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깨우치다 (5)
“교주님.”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호요성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경직되어 있었다.
꾸며 낸 표정이 아니었다. 경직된 얼굴 위로,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엿보였다.
서신을 보는 이천상은 호요성과 달리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함정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니 그럴 수야 없겠지.”
묵직한 목소리가 바위가 되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하다.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은 교주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하나…….”
“하나?”
“저는 반대입니다.”
“이유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교주님께서 제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으신다면 반대할 것입니다.”
호요성은 용감하게도 교주의 선택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제아무리 교주가 총애하는 총군사라도 도를 넘어선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천상은 그를 책잡지 않았다.
“자네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면, 찬성하겠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또 뭔가?”
“아시잖습니까?”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사람들은 저를 천재니 뭐니, 하며 띄워 줍니다. 그러나 저의 조막만 한 머리에서 나오는 꾀는 교주님께서 즉흥적으로 떠올린 방법에 미치지 못할 것이며, 그렇기에 저의 조악한 안목으로는 교주님의 언행을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버릇은 좋지 않다고 말했네.”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을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자신을 잘 알면서 그리 말하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지나치게 높게 보고 있는 것이지.”
호요성의 눈이 흔들렸다.
이천상이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저 보이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느끼게.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대단한 사람도, 놀라운 사람도 아니야.”
“교주님…….”
호요성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안 됩니다. 제게 알려 주십시오.”
“무엇을 말인가.”
“교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신지, 교주님께서 이룩하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교주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중원은 어떤 것인지.”
고개를 든 호요성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움과 당당함이 뒤섞여 있었다.
“이제는 들어야겠습니다.”
이천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깊은 흡족함이 드러나는 미소였다.
“자네는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아.”
호요성이 무례를 무릅쓰고 당당하게 나와서?
그렇지 않다. 그래서 호요성을 흡족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호요성은 자신이 알아야 할 때를 안다. 달리 말하면 안목이 좋고, 시국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천방지축, 세상을 조롱하며 초야에 묻혔던 젊은 문사가 참으로 많이 성장했다.
“그래도 난 자네에게 말하지 않겠네.”
호요성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신(神)은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신이라 불리는 것이다. 신에 대해 속속들이 안다면, 그 신은 더 이상 신으로 추앙받지 못한다.
어쩌면 교주님의 속내를 알고 싶었던 마음 한편에는, 그를 신이 아니라 보다 가까운 주군으로 대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야.”
일단 서신에 대해 논해 보려던 호요성이 주춤했다. 설마 교주님께서 이유까지 설명해 주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예?”
“나도 나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네.”
호요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의 이치에 통달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지는 알았네. 그러나 그러한 세속적인 문제를 대함에 있어, 나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면 실수하게 되기 마련이네. 적어도 나는 그렇더군.”
“…….”
“나는 더 이상 성공을 바라지 않게 되었네. 실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알아듣기 쉽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겠다. 이 이해 불가의 신은 자신을 믿지 않는 것도, 거리를 두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신에게,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할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지루함에 지쳐 버린 내 마음에 실수를 접고 모든 것을 불태우고자 하는 욕망이 들썩거리는 것도 사실이지.”
“…….”
“결국은 자네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네.”
“이해했습니다. 아니, 이해라기보다는 수용했습니다.”
“그거면 되었네.”
아니, 되지 않았다. 호요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 진정한 신안(神眼)을 갖추어, 하늘에 닿은 이 마신(魔神)의 마음을 들여다볼 날이 오길 바랄 수밖에.
“하면, 가시겠습니까?”
이천상이 서신으로 눈을 돌렸다.
서신에는 상당히 도발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생각 중이네.”
“만약 교주님께서 움직이신다면…….”
“그래도 속세의 다툼에 깊게 관여하진 않을 걸세.”
호요성의 눈이 빛났다.
속세의 다툼에 아예 관여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저 ‘깊게’ 관여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소교주가 중원에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쳤지만, 결과적으로 정파를 분열시키고 그들에게 협(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지요.”
호요성이 허리를 폈다.
당당하게 이천상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실로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교주님께서 나서시는 것은, 소교주가 나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알고 있네.”
“그간 소교주가 벌여 온 일들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지요.”
“그 또한 알고 있네.”
“어쩌면 소교주가 교주님을 증오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아이는 아니지. 하지만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하진 않겠네.”
“최악의 경우, 소교주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천상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과거의 그 아이였다면, 분명 그랬을 테지.”
“예?”
“지금의 량이는 그러지 않을 것이네. 그럴 수가 없어.”
“……무엇을 보셨습니까?”
이어진 이천상의 담담한 목소리에 호요성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악마(惡魔)가 되었네.”
“악마요?”
“정확히는, 한 번 악마가 되어 보았지.”
이천상이 태사의에 등을 묻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온전한 마(魔)가 되기는 어렵네. 선악(善惡)의 구도에서 몸부림을 쳐 보고, 신선의 가르침을 살펴야 하며, 지옥의 유황불에 재가 되도록 타 보기도 해야 하네.”
“…….”
“그러나 량이는 너무도 빨리 마가 되었어. 보고 있는 내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였지.”
“그렇습니까.”
“그래서 놓친 것들도 많네.”
이천상의 눈에 은은한 안광이 일었다.
