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48화 (348/774)

348화. 깨우치다 (3)

크아아앙!

금호가 울부짖었다.

창으로 금호의 목덜미를 찍어 버리려던 곡천삭은 순간 전신이 멎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뭐지?’

번개처럼 전신을 누비던 내공이 덜컥 멈춰 버렸다.

‘뭐야?!’

곡천삭이 금호를 바라보았다.

전신의 털을 잔뜩 곤두세우고 전투 태세에 돌입했던 금호가,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며 포효하고 있었다.

마치 늑대의 포효처럼 보였으나, 주둥이 밖으로 터져 나온 음파는 산중대호의 그것처럼 강렬하고 위엄이 넘쳤다. 나아가 음파에 실린 요기 또한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해진 것 같았다.

번쩍!

금호의 포효를 들은 호왕의 안광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범은 백수(百獸)의 왕이며, 그 와중에 호왕은 당대 최강의 범이었다.

금호는 그런 호왕조차도 권속에 둔, 천하 모든 영수(靈獸)의 제왕이었다. 산해경(山海經)이나 구전신화에서나 언급되던 시랑(豺狼)이란 영물이 남쪽의 대지 고죽림(孤竹林)에서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해 호선(狐仙)이 된, 그야말로 최강의 영물인 것이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이승에 존재했던 시랑이, 마지막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주인을 만나 공명했다. 주인의 위기 때마다 영기를 되살려 힘을 주던 금호는,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주인의 기(氣)를 받아 강건함을 되살렸다.

퍼어어어억!

“컥!”

곡천삭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금호의 몸통 박치기였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발판 삼아 무작정 들이받는데, 그 위력이 절대고수의 권법 못지않았다.

“이, 이런!”

바로 반격해야 함이 옳다. 무의식적으로라도 움직여야만 한다.

그러나 곡천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파지지직!

난전의 중심, 커다란 자흑색 칼날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전광을 흩뿌려 대는 한 광인의 기파가 곡천삭은 물론 이곳에 있는 모두의 움직임을 강제했다.

고루마존의 눈이 커졌다.

“소교주님!”

“크아압!”

휘둘러지는 칼날 너머로 전격의 폭풍이 일었다.

퍼어엉!

곽소교가 뇌공만마일식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오 장이나 밀려났다. 그녀와 부딪친 진마대원, 현무대원들이 사방을 피로 물들이며 소멸했다.

“으아아아!”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고성과 함께 곽소교가 장을 내쳤다.

콰앙!

서량이 피를 토하며 물러났다. 순식간에 뒤로 쏘아진 그를 미처 피하지 못한 혈전단원 세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광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럴 수가?!’

작정하고 공격한 것도 아니요, 실수로 무공이 빗나간 것도 아니다.

그저 날아드는 몸뚱이에 스쳤을 뿐인데도 능히 일류라 불리는 무인들이 피를 뿜으며 죽어 나간다. 그들의 몸에 둘러쳐진 기가 너무나도 파괴적이라, 정예고수들의 단련된 내력 방패로도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피해라!”

“격전지에서 이탈하라!”

이제는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생존이 문제다. 적과의 교전으로 죽는 건 상관없지만, 재해(災害) 때문에 죽는 것은 개죽음에 불과하다.

진마대와 현무대, 이젠 절반도 남지 않은 혈전단이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

콰르릉!

그 잠깐 사이 서량과 곽소교는 칠십 합이 넘도록 부딪쳤다.

퍼퍼펑! 쩌저정!

칼과 손톱, 주먹과 장, 정강이와 무릎이 번개처럼 부딪쳤다. 서로를 치고, 또 치는 무자비한 공격에 두 남녀의 몸이 피로 젖어들었다.

“캬아악!”

쾅!

서량의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놀라운 한 수, 박치기였다. 곽소교가 서량의 멱살을 잡아 쥐고는 그대로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소림의 괴공(怪功) 중에는 철두공(鐵頭功)이란 외공(外功)이 있다. 주먹으로도 바위를 깨부술 수 있는데, 왜 머리는 그냥 두냐며 두부(頭部)까지 단련하는 과격한 수련법이었다.

곽소교의 공격은 그런 철두공과 유사했다. 실제로 단련한 적은 없지만, 사황극천기로 보호받는 그녀의 머리는 강철의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량 역시 마찬가지였다.

