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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54화 (354/774)

354화. 움직이는 거인들 (4)

담사영은 멀어져 가는 송금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다.”

그가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공손하게 서 있던 여인은 송금백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보았느냐?”

“예상 그대로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상 그대로라……. 네가 상상해 온 철혈성주는 어떤 사람이었지?”

“솔직한 짐승입니다.”

뜻밖의 평가였다. 담사영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맞는 말이다. 그는 아주 솔직한 짐승이지. 그래서 나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네.”

“세상은 무림을 정파와 사파, 마도로 나눈다. 하나 세상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지. 정도를 걷는다고 바른 놈들만 있을 것이며, 사도를 걷는다고 바르지 못한 놈들만 우글거리겠느냐.”

“…….”

“정상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다. 속임수에 당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속이는 게 더 쉽고 빠른 길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많은 위정자가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권력이 있는 자리엔 언제나 술수가 난무하고, 세력이 만들어지는 게야. ”

“그렇군요.”

“하나 저이는 다르구나. 속이는 데에 망설임이 없고, 속임수에 당하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지만, 와중에 솔직함이라는 검집을 버리지 않았다.”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그게 바로 저이의 무기 중 하나겠지. 사람 자체의 매력이 출중하니, 어떤 사람이라도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와중에 감은 짐승처럼 좋아서,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채는구나.”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마교주만 아니었다면 이 너저분한 세상에 유일적수라 할 만한 이였다.”

여인이 웃으며 물었다.

“하면, 맹주님의 적수는 저이가 아니라 마교주인가요?”

담사영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송금백이 앉은 자리를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 놓인 차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방심하지 않는 이로다. 끝까지 차 한 모금 마시지 않았어.”

저 차에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혈고의 씨앗이 들어가 있었다.

담사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품격을 차리는 자에겐 품격을 보여 주고, 오물을 튀기는 자에게는 똑같이 더럽게 대해 준다.

송금백은 이곳에 오며 만반의 준비를 했기에 그 역시 성의를 보인 것이다.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알았지. 송 성주는 나를 지독하리만치 싫어해. 어느 정도냐 하면,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싫어하지.”

여인에게 차를 탈 때 혈고를 넣으라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단순히 경계만 했다면 모르겠지만, 송금백의 마음에는 자신을 향한 강한 살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딱히 숨기려 들지도 않았다. 오늘 송금백이 보여 준 모든 언행의 근간에는 의천무제 담사영에 대한 강한 살의가 깔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손을 잡다니.”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한 단체의 수장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허허, 단체의 수장이라 하여 모두 저와 같을런가. 나처럼 음험한 늙은이가 있는가 하면, 저처럼 솔직하고 과감한 이도 있는 것이지. 다만 중요한 것은 단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느냐지.”

“하면 맹주님게서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으십니까?”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지.”

“…….”

“내가 손해를 보지 않아도 문제 될 게 없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 자리에 앉지도 않았느니라.”

담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인이 물었다.

“이제 움직이시는 겁니까?”

“마교 측에서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으니, 바로 움직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

“마교주는 응할 것입니다.”

“굳이 가능성을 따지자면, 나는 그가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리 생각하시죠?”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소교주 놈에 대한 내 평가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놈이 다시 나기 힘들 만큼 대단한 놈인 건 확실하지. 그리 걸출한 놈을 키워 낸 것이 마교주 아니던가.”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도 마교주가 대단하다면, 오히려 직접 만나려 하지 않을까?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짓는 것이 더 속 시원한 일일 테니까.

“결국은 둘 중 하나인 게지. 마교주가 내 부름에 응한다면 그는 속세에 미련이 있는 사람일 것이요, 그게 아니라면…….”

“아니라면요?”

“아니라면…… 나도 모르겠구나.”

담사영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느냐? 언제고 한 번은 마주쳐야 할 사람인데.”

“그건 그렇습니다.”

“하나 네 말도 일리가 있다. 바로 움직일 필요는 없지만, 미리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도 없으니.”

담사영이 몸을 돌렸다.

“무색사에 마지막 명령을 내릴 때가 되었음이야.”

* * *

“저기…… 손님?”

“…….”

“영업시간이 끝나서 말인데, 이만…….”

쩔그렁.

죽립을 쓴 노인이 탁자 위에 금낭을 내려놓았다.

객잔 주인의 눈이 흔들렸다. 언뜻 봐도 묵직한 것이, 한두 푼이 아닌 듯했다.

노인이 말했다.

“손님이 한 분 오실 것이네. 그 외에 다른 손님은 받지 말고, 객잔 문을 닫아 주게나.”

“아, 예.”

주인이 슬쩍 금낭을 들었다.

‘헉!’

무게가 실로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소리를 들어 보니, 그냥 철전도 아니고 최소 은전이다. 이 정도 무게의 은전이면 객잔 문을 닫아도 족히 석 달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요, 요리를 해 올리겠습니다!”

“최고로 잘하는 놈으로 하나만 내오게.”

“예!”

객잔 주인이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여전히 죽립을 쓴 채로 술을 들이켰다. 창가 자리지만 창밖을 보지도 않았다.

묵묵히 술을 비우길 한참.

끼이익.

