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65화 (365/774)

365화. 부활의 제물 (5)

“……들어왔군.”

“그렇소.”

“후우, 다행히 교주님께서는 아무 탈이 없으신 모양이오.”

마신궁 밖.

신교의 수뇌부 중 몇몇이 궁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천상이 언질을 준 자들은 물론이요, 뒤늦게 사정을 들은 환희원주와 마존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혈수마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령 의천맹주라 한들, 철혈성주라 한들 교주님의 옷자락이라도 건드릴 수 있겠는가. 하나, 그 어떤 칼도 감히 신성한 마신궁에 닿아서는 아니 되거늘,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구나.”

노고수의 탄식은 이곳에 모인 마인들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었다.

혈수마존이 호요성에게 물었다.

“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소?”

“무엇이 말씀입니까?”

“교주님께서는 일부러 살수를 맞이하셨소. 교주님의 성심(聖心)을 뉘라서 꿰뚫어 볼 수 있겠소만, 그래도 총군사는 알 것 아니오? 앞으로 우리가 어찌 움직이게 될는지.”

호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아닙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이오?”

“교주님입니다.”

“……뭐?”

“교주님께선 직접 움직이실 생각이십니다.”

순간 분위기가 일변했다.

“드, 드디어 교주님께서 세상으로……!”

“오오!”

“허허, 내 필경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소이다!”

마존들은 저마다 기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공을 아는 만큼이나, 교주의 무공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도 알고 있었다.

교주님께서는 의심할 나위 없는 천하제일인이시다. 아니, 어쩌면 고금제일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당장 교주님과 맞상대가 가능한 사람을 찾으라면, 무림 역사를 뒤져도 몇 없을 것이다.

한껏 들뜬 마존들과 달리, 소연심은 복잡한 눈으로 마신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환희원주께서는 어찌 그리 표정이 좋지 않은가?”

한음마존(寒陰魔尊)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마신궁에 살수가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큰일이었다. 누구라도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지만, 보아하니 뭔가 다른 뭔가가 걸리는 게 있는 듯했다.

소연심이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께서 세상에 나서신다고 하니, 마인으로서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저희가 보필해 드리지 못할 것 같아, 그것이 마음에 걸릴 뿐입니다.”

“보필해 드리지 못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호요성이 말했다.

“환희원주의 말이 맞습니다. 극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저희 모두 본교에 남아 하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뭐라? 하면 교주님은?”

“교주님께서는…… 아마 단신으로 중원에 나서실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경악하는 마존들을 보며 호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호위 부대는 붙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아직 중원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강렬한 호통이 마신궁 주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열화와 같은 무공만큼이나 성격 역시 불같다는 열화마존(熱火魔尊)이었다.

“교주님께서는 만마의 추앙을 받는 신(神)이시네! 그런 분께서 어찌하여 홀로 중원에 나서신단 말인가! 필시 우리가 그분을 보필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교주님의 뜻입니다.”

“……!”

“교주님께서 그러자고 하신다면, 저희는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열화마존이 입술을 깨물었다.

주군이 잘못된 길로 빠지거나, 바르지 못한 선택을 했을 때 충신은 간언한다.

그러나 상대가 주군이자 신(神)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신의 명령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거기에 토를 달거나,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주님께서 그리하고자 하신다면 그래야 한다. 하지만 열화마존은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명령은 반드시 따르겠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명령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소교주님께서도 후계자 대관식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원으로 나서셨거늘, 교주님까지 가신다니?! 게다가 정작 두 분을 모셔야 할 우리는 편히 앉아서 지켜만 보라? 이것이 정녕……!”

어찌나 흥분했는지 주먹까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소 지나친 언사였지만 그 누구도 열화마존을 책잡지 못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 모두 비슷한 심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담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무담은 바위처럼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최소한 나나 천마대군장(天魔大軍長)이 교주님을 보필할 것이오. 교주님께서 중원의 잡것들에게 당할 분도 아니지만, 오늘처럼 천한 칼이 성체(聖體)에 닿을 일도 없을 것이오.”

