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61화 (361/774)

361화. 부활의 제물 (1)

“헉! 소교주님!”

고루마존은 저도 모르게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때, 마동필이 손으로 그를 제지했다. 흑혈마검이 든 검갑을 쥐고 있는 그의 얼굴에도 깊은 걱정이 맺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 싸움에 관여하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소교주님께서는 지금껏 한 번도 거짓말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셨지요.”

“…….”

“아쉽지만, 지금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 아닙니다.”

고루마존은 나직이 숨을 골랐다.

자신만큼이나 불안해하고 있을 호위무사가 이리 말한다. 그 역시 불안함을 안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쾅!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해(人海) 속.

푸른 전광이 숲을 메운 거목보다도 높이 치솟았다.

고루마존과 마동필, 여상린은 물론 대기 중인 모든 마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해졌다?’

그렇다.

저 마기는 분명 소교주님의 군림마황기였다. 한데 적의 후방에서 터트렸던 군림마황기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강하고, 더 격렬한 기운이었다. 전력이라 보긴 힘든 농도지만, 습격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기운이었다.

퍼퍼퍼펑!

숲이 비명을 질렀다.

터져 나가는 폭음과 함께 하늘 높이 치솟은 팔다리가 매캐한 연기에 휩싸였다.

이전까지는 뼈를 부수고, 오장육부를 지져 버리던 군림마황기가 이제야 완연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피부, 근육, 뼈를 넘어 다시 근육, 피부까지 뜯어내 버리는 흉악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술?!”

마동필과 고루마존이 여상린을 바라보았다.

여상린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유리술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저, 저것 보세요!”

콰앙!

또다시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이 울렸다.

이번 폭음은 서량의 권풍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광혼의 공격이 서량의 몸에 닿아 터진 폭음이었다.

무공을 잘 모르는 이라도 치명상이라 확신할 만한 공격이었다. 이 과격한 폭음은, 공격을 받은 대상의 몸이 산산조각이 났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파지지지직!

이전보다 더 강한 전광이 비천대원 십여 명을 잡아먹고, 현무대원 다섯을 뭉개 버렸다. 천마벽력권의 뇌후(雷吼)와 호전(呼電)의 연환기였다.

고루마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럴 수가……! 군림마황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

고루마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군림마황기는 만마(萬魔)를 다스리는 천하제일마공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대단한 마공이라도, 그걸 구사하는 자의 몸 상태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법이다.

서량은 분명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전처럼 지구력을 살려 전투를 오래 지속할 수도, 파괴적인 기공술을 발산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한데 저 기파는 무엇인가?

폭풍처럼 사방을 뒤덮는 막강한 발경(發勁)은 무엇인가?

“흡정(吸精)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다시 여상린을 돌아보았다.

여상린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氣)를 흡수하는 게 아니에요, 저건. 흡기(吸氣)가 아니라, 통기(通氣)로 혈맥과 혈도를 개방하여 탁기(濁氣)만 불사르고 몸을 청결히 하는 수법이에요!”

“뭐, 뭐라고?!”

“그게 끝이 아니에요. 한층 청결해진 몸에 잔존하던 기가 채워지고, 그 기가 삼단전(三丹田)으로 퍼져 다시 생기(生氣)를 싹틔우죠. 되살아난 생기는 삼단전을 더욱 활성화해서 심법 본연의 위력을 두 배, 세 배 증폭시키는 거예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여상린이 신음을 흘렸다.

“유리잠력대법의 근간이 되는 유리술(琉璃術)이에요. 중원으로 퍼진 흡정마공의 원형이랄 수 있는 형태죠. 하지만 말했듯, 저건 흡정이 아니에요. 적의 내공을 강탈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적의 내공이 아닌, 적이 발산하는 발경과 대자연의 기를 끌어와 신체를 수복하는 방법이다. 일시적으로 회복된 몸에 더 많은 진기를 끌어와 심법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비기(秘技)였다.

“심지어 거기서도 끝이 아니죠. 소교주님의 마공은 천하제일마공이에요. 역천은 곧 불사(不死)와 불멸(不滅)을 지향하니, 신체를 수복하고 치료하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죠.”

“수복? 치료?”

