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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67화 (367/774)

367화. 천마(天魔)의 발아래 영광 있으라 (2)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한 고구는 근엄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서량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죽여 주십시오!”

“다 저의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한마디, 한마디에서 침통함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절절히 배어 나왔다. 원래 이런 양반이 아닌데,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서량은 물론 고루마존까지 나서서 한참이나 달랜 후에야 고구는 주접을 멈추었다. 죽여 달라고 할 때나 지금이나 표정에 변함은 없었지만, 이제야 좀 진정이 된 기색이었다.

“하면, 지금은 괜찮아지신 겁니까?”

“대충.”

서량의 얼굴은 무척이나 상쾌해 보였다. 지긋지긋한 내외상이 전부 나은 데다가 배부르게 밥까지 먹고 나니 살 만해진 것이다.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갔던 일은?”

“현천진인을 중심으로 혈고에 중독되었던 무당의 전대고수들이 전부 해독되었습니다.”

“고생했어.”

소림과 달리 무당파는 전대고수들과 현역 중진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만약 전대고수들이 혈고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무림의 판도가 바뀌었을 것이다.

‘담 늙은이…… 선은 넘지 않았군.’

담사영의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가 왜 전대고수들을 죽이지 않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무당파의 현역 중진들 대다수의 정신을 오염시켰지만, 무당은 그래도 무당이었다. 만약 전대고수들을 죽였다면 현역 이하 배분들이 들고일어났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당파 전체가 초토화가 되고도 남았다.

‘내가 담사영이었다 해도 무당파를 버리기는 힘들었을 거야. 무당의 무력은 소림에 필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대고수들을 모조리 굴복시키기만 하면, 그 힘을 온전히 거머쥘 수 있을 터.’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포기하지 못한 욕심이 발목을 잡았군.’

만약 그가 소림과 무당의 혈고를 불살라 버리지 않았다면, 수년 후 무당파는 담사영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소림과 무당을 중심으로 반정회가 형성, 의천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물론 당황은 했을지언정 대단한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겠지.”

“예?”

“아니다. 그냥 그 반정회라는 조직의 힘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고 있었어.”

“다름 아닌 소림과 무당이 끌어모은 조직입니다. 의천맹은 당분간 움직이기 힘들 겁니다.”

“그건 아니지.”

고구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서량은 고개를 저으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마인들이 보기에는 그럴 수 있다만, 정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반정회의 압박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압박이 크지 않다니요?”

“정파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때는 명분을 가지고 있을 때야. 지금 의천맹과 반정회 중에 어느 쪽이 명분을 틀어쥐고 있지?”

“당연히 반정회 아니겠습니까?”

“맞아. 한데 그 명분이 명분다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은 무엇인가?”

근원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서량을 주시했다.

“바로 민중이다.”

“……아!”

“정파가 사파나 마도를 상대할 때, 뒤를 안 보고 돌격할 수 있는 이유는 대다수의 민중이 그들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의리와 협을 숭상한다는 정파의 기치는 민중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하니까.”

서량이 양손의 검지를 들어 서로를 꾹 눌렀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이를테면 정파의 내분이라고 볼 수 있어. 제아무리 대단한 명분을 갖고 있어도 민중이 볼 때 알력 싸움 이상이 되질 않아.”

“하지만 의천맹주는 그런 걸 상관할 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반정회에게는 큰 문제지.”

“……!”

“소림과 무당은 태산북두라 불리며, 언제나 민중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민중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는 짓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아. 적어도 그를 기초로 이후의 행보를 결정하지.”

마동필이 당황해서 물었다.

“하면 소교주님께서 의도하셔서 만들어진 반정회가, 실제로는 의천맹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야. 정확히 말하자면, 반정회 자체가 의천맹에 대단한 타격을 줄 수는 없어. 그러나 거기에 사파나 본교가 끼어들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아!”

“담 늙은이도 그걸 알고 있을 거다. 해서 어떻게든 반정회를 없애려고 할 거야. 소림과 무당을 제외한 구파를 이용하든, 아니면 제삼의 세력을 이용하든.”

“제삼의 세력이라 하심은……?”

서량은 즉답을 피했다. 자신도 확신이 안 서는 탓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눈을 빛냈다.

“며칠 전 싸움에서 말이야.”

“예.”

“분명 의천맹의 무상과 현무대, 그리고 철혈성의 병력이 함께하고 있었지?”

“그렇습니다.”

“…….”

“설마?!”

“나도 설마이길 바라지만 말이지.”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담 늙은이, 철혈성과 손을 잡고 반정회를 날려 버릴 생각인지도 모르겠는데.”

모두가 깜짝 놀랐다.

고루마존이 다소 회의적인 어조로 말했다.

“송구하오나 소교주님. 철혈성주는 비록 거칠지만 제법 의를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인 줄로 압니다.”

“예,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 그렇지요.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하셨지요?”

“예.”

“그런 철혈성주가 지금와서 의천맹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다소…….”

차마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은 못 했다. 자칫 서량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철혈성주는 분명 괜찮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왜 저의 행보를 지지해 주셨는지는 아십니까?”

“……?”

“강호삼세 각자가 바라는 것, 바로 천하일통의 시발점을 제가 끊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루마존이 눈을 부릅떴다.

