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깨우치다 (1)
“헉!”
곡천삭은 몰려오는 고수들의 기파에 놀랐다.
‘마기!’
마인이다.
특히 선두에서 달려오는 마인의 마기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신교의 소교주, 염라마군의 무시무시한 위압감보다는 못했지만 특유의 능숙함과 꼿꼿함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산 전체를 휩쓴 화마(火魔)에서도 꼿꼿하게 버틴 한 그루 거목 같은 기도였다.
음산하고 섬뜩하다. 하지만 날카롭고 강단이 넘친다.
어느 하나의 기질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적인 기파에 곡천삭의 내공이 화탕처럼 들끓었다. 서량과 몇 합 주고받았을 때보다 훨씬 더 긴장되었다.
‘대체!’
곡천삭의 눈에는 선두의 고수만이 보였다. 그 뒤를 따르는 삼백의 마인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들의 기파 역시 모골이 송연할 만큼 대단했지만, 고목 같은 마인의 힘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영은 달랐다.
그의 눈은 선두의 마인을 지나, 뒤의 삼백 마인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저, 저들은?!”
우영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불가해(不可解)였다.
“대체 저들이 어떻게!”
“우 단주. 저들을 아는가?”
“모르시겠습니까? 삼백 마인의 부대잖습니까! 남부에서 북상하며 정도 문파들을 멸문시킨 게 바로 저들입니다!”
곡천삭의 눈이 흔들렸다.
“성주님께서 저들을 잡기 위해 따로 병력을 파견하지 않았던가?”
“그렇습니다.”
우영이 이를 갈았다.
“그래서 이상한 겁니다. 저들은 여기에 있어선 안 됩니다. 본성에서 파악하기로, 동남부 쪽에 있어야 할 병력이 어찌?”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구궁!
저 멀리 동남쪽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병력이 있었다.
탁 트인 곳이라 기파가 전해지기도 전에 육안으로 먼저 보인다.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듯 무지막지한 패력을 뿜어내는 마인 부대와 달리, 찌를 듯한 날카로움과 한없이 차가운 군기(軍氣)를 발하는 부대였다.
곡천삭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사신단(四神團)의 현무대(玄武隊)다!”
사신단은 의천맹 최강의 전투 부대였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당연히 정예 무인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개개인의 무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합격진이 자아내는 전투력이 정파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대단하다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현무대만 위험한 게 아니었다.
저 마인 부대처럼, 현무대의 선두에도 엄청난 존재감을 드리우는 절대고수가 있었다.
“우 단주! 자리를 피하세!”
“예?”
“사신단의 현무대일세! 그리고 선두에 선 저 사람! 저이가 바로 광혼(狂魂)이야!”
광혼이라는 별호를 쓰는 자는 많지만, 의천맹의 부대와 함께할 광혼은 오직 한 명뿐이다.
“의천맹의 무상(武相)?!”
“그렇다네!”
우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 대체 저들이 왜?!”
철혈성에서는 수라단을 파견했고, 의천맹의 부대와 손을 잡아 마인 부대를 상대한다고 하였다. 그는 그 말을 총군사인 황곤에게 직접 들었다.
한데 수라단과 함께 움직여야 할 현무대가 왜 여기로 오고 있는 것이지?
문득 우영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이럴 수가! 삼세(三勢)의 병력이 모두 모였다?’
바로 이곳, 황보세가의 대문 앞으로.
철혈성의 혈전단과 의천맹의 현무대, 그리고 마교의 부대가 집결하고 있었다.
각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 하필 정사마를 대표하는 세력의 부대들이 한자리에 나타났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야!”
언양회를 구출할 겸, 마교의 소교주를 잡으러 온 길이었다. 그를 위해 마공과 상극이라는 도가 신공의 고수 곡천삭까지 데리고 왔다.
한데 자꾸 상황이 꼬이더니만, 황보세가까지 오게 되었다. 심지어 저 안에서는 마교의 소교주와 비요왕이 싸우고 있었고, 그 입구는 난생처음 본 영물들이 지키고 있었으며, 이제는 의천맹과 마교의 병력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어찌해야 하는가?
