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천마(天魔)의 발아래 영광 있으라 (4)
그것은 참으로 장엄하고 신비로우며, 동시에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저벅, 저벅.
거대한 가마가 대로를 꽉 채운 채 움직이고 있었다.
놀라우리만치 크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화려한 가마였다.
흔들리는 황금빛 수실들은 하나하나가 진짜 금을 입힌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거의 집채만 한 가마의 지붕에는 수많은 보석이 박혀 제각기 영롱한 빛을 뿌리는데, 그 하나하나가 진품이요, 장인이 세공한 명품이기까지 했다.
수를 세기도 힘든 보석 중 하나만 떼어 팔아도 어지간한 마을 하나가 반년은 족히 먹고 살 만한 돈이 나올 터였다. 게다가 가마도 어떤 장인이 만들었는지, 무척이나 튼튼하고도 편해 보였다.
그리고 그 가마를 들기 위해 체격 좋은 사내들이 무려 오십 명이나 달라붙었다. 일국의 황제도 구경조차 해 본 적이 없을 만큼 엄청난 가마였다.
사람들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가마를 바라보았다.
다그닥, 다그닥.
가마를 든 오십 명의 사내들, 그리고 그 앞뒤를 에워싼 채 말을 탄 수백 명의 사내들의 표정은 똑같이 무표정했다.
신기하게도 말발굽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박자를 유지했다. 수백 필의 말이 이동하고 있음에도, 마치 한 마리의 말이 움직이는 듯했다.
대지를 진동케 하는 신(神)의 행보.
더 신기한 것은, 무림인이 분명할 수백의 사내들에게서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유령이 이끄는 군대처럼, 혹은 정신질환자의 눈에만 보이는 환각처럼.
신을 모시는 욕계(欲界)의 군대는, 그렇게 고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몇 개의 산과, 몇 개의 마을을 넘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나아갔던 그들 앞에 옅은 강줄기가 나타났다.
강폭이 넓지는 않지만, 저 큰 가마가 지나갈 만한 너비도 아니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이 모든 사람이 탈 배가 필요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강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우우웅!
중원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 낮고 둔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우웅! 우우우우웅!
말도 못 하게 화려한 가마가 어느새 어두운 안개에 휩싸였다.
기적은 그때 일어났다.
스르르륵.
오십 명의 사내들은 어느새 가마를 틀어쥔 손을 놓고 있었다.
떠오른다. 가마가.
집채만 한 가마가, 그 무게 역시 집 한 채에 비해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 가마가 허공에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헉!”
“귀, 귀신?!”
호기심에 따라와,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졸도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허공에 떠오른 가마가 스스로 강을 건넜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첨벙! 첨벙!
기다렸다는 듯 수백 필의 기마가 강으로 뛰어들었다. 가마를 들었던 사내들 역시 맨땅을 걷는 듯, 흔들리지 않는 몸으로 유유히 강을 건넜다.
“뭐야?!”
“저, 저기요! 위험해요!”
넋 놓고 신비로운 광경을 보는 와중, 한 아낙이 크나큰 두려움과 작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윽고, 모든 기마와 사람들이 강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이런!”
“어쩜 좋아! 어디 연락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딱 봐도 무림인인데…….”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마는 서서히 강을 건너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헛것을 보는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비비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들이 헛것을 보는 게 아님을.
허공에 둥둥 떠오른 가마가 제법 큰 폭의 강을 건너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며, 현실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또 얼마나 지났을까.
거대한 가마가 강을 거의 다 넘었을 때쯤.
푸화아악!
“헉!”
“거, 건넜다?!”
강에 빠졌던 수백 필의 기마가, 건너편에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이며 말이며 물에 흠뻑 젖은 기색이지만 여전히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말들도 그 흔한 투레질 한 번을 하지 않았다.
강을 다 건넌 가마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섰다.
후웅.
묵직한 바람이 흙먼지를 사방으로 날렸다.
어느새 가마 밑에 도착한 오십의 사내들이 자연스레 가마를 지었다. 그러자 가마 전체를 돌았던 어두운 안개가 사라졌다.
다그닥, 다그닥.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너무나도 당연한 행보라는 듯.
가마를 중심으로 한 기마부대가 재차 이동했다. 어느새 말과 사람의 몸에서 희뿌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는 물방울 하나 남지 않았다.
“이럴 수가!”
“우, 우리가 단체로 귀신에게 홀렸나?!”
“세상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한 채, 그들은 여일(如一)한 속도로 걸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중원 남부에서부터 퍼져 나온 소문이 어느새 중부와 북부에까지 이르렀다.
“거의 고관대작의 집만큼이나 큰 가마가 이동하고 있대!”
“에이, 자네 과장이 심하구먼. 내 듣기로 그렇게 크진 않고, 거의 집채만 하다고는 들었네.”
“어쨌거나! 그 가마가 제멋대로 허공에 둥둥 떠오르더니 강도 건넌다고 하지 않는가!”
“누가 말하는데, 그건 귀신의 군대래요.”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아니 근데 대체 그들은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체를 알 수가 없어!”
“귀신이라니까요! 아니면 유령이든지요!”
“에라이, 이놈들아!”
“어쩌면 그냥 뜬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이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잠도 안 자면서 이동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허!”
“맞네. 그러고 보니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어.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기로, 그리 빠른 속도로 걷는 것도 아니라 했거늘 벌써 호남 중부에 이르렀다 하지 않나? 이게 말이나 되는가?”
“지옥의 마귀라면 가능할지도…….”
“야!”
