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47화 (347/774)

347화. 깨우치다 (2)

쿠구구궁! 펑! 콰앙!

여상린의 눈이 번뜩였다.

‘초고수!’

정파 특유의 신공진기, 뒤따라왔던 혈전단의 살기,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마인들의 마기가 외원의 대문 너머에서 화려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 이 기운은?!’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여상린은 한 줄기 강력한 기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고루 할아버지?’

서량의 거처에서 유일하게 만나 보았던 마존.

길지 않은 시간, 고루마존과 그녀는 마지 친 조손처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더랬다. 그간 전 무림에 공포로만 전해지던 마존에 대한 인상을 뿌리부터 바꿔 준 존재가 바로 고루마존이었다.

여상린은 당황했다.

‘삼백 병력을 이끌고 북상한 게 고루 할아버지였을 줄이야.’

신교의 정예 병력이 온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루마존이 나섰을 줄은 몰랐다.

‘잠깐, 그런데 왜 산동에 계시지? 여길 어떻게 알고 오신 거야?’

혼란스러웠다. 똑똑한 그녀로서도 돌아가는 상황이 좀처럼 파악되지 않았다.

‘소교주님께서 따로 연락을 취하셨나? 그럴 리가!’

그때였다.

파지지직!

무지막지한 전광이 내원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황보세가의 내원은 수백 명을 수용할 정도로 넓었다. 그 넓은 범위를 모조리 뒤덮었을 만큼 전광(電光)의 그물은 엄청났다.

‘소교주님!’

히히히힝!

제아무리 잘 훈련된 한혈마들이라도 불안함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말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고개를 마구 흔드는데,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콰앙!

내원과 외원을 나누는 돌벽이 무너졌다.

“마 호위!”

“안으로 들어가시오!”

피범벅이 된 마동필이 살왕기차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왔다.

여상린이 외쳤다.

“소교주님은요!”

“어서 들어가래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급박함이 심상치 않았다. 여상린은 재빨리 마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앵화가 놀라서 물었다.

“대,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모르겠어! 소교주님은 전투 중이신데, 황보세가 밖에서도 또 다른 전투가 터졌어!”

“흐익! 혈전단이요?!”

“혈전단만이 아니야! 의천맹과 신교의 병력도 온 것 같아!”

“네에?”

앵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상린은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한데, 묘하게도 불안하진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분명…… 억!”

쿠르르릉!

살왕기차가 움직였다.

동시에 마동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모두 전투 준비를 해 두시오! 앵화는 마차를 조종해!”

“아, 네!”

끼리리릭!

앵화가 마차 안에 있던 장치를 건드리자 쌍안경(雙眼鏡)과 각종 격발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랴!”

히히히힝!

마동필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한혈마들이 움직였다.

한 손으로 고삐를 쥔 그가 흑혈마검을 뽑아 내쳤다.

콰아앙!

연기에 휩싸인 입구가 아닌, 그 옆의 돌벽을 검풍으로 깨부수며 전진한다. 그간의 전투에서 얻은 깊은 내외상과 바닥까지 소모된 내공에도 불구하고 검격의 위력은 여전히 강력했다.

화아악!

허연 먼지를 뚫고 달려 나가는 살왕기차.

동시에 시퍼런 뇌전을 두른 마기가 내원을 넘어 외전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콰콰쾅! 퍼어어엉!

폭음과 함께 내원과 외원의 경계가 무너졌다. 극에 이른 마기와 사기가 충돌하며, 온갖 외물을 부숴 대고 있었다.

‘위험해!’

마동필의 얼굴에 짙은 근심이 어렸다.

‘자칫 잘못하면 저들 모두가 휩쓸린다.’

그의 눈이 천 명에 달하는 고수들이 얽히고설킨 전장으로 향했다.

“고루마존님!”

콰아앙!

희대의 절학, 결목신수(潔木神手)와 고목인(枯木引)으로 신들린 듯 광혼을 상대하는 고수.

마동필의 얼굴에 격정이 깃들었다.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정말로 고루마존이 와 있을 줄은 몰랐다.

십만대산에서 수만 리 떨어진 이곳에서 신교의 어른을 보게 되었다. 평소 친분을 떠나, 너무나도 반가웠다.

‘한데 왜 여기에 계신 거지?’

알 수 없다. 사실 당장은 그리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이 난전을 무사히 헤쳐 나가고, 소교주님의 전투가 끝나면 함께 돌아가고 싶을 따름이었다.

