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64화 (364/774)

364화. 부활의 제물 (4)

‘과연.’

천마신교의 외성을 바라보는 강우창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감탄이 일었다.

‘강호 최고의 철옹성이라 하더니, 그 말에 한 점 거짓이 없도다.’

지세와 건물이 완벽하게 일치되어 있다. 범인(凡人)이 멀리서 본다면, 이것이 산인지 건물인지 판단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건물 곳곳에서 순도 높은 마기(魔氣)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마인들의 마기가 아니야. 주역(周易)인가? 그게 무엇이든, 상생(相生)의 우도(宇道)를 역(逆)으로 풀어 성 전체를 진법으로 만들었다. 이건 진법이 발하는 마기야.’

굉장하다.

진법의 배치도대로 건물을 세우고, 기(氣)의 흐름을 뒤바꾼 곳을 수도 없이 봐 왔다. 그러나 그 어떤 곳도 마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공을 익히지 않거나, 마기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은 들어서는 순간 평정심이 흐트러질 것이다. 이 진득한 기운은 마치 은밀한 독(毒)처럼 사람의 정신에 파고들 것이다.

‘경이가 왜 실패했는지 알겠군.’

무색사의 공부는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그러나 강우경이 암살을 나갔던 이십 년 전에는 사마(邪魔)의 무공에 대비하는 심공(心功)이 없었다.

아마도 강우경은 천마가 사는 궁전에조차 도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강우창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마차 몇 대가 외성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잘 맞추었다. 마교에 이런저런 물품들이 조달되는 날을 철저하게 조사해 둔 보람이 있었다.

강우창이 손을 들었다.

스르륵.

강우창과 무색칠사가 바람처럼 공기에 녹아들었다.

그들의 신법은 놀라웠다.

땅을 강하게 박차며 달리는데도 아무런 진동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 빨리 움직이는 데도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인기척도, 내공의 발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허깨비 같다. 눈으로 빤히 보고 있어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그들은 환경에 완전히 젖어 들었다.

여덟 살수가 열 대의 마차 곳곳에 숨어들었다.

확인이 끝났는지, 외성 수문위사가 외쳤다.

“개문(開門)!”

쿠구구궁.

거대한 성문이 열리고 마차들이 들어갔다.

성문을 통과한 마차들은 빠른 속도로 외성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외성이 얼마나 긴지, 무려 일각이 넘도록 달렸는데도 내성에는 도착하지 못했다.

선두의 마차 밑에 숨어든 강우창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엄청난 크기로군.’

오히려 의천맹보다도 더 넓은 것 같다. 마도 무림의 모든 힘이 집약된 곳이라더니, 과연 너비만 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강우창은 은근히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대단해.’

이리 빨리 지나가는데도 마기가 끊임없이 육신을 파고들었다. 무색법정공(無色法淨功)을 익히지 않았다면 벌써 중단전이 흐트러졌을 것이다.

‘지독하다. 아무리 마인이라지만 그들 역시 사람임이 분명하거늘, 어찌 이런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치가 떨렸다. 왜 중원을 떠도는 여느 마인들과 천마신교의 마인들을 달리 보는지 알 것 같았다.

‘무심(無心).’

강우창이 눈을 감고 무색법정공의 구결을 읊었다. 그러자 피부로 침투하던 마기가 자연스럽게 체외로 배출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지.”

히히히힝!

마차들이 멈추었다.

“내성에서 마차가 올 것이오. 미리 짐을 다 풀어서 내려놓으시오.”

“예에.”

마부와 상인들이 짐을 풀기 시작했다.

강우창의 눈이 빛났다.

스르륵.

안개처럼 이동한 강우창은 어느새 일꾼이 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무리에 녹아들어 짐을 푸는 손길에선 능숙함이 묻어 나왔다.

일류 살수가 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은신술과 부동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특급으로 분류되기 위해선 세상만사 모든 일을 능숙하게 할 줄 아는 눈썰미와 손재주, 나아가 자연스러움이 필요하다.

강우창은, 그리고 무색칠사는 분명 특급 중의 특급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쿠구구궁!

얼마 지나지 않아 내성 문이 열리고, 마귀 문양이 새겨진 마차들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강우창과 무색칠사의 존재감이 훅 사라지더니, 어느새 내성에서 온 마차에 딸린 일꾼들과 동화되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신기(神技). 암살의 영역을 넘어선, 자연의 일부와 동화되는 무서운 무공이었다.

“다 옮기게.”

짐의 양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강우창과 무색칠사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꾼들 사이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놀랍게도, 마인들은 그들을 직접 보고, 어깨를 부딪치면서도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윽고 모든 짐이 마차에 실렸다.

“가 보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외성을 가로질렀던 마차들이 다시 방향을 돌렸다. 동시에 마귀 문양의 마차들이 내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 마차 밑엔 강우창과 무색칠사들이 자연스레 숨어들어 있었다.

‘무섭군.’

확실히 내성은 외성과 다르다.

공기 중에 흐르는 마기의 농도가 훨씬 강해졌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아랫배가 뻐근해지는 듯했다. 시커먼 연기를 매 순간 들이마시는 듯, 아주 불쾌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강우창의 눈이 빛났다.

‘생각보다 쉬워.’

신분을 철저하게 검사한다. 하지만 한번 통과가 되면, 더 이상의 검사는 없다.

이런 점은 의천맹이나 마교나 비슷한 것 같았다. 하기야 강호를 삼등분한 거대 세력에 살수가 침입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어쩌면 당연하겠지. 공기 중에 흐르는 마기만으로도 어지간한 침입자들은 모두 발각될 것이다. 이보다 더 간소화된다 한들 이상하지 않아.’