퍼어억!

“끄아아악!”

곽소교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서량 역시 머리로 그녀의 얼굴을 받아 버린 것이다.

뒷골목 삼류 파락호들도 쉽게 쓰지 않을 민망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워낙 살벌한 싸움이라 그런지 흉해 보이진 않았다. 외려 그 또한 하나의 살법인 양, 보는 이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살벌함을 느끼게 했다.

서량의 주먹이 팔방을 점하고 치고 나갔다.

파지직! 퍼어엉!

곽소교의 소매가 찢어지고 터지다가, 이내 완전히 가루가 되었다. 천마벽력권의 구천호벽(九天護壁)이었다.

파파팡!

서량의 좌측 어깨와 상박의 의복이 터져 나갔다. 곽소교의 번개 같은 각법, 교살괴각(矯殺壞脚)의 반천각(反穿脚)에 당한 것이다.

구천호벽과 반천각, 둘 다 방어기이자 반격에 용이한 초식이었다. 두 사람은 그러한 무공들을 순수하게 공격용으로 사용했다. 그들의 무공 경지가 이미 공방의 틀을 넘어섰다는 뜻이었다.

파아앙!

서량의 주먹은 정면으로 휘둘러졌고, 곽소교의 장력이 하단을 노렸다.

쾅! 쾅!

“컥!”

“이익!”

서량이 뿜어낸 권풍은 곽소교의 등판을 가격했고, 곽소교의 장력은 서량의 흉부를 때렸다.

각자의 권장이 노린 부위는 정면과 하단이지만, 정작 타격을 입은 곳은 등판과 상단 흉부였다. 공격이 먹혀들기 직전에 기를 운용해, 빈틈이 가장 크게 드러난 부위로 발경을 친 것이다.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공격이었다. 방어기와 반격기로도 지독하게 살기 넘치는 공격이 가능하고, 상대의 몸통 어디라도 노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화경이요, 극마다.

무(武)의 한계를 돌파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무공이든 마음 가는 대로 공방과 회피를 구현할 수 있으며, 원하는 어느 곳이든 기공으로 타격이 가능하다.

무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것이 무(武)의 극한이었다. 진정한 무신(武神)이 되기 위해서는 무(武)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지에서 극단적으로 성장한 사람이 바로 이천상이었다. 손짓 한 번으로 공간을 뒤틀고, 투로나 초식을 기(氣)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자가 바로 이천상이었다.

어떠한 무공도 어려울 것이 없고, 어떠한 움직임도 실현 못 할 것이 없다. 기(氣)로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기가 전신을 꽉 채우고 있으니 두려운 것도 없다.

비록 이천상에 비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죽이기 위해 극한까지 무공을 구사하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서로의 경지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주고 있었다.

콰아앙!

하지만 역시나 밀리는 건 서량이었다.

군림마황기와 천마도로 종이 한 장 차이의 격차를 극복해 내고 있지만, 곽소교 역시 마음가짐을 달리한 상황이었다. 서량을 한없이 깔보기만 했던 그녀가 지금에 와선 그를 진정한 맞수로 생각하니, 구사하는 무공의 위력부터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친 듯이 치고받는 게 가능했다. 그녀의 성정으로는 절대 하지 않았을 과격한 박투가 벌어진 건, 그녀 역시 서량을 인생 최고의 난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것이, 곽소교가 구사하는 무공의 정교함을 잃게 했다.

퍼어엉!

곽소교의 왼팔이 뒤로 젖혀졌다.

이제는 어깨까지 맨살이 드러났다. 기척이 없기에 방어가 힘들지만 위력 또한 낮을 수밖에 없는 무공이 유령장이었다. 만일 벽력권의 타격에 적중당했다면 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을 것이다.

“이, 이놈이!”

퍼어억!

“커억!”

곽소교가 피를 토했다.

서량이 전신에 걸린 압력을 무시하고 마황군림보로 다가와 복부를 걷어찬 것이다. 그다운 과격함과, 그답지 않은 막무가내식 공격이 통한 것이었다.

퍼퍼퍼펑!

또다시 치고받길 몇 차례.

비틀거리며 물러난 서량이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올렸다.

우우우우웅!

재빨리 달려와 서량의 목을 잡아 뜯으려던 곽소교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도(馭刀)!’

번쩍! 콰아앙!