서량의 군림마황기처럼 푸른 빛을 띠지 않는다. 빤히 보고 있어도 도대체 무슨 색인지 알 수 없는,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신비로운 색이었다.
“모든 것을 비웠을 때, 진정 빛이 열리기 마련이야. 그것은 마도(魔道) 역시 마찬가지지. 녀석은 모든 걸 잃은 순간, 마로써 악(惡)에 닿았다네.”
“…….”
“그 녀석이 줄곧 바라 왔던, 그 녀석이 생각하던 ‘자유’란 결국 공허할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네.”
이천상이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호요성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한 번 더 참겠네.”
“예?”
“교를 나가지 않겠네. 지금은.”
호요성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호요성을 내려다보던 이천상이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조만간 내가 나가야만 할 상황이 올 것이네.”
“예, 예?!”
“자네는 미지의 존재를 신(神)으로 생각하네. 그러나 저들은 그렇지 않아. 의천맹이든 철혈성이든, 자신들이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는 결코 신으로 생각하지 않네.”
호요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시간 이후로, 마신궁의 호위를 두 배로 늘릴 것입니다.”
“소용없네.”
“교주님!”
“내가 그것을 원치 않네.”
호요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 생각하신다면, 지금 출교하시든 나중에 출교하시든 별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차이가 있지.”
이천상의 무심한 얼굴 위로, 귀신의 형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서량의 그것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더 끔찍하고 생생한 형상이었다.
“때로는, 마도에도 명분이라는 게 필요하기 때문일세.”
“명분…….”
그가 창가로 눈을 돌렸다.
“그나저나 이놈, 이제 슬슬 정신을 차릴 때가 되었는데.”
* * *
한창 괴성을 지르던 서량은 문득 머리를 관통하는 한 줄기 빛을 느꼈다.
‘어?!’
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멍하니 눈을 내리뜨고 있는 곽소교의 얼굴이 보였다. 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너덜거리는 살점만이 남아 있는 비요왕의 수급이었다.
‘…….’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알 수 없는 충격에, 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툭. 데구르르.
굴러가던 곽소교의 머리가 발경으로 파인 구덩이 중 하나로 떨어졌다.
‘죽었어. 비요왕이.’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서량은 당황했다.
‘내가 죽였다.’
알 수 없는 혼란이 가슴을 꽉 채웠다. 분명 기쁘고 후련한데, 한편으론 그만큼 묘한 감정이 치밀어 마음을 어지럽혔다.
순간 그의 머리에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 크아아악!
짐승처럼 포효하며 곽소교를 후려치던 자신의 모습이.
상대를 복수의 대상이 아닌, 그저 찢어 죽이고 싶은 ‘사물’이자 ‘사냥감’으로만 보았던 흉흉한 눈이.
빈말로도 인간처럼은 보이지 않는 그 모습이, 마치 제삼자가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쾅!
서량이 저도 모르게 땅을 내리찍었다. 내공이 실려 있진 않았지만, 사방에 진동이 전해질 만큼 강한 진각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고루마존.”
그의 목소리 역시 내공이 담겨 있기라도 한 양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고루마존이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고루가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진마대 역시 그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소교주를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음을 느낀 건, 그저 서량의 착각일까?
“정리를 해 주…….”
순간 그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어?’
귀가 먹먹하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서량은 그제야 자신의 고막이 터졌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회복 중이라는 것 역시 깨달았다.
나아가 자신의 몸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는 것도.
털썩!
“소, 소교주님!”
파아악!
고루마존과 마동필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몸을 일으켜 그에게로 다가갔다.
여상린과 앵화도 마찬가지였다. 하얀 두 얼굴에 미지의 공포가 어려 있었지만, 그만큼 서량을 걱정하는 진심 또한 담겨 있었다.
“허억! 허억!”
서량의 호흡이 빠르게 격해졌다.
파지직! 파지지직!
그의 몸에서 시퍼런 전광이 일었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붉게 달아오른 피부는 구유마공의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고루마존의 눈이 흔들렸다.
‘입마(入魔)?!’
아니다. 주화입마의 증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충분히 위험해 보이기는 했다. 고루마존이 다급하게 말했다.
“자네, 소교주님을 업게!”
“예!”
마동필이 서둘러 서량을 업었다.
후욱!
‘끄응!’
마동필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 역시 심각한 내외상을 입고 있었고, 육신의 힘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 와중에 심상치 않은 마기를 발산하는 소교주님을 업으니, 그대로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마동필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피이이잉!
그 순간 광혼과 곡천삭이 신법을 전개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지는 것은 지독한 살기였다. 거의 맹목적으로 느껴질 만큼 살기가 짙었다.
고루마존이 외쳤다.
“지금부터 소교주님을 안전한 곳으로 뫼실 것이다! 진마대는 전원 소교주님을 호위하라!”
“존명!”
터어어엉!
뜬금없이 상황이 급박해졌다. 진마대는 서량과 마동필, 여상린과 앵화를 호위하며 빠르게 이동했다.
“이놈들!”
홀로 남은 고루마존이 맹렬한 기세가 실린 고함을 내질렀다.
쿠구궁!
그런 그의 뒤를, 비틀거리는 호왕과 황금빛 요기를 발산하는 금호가 받쳐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