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62화 (362/774)

362화. 부활의 제물 (2)

고루마존의 눈이 번쩍였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시퍼런 전광, 그리고 숲을 통째로 불살라 버릴 것 같은 화려한 불꽃.

나아가 마동필이 꺼내 놓은 천마도까지 제 주인을 찾아 날아갔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진마대는 적도들을 섬멸하라!”

“우아아아!”

우르르릉!

숲이 진동했다.

선두에 선 고루마존과 마동필이 무시무시한 마기를 피워 내고, 그 뒤를 따르는 여상린과 진마대가 폭풍 같은 전의를 내뿜었다.

삶과 죽음의 교차 지점에서 마침내 차기 마신이 부활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적을 섬멸하는 일만 남았다.

파아아앙!

마동필보다도 빠르게 날아간 고루마존이 노린 사람은 곡천삭이었다.

멀리서 격공장(隔空掌)으로 서량을 견제하고 있던 곡천삭은 느닷없이 밀려 들어오는 마인들의 공격에 기겁했다.

“이런! 비천대는 저놈들을 막아라!”

콰앙!

곡천삭이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놈!”

“이익!”

파파파팡!

순식간에 허공을 밟아 가며 몸을 피하는 곡천삭.

실로 놀라운 신법이었다. 소림의 금강부동(金剛不動)에 비견되는 구파제일의 신법, 운룡대팔식의 무한한 공능이었다.

이룬 경지는 고루마존보다 아래일지언정 신법의 경지만큼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작정하고 달아나려 한다면, 천하의 고루마존도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루마존에게는, 곡천삭 같은 인간에게 통할 절대의 비기가 있었다.

후우우웅!

“억!”

곡천삭의 신형이 단숨에 허물어졌다.

하늘까지 날아오를 기세로 솟구치던 몸이 덜컥 멈추더니,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끌려가는 듯했다.

‘이게 뭐야?!’

고루마존의 고목인(枯木引)은 외물을 넘어 진기의 이동 방향까지도 제멋대로 흐트러트리는 괴공(怪功)이었다. 곡천삭의 내공도 원체 뛰어난지라 원하는 위치로 빨아들일 순 없었지만, 발을 흐트러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파아아앙!

공기를 찢어발기며 나아가는 결목신수의 장력.

곡천삭이 허둥대며 창을 휘둘렀다.

쾅!

“크윽!”

곡천삭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작정하고 받아 내려 해도 전신이 삐걱거릴 만큼 막강한 장력이었다. 한데 부자연스러운 자세에서 받아 내자니 양팔이 마비될 것만 같았다.

휘이이익!

한 손으로는 고목인을, 다른 한 손으로는 결목신수를 뿜어내며 곡천삭을 밀어붙이는 고루마존.

파파팡!

그리고 그 뒤를 마동필과 여상린, 진마대가 휩쓸었다.

쩌저저저정! 쾅!

비천대의 선두에서 진식을 펼쳐 내던 무인들이 출렁이는 물결처럼 흔들렸다.

푸화아악!

마동필의 흑혈마검은 자비가 없었다. 시커먼 검신에서는 불길한 마기가 타올랐고, 그 뒤를 황금빛 살기가 받쳐 주고 있었다.

서량이 비요왕과의 전투에서 나 자신을 찾았다면, 마동필은 삼십이 넘는 절정고수들과의 전투에서 무(武)의 깨달음을 얻었다.

펑! 퍼펑!

장중하게 뻗어 나가는 마력의 검도(劍道)에 비천대원들의 가슴팍이 터져 나갔다.

피보라를 일으키며 전진하는 마동필이었다. 더 빠르고 강력한, 더 이치에 맞는 검력이 무서운 기세로 전방을 휩쓸었다.

지키는 자로서의 호검(護劍)을 연마했던 마동필.

그런 그가 서량과의 중원행을 통해, 지키기 전에 적을 몰살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 무겁고 강력하기만 했던 그의 검이 한층 빠르고 사나워진 이유였다.

피와 살점이 튀기는 전장.

그 위로 마침내 진마대가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쾅! 콰콰쾅!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데 폭음이 울렸다.

전신이 흉기나 다름없는 고수들 간의 격전이었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난무하고,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사위를 울리며 적막했던 숲의 비명을 끌어내고 있었다.

“허억! 허억!”

어느새 피범벅이 된 광혼이 헐떡이며 서량을 노려보았다.