성격이 불같은 열화마존도 무담의 그 말을 듣곤 그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 자리에서 가장 심경이 복잡한 사람은 대호법일 것이다.

여전히 복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던 소연심이 호요성에게 물었다.

“호 군사님.”

“말씀하십시오.”

“하면, 교주님께서는 언제 중원으로 가려 하시나요?”

“사흘 동안 쌓인 업무 결과를 보고하는 날이 내일입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상황을 볼 때…….”

쿠구궁!

느닷없이 마신궁이 뒤흔들렸다.

마치 거대한 용이 잠에서 깨어나, 그 압도적인 거체를 움직이기라도 한 듯.

마신궁을 넘어 내성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거의 지진이라 봐도 될 정도였다.

“……오늘 밤이 아닐까 싶습니다.”

* * *

“그럴 수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강우창은, 단 한 순간에 기억을 되찾았다.

‘그래, 난 이미…….’

꿈에서 겪었던 것들은 모두 환상일 뿐이었다.

그는 무색칠사와 함께 외성에 잠입했다. 꿈에서처럼 성안으로 들어가는 마차에 숨어 들어왔다.

거기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다. 무색사의 은신술은 완벽했고, 그들은 마인들의 날카로운 눈을 모조리 피해 갔다.

그러나 그 외에 모든 부분이 달랐다.

마교에 입성하기란 실로 녹록지 않다. 교인이 드나들 때는 모르겠지만, 외인이 드나들 때는 외성에서만 무려 일곱 번의 검열을 거쳐야 했다.

외성을 통과하는 데만 거의 반나절이 걸린 이유였다. 꿈에서처럼, 그리 편하게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내성에 있었다.

내성의 경비와 검열은 외성만큼 잦지 않았다. 하지만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꼼꼼하고 집요했으며, 실제로 그 때문에 무색칠사 중 다섯 명이 걸릴 뻔했다.

무색칠사는 강우창과 비교해도 반 수 차이밖에 나지 않는 사신(死神)들이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강우창조차 걸렸을 만큼 마교의 감시는 철저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마신궁에 도착했다.

오히려 쉬운 곳은 마신궁이었다. 마신궁은 교주의 거처임과 동시에 신전과도 같은 곳이다. 숨겨진 고수들은 많았으되, 철통처럼 세워진 곳이 아니었다.

심지어 시종일관 호흡을 흐트러트렸던 마기도 일절 없었다. 마교도 결국 사람이 사는 동네인바, 불어오는 바람과 흙냄새가 무척이나 상쾌한 곳이었다.

‘결국 나는…….’

꿈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본 격이었다.

마기가 넘쳐흘러 숨도 못 쉴 만큼 답답한 곳, 그것은 마교를 향한 자신의 공포를 의미했다. 외성부터 내성까지 쉽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희망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미 한 번 봤던 마신궁을, 침입 불가의 철옹성으로 인식한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기억이 다 나는 모양이군.”

현실을 깨닫고, 천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뱃속이 요동쳤다.

“우웨에에엑!”

강우창이 토사물을 쏟아 냈다. 속이 울렁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긴장감과 깊은 좌절감, 뿌리 깊은 패배감에 진기가 역류할 정도였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그 시린 안광 속에, 언뜻 경멸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네 동생은 모든 것을 다 걸었다. 목숨은 물론 영혼까지 걸고 내 앞까지 찾아왔다. 그리고 녀석은, 좌절은 했을지언정 너처럼 꼴사납게 기절까지 하진 않았지.”

강우창이 떨리는 눈으로 이천상을 올려다보았다.

‘헉!’

그는 곧바로 고개를 내렸다.

주르륵.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정신적 충격과 진기의 역류, 그리고 이천상의 위압감에 오장육부가 엉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

“지금의 네놈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도 않았다. 놈은 곧바로 독단을 깨물었어.”

