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부활의 제물 (3)
-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 나는 너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걱정 같은 거 하지 않아.
- 제 능력을 알아도 무색사의 명성은 걱정하고 계시겠지요.
- …….
- 본사에 누를 끼칠 일은 없을 겁니다.
- 이것을 받아라.
- 무엇입니까?
- 무형지독(無形至毒)이다. 정확히는 당가의 무형지독에 가까운 극독을 모아 둔 독단이다.
- 독력이 좋겠군요.
- 네가 그것을 깨무는 순간, 반경 십 장 너비가 죽음의 지역이 될 것이다.
- …….
- 네 정체가 발각되거나, 혹 암살에 실패하면 주저 없이 깨물도록 하라.
- 걱정하지 마십시오.
- 다시 한번 말한다. 이번 네 암살행에 본사의 명운이 달렸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완수하도록.
- 알겠습니다.
- 사람을 붙여 주겠다. 마교까지 은밀하게 갈 수 있는…….
- 괜찮습니다.
- …….
- 제 암살행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도와준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 알겠다.
-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 다시 보기를 기원하겠다.
-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때, 동생은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마교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말은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다. 동생을 사지(死地)로 밀어 넣고 다시 보기를 기원한다니, 이 얼마나 치졸한 발언이었던가.
결국 동생은 돌아오지 못했다. 소식도 끊겨 버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그가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색사의 수장으로서, 음지에서 제일이라 추앙받던 살수의 형으로서, 그는 동생의 실패를 믿을 수가 없었다.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교주가 죽었다는 정보는 없었지만, 그건 마교 측에서 정보를 교란한 거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그는 동생이 암살에 성공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 이 년을 훌쩍 넘어 오 년쯤 되었을 무렵.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암살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동생을 가슴에 묻었다. 무색사의 명성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고 다시 음지로 기어 들어가 후진을 양성했다.
만약 의천맹주가 손을 뻗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맹주의 제안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그가 내건 조건이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다시 세상에 나와 의천맹주 밑에서 온갖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했다. 다행히도 무색사의 힘은 건재했고, 덕분에 의천맹주의 힘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시 세상에 나서고자 한다고, 무색사로 돌아갈 생각은 없으나 얼굴은 한번 보자고 서신을 보내 온 것이다.
이십 년 만에 만난 동생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십 년 전보다 훨씬 더 늙었고, 훨씬 더 차분해졌으며,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 교주에게 사로잡혔던 게 아니라, 그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들어갔던 것이냐?
- 그렇게 되었소이다.
- 못난 놈.
강우창은 또다시 후회했다. 아무리 그래도 동생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심지어 다시 만나면 죽이겠다는 말도 했다. 변해 버린 동생의 모습에 화가 나서 폭언을 하고 말았지만, 그게 그의 진심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 자신과 동생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는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며, 실제로 동생이 중원에서 활동하면 직접 찾아가 죽일 작정이었다.
동생이 굳이 이 시점에 중원에 나왔다는 것은 무색사에 대적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가슴에 묻은 동생이다. 그저 죽은 동생의 모습을 한 마귀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강우창이 눈을 떴다.
노인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형형한 빛을 발하는 눈이 일곱 복면인을 훑었다.
“준비들은 되었느냐?”
복면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 차례 눈을 빛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눈빛이야말로 대답이다. 무심한 그들의 눈동자엔 어떠한 감정도 깃들지 않았다.
강우창은 가슴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꼈다.
‘잘들 따라와 주었다.’
이들은 이십 년 전, 동생이 마교로 향한 직후 가르친 괴물들이었다.
처음 훈련을 시작할 때엔 무려 백오십 명의 훈련병이 있었다. 그중 일곱만 남고 모두 목숨을 잃었다. 무색사의 살법(殺法)은 그렇게나 어렵고 치열한 것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모두 혀가 잘려서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였다. 만에 하나 적에게 잡혀 고문을 당해도 이쪽 정보가 새어 나갈 일은 없었다.
물론 혀를 자르지 않아도 이 독종 놈들은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이었다.
목표물을 제거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모든 감정을 없애 버렸으니까.
“오늘 우리는, 중원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 출정한다.”
중원의 역사.
이 중원 무림의 역사는 정사마(正邪魔)의 구도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마도의 구심점을 세상에서 지워 버릴 생각이었다.
“과거, 본사는 한 번 실패를 겪었다. 유구한 무색사 역사 최초의 실패였지. 심지어 그 실패를 한 자는…….”
강우창은 잠시 입을 닫았다.
복면인들, 무색칠사(無色七死)는 어떠한 의문도 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훈련된 이들이었다.
“……그는, 본사 역사에서 첫손에 꼽힐 만한 살수였다. 그런 그가 실패할 정도로 목표물의 무공은 대단하며,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고수층 또한 탄탄하다.”
강우창의 눈이 번뜩였다.
“하지만 두 번의 실패는 없을 것이다. 아니, 실패하는 순간 본사는 끝이다.”
“…….”
“내가 직접 이 살행에 참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삼 적진의 코앞까지 와서 할 말은 아니지만, 강우창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최면과도 상통했다.
“물론 우리가 실패한다고 해서 현재 본사에 남은 이들이 당장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대는 명실공히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다. 그 무력보다도 무서운 것은 권력이고, 영향력이다.”
만일 암살이 실패할 경우, 무색사는 마도 무림의 총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아무리 음지에서 최고의 전력을 자랑한다는 무색사지만 천마신교를 막을 수는 없다. 아니, 최고 전력이 사라진 시점에선 마도칠가 중 두어 군데만 보내도 위험할 것이다.
