정함도 갖출 수 있었다.

비요왕은 강했다.

이 년 동안 어떤 수련을 한 건지, 그때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될 만큼 강해졌다.

뿜어내는 공력은 해일과 같았고,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손짓엔 순도 깊은 무리(武理)가 깃들어 있었다. 초식의 투로를 따르는 것 같진 않았지만, 피할 수도 없고 막기도 힘든 움직임으로 빈틈을 쑤셔 왔다.

‘제대로 힘을 쓰기 시작했어. 아차 하는 순간 당한다.’

급박함과 위기감.

자연스레 차오르는 긴장이 더 강한 분노와, 그 분노를 삭일 만큼의 냉정함을 동시에 선물했다.

천하진이 강하게 땅을 박찼다.

콰앙!

그가 비요왕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수도 없이 단련된 실전 감각과 극도로 다듬어진 신체에서 나오는 힘이었다. 무공의 경지, 정확히는 무학의 경지에선 비요왕이 앞섰지만, 내력은 엇비슷했고 힘은 그가 더 강했다.

속도와 경신술의 경지는 비요왕이 높았고, 일격필살의 묘리에선 천하진이 앞섰다.

전체적으로 비요왕이 우위에 선 듯했지만 그것은 누가 봐도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원한으로 얼룩진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서로를 향한 공격을 아낌없이 펼쳐 냈다.

쩌저정! 파아아앙!

칼과 주먹, 장과 손톱이 톱니바퀴 부딪치듯 서로의 방어를 헤집었다.

후욱!

천하진의 자세가 낮아지고, 상반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근접 거리에서 내쳐 오는 곽소교의 장법에 대비하기 위해 피격 반경을 좁힌 것이다.

콰앙!

천하진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그 위력을 충분히 예상했는데도 그것을 한참이나 넘어서는 힘이었다. 눈앞에서 불똥이 튈 정도로 막강한 장법에, 순간 상체가 뒤로 젖혀질 뻔했다. 강인하게 단련된 하체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뒤로 날아갔을 것이다.

파아아악!

탄력적인 보법으로 일 보 뒤로 물러난 그가 천마도를 휘둘렀다.

사선으로 쪼개는 칼질이었다. 인화도법처럼 전방위를 아우르는 기공술은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내력의 방패를 쪼개 버릴 만큼 빠르고 예리했다.

곽소교의 몸이 회전했다.

티이이잉!

천마도가 튕겨 나갔다.

그 짧은 거리에서, 찰나에 몸을 회전시켜 열강조를 구사한 것이다. 맨손 육장(肉掌)의 강도도 대단했지만, 날카로운 손톱은 특히 강했다.

파아악!

거리를 좁힌 곽소교가 천하진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짝 날이 선 손톱은 강철보다 단단해 보였고, 손톱 주변으로 넘실거리는 회색빛 사기는 그 어떤 극독(劇毒)보다도 위험해 보였다.

순간 천하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곽소교가 노리는 부위, 그것은 자신의 목이었다. 쇄골부터 목젖까지 완전히 뜯어내려는 살초였다.

찰나의 순간,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억이 그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힘이 다한 자신의 목을 쑥 뽑아 버리곤, 숲이 떠나가라 웃어젖히던 망할 년의 웃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훅!

곽소교의 눈이 일그러졌다.

놈은 열강조를 피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피할 수도 없는 거리였다.

그렇다면 방어라도 해야 마땅한데,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복부를 향해 칼날을 가져다 댈 뿐이었다.

‘개자식!’

이대로라면 놈의 목을 잡아 뜯을 수 있을 테지만, 동시에 이 무지막지한 칼날이 자신의 몸을 꿰뚫어 버릴 것이다. 사황극천공으로 보호받는 몸은 강철보다 단단했으나, 극상승의 마기로 불타오르는 마병 앞에선 무용지물일 게 분명했다.

곽소교의 몸이 또다시 회전했다.

픽!

그녀의 손톱이 천하진의 목에 작은 상처를 냈다. 동시에 천마도 역시 곽소교의 허리에 작은 자상을 만들어 놓았다.

터어어엉!

재빨리 거리를 벌린 곽소교가 쌍장을 내질렀다.