순간 강우창의 눈이 흔들렸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눈앞의 존재가 너무나도 두려워서 암살자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잊어버린 것이다.

강우창이 곧바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헉!’

강우창의 입은 떡 벌어진 채 닫힐 줄을 몰랐다.

그가 떨리는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은 혐오의 눈으로, 조소가 어린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고민했군. 죽고 싶지 않았던 건가?”

“아…… 아아.”

“너 같은 놈을 보내 나를 싸움에 끌어들이려 했다…… 맹주 놈의 상상력도 빈곤하기 짝이 없어. 그 정쟁(政爭)의 재능을 높이 샀거늘, 다를 것도 없는 놈이었군.”

이천상의 눈빛이 다시 나른해졌다.

한없이 귀찮고도 권태로운 눈빛이었다.

“결국, 이 내가 감탄할 만한 재인(才人)은 량이뿐이라는 게지. 허무하고도 허무하구나.”

강우창의 머리가 덜덜 떨렸다. 어떻게든 독단을 깨물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그의 턱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사술인가!’

사술이 아니다.

사술을 떠올리는 순간, 이것이 사술이 아님을 곧바로 깨달았다.

이것은 허공섭물이었다. 진기의 농도만큼은 초절정고수 못지않다는 강우창의 내공 저항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절대자의 힘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이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그 경지는 그야말로 신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내 이천상은 찰랑거리는 술을 단번에 들이켜더니, 빈 잔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쨍!

잔이 깨지는 소리가 뇌를 곤죽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기다린 보람은 없을지라도 하고자 하는 일은 해야겠지.”

이천상이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강우창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태사의에서 느릿하게 일어나는 이천상의 모습은 마치 웅크린 고룡(古龍)이 고개를 쳐드는 것 같았다. 팔걸이를 짚고, 허리부터 다리까지 서서히 펴는데 마치 수백 년 풍상을 겪은 거목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괴물!’

이제야 알겠다. 왜 동생이 교주를 암살하러 가지 말라고 했는지.

- 교주는 사람이 아니오. 무색사가 백이 있어도 불가능하오.

그렇다. 교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무색사가 백이 있어도 불가능하다? 헛소리!

천하 모두가 덤벼든다 한들, 누구도 이 괴물의 몸에 칼을 박아넣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단신으로 천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압도적인 위엄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찌…… 어찌 사람이 이런 경지를.’

“말 못 하는 벙어리들은 쓸모가 없겠지.”

이천상이 손을 들었다.

우두둑! 우두두둑!

“끄으으윽!”

“커흐흑!”

강우창은 그제야 자신의 좌우에 무색칠사들이 너부러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의 몸이 제멋대로 뒤틀리고 부서지는 걸 보고 나서야 그걸 알았다.

우둑! 콰지직!

부러진 뼈가 피부를 뚫고 나왔다.

그렇게, 무색칠사가 죽었다. 어떠한 고통에도 신음조차 흘리지 않는다던 그들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죽은 것이다.

이천상이 오만 일이 귀찮다는 듯, 반밖에 뜨지 않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무색사의 수장이라는 알량한 위치가 당분간 네 목숨을 붙여 둘 것이다.”

화르륵.

이천상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마기가 대전을 넘어 마신궁 전체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쿠구궁!

대전이 흔들렸다. 나아가 마신궁과 내성의 온갖 건물들도 흔들렸다.

언젠가 강우경이 깨달았던 것처럼,

강우창도 깨닫는다. 천마신교가 왜 천마신교인지.

천마신교의 무력은 마인들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천마(天魔)다. 천마는 죽지도, 패배하지도 않는다.

“간만에 바깥 공기를 쐬겠어.”

콰앙!

강철로 만든 대전 문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어느새 대전에는 끔찍하게 찌그러진 일곱 구의 시체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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