물론 성공하더라도 신(神)을 잃은 마인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 그때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살육을 벌이는 마인들의 공세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너희는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목표물을 죽이는 데에만 집중해라.”
“…….”
“준비됐으면, 슬슬 움직이자.”
척!
복면인들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 마치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는 것처럼 똑같은 동작이었다.
항상 봐 왔던 모습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든든해 뵌다. 강우창은 진심을 담아 웃었다.
‘천마(天魔) 살해(殺害)라는 위업, 반드시 달성할 것이다.’
훗날 사가(史家)들은 입을 모아 칭송할 것이다. 무색사야말로 무림 역사상 최고의 암살 단체임을.
그리고 두려워할 것이다. 언젠가 그 귀신의 칼날이 자신의 목을 노릴지도 모르니까.
스르륵.
강우창과 무색칠사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 * *
“어라? 대호법님?”
“바쁘시오?”
“캬하핫! 저야 뭐 언제나 그렇지요!”
“바쁠 때 와서 면목이 없소이다.”
“어이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 업무가 아무리 바쁠지언정 대호법님과의 대담보다 중요하겠습니까?”
이 사람은 여전하군.
진심과 조롱의 경계를 오가는 화술이었다.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담은 생각을 접었다. 호요성의 외양과 목소리, 말투는 거북할 정도로 가볍지만 그가 얼마나 신교를 사랑하는지 안다. 무담에게는 그것만이 중요했다.
호요성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해서,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돈을 받으러 왔소.”
호요성이 눈을 끔뻑였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은 표정이었다.
“돈이요?”
“그렇소.”
“어…… 저는 대호법께 돈을 빌린 적이 없는데요?”
무담은 호요성의 농언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호법원 내각(內閣)의 인원들을 잠시 뇌주(雷州)로 보낼까 하오.”
“뇌주라면 남쪽이 아닙니까? 바다만 건너면 바로 해남도(海南島) 앞인데요?”
뇌주는 중원 최남단인 광동성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현이었다. 중원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뇌주보다 더 남쪽인 땅은 섬을 제외하곤 없었다.
“한데 갑자기 내각의 고수들은 왜요?”
“근래 이런저런 일 때문에 나서지 않아도 될 일에 투입이 되었소. 보상 차원으로 휴가나 보내 줄까 싶어서 말이오.”
“휴가라…….”
호법원 내각의 고수들은 모두 전대의 고수들로 이루어졌다.
그들 모두가 현역에서 물러난 노고수들이었고, 그중 몇몇은 대호법인 무담보다도 강했다. 전대 마존(魔尊)도 끼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호요성은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워 냈다.
“교주님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무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호요성이 한숨을 쉬었다.
“군사부에서 허가를 내드리는 거야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무담은 생각했다. 과연 호요성은 똑똑하다고.
괜히 신교의 총군사 역할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각의 고수들을 뇌주로 보내는 것은, 대호법인 자신에게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내각의 고수들은 십중팔구 대호법을…….”
“탄핵하려 들지도 모르지.”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소.”
이천상은 말했다. 굳이 호위를 강화하지 말라고. 평소 하던 대로 하라고.
무담은 지금껏 이천상을 모시면서, 한 번도 그의 속내를 캐내려 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사람의 안목으로는 신(神)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고 여겼거니와,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 고지식한 성정이 그를 대호법에 자리에 올렸다고 평했지만, 애당초 그 자리는 우직하기만 해서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는 이천상의 명령을, 나아가 그 의도를 온전히 ‘이해’했다. 그래서 전대의 고수들을 뇌주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만약 이 일에 전대 고수들이 개입한다면, 이천상이 원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냥 그들에게 말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무엇을 말이오?”
“교주님께서 시키신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이라고 대호법을 이해 못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가(不可)하오.”
“자존심 때문입니까?”
호요성의 말은 무척이나 도발적이었다.
무담이 고개를 저었다.
“내각을 구성하는 고수들은 현재 정권과 어느 정도 유리된 편이 좋소.”
“…….”
“그들은 철저하게 전대(前代)로 남아야 하오.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오. 만일 그들에게, 당대 정권에서 흘러나온 얘기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체제가 흔들리게 될 터.”
호요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고지식한 노고수는 정말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한편으론 답답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쉽지 않으십니까?”
“무엇이 말이오?”
“내각의 고수들이 나중에 이 사태를 알게 되면, 대호법께서는 아마 탄핵 되실 테지요.”
“알고 있소.”
“하나, 현재 중원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다 소교주님 덕분이지요. 대호법께서도 중원에 나가 불꽃을 태워 보고 싶지 않으시냔 말씀입니다.”
“태워 보고 싶소. 그러나 내겐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있소.”
“허…….”
“그래서 난 아쉽지 않소. 내 삶은 오로지 교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 교주님께서 조만간 소교주에게 정권을 이양하실 것 같으니, 어차피 나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몸이오.”
“…….”
“허가를 내주시오.”
안타까운 눈으로 무담을 보던 호요성이 순식간에 문서 하나를 작성해 직인을 찍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소.”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오.”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교주님께 서운하진 않으십니까?”
무담이 미소를 지었다.
“검은 그저 주인을 위해 쓰일 뿐, 원망하지도 서운해하지도 않소.”
“…….”
“이만 가 보겠소.”
무담이 나가자 호요성이 눈을 감았다.
콰르릉!
창밖에서 번개가 쳤다.
그날 밤.
무색사의 살수들이 천마신교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