그렇게 또 얼마나 안으로 진입했을까.

훅!

일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마기에 강우창은 순간 호흡이 흐트러질 뻔했다.

“음, 다 왔나요?”

“예!”

“오늘은 내가 직접 검사할 거예요. 짐을 모두 풀어요.”

“예, 원주님!”

강우창의 눈이 깊어졌다.

‘원주라…… 환희원주(歡喜院主)로군.’

마인들의 이름이나 실력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러나 마교의 직함이나 체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마교의 살림을 담당하는 조직이라더니, 과연 마차도 곧장 환희원으로 온 모양이었다.

‘환희원주라면 마교에서도 상당한 요직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리 강할 줄이야.’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수준이었다. 마기가 너무 강렬해서 냉정한 평가가 어려울 정도였다.

‘못해도 구파 장문인급은 되겠어. 마교엔 이런 괴물들이 득실거린단 말이지?’

새삼 놀라웠다. 하지만 놀란 만큼, 마음은 금세 가라앉았다.

그들은 현재 적진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전장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에 동요가 사라졌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작정하고 은신술을 쓰면 담 맹주조차 자신을 찾지 못했다. 담 맹주는 당대 중원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대무공을 소유한 자다.

거기에 무색칠사까지 돕는다면?

‘교주는 죽은 목숨이야.’

그때, 환희원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마차를 돌려보내세요.”

“예!”

순간 강우창의 안광이 투명해졌다.

후웅.

“음? 갑자기 웬 바람이?”

마차에서 빠져나온 강우창과 무색칠사가 잘 닦인 길을 걸어 나갔다. 어느새 환희원에선 십여 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등 뒤 멀리서 환희원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건조해질 때도 됐지. 그래도 본교는 본토만큼 춥지 않아서 좋단 말이야.”

강우창은 더 이상 환희원주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역시나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환희원까지 통과했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마교의 건물이 어떻게 배치된 줄은 몰랐지만, 숱한 경험과 배치된 마인들의 수준을 보고 교주의 거처가 어디인지 금세 알아낼 수 있었다.

‘저기다.’

강우창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무색칠사가 눈 깜짝할 새에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마신궁(魔神宮)이라.’

거대한 궁전. 그리고 그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높디높은 성벽.

철옹성 안에, 또 다른 철옹성이 있다. 허락받지 못한 자, 누구도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 불길한 분위기.

저 안에 얼마나 무지막지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지,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이건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실제로 저 궁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괴이한 기운이 사지를 옥죄고 있었다.

‘우경이 실패할 만했어. 틈이 전혀 보이질 않아.’

건물도, 배치도, 호위도, 나아가 위압감까지도 완벽하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때였다.

사락.

‘헛?’

무색칠사 중 하나가 앞으로 나오더니, 마신궁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강우창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전음을 보내 봐도, 무색법정공의 진기로 두들겨도 요지부동이었다. 아무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미친!’

후우웅!

한 줄기 바람과 함께 강우창이 살수의 뒤에 섰다.

그가 살수의 어깨를 짚었다. 당장 뒤로 물러서게 할 요량으로 힘을 강하게 주었다.

그때였다.

우두둑!

‘헉!’

강우창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손목을 잡은 살수가 악력으로 손목을 분질러 버린 것이다.

수없이 단련된 초인적인 인내심이 아니었다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강우창은 살수의 손을 털어 버리곤 재빨리 그의 뒷목을 찔렀다.

‘……!’

놀랍게도 살수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 즉시 기절해야 마땅한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살수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강우창은 손목이 부러지는 통증 앞에서도 참았던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허억!”

살수의 얼굴이 교주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고작 여기까지인가?”

“뭐……?!”

휘이이잉.

강우창과 무색칠사의 몸이 동시에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허어어억!”

강우창이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드디어 깼나?”

“허억! 허억! 뭐, 뭐야?”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던 강우창은,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한없이 넓은 대전이었다. 벽 곳곳에 수많은 화등이 걸려 있었지만, 묵직하게 깔린 어둠을 전부 걷어 내진 못했다.

“여, 여기가 어디…….”

“실망이군.”

강우창은 퍼뜩 놀라 고개를 돌렸다.

“커헉!”

순간 그는 전신의 뼈가 모조리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 바로 그가 있었다.

휘황찬란한 태사의에 앉은 거구의 남자.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화려한 용포를 걸쳤는데, 그 안으로 맨 가슴팍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왼쪽 눈을 가린 머리카락은 비단처럼 고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서 더 신비로웠다.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큼직한 술잔을 들고 있는데 그 모습이 그리도 멋드러질 수가 없었다.

나른함과 무심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두 눈은 천하를 굽어다 보는 절대자의 위엄으로 꽉 차 있었다.

살아 있는 마신(魔神)이었다. 전무후무(前無後無)란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중원제일인이 거기에 있었다.

“형이랍시고 칼이나마 뽑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십 년 전의 동생보다도 못하군.”

이천상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강우창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음지(陰地)에서 활약하는 최강의 조직이라…… 중원 놈들도 아직 멀었어.”

비로소 강우창은 깨달았다. 자신들은 진작 마교에 잠입했고, 마신궁까지 돌파했다는 것을.

궁에 들어오자마자 교주를 만났고, 교주를 본 순간 바로 기절해버렸다는 것을.

그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마교 침입의 과정은 쓰러진 후 꾸었던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사술도, 요술도 아닌. 그저 눈앞에 존재하는 마신의 마기가 너무도 강력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술은 할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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