“후욱.”

서량 역시 정상적인 호흡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힘이 넘쳐 보였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해 보였다.

“빌어먹을 마교도 놈! 역시 그 더러운 배움은 어디로 가지 않는군!”

“뭔 개소리냐.”

“네놈의 그 무공! 흡정마공이 아니더냐! 그게 아니면 어찌 내 공격을 받아 내며 회복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는 굳이 광혼의 말에 대응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끝내자. 편히 좀 쉬고 싶어.”

“이노옴!”

파아아앙!

분을 참지 못한 광혼이 먼저 서량에게 달려들었다.

오른팔은 혈도가 다 파괴되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살아남아도 평생 외팔이로 살아야 할 것이다.

왼손에 혼신의 공력을 집약한 광혼이 서량의 흉부를 노렸다. 집약된 공력만큼이나 빠른 공격이었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서걱!

떨어져 나간 팔에서 흩뿌려진 피가 붉은 곡선을 그리는 모습은 마치 그림과도 같았다.

“알겠나?”

광혼이 멍하니 서량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광혼의 멱살을 쥐고 천마도를 겨눈 그의 얼굴은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너 정도 무공으로는 날 상대할 수 없어.”

“이…… 이!”

“이만 꺼지시게, 구시대의 유물.”

“마군!!”

퍼어억!

가슴에 천마도가 박힌 채 날아간 광혼이 바위 하나를 부수고 쓰러졌다. 상체가 세로로 길게 갈라진 광혼의 혼백은 이미 스러져 버린 뒤였다.

휘리릭! 탁!

허공섭물로 천마도를 가져온 서량이 외쳤다.

“모조리 죽여 버려!”

적장을 죽인 소교주가 외치는 말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모든 마인들의 기세가 순식간에 두 배로 타올랐다.

“크아아악!”

“마, 막아!”

“퇴각해야 합니다, 대장님!”

“닥쳐! 일단 막…… 컥!”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남은 현무대를 공격하려 준비하던 서량은, 문득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는 강한 기파를 느꼈다.

‘철혈성?’

진마대와 부딪치고 있는 부대와 비슷한 기질이었다. 그 수는 이백을 헤아렸다.

천마도에 구유마기가 일었다.

콰르르릉!

일대를 날려 버린 지옥풍의 도격에 남은 현무대원 여덟의 몸이 갈가리 찢어졌다.

“고루마존! 다가오는 병력을 막을 테니, 돌아올 때까지 이곳을 정리해 놔!”

평소처럼 존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권위가 가득하여, 그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존명! 신교의 마인들은 신속히 적들을 섬멸하라!”

“으아아아아!”

핏빛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을 뒤로한 채, 다가오는 용검대를 상대하러 떠나는 서량.

심신이 지쳐 톡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았던 그가, 모두의 인정을 받고 부활하여 다시 이전의 생명력 넘치는 소교주로 돌아왔다.

죽음이 창궐하는 전장에서, 서량은 다시 태어났다.

반나절 뒤.

만신창이가 된 곡천삭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몰살을 당했다. 의천맹과 철혈성의 힘을, 천마신교 하나가 감당한 거라 봐도 무방한 일전이었다.

그리고 이 전투의 결과는 며칠 만에 온 천하로 뻗어 나가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 * *

서량이 산동에서 비요왕을 죽이고, 나아가 정사가 최초로 연합한 부대를 섬멸시켰다는 소식은 십만대산에까지 이르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호요성의 얼굴은 실로 괴상했다.

상기된 표정을 보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제 추측에 불과하지만, 소교주님은 예전보다 더 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고루마존과 진마대가 함께했다지만, 그리 지친 상태에서 그만한 병력을 섬멸하는 것은 정녕 놀라운 일이지요.”

“그럴 수밖에.”

“예?”

이천상은 여전히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녀석은 군림마황기를 이었네. 욕계문을 열었으니, 진정한 적통(嫡統)이라 불릴 만해. 무공의 경지가 어떠하든, 욕계문을 열었으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호요성이 빙긋 웃었다.

“천마에게 패배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네.”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천상은 이미 서량을 십대천마로 인정하고 있었다.

천마는 죽지도 않고(天魔不死) 지지도 않는다(天魔不敗). 앞으로 온갖 싸움이 서량을 찾아가겠지만, 그는 어려움을 느낄지언정 죽지도, 패배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천상은 그렇게 믿었고, 호요성은 그런 이천상을 믿었다. 그 정도 믿음은 가져 줘야 했다.