거대한 도기(刀氣)로 그녀의 팔 하나를 날려 버리려던 천하진은 순간 칼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쏘아지는 장력이 너무나도 빨라서 칼이 다 휘둘러지기도 전에 흉부에 닿을 듯했다.

콰앙!

천하진의 몸이 재차 들썩였다.

천마도의 널찍한 도신으로 막아 냈기에 다행이다. 이번 장력은 특히나 강력해서, 직격을 당했다면 상당한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내상을 입었다면? 그럼 그것으로 끝이다. 저 요악한 년은 내상을 입은 상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다.

“쥐새끼 같은 놈!”

별것도 아닌 도발이었다.

저보다 열 배는 더 치욕적이고, 백 배는 더 살벌한 도발을 수도 없이 받아 본 그였다.

화르르륵!

그러나 그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폭발한 구유마기가 천하진의 몸을 뒤덮었다.

쥐새끼 같은 놈?

설령 그런 욕설이 아니더라도 화가 났을 것이다. 곽소교의 한 마디엔, 곽소교의 눈빛엔 천하진의 감정을 뒤흔드는 괴이한 힘이 있었다.

파아아앙!

마기에 휩싸인 천하진이 쏘아지는 화포처럼 전진했다.

신법도, 보법도 아니다. 오로지 마기의 힘으로 돌진하는데, 그 속도가 어느 때보다도 빨랐다.

곽소교의 눈이 흔들렸다.

불타오르는 유성처럼 쏘아지는 놈에게서 파멸적인 살기가 느껴졌다. 살기가 어찌나 지독한지 사황천극기가 뒤로 훅 밀릴 정도였다.

‘개자식!’

그녀가 다시 한번 장을 내쳤다. 사신의 비학, 그녀의 성명절기 중 하나인 비요음장(飛妖陰掌)이었다.

콰아앙!

비요음장이 천하진의 내력 장벽을 스치고 지나가 땅에 내리꽂혔다. 장력에 가격당한 땅이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뭐야?!’

피한 건가? 아니면 장력의 투로를 휘어지게 만든 건가?

파지지지직!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붉은 유성이 그대로 곽소교를 집어삼켰다.

콰르릉!

“크윽!”

무식하기 짝이 없는 육탄 돌격이었다. 곽소교가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

쿵!

천마도를 땅에 박아 넣고 몸을 세운 천하진이 허공에다 좌수를 툭 끊어 쳤다.

재차 자세를 잡으려던 곽소교는 순간 기겁했다. 무형의 장력이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퍼어엉!

곽소교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쳤다.

양팔을 교차시켜 겨우 막았다. 막은 팔뚝이 찌르르하고 아파 왔다.

얼굴에 맞았다면 콧대가 뭉개지고 이빨이 날아갔을 위력이었다. 사기의 방패를 부술 정도는 아니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만큼 끔찍한 꼴이 되었을 것이다.

군림마황기 상의 무공, 암장(暗掌)인 유령장(幽靈暗掌)이었다.

“썅!”

파르르르륵!

거친 욕설을 뱉은 곽소교의 몸에서 더욱 짙은 사기가 뿜어졌다. 의복이 미친 듯이 펄럭였고,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은 전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사황극천공을 십 성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뭣도 아닌 새끼가 감히 내 얼굴을 노려?!”

우웅. 우우웅.

곽소교의 흰자위가 점차 회색으로 물들었다.

터어어엉!

천하진이 돌진했다.

그리고 곽소교는 그보다 더 빠르게 돌진했다. 먼저 움직인 천하진보다 반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죽엇!”

파라라락!

곽소교의 양손이 무서운 속도로 휘둘러졌다.

서로의 호흡까지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머리, 목, 심장, 쇄골, 늑골, 요골까지 노리며 휘두르는 백타술에 천하진은 흔치 않은 위기를 느꼈다.

파파파팡!

두 사람의 백타가 부딪치며 생성된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사위를 강타했다.

그 가까운 거리에서, 일격에 바위도 으스러트리는 거력을 담아 수십 번을 부딪친다. 공기를 뚫고 퍼져 나가는 충격파도 대단했지만, 코앞에서 터져 나오는 충격파를 받아 내는 두 사람의 내구력은 그 한계를 시험당해야 했다.

