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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60화 (360/774)

360화. 믿음의 깊이 (5)

“흠, 저기로구만.”

광혼의 눈이 번뜩였다.

“호오? 저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겐가?”

“그런 것 같소.”

“용기인지 만용인지 모르겠군.”

곡천삭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소.”

“함정이라?”

“그렇소. 저 정도 병력으로 우리를 어떻게 상대하겠소? 저들 역시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저리 진을 치고 있는 것이겠지.”

광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곡천삭의 말에 동의하진 않았다.

“일리는 있네만, 저들은 우리가 병력을 끌고 올 거라는 사실을 몰랐을 걸세. 저들은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어. 사고(思考)도 냉정하지 못했을 테니, 차라리 여기서 일전을 벌일 속셈이었겠지.”

곡천삭의 볼이 씰룩였다.

“적이지만 유능한 이들이오. 미리 대비했을 가능성도 있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그렇소. 조심히 접근하는 것이 좋겠소.”

광혼이 본 곡천삭은 태세 전환이 빠르고, 확신이 들기 전엔 결코 덤벼들지 않는 자였다. 그것이 신중함이 아니라 소심함에서 비롯된 행동인지라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의 말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어차피 급할 것도 없다.’

애초에 기다렸다가 천천히 압박하자고 한 것 역시 자신이었다. 일단 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니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어디 보자.”

우웅.

광혼의 안광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공으로 안력을 키워 마교도들을 살펴보던 광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 이상하구만? 뭔가 함정을 팠다면 결원이 있어야 할 텐데, 그때 봤던 그대론데?”

물론 적의 숫자를 확실히 아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편차라고 해 봤자 스물 안쪽일 것 같았다.

함정을 팠다 한들, 스무 명 정도로는 이 많은 병력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뭐, 여유를 갖고 전진하는 것도 좋지만 지레 겁먹고 앉아만 있는 것도 우스운 일이겠지.”

광혼이 곡천삭에게 말했다.

“천천히 다가가 보세.”

“알겠소.”

곡천삭이 뒤로 돌아 외쳤다.

“이동한다! 혹시 모르니 미리 전투 준비를 하도록!”

그러나 그가 말하기도 전에, 비천대(飛天隊)는 이미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곡천삭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표정한 비천대원들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용검대(龍劍隊)는 언제 온다던가?”

비천대장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 올 겁니다.”

일말의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 대답이었다. 곡천삭을 상관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현무대원들이 저마다 피식 웃어 댔다. 곡천삭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놈들!’

마음 같아선 당장에 때려죽이고 싶지만 그는 살심을 가라앉혔다. 곧 전투가 벌어지는 이 시점에, 전력을 깎아 먹는 짓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참고 넘어갈 수는 없어서 한마디를 던졌다.

“비천과 용검을 두고 신속(神速)의 부대라 하더니만, 그 소문도 다 헛것이었던 모양이군. 고작 그 정도 진격 속도로 최속의 부대란 말을 듣다니,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야.”

부하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아랫사람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다. 비록 한시적 동맹 관계이지만 경쟁 부대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조롱하는 곡천삭의 모습은 결코 보기 좋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곡천삭의 비아냥을 들은 비천대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광혼이 고개를 저었다.

“사기 떨어트리는 소리는 그쯤 해 두고 이만 가 보세.”

“흥!”

치리링.

곡천삭이 기병창을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조합된 창에서 은은한 살기가 일었다.

“가자!”

쿠르릉.

달리는 건 아니었지만, 무려 삼백에 가까운 인원이 이동하다 보니 땅이 은은하게 울렸다.

‘거리는 대략 십 리. 산길이라 접근이 더 느릴 것이다.’

그래도 다들 무공을 익힌 이들이라 범인(凡人)보다는 보행이 훨씬 빨랐다.

‘넉넉잡아 반 시진이면 도착하겠군.’

숲은 컸다.

매서운 겨울바람 앞에 나무들은 하나같이 헐벗은 채였다. 그래도 워낙에 크고 굵은지라, 산행에 익숙하지 않으면 길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선두에 선 광혼이 손을 들었다.