“흡정이 아닌 축정(畜精)! 잠시나마 기(氣)와 신(神)을 정(精)에 집중시켜 진기를 되살리는 수법인데, 소교주님은 상처까지 치료하고 계신 거라고요! 유리술의 극의를 구현한 사람은 본궁 역사에서도 셋을 넘지 못하는데…… 세상에……!”

사람들은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겠다. 서량이 왜 내상도 치료하지 않고 홀로 전투에 나서려 했는지.

그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몸을 치료할 방법을 알았고, 동시에 적을 섬멸시킬 방법도 알았다.

그래서 저 악의(惡意) 가득한 전장에 홀로 뛰어든 것이다.

방법을 알아도,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절대 들어가지 못할 저 사지(死地)에서, 기어이 부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알겠군.”

마동필과 여상린이 고루마존을 보았다.

고루마존의 얼굴은 감탄과 감동으로 물들어 있었다.

“교주님께서는 알고 계셨던 게야, 소교주님의 그릇을. 무공의 재능이나 지혜 따위가 아니라, 신교의 주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릇이라는 걸 알고 계셨던 게지.”

만인(萬人)에게 떠받들어지는 존재지만, 그렇게 오히려 목숨을 다해 제 사람들을 책임진다.

전장의 선봉으로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생사(生死)의 틈에서도 어떻게든 부활한다.

그렇다. 저건 부활이었다.

구시대를 책임졌던 절대자의 통치를 이어받을, 이제 새로운 시대를 책임질 또 다른 절대자의 부활이었다.

“마 호위, 준비하게.”

“예?”

“천마도(天魔刀) 말일세. 소교주님께서 온전히 힘을 되찾으시면, 그 칼이 필요하실 걸세.”

“아, 예!”

마동필이 등 뒤에 메고 있던 천마도의 천을 벗겼다.

고루마존이 다시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폭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었고, 마기는 더욱 왕성해졌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후배들이라…… 부럽군.”

* * *

‘된다.’

콰앙!

서량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날아간 그의 몸이 현무대원 둘을 쓰러트리고 거목 한 그루를 부러트리며 쓰러졌다.

속이 꽉 찬 철퇴에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광혼의 진신절기, 대력홍련장(大力紅蓮掌)의 위력은 고아한 무공명과 달리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푸스스스!

서량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타올랐다.

‘된다!’

파지지지직!

홍련장의 장력이 체내로 파고들자마자 전신 혈도와 혈맥이 개방되었다. 개방된 혈맥으로 흘러든 장력은 탁기를 소멸시킨 뒤 대부분이 체외로 방출되었다.

발경의 힘으로 체내 불순물을 날려 버린다. 동시에 흡수할 만큼만 남은 장력의 기(氣)가 상중하, 세 개의 단전으로 흩어지며 원정(原精)의 힘을 되살렸다.

강하게 맥동하는 원정이 생기를 뿜어내고, 농도 짙은 생기는 마기로 치환되어 빈 단전을 채워 주었다.

마기가 왕성해지니 치상결(治傷訣)에도 탄력이 붙었다. 출혈이 심했던 오장육부가 무서운 속도로 회복되었다. 회복된 오장육부 덕에 생기는 더 강하게 솟구치고, 동시에 군림마황기의 힘도 거세져만 갔다.

‘역시!’

군림마황기의 삼대비기(三大秘技).

정(正)과 반(反), 합(合)의 삼기(三技) 중 반에 해당하는 불멸의 회복술, 반천축정술(反天畜精術)이었다. 그전까지는 마황기의 성취가 낮아 쓰지 못했던 축정술을, 지금 이 순간 완벽하게 펼친 것이다.

‘무애공(無碍功)과 흡사하다 싶었더니만, 과연!’

반천축정술의 원리는 진즉에 깨우쳤다. 그것은 그가 살수 시절, 그리고 소교주가 되기 전까지 큰 도움이 되었던 회복술인 무애공 덕분이었다.

대자연의 기를 빌어 육신을 청결히 하고, 탁기가 쌓이지 않는 몸으로 만드는 데 최고의 무공이 바로 무애공이었다. 다만 무애공과 반천축정술의 차이점이라면, 축정술의 경우 극소량인 자연기가 아니라 적의 풍성한 진기를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파지지지직!