하지만 둘은 멈추지 않았다.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누가 더 강한가, 누가 더 단단한가.

그리고 누가 더 분노했는가를 따져 보려는 듯, 폭발하는 경력을 맨몸으로 맞아 가며 서로의 육신에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쾅!

천하진의 몸이 흔들렸다.

육장으로 공격하던 곽소교가 어느새 각법으로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천마도의 창봉으로 막았지만, 그 진동으로 목뼈까지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곽소교는 그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퍼엉!

천하진이 뒤로 튕겨 나갔다.

코와 입에서 상당량의 피가 흘러나왔다. 융통무애하게 전신을 지키던 마기도 이번 일격은 막지 못한 것이다.

후욱!

곽소교가 다시 천하진에게 파고들었다.

번개와도 같은 백타, 틈을 만들어 낸 상단 각법, 드러난 빈틈을 여지없이 뚫어 버린 장타까지.

숨 쉴 틈도 없이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움직임에 제약이 전혀 없었다. 한 호흡의 시간이 필요한 천하진과는 달리, 곽소교의 호흡은 아직 여유로웠던 것이다.

천하진은 생각했다.

‘강해.’

힘도, 일격필살의 묘리에 있어서도 자신이 한 수 위다.

그런데도 밀리고 있다.

타오르는 분노로 마기 역시 왕성하게 불어나고 있지만, 곽소교는 단순히 힘이 강하다고 몰아붙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정면 승부로는 이기기 힘든 상대다.’

천하진과 곽소교의 무공 격차는 진정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 만했다.

그 정도면 작은 변수로도 승패가 뒤바뀔 수 있는 격차였다. 격차라는 말이 의미가 없는, 동등하다고 할 만한 경지라 볼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전이었다면, 진정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넘어, 무(武)의 한계까지도 돌파한 두 절대자에게 종이 한 장 차이는 태산과도 같은 차이가 될 수 있었다. 실수 한 번으로 좁혀질 수 있지만, 한편으론 평생 뒤엎을 수 없는 차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장은 메울 수 없는 이 미세한 간극을, 어떤 수를 써서 공략해야 하는가?

번쩍!

천하진의 좌안에서 벼락이 쳤다.

구유마공의 붉은 마기가 가득했던 그의 몸 위로 시퍼런 전광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사람의 기질이 뒤바뀌었다. 곽소교의 접근보다도, 그녀의 쾌속한 공격보다도 훨씬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열강조로 천하진의 허벅지를 부숴 버리려던 곽소교는 순간적으로 바뀐 상대의 기질에 깜짝 놀랐다.

‘뭐지?’

왜 갑자기 기질이 바뀐 거지?

파지지지직!

좌측 눈에서부터 번져 나오던 번개가 온몸을 휘돌더니, 이내 곽소교가 노리던 허벅지에 찬연한 불꽃을 발했다.

터어어엉!

공격을 가하던 곽소교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충분히 허벅지를 부숴 버릴 수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위기감에 공격을 회수하고 몸을 내뺀 것이다.

후우우우웅!

공기가 바뀌었다.

“후웁!”

모자랐던 한 호흡이 완전하게 채워지며, 천하진의 몸에 새로운 마왕의 힘이 깃들었다.

화르르륵! 파지지지직!

좌청우홍의 절대마안이 전광을 발했다.

화륵! 파지지지지지직!

두 마공이 동시에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구유마공은 자취를 감추었다. 청색과 홍색, 각기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던 두 눈이 이내 모두 청색으로 바뀌었다.

군림마황기였다.

구유마공은 내려놓고, 오로지 군림마황기로 전신을 꽉 채웠다. 한없이 흉흉한 광기를 전파했던 구유마공과 달리, 군림마황기는 압도적인 위엄으로 사위를 휩쓸었다.

구유마공이 불을 뿜는 흉신(凶神)이라면, 군림마황기는 벼락을 부르는 마신(魔神)이었다.

초대천마 때부터 이어져 내려와 칠대천마가 완성한 중원 역사상 최강의 마공이, 복수심에 미쳐 버린 천하진을 십대천마(十大天魔) 서량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천하진, 아니 다시 서량이 된 천마가 손을 까딱였다.

“다시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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