빛살처럼 날아든 천마도가 땅에 박혔다. 곽소교가 서 있던 그 자리였다.

주르륵.

곽소교의 어깨가 피로 물들었다. 이기어도를 완전히 피하진 못한 것이다.

“허억! 허억!”

“후욱.”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바다처럼 깊은 공력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준 충격 역시 극심했다. 마음 같아선 쉬지 않고 달려들어 상대를 죽이고 싶었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은 살기 가득한 의지를 쉽게 수용하지 못했다.

“소교주님!”

어느새 고루마존과 진마대도 마동필 옆에 모였다. 그들로서는 도주하고 싶어도 도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멀리서 두 절대자의 싸움을 지켜보던 우영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혈전단은 벌써 이백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다. 마음 같아선 이곳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우영의 귓가로 곡천삭의 떨리는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저런 괴물이었다니…….”

도가 신공의 극의를 깨달은 곡천삭이, 저 사마(邪魔)의 무리를 보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순간 우영은 울컥 올라오는 괴악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분노이자 공포였고, 불안함이자 증오였다.

“가시지요!”

“뭐, 뭐라고?”

“성주님께서 내리신 명은 마교의 소교주를 잡으란 것이었습니다! 한참 지쳐 있을 때이니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을 겁니다!”

“미쳤나?! 아무리 지쳤다 한들 저들의 일수(一手)면 자네는 방어는커녕 회피도 못 해 보고 죽을 것이네!”

“그러니까 어르신이 움직이셔야지요!”

우영의 호통 아닌 호통이었다. 곡천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나더러 나서라는 겐가?”

“어르신이 왜 우리와 동행하신 건지 잊으신 겁니까?! 어르신은 마교의 소교주를 잡기 위한 결전 병기입니다! 기회가 왔는데 어찌 구경만 하십니까!”

곡천삭이 이를 갈았다.

기세를 받았는지 우영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명심하십시오! 어르신이 철혈성에서 무엇을 받으셨는지! 성주님께서 어르신께 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과격한 발언에 속이 뒤집혔지만, 성주 운운하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막말로 철혈성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화경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며 아직까지 중원을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

“어르신!!”

“제, 제기랄.”

그때였다.

콰득!

“어?”

곡천삭이 얼떨떨한 눈으로 우영을 바라보았다.

얼떨떨한 건 우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우영의 눈과 코,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 언제……?”

사람 몸통보다 훨씬 큰 머리, 이마에 새겨진 왕(王)의 줄무늬.

호왕이었다. 호왕이 우영의 목과 상체는 물론 하체 일부까지 깨물고 있었다.

번쩍!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금호가 은은한 분홍빛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헉!”

곡천삭은 그제야 깨달았다. 혈전단이 전멸했음을.

우영과 대화를 나눈 그 잠깐 새에 혈전단이 모조리 전멸해 버린 것이다. 이 엄청나게 큰 호랑이 한 마리로 인해.

“이런 미친!!”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금호 때문이었다. 금호의 몸에서 피어나는,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氣)가 모두의 감각을 차단하고 있었다.

심지어 곡천삭의 감각까지도.

광혼과 현무대, 그리고 신교 일행은 그들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바로 뒤에서 수하들이 당하고 있는데도 서로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퍼어어엉!

호왕이 피를 토하며 옆으로 물러났다. 분노한 곡천삭의 일격은, 아무리 호왕이라도 쉬이 받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고루마존과 광혼이 움직였다.

퍼퍼퍼펑!

호왕 앞을 막고 선 고루마존, 곡천삭을 공격하는 광혼.

곡천삭은 고루마존에게 창을 내질렀으며, 금호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세 명의 절대고수가 전투를 재개하고, 두 마리의 영수가 자리에서 물러나 또 다른 사냥감을 물색할 때.

바로 그때, 이곳에서 가장 강한 두 남녀가 비로소 싸움의 종장(終章)을 개막했다.

* * *

“성주님. 다시 한번 재고를…….”

“여기까지 와서 말인가?”

“…….”

“괜찮네. 어차피 한 번은 봐야 할 사람, 오늘 본다고 생각하세.”

송금백이 고개를 들어 주루를 올려다보았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주루의 외벽에는 의(義)라는 글자가 적힌 깃발이 걸려 있었다.

“의천맹주라…… 과연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의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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