일순 마동필의 마안이 빛났다.

‘저기다!’

고루마존은 광혼을 상대하며, 동시에 현무대를 압박하고 있었다. 무공의 경지는 광혼과 비슷했지만, 무수히 많은 전투 경험으로 호왕과 함께 이백이 훌쩍 넘는 병력을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혈전단이었다.

진마대가 혈전단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진마대가 조금씩 밀리는 형국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금호가 어떻게든 곡천삭을 밀어붙이고 있었으나, 곡천삭 역시 화경을 깨달은 고수였다. 금호의 압박에서 순간순간 벗어나 진마대의 공격선을 차단하는데, 진마대가 주춤하는 사이 혈전단이 절묘하게 치고 들어가 피해를 극대화하고 있었다.

쿠구구궁!

살왕기차가 폭발적으로 질주했다.

목적지는 혈전단의 후방이었다.

우영의 눈이 흔들렸다.

“후방 방어에 힘써라!”

치이이익!

마동필의 흑혈마검에서 재차 황금빛 마기가 타올랐다. 아주 잠깐의 휴식이었지만, 금강야차마공의 뛰어난 회복력 덕에 내기의 흐름을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방금까지 숱한 고수들과 생사의 격전을 벌였다. 홀로 삼십이 넘는 절정고수를 죽인 만큼 살기가 무섭도록 불타오르고 있었다.

흑혈마검의 검첨이 혈전단을 향했다.

“갈!”

매서운 호통 소리와 함께 흑금(黑金)의 검광이 폭풍처럼 쏘아졌다.

콰르릉! 퍼어엉!

일검에 삼살(三殺)이다. 어육이 된 혈전단원 셋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이런!”

“막아라! 고수다!”

퍼엉! 퍼어엉!

쏟아 내는 구중검(九重劍)에 혈전단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한 손으로는 여섯 마리나 되는 한혈마들의 고삐를 쥐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검을 휘둘러 수많은 고수를 살상하는 마동필의 모습은 마치 전신(戰神)이 강림한 것만 같았다.

콰르릉!

한혈마들의 육중한 말발굽이 쓰러진 혈전단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마동필이 외쳤다.

“앵화!”

피피피피핑!

마차에서 수백 개의 암기가 쏘아졌다.

느닷없는 후방 공격에 놀란 와중에 마차에서 암기까지 날아온다.

이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혈전단원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백전으로 연마된 고수라도 이런 공격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퍼버벅!

“크아아악!”

“아아악!”

암기가 날아드는 속도도 놀라웠지만, 더 끔찍한 것은 암기에 발라진 독이었다.

하나같이 극독이 묻은 암기들은 스치기만 해도 전투력의 저하를 가져왔으며, 제대로 적중당하는 순간 즉사를 면키 어려웠다.

순식간에 삼십여 명의 고수들이 쓰러졌다. 무더기로 쓰러진 그들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가득했다.

우영이 입을 쩍 벌렸다.

“뭐, 뭐야?!”

마동필이 외쳤다.

“계속 쏴! 모조리 비워!”

피피피핑! 퍼어엉!

기가 막혔다.

저 거대한 마차는 수많은 암기도 모자라 독탄(毒彈)까지 쏘아 내고 있었다. 혈전단원끼리 적당히 거리를 벌린 것이 오히려 더 피해를 키웠다.

“크아악!”

“자, 잡아!”

“말을 공격해라!”

파아아앙!

한혈마를 노리는 혈전단원들.

제대로 된 공략이었다. 일단 마차만 멈춘다면 어떤 암기가 날아오든 쉬이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마동필의 철벽같은 검기(劍技)를 뚫기에, 그들의 공격은 충분히 강하지 못했다.

쩌저저저정!

말 그대로 검의 벽(劍壁)이다.

수십 개의 검영(劍影)이 사위를 휩쓸고, 검신에서 뿜어진 내력의 장벽이 한혈마들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신기(神技)에 이른 검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무공이었다.

그러나 마동필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더 이상은 힘들다. 이런…….’

한순간에 뿜어낸 공력이 지나치게 많았다. 어떻게든 막아 둔 내상이 재발하는 것 같았다. 어깨와 상체를 뒤덮은 외상도 퍽퍽 소리를 내며 터지고 있었다.

피유우우웅! 퍼억!

마동필의 머리 위에서 쏘아진 작은 수전(袖箭) 하나가 혈전단원의 이마에 적중했다. 허공에서 한 바퀴 구른 그가 바닥에 쓰러지자 한혈마가 시체를 밟아 뭉갰다.