객잔 문이 열렸다.

숙수와 함께 한참 요리를 준비하던 객잔 주인이 주방에서 나오려다 말고 주춤했다. 죽립을 쓴 노인이 손을 들어 그의 행동을 막았기 때문이다.

노인이 말했던 손님이 분명했다. 주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저벅저벅.

죽립에 가려진 노인의 눈이 빛났다.

‘가볍군.’

바닥에서 전달되는 소리가 무척이나 산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대범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조심스럽지도 않았다. 거창하게 중도(中道) 운운할 것도 아닌, 너무나도 평범하기에 오히려 자유로운 보행이었다.

노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오랜만에 듣는 발소리구나.”

무수히 많은 암살자와 무수히 많은 정보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어떤 놈들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걸음을 보여 주진 못했다. 소리는 나지만 듣는 사람이 금세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보행이었다.

드르륵.

노인의 맞은편에, 또 다른 노인이 앉았다.

“왔느냐?”

“왔소.”

먼저 앉아 있던 노인, 강우창이 죽립을 벗었다.

그러자 동생이 보였다. 이십 년이 훌쩍 넘어서야 다시 보게 된 혈육이었다.

“많이 늙었구나.”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나는 형의 첫마디는 참으로 담백한 것이었다.

강우경의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걸렸다.

강우창은 동생의 그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 이십 년의 공백으로 인해, 더 이상 동생의 감정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형님도 많이 늙었소.”

“세월 앞에 장사 없는 법이지. 그래도 체력 관리는 잘한 편이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강우창의 나이는 칠순이 넘었다. 그럼에도 체격은 홍안의 젊은이 못지않았다.

“너는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구나.”

“교주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소이다.”

“교주…….”

강우창의 눈이 깊어졌다.

“교주에게 사로잡혔던 게 아니라, 그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들어 갔던 것이냐?”

강우경의 미소에 씁쓸함이 어렸다.

이십 년이 훌쩍 넘어서 다시 만난 형은 달라진 게 없었다. 주름살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더 탁해졌으며 머리카락도 하얗게 셌지만, 그는 여전히 무색사장(無色寺長)이었다.

“그렇게 되었소이다.”

“못난 놈.”

너무나도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을 보니, 강우창의 얼굴에도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가 아는 동생은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임무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실력 역시 중원제일이라 할 만했다.

확실히 세월이란 게 무섭다. 여우처럼 교활하고 범처럼 사나웠던 무색사 최강의 암살자가, 이젠 더 이상 범도 여우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나를 원망하느냐?”

“원망했었소.”

“지금은 아닌 것처럼 들리는구나.”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 흘렀소. 형님이나 나나 인생의 말년에 들어섰거늘, 그깟 원한이 무어라고 여태 곱씹고 있겠소.”

“……살아 있는 걸 봤으니 되었다.”

강우창이 자리에서 일어나 죽립을 썼다.

“오늘 너를 보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 혹여 강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네 목을 벨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강우창은 몸을 돌렸다.

그때, 강우경이 입을 열었다.

“교주를 암살할 것이오?”

순간 강우창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뻗어 나왔다.

“그걸 어찌 아느냐?”

“사실인가 보구려.”

“어찌 아느냐 물었다.”

“내가 교주의 가랑이 밑에서 빌빌거렸듯, 형님은 의천맹주의 똥을 닦아 주고 있지 않소?”

강우창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다시 묻겠다. 어디서 들었느냐? 대답 여하에 따라, 오늘 너의 생사가 갈릴 수도 있음을 알아 두어라.”

“중원의 정세, 시국, 그리고 형님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오.”

“…….”

“나는 교주의 밑에서 자유를 얻었건만, 형님은 맹주의 밑에서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것 같소. 세상사 흐름만 보고도 미래를 유추하던 절륜한 능력은 어디다 팔아먹었소이까?”

강우창이 몸을 돌렸다.

“다시 세상에 나오지 마라.”

“포기하시오.”

“…….”

“교주는 사람이 아니오. 무색사가 백이 있어도 불가능하오.”

“패자의 넋두리를 들어 줄 성싶으냐? 정녕 예서 죽고 싶은 것이냐?”

강우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우창이 객잔 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바로 나가진 않았다.

잠시 그렇게 서 있던 강우창이 입을 열었다.

“내게 있어 넌 이십 년 전에 죽었다. 나는 이승에서 망자(亡者)를 만나고 싶지 않아. 그러니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

“세상에 나서지 마라.”

쿵!

객잔 문이 닫혔다.

잠시 후, 객잔 주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큼직한 접시 하나를 들고 나왔다.

“헛? 여기 계시던 손님께서는……?”

“배고프구먼. 탁자에 놓게나.”

“예? 아, 예!”

탁자에 요리를 내려놓은 주인이 슬쩍 눈치를 보더니 주방으로 물러났다.

가만히 요리를 보던 강우경이 젓가락을 들었다.

“요리를 시켜 놓고 나가면 안 되지.”

그가 젓가락을 놀렸다.

요리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형님은 실패할 거요. 어린놈의 자식은 여유가 없어 귀한 음식을 시켜 놓고 튀어 버렸지만, 교주는 예의와 격식을 아는 사람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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