“잠시 대기.”

일행이 멈추었다.

곡천삭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러시는 거요?”

“뭔가 이상한데?”

“그게 무슨 말이오?”

광혼은 곡천삭을 돌아보지 않았다.

정면, 나무와 나무 사이로 마교도들이 보였다. 아직 삼백 장 정도가 남았지만, 광혼의 매서운 안력은 그들 모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들 보이나?”

곡천삭이 안력을 집중했다.

보이긴 하지만 뚜렷하지는 않았다. 광혼에 비해 내공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으나, 내공의 미세한 운용에선 다소 뒤지는 그였다. 광혼만큼 훤히 볼 수는 없었다.

“보이오. 한데 왜 그러시오?”

“그대로긴 한데…… 뭔가 이상해.”

“그러니까 뭐가 이상하냔 말이오.”

“제대로 설명이 안 되는군. 딱히 숫자가 줄어든 것 같지도 않고 비인외도의 진법(陣法)으로 만든 허상 같지도 않은데.”

곡천삭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당장 알지 못한다면 일단 계속 갑시다.”

광혼은 잠시 망설였다.

곡천삭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곡천삭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쳤다.

“안 갈 거면 우리가 먼저 가겠소.”

불퉁하게 쏘아붙이긴 했지만 곡천삭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심성은 좋지 않아도,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광혼은 겸상도 하기 싫은 인간이 확실하지만, 그의 능력은 분명 자신을 웃돌고 있었다.

광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다가가 보세.”

“좋소.”

일행이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이전보다 조금 느리고 조심스러운 보행이었다.

다시 백 장 거리가 좁혀졌을 때.

“대기.”

“또 왜 그러시는 거요?”

광혼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뭔가 이상해.”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뭐냔 말이오!”

광혼이 곡천삭을 바라보았다.

곡천삭이 움찔했다. 자신을 보는 광혼의 적안(赤眼)이 유독 흉흉했기 때문이다.

“정히 그리 답답하면 자네들이 먼저 가게.”

곡천삭은 입을 다물었다.

광혼이 자신을 이 정도라도 대우해 주는 것은 의천맹과 철혈성이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선을 넘는 순간, 광혼은 이해관계 따위 따지지 않고 자신을 공격할 것이다.

철혈성의 무상인 신창 언극만큼이나 강한 무공에, 그보다 열 배는 더 흉포한 인간이 광혼이었다. 이 이상 그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

“커허험! 우리가 위험해질 것 같소?”

“정확히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 찝찝한 감각은……. 그래, 이 이상의 접근이 득이 될 것 같진 않군.”

“하면 어쩌시겠소? 여기서 계속 기다리다가 치겠소?”

광혼은 망설였다.

‘뭐가 이렇게 찝찝한 거지?’

분명 적은 그대로였다. 함정을 판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단한 전력이라 보기도 어렵다.

‘분명 내가 놓친 게 있을 텐데.’

광혼이 다시 적들을 살폈다.

똑같았다. 마교도 놈들은 제각기 진을 형성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백여 장 거리를 뚫고 들어오는 이 생생한 전의(戰意)는 진짜였다.

‘이상하다. 정말 이대로 싸워도 되는 것인…….’

순간 광혼의 눈이 흔들렸다.

‘잠깐.’

그가 다시 한번 안력을 키웠다. 이번에는 전신에서 붉은 진기가 새어 나올 정도로 내공을 끌어 올리기까지 했다.

‘어디 갔지?’

적이 포진한 곳에, 분명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아까 작은 봉우리 측면에서 봤을 때는 분명히 보였었다. 한데 지금은 없다.

“그놈, 소교주 놈이 안 보이는데?”

그때였다.

훅!

광혼은 전신의 털이 삐죽 서는 기분을 맛보았다.

몸을 돌리기도 전부터 느껴지는 살벌한 기세. 다소 불안정하지만, 압도적인 위엄과 흉흉함이 느껴지는 이 기파의 근원은 분명 마공(魔功)이었다.

“헉!”

“뭐, 뭐야?!”