더 강력해진 군림마황기가 순식간에 위장의 상처를 봉합했다.

“이놈!”

순식간에 접근한 광혼이 재차 홍련장을 내쳤다.

서량의 눈이 번쩍였다.

콰앙!

화포의 포격이라도 받은 듯, 서량이 쓰러졌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광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놈, 반응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이제는 놈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기감으로 알 수 있었다. 놈이 은신술을 쓰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눈으로 좇기 힘들다는 건 똑같았다. 도대체 이놈의 신법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놈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순간 광혼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비요왕과의 무자비한 박투 때도 느꼈지만, 염라마군은 인간이 아니었다. 이 눈이 돌아갈 만한 신법만으로도 자신은 놈의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죽여야 한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분명 후환이 될 놈이야! 한데…….’

광혼의 눈이 흔들렸다.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서 재차 현무대를 공격하려는 서량의 모습이 보였다.

‘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것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놈의 움직임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뿜어지는 마기가 끊임없이 왕성해졌으며, 공격 속도와 위력 역시 증가하고 있었다.

하물며 소림의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만큼 강하다는 홍련장을 그리 맞고도 저리 움직인다. 마치 회복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광혼의 눈이 번뜩였다.

‘회복? 공격을 받아서 회복을 한다고?!’

콰앙!

현무대원 하나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고, 또 다른 대원의 가슴팍을 걷어차려 할 때.

서량은 주변이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 어느새 광혼이 다가온 것이다.

펑!

서량이 뒤로 물러났다.

워낙 시기적절한 공격이라 이전처럼 신속한 도주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광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훅!

단숨에 접근해 온 광혼이 서량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일격에 머리통을 날려 버릴 심산인 것이다.

하지만.

파악!

광혼의 눈에 핏발이 섰다.

“막아?”

서량의 큰 손이 광혼의 팔목을 붙잡았다.

우우우우웅!

두 사람의 내공이 무섭게 불타올랐다.

각자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뽑아낸다. 하지만 아직 신체가 절반도 채 회복되지 않은 서량은 광혼의 내공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뚜둑!

손가락에서 뼈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광혼이 씨익 웃었다.

“어디 이것도 감당할 수 있는지 보겠다.”

우우우웅!

광혼의 왼손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진득한 핏물처럼 시뻘건 구유마공의 마기와는 달리, 타오르는 저녁놀처럼 아름다운 색조였다.

“이놈!”

퍼퍼퍼펑!

서량의 코와 입에서 피가 터졌다.

턱과 목, 흉부의 사혈 네 곳을 가격한 쾌속한 권법이었다. 대력홍련장과 함께 광혼이 즐겨 쓰는 무공인 연주속권(連駐速拳)이었다.

홍련장보다 강하진 않지만, 속도만큼은 발군인 권법이었다. 거기에 광혼의 내력이 실렸으니 금강불괴라도 피를 토할 수밖에 없다.

그때였다.

화르르륵!

‘뭐, 뭐야?!’

시퍼런 전광으로 가득했던 서량의 몸에서 붉은 화기(火氣)까지 치솟았다.

“……음, 넘어갔군.”

축정술의 경지가 낮아 군림마황기는 절반만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은 기운이 몸 전체를 누비며 구유마공의 힘까지 되살리고 있었다.

턱을 매만지던 서량이 순간 호흡을 조였다.

콰직!

“컥!”

서량이 쥐고 있던 광혼의 팔목이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퍼퍼펑!

재차 연주속권을 내쳐 서량과 거리를 벌렸지만, 광혼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부러진 팔목으로 침투한 마기가 오른팔의 혈도를 모조리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화르르륵!

부활이다.

불과 번개를 뿜어내며 중원 천하에 재앙을 불러일으켰던 저승왕의 재림이었다.

서량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피이이이잉!

마치 화살이 쏘아지듯 날아온 천마도가 그의 손에 잡혔다.

우우우웅!

천마도에서 선천마기가 흘러나왔다. 회복을 멈췄던 군림마황기가 또다시 회복을 꾀하기 시작했다.

점점 강해지는 마기, 그리고 전투력.

서량의 두 눈이 선명한 청홍(靑紅)의 마력을 되찾았다.

“휴, 진짜 죽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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