“안타깝게도, 제가 산동으로 향하면서 송 성주와의 암묵적인 계약을 깨 버렸지요. 저는 철혈성의 뒤를 칠 작정으로 철검마존과 광마대를 숨겼습니다. 송 성주도 바보가 아니라면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겁니다.”

“이런……!”

“만일 제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도, 송 성주는 의천맹주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호탕한 사람이지만, 그 역시 천하를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 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렇군. 확실히 그럴 확률이 높아. 담 늙은이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위협을 정면으로 분쇄하는 것보다, 상황을 어지럽혀 예기치 못한 일격을 가하는 데 능하지요.”

“허어!”

“자신의 안전을 꾀함과 동시에 맹의 전력 동선을 자유롭게 만들 방법은 역시나 철혈성과의 일시적 동맹입니다. 철혈성과 동맹을 맺은 후, 철혈성더러 반정회를 치라고 하면 모든 고민거리가 사라져 버리죠.”

서량의 충격적인 해석에 일행은 말을 잇지 못했다.

고루마존이 입을 열었다.

“정황상 그리 추측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솔직히 이 늙은이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한 고백이었다.

여상린이 고개를 저었다.

“소교주님의 말씀이 옳아요.”

“음?!”

“아니, 옳다기보다는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큰 축에 속한다고 봐야겠죠. 그 한 번의 동맹으로 의천맹주가 얻을 게 엄청 많으니까요.”

고구가 말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의천맹주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철혈성주는 무엇을 얻기 위해 맹주와 손을 잡느냔 겁니다.”

“그것은 조금 전 소교주님의…….”

“물론 소교주님께서는 성주의 뒤를 치셨습니다. 적의 빈틈을 노린 효율적인 습격이라고 볼 수 있지요. 동시에 성주 또한 천하일통의 꿈을 가지고 있다 하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맞아요.”

“문제는 공평하게 이득을 가져갈 수 있느냐입니다. 철혈성주도 바보가 아닌데, 의천맹주 좋은 일만 시키진 않을 것 아닙니까? 분명 무언가를 요구할 것이고, 그 요구에 합당한 것을 의천맹주가 내줘야 합니다. 그게 아니고선 맹성(盟城)의 동맹은 하나 마나입니다.”

무척이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서량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고 당주의 말이 맞아. 만일 동맹을 맺었다면 담 늙은이는 그에 상응하는 것을 철혈성주에게 줘야 해. 마땅히 그래야 수지가 맞지.”

“결과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 맹성이 연합했다는 말은 가설에 불과할 뿐입니다.”

서량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고 당주의 말에 일리가 있다. 담 늙은이는 철혈성을 이용해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어. 하지만 철혈성은? 천하일통을 위해 중원의 환란을 바란다고는 하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럴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역시나 단순한 의심에 불과한 걸까?

‘그럴 리가…… 내가 담 늙은이였다면 무조건 철혈성과 동맹을 맺으려 했을 거야. 그리고 기필코 성공시키겠지. 그게 그 늙은이의 방식이니까.’

서량이 지금껏 신교와 중원에서 활개 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배경과 무력 외적으로 상대의 뒤를 치는 전략과 전술에 있었다.

그는 그러한 방법에 몹시 능했다. 그리고 그것은 살수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지금껏 적의 허를 찌르는 전략 전술을 쓰고 문파 간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담사영 옆에서 그가 해왔던 짓들을 하나하나 봐 왔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는 담사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는 계략(計略)이라는 분야에서 담사영의 직계 제자나 마찬가지였다.

‘동맹을 가정하고, 늙은이가 철혈성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사파를 통일한 철혈성주에게는 반정회 같은 정적도 없을 텐데.’

잠시 침음한 서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여기서 하루만 더 쉬자. 생각할 게 제법 많아.”

이튿날 새벽.

천천히 하북으로 이동 중이던 고구에게로 전서응이 날아왔다.

“소교주님! 대산(大山)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급(至急)입니다!”

고구는 전서응의 발목에 달린 서신을 그대로 서량에게 전했다.

서신을 본 서량의 눈이 형형해졌다.

“무슨 내용입니까?”

모두의 얼굴에 새겨진 의아함.

멍하니 서신을 본 서량은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탈함과 놀라움이 섞인 웃음이었다.

“담 늙은이…… 내 그 늙은이 반쯤 미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정신이 나간 줄은 몰랐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정말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우린 하북행을 포기한다. 호북까지 곧장 남하할 거야.”

“예?!”

“맹성이 동맹을 맺었어.”

“헉!”

“저, 정말이었단 말입니까?”

화르르륵.

서량이 서신을 태웠다. 군림마황기 특유의 청색 마기가 조금은 어둡게 보이는 듯했다.

“맹성이 동맹을 맺은 게 문제가 아니야. 이거 자칫 잘못하다가는 천하 전체가 전란(戰亂)에 휩쓸리게 생겼다. 제기랄! 하필이면 지금!”

기가 막혔다.

철혈성주에게 무엇을 주고 꼬드겼나 했더니만, 그게 아니었다. 담사영은 철혈성주에게 무엇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니라, 끔찍한 미래를 끌어들여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미친 새끼. 천마(天魔)를 건드릴 생각을 하다니.”

신교 역사상 최강을 논할 수 있다는 반선(半仙)의 강자.

이천상이 북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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