광혼과 곡천삭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그들 바로 뒤 비천대, 그리고 비천대 뒤에 붙은 현무대의 후방에서부터 다가오는 한 줄기 푸른 전광(電光)을.

언제,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한 마인이 마침내 거대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하얗게 웃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광혼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염라마군!!”

콰앙!

붉고 푸른 전광이 숲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어억!”

“마, 막아라!”

“마교의 소교주다!”

펑! 퍼퍼펑!

순식간에 접근해서 삼 연타를 내리치는데, 그 주먹에 군림마황기의 마력과 천마벽력권의 투로가 함께하고 있었다.

뿜어지는 발경에 공기가 달아오르고, 미친 듯이 퍼져 나가는 전광이 사위를 휩쓸었다. 심각한 내상 때문에 전투력이 대폭 깎였다지만, 그래도 서량의 무공은 일개 현무대원 수준으로 막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후두두둑!

십여 명의 무사들이 단숨에 허물어졌다. 쓰러진 그들의 몸에 시퍼런 번갯불이 탁탁 튀어 올랐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즉사를 면치 못했다. 시기적절한 습격과 군림마황기의 파괴력, 벽력권의 권압(拳壓)이 만들어 낸 지옥도였다.

주르륵.

서량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벽력권을 연환으로 세 차례나 내지른 것만으로도 전신이 삐걱거렸다. 상단전까지 개방하여 싸우고 있으니 몸에 무리가 더 많이 갔다.

“이노옴!”

콰앙!

광혼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헤쳐 가며 엄청난 속도로 접근했다.

곡천삭 역시 움직이려 했지만, 그 전에 광혼이 외쳤다.

“자네는 거기서 대기해! 나머지 마교도 놈들의 공격을 대비하게!”

퍼엉!

나무가 너무 우거져서 한달음에 달려갈 수가 없다. 나무를 다 부수고 접근하다간 아군까지 다친다. 흥분한 와중에도 몸놀림에선 냉철함이 엿보였다.

순간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가 사라졌다.

‘……?!’

오 장 거리까지 순식간에 접근한 광혼이 헛바람을 삼켰다.

‘사라졌다? 어디로?’

그때, 현무대원들이 악악 소리를 질러 댔다.

“뭐, 뭐야?!”

“큭! 막아!”

퍼버버벅! 퍽!

광혼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어느새 서량은 현무대의 중앙을 돌파하여 비천대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돌파 속도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었지만, 한순간이나마 그의 기척과 모습을 놓쳤다는 게 광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빤히 보고 있었거늘 언제 저기까지 갔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신법이었다.

이건 무공의 강약 문제가 아니었다. 거의 사술(邪術)이라고 생각될 만큼 은밀하고도 재빠른 경신술이었다.

‘은신술!!’

그렇다. 저건 은신술이다.

그러나 좀처럼 믿기지가 않았다. 세상 어떤 살수가 있어 저토록 놀라운 은신술을 보여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화경의 고수가 빤히 보고 있는데도!

‘이놈!’

광혼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꼭지가 돌아 버릴 정도로 분노가 치솟는 상황이었지만, 반대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언뜻 보아도 정상이 아닌 마교의 소교주를 사로잡을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인 것이다.

“현무대는 좌우로 길을 열어라! 흩어지지만 마!”

파아앙!

현무대가 순식간에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열린 길로 광혼이 달려 나갔다.

쾅! 쾅!

서량의 망치 같은 주먹이 비천대원 셋을 때려눕혔다. 그 틈에 광혼은 서량과의 거리를 절반까지 줄일 수 있었다.

무서운 속도였다. 가히 십대고수의 일인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광혼은 모르고 있었다.

파지직! 우우우웅!

서량의 몸에서 보일 듯 말 듯 번져 나오는 청색의 마기.

그 마기의 질과 양이 미세하게 상승하고 있음을,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서량이 고개를 돌려 씨익 웃었다.

광혼의 눈에 불이 붙었다.

“마군 이놈!”

퍼어어엉!

광혼이 내지른 장력이 서량의 몸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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