“한데 말입니다.”

“말씀하시게.”

“천마는 죽지도, 지지도 않을 수는 있겠는데……, 이거 잘못하면 본교가 질 수는 있을 것 같단 말입니다.”

군림성교(君臨聖敎) 천마불사(天魔不死)라는 신마경어(神魔敬語)는 오직 교주와 소교주만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러나 그 전에, 신교의 수뇌부들은 신교불패(神敎不敗) 만마앙복(萬魔仰伏)이라는 여덟 자구의 신교경어(神敎敬語)를 듣는다.

어떤 경어든 천마와 신교는 결코 죽지도, 패배하지도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신앙과도 같은 외침이었다.

그것을 잘 아는 호요성이 그리 말할 정도면 사태가 제법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의천맹과 철혈성이 손을 잡은 게 분명합니다.”

“왜 그리 생각하나?”

“소교주님께서는 철혈성의 비천, 용검대와 의천맹의 현무대는 물론 십대고수인 광혼까지 섬멸하셨습니다. 게다가 육양마극을 사로잡았지요.”

“한데?”

“아무리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해도, 철혈성은 의천맹의 도움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기질 문제가 아니라 성주의 성향 문제지요.”

“즉, 두 고수와 부대가 힘을 합쳐서 량이를 친 것 자체가 맹성(盟城)의 연수를 뜻한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호요성이 품에서 서신을 꺼내 공손히 들어 올렸다.

우웅.

자연스레 날아간 서신이 허공에 둥둥 뜬 채로 펴졌다. 이천상의 눈높이에 딱 알맞은 위치였다.

이천상의 얼굴에 흥미가 일었다.

“누구에게서 온 서신인가?”

“한참 오물밭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에게서 온 서신입니다.”

“그렇군.”

그 말을 끝으로 이천상은 다시 술을 홀짝였다.

그가 석 잔의 술을 비울 때까지 호요성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교주님.”

“말씀하시게.”

“제아무리 본교라도…… 맹성 연합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소 조심스러운 어조였다.

이천상이 던지듯 물었다.

“어디까지를 전력으로 상정했을 때의 평가인가?”

“교주님과 전대 노고수들을 제외한 현역 교인(敎人)들만을 상정한 평가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칠가(七家)의 병력도 있으며, 마도의 기치를 내건 문파 중 삼 할을 넣었습니다.”

“나머지 칠 할은?”

“변수가 너무 커서 말이지요.”

이천상이 피식 웃었다.

“병력의 열세를 뒤집어엎는 것이 자네가 할 일 아니던가?”

호요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더 편한 길이 있으면 그쪽으로 노선을 잡으려고 했지요. 교주님께서는 좋은 생각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이 우둔한 놈이 감히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런 것 없네. 자네 편할 대로 하게.”

“……여러모로 머리를 굴려 봐도 편할 길이 없던데요.”

나직이 투덜거린 호요성이 고개를 바짝 들었다.

“물론 그들도 함부로 이쪽을 간 보려 들진 않을 겁니다. 게다가 의천맹의 경우, 현재 반정회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시점이라 모든 전력을 투입할 순 없을 테지요.”

“그 반정회를 상대할 자와 손을 잡지 않았나.”

“예?”

“철혈성 말이네.”

순간 호요성의 눈이 흔들렸다.

“허어……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러네요?”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서로의 고민거리를 해치워 줄 수 있는 것. 연수는 그래서 좋은 것이지.”

“물론 실제로 그리할지는 아직 미지수고요?”

“그렇다네.”

“하지만 교주님께선 이미 그렇게 믿고 계시는군요.”

이천상이 대답 없이 재차 잔을 채웠다.

호요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농담기를 싹 뺀 얼굴이었다.

“피가…… 제법 흐를 겁니다.”

“그러겠지.”

“어떻게든 잘 봉합해 보겠습니다.”

“뜻대로 하시게.”

호요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 회의 때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회의가 언제지?”

“사흘 후입니다.”

“그런가? 알겠네.”

“예, 그럼.”

호요성이 총총걸음으로 물러났다.

이윽고 대전엔 이천상만이 남았다.

한참 술을 홀짝이던 그가 창가로 눈을 돌렸다. 슬슬 석양이 지고 있었다.

“……모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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