우영은 다가오는 마교의 병력과 의천맹의 병력을 바라보았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느껴지는 기파만으로도 저 두 병력의 의도는 명확했다.
‘교전은 불가피하다.’
우영이 칼을 뽑았다.
“혈전단 전원 전투 준비하라!”
이미 뽑아 놓은 병장기들에 강력한 진기가 어렸다. 삼백 고수들의 기세는 다가오는 정마(正魔)의 부대에 비해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때였다.
커허어엉!
호왕의 포효가 사방을 울렸다.
터어어엉!
포효가 끝나기도 전에 금호가 쏘아지듯 튀어나왔다. 황금빛 잔영을 남기며 질주하는 금호의 움직임은 바람처럼 자유로웠고 번개처럼 빨랐다.
“막아!”
혈전단원들의 병장기가 금호를 향해 휘둘러졌다.
파아악!
육중한 무게가 주는 충격을 이기지 못한 땅이 깊게 파였다.
혈전단원들의 공격은 금호에게 단 하나도 닿지 못했다. 비천(飛天)의 요호(妖狐)다. 삼백이나 되는 고수의 진영을 단번에 뛰어넘은 금호가 현무대 측으로 돌진했다.
화아아악!
심상치 않은 살기. 황금빛 고운 털 주위로 은은한 서기가 휘몰아쳤다.
현무대의 선두에 선 체격 좋은 중년 사내, 광혼이 버럭 외쳤다.
“이 미물이!”
콰앙!
달려드는 기세 그대로 장(掌)을 내치니, 폭음과 함께 붉은 장력이 쏘아졌다.
파멸적인 살기를 담은 장력이었다. 정파 무공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흉흉한 무공이었다.
금호가 그대로 자세를 낮추었다.
콰르릉!
금호의 갈기를 스치고 지나간 장력이 땅을 뭉개고 바위를 날려 버렸다.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피해?”
광혼의 눈이 번뜩였다.
어지간한 대호만큼이나 큰 여우, 그것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영물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영물이라도 자신의 장력을 피할지는 상상도 못 했다.
“요망한!”
터어어엉!
금호가 움직였다.
짐승의 움직임은 사람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변칙적이다. 애초에 몸의 탄력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외측으로 빠져나와 재차 도약하여 현무대의 측면을 노리는데, 그 속도와 탄력이 엄청났다.
“이놈!”
터엉!
광혼이 순식간에 이동해 금호의 앞을 막아 섰다.
금호의 움직임은 현무대의 고수들도 따라잡기 힘들 만큼 대단했지만, 광혼은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었다. 금호가 아무리 빨라도 광혼을 떼어 놓을 수는 없었다.
“죽어라!”
후우우웅!
광혼의 손에 다시 붉은 기운이 이글거렸다.
그때, 금호가 포효했다.
카아아앗!!
‘헉!’
쩍 벌린 입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맹수의 포효.
산천초목을 떨게 하고 땅까지 울린 엄청난 음파가 퍼져 나갔다. 그 음파에 실린 살벌한 기세에 광혼은 물론 돌진하던 현무대와 마교의 병력까지 모두 멈춰 섰다.
‘이럴 수가!’
이 자리에 있는 고수들 중 화경을 깨달은 이만 셋이었다. 그리고 금호의 포효에 섞인 엄청난 요기(妖氣)를 느낀 것도 셋뿐이었다.
‘엄청나다!’
‘굉장한 기야. 음파에 이런 기를 섞어 뿜어낼 수 있다니…….’
‘숫제 괴물이군.’
모두의 시선이 잠시 금호에게 집중되었다.
그때였다.
콰아앙!
“크아악!”
무지막지한 폭음과 함께 현무대원 십여 명이 하늘을 날았다. 공중을 나는 현무대원들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호왕이었다.
천 근이 넘어가는 몸으로 언제 거기까지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사람 몸통보다도 큰 앞발에 맞은 이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퍼억! 퍼억! 콰앙!
전신의 무게를 실어 후려치는 앞발질은 그 자체로 절정의 무공과 같았다. 더욱 놀라운 건 그리 강력한 앞발질을 연달아서 내치는데, 속도가 고수의 쾌검술을 보듯 엄청나다는 점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현무대원 열다섯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이것들이!”