살왕기차를 끄는 한혈마들은 고르고 고른 전마(戰馬)였다. 파멸적인 기파에 불안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전투에 나섰을 때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동필은 직감했다.

‘한계다.’

퍼어억! 히히히힝!

한혈마 한 마리의 목이 뎅겅 날아갔다. 동시에 옆에 있던 한혈마도 다리 세 개가 잘려 나가 쓰러졌다.

쿠구궁!

잘 달리던 마차가 좌측으로 기울어졌다.

‘제길.’

중원 각지를 돌아다니며 일행의 든든한 발 역할을 해 주었던 한혈마들이 한 마리, 한 마리씩 쓰러지고 있었다. 마동필은 말들의 죽음에 가슴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싸움이든 희생 없이는 성과도 없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으아압!”

콰아앙!

말과 마차를 잇는 중간 가교와 마부석을 통째로 부숴 버렸다.

콰아앙!

마차가 땅에 박히듯 멈춰 섰다. 안에서 마차를 조종하던 앵화와 여상린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마동필이 외쳤다.

“계속 쏴!”

퍼퍼퍼퍼펑!

그 자리에서 사방으로 암기를 쏴 대는 마차.

그러나.

철컹! 끼기기기긱.

더 이상 마차에서 암기가 쏘아지지 않았다. 내장해 두었던 수백, 수천 발의 암기가 전부 소진된 것이다.

쿠르릉!

흑혈마검의 끔찍한 마력이 기회를 노리고 마차로 다가오던 혈전단원들을 모조리 뒤로 물렸다.

스르릉!

마동필이 재빨리 납검했다.

그가 허리춤에 매어진 검갑을 풀어내 왼손에 쥐었다. 자세를 낮추고 검병을 쥔 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살기가 뻗어 나왔다.

“와라.”

“이놈!”

파라락!

혈전단원들이 다섯 명씩 조를 짜 마동필에게 다가왔다.

강한 압력이 전해져 왔다. 다섯밖에 안 되는 소진(小陣)을 만들어 진기로 압박해 오는데, 순식간에 팔다리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거대 세력이 보유한 전투 부대의 무서움이다. 단순히 강하고 싸움을 잘하는 이들을 규합한 게 아니라, 각자의 특성에 맞는 진법까지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죽여라!”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힌 혈전단원 삼 개 조가 우영의 명에 화살같이 움직였다.

마동필이 눈을 감았다.

‘한 번이다. 한 번이면 끝이야.’

최후의 공격이라는 생각으로, 금강야차마공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번쩍!

다시 한번 불타오르는 황금빛 마안.

차아아아앙!

귀청을 울리는 시원한 검음(劍音)이 사방에 퍼져 나갔다.

강철의 발검, 일검사비세(一劍死飛勢)였다. 혼신의 집중을 다 한 구중마검세의 첫 초식이었다.

쩌어어엉!

일검을 휘둘러 고수 열다섯을 물러나게 만든다.

누구 하나 죽이지 못했지만, 모두의 공격은 확실히 막았다. 마검을 쥔 손이 뼛속까지 아렸지만, 마동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간다.’

흑혈마검에 어린 금빛 마기가 점차 어두워졌다.

쩌저저정! 퍼퍼펑!

곧바로 이어지는 구중마검세의 절초들.

쌍천검포세(雙天劍捕勢), 삼절인화세(三絶刃畵勢), 사뢰속검세(四雷速劍勢), 오룡교각세(五龍咬角勢)의 연환검이 단숨에 혈전단원들을 휩쓸었다.

쾌검과 난검, 강검의 연환검식이었다. 무력의 정점을 찍은 마동필, 파멸적인 검파(劍波) 앞에 진식을 유지한 혈전단원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있었다.

마동필은 멈추지 않았다.

육광신참세(六狂迅斬勢), 칠교호악세(七較虎握勢), 팔공광마세(八空狂魔勢)의 패력검기가 이십여 명이나 되는 혈전단원들을 지옥으로 보내 놓았다. 마동필의 반경 오 장 안쪽으로 들어온 모두의 몸이 맹수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마기가 부족해 원정까지 끌어낸 마동필이 구중마검세의 마지막 초식을 구현하려던 그때.

콰르르르릉!

시퍼런 뇌전에 휩싸인 회색빛 안개가 혈전단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렸다.

“소교주님!!”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