광혼의 두 눈에 끔찍한 살기가 어렸다.
콰앙!
강하게 진각을 밟은 광혼이 금호와 호왕을 향해 쌍장을 휘둘렀다.
퍼어어어엉!
금호의 회피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거리가 그리 가까운데도 광혼의 장법을 완벽하게 피해 낸 것이다.
반면 호왕은 그대로 현무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쾅!
“아아악!”
목표를 잃은 광혼의 장력에 맞은 현무대원 둘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쿠궁!
호왕이 순간 주춤거렸다. 완전히 피하지 못한 장력이 그의 허리춤을 때린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호왕의 몸에 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검기로도 흠집이 나지 않는 외피와, 초절정고수의 내가중수법도 버티는 내구력이었다.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면 모를까,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화아아악!
광혼의 몸 전체가 붉은 진기로 이글거렸다. 마치 불꽃에 휩싸인 것 같았다.
“오냐, 이왕 이렇게 된 것, 마교고 철혈성이고 다 쓸어 버리겠다!”
파아앙!
순식간에 호왕의 머리 위까지 날아오른 광혼이 손을 칼날처럼 세웠다. 일격에 호왕의 머리통을 내리찍어 버릴 생각인 것이다.
그때였다.
‘헛!’
호왕을 노리던 광혼의 손이 일순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광혼의 의지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강력한 인력(引力)이 그의 무공 투로(套路)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력을 만들어 낸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마기였다.
휘이익! 쿠웅!
광혼이 땅으로 내려섰다. 어느새 호왕은 측면으로 뛰어올라 현무대의 영역을 벗어난 뒤였다.
광혼은 더는 호왕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파아아아악!
허공을 밟으며 접근해 오는 한 마인이 있었다.
왼손은 뒷짐을 진 채, 여유로운 자세로 접근한다. 하지만 그 속도는 광혼의 신법 못지않았다. 그가 눈 깜짝할 사이에 현무대 앞에 도달했다.
광혼이 외쳤다.
“산개해라!”
그의 외침은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퍼퍼퍼펑! 푸화아악!
현무대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혈전단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화경, 극마를 깨닫고 수십 년간 연마한 절대고수 앞에서 얼마나 큰 위협이 될 것인가.
빼빼 마른 노인의 손짓 몇 번에 현무대원들의 몸이 퍽퍽 터져 나갔다. 젓가락 들 힘도 없어 보이는 깡마른 체구인데, 마른 손에서 뿜어지는 장력은 광혼의 장법 못지않은 패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화아아악!
숨 막히는 마기가 사위를 휩쓸었다.
순식간에 현무대원 삼십여 명을 죽인 노인에게, 어느새 묵직한 장력이 날아들었다.
콰앙!
노인의 몸이 주춤거렸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막강한 마기로 보호받는 노인은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았다.
광혼이 이를 갈았다.
“구대마존!”
“그렇다.”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바로 고루마존이다.”
“네놈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 철혈성의 뒤를 칠 거라고 보았는데!”
“아, 그거 말인가?”
빙긋 웃고 있던 고루마존의 표정이 일순 사나워졌다.
“그건 저승에서 알아보시게.”
쉬이이익! 퍼어엉!
“크윽!”
광혼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강하다?!’
수공(手功)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순식간에 침투해 오는 마기가 지독하리만치 끈적거렸다.
‘이놈!’
구대마존의 무력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았다. 천하십대고수와 비견될 만한 강자라는 설이 유력했지만, 그보다 강하거나 약하다는 소리도 종종 들려왔다.
이제야 광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교의 구대마존은 정사(正邪)를 모두 포함한 십대고수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강자들임을.
고루마존이 외쳤다.
“진마대(眞魔隊)는 철혈성 놈들을 쳐라!”
“우아아아아!”
삼백 마인 병력이 폭풍 같은 기세로 혈전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느새 진마대의 선두에는 금호가 달리고 있었다.
고루마존과 호왕이 광혼과 현무대를.
금호와 진마대가 곡천삭과 혈전단을.
누구도 이유를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필요하지도 않은 정사마의 전투 부대들이 급작스럽게 부딪치며 살벌한 난전(亂戰)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