수많은 사람이 가마의 존재를 두고 일장 토론을 벌였다. 누군가는 한낱 뜬소문으로 치부했고, 누군가는 귀신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움직임으로 생각했다. 또 누군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술사(術士)가 사술(邪術)을 부리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 누구도 진실에 접근하진 못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문을 전부 믿진 않아도, 그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접촉하려는 이도, 분명히 있었다.
“저기로군.”
“그렇군.”
도정경(挑正卿)이 인상을 찌푸리며 옆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귀신 같은 사기(邪氣)를 뿜어내는 한 초로의 사내가 있었다. 사기뿐만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검기(劍氣)마저 피워 내는 자였다.
검을 검갑에 넣고 팔짱을 낀 채 서 있는데 그 모습이 한 그루의 대나무요, 잘 벼린 검과 같았다. 질릴 정도로 짙게 뿜어 대는 사기만 아니라면 세상에 흔치 않을 검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철혈성에서는 자네를 보냈군.”
“나도 네가 올 줄은 몰랐다.”
“입이 썩은 건 여전하구먼. 내 모르긴 몰라도 자네보다 십 년은 더 살았을 걸세.”
“사람은 나이로 존중을 받으려 해선 안 되지.”
철혈성의 이호법(二護法) 삼환귀검(三煥鬼劍) 차식(次識)의 목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거칠고 흉포했다.
차가운 눈으로 차식을 노려보던 도정경이 일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철혈성주가 잘도 자네를 이곳으로 보냈군.”
“성주님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자네 제자가 제법 큰 사고를 쳤다면서?”
순간 차식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입 닥쳐라.”
“아, 민감한 부분이었나? 내 사과하지.”
말이 사과지,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투였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칼부림을 벌이고 싶었지만, 차식은 참았다. 상대가 아무리 싫어도 성주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제기랄.’
이게 다 못난 제자 놈 때문이었다.
칼질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 놈을 데리고 와서 제자로 키웠다. 뒷골목을 전전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뒤적이던 녀석이었으니 부모도, 이름도 없는 녀석이었다.
직접 차씨 성을 내려 주고는 자식 대하듯 키웠다. 그러자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절정의 경지에 올라 성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고수가 되더니, 이내 성주님의 첩을 호위하는 호위장이 되었다.
차식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본부인이 아닌 첩의 호위장이지만 그 첩을 향한 성주님의 애정이 굉장했다. 아니, 다 떠나서 성주님 측근의 호위장이라면 대단한 영예라고 할 수 있었다. 차식은 제자가 자랑스러웠다.
마교 소교주 놈에게 쌍으로 납치되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망할 놈! 사부 얼굴에 먹칠을 해?!’
성으로 귀환한 후, 자비로우신 성주님께서는 제자에게 감봉 이외의 벌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차식은 제자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화도 화지만, 주변에서 보는 눈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해서 직접 제자의 귀 하나를 잘라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팔 하나라도 떼 버리고 싶었지만, 외팔이로는 그의 검법을 대성할 수 없었다. 녀석 이외의 후사가 있었다면 일체의 머뭇거림 없이 죽였을 것이다.
풀지 못한 분노는, 그대로 마교로 향했다.
‘마교주라? 하! 얼마나 같잖은 놈인지 직접 봐 주지.’
마치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도정경이 말했다.
“허투루 보지 말게. 마교주의 무공은 천하제일에 근접해 있을 것이 틀림없네.”
“닥치라고 했다.”
“멍청한 건 예전과 똑같군. 다시 말해 주지. 자네 성주나 우리 맹주보다도 강할 수 있다는 얘기야. 싸울 일은 없겠지만, 도주라도 제대로 하려면 마음부터 다스려야 할 것이네.”
차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더 섞다가는 도정경의 목을 날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게다가 도정경은 의천맹의 삼장로에서, 일 년 전 이장로(二長老)로 오른 고수이기도 했다. 이런 자와 싸우다가는 자신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그때, 저 멀리서 일정한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온다.”
차식의 눈이 빛났다.
도정경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다만 미세하게 떨리는 눈가가 그가 긴장했음을 증명했다.
잠시 후,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이…….”
차식과 도정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그닥, 다그닥.
아무런 인기척도 내보이지 않는 이들.
그러나 두 고수는 알 수 있었다. 기마를 탄 사내들이나 가마를 멘 사내들이나, 내공을 한계까지 갈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내기를 운용하는 능력이 너무나도 능수능란해서, 마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인기척까지도 죽여 버렸다.
그런 무시무시한 실력자들이 무려 칠백이다.
‘이, 이럴 수가!’
도정경이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십 리 밖에 떨어진 아군 부대를 보기 위해서였다.
‘상대가 안 된다.’
부대가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저들 중 서너 명만 나서도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천마군(天魔軍).”
도정경이 차식을 바라보았다.
차식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마교 최강의 부대, 천마군이 분명하네.”
천마군의 악명은 도정경 역시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엄청난 부대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윽고, 천마군과 두 고수의 거리가 십 장 안까지 좁혀졌다.
잠시 심호흡을 한 도정경이 입을 열었다.
“거기 멈추시오! 우리는 맹성(盟城)에서 온……!”
그때, 가마 중앙을 가린 휘장 속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번뜩였다.
콰아앙! 쾅!
폭음과 함께 도정경과 차식의 몸이 산산조각이 난 채로 불타올랐다.
비명 한 줌 지르지 못하고 재가 되어 스러진 둘을 비웃듯, 휘장 속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자.”
히히히히힝!!
처음으로 선두의 말이 투레질을 했다. 가히 용음(龍吟)에 비견될 만큼 우렁찬 투레질이었다.
그렇게 다시 가마가 움직였다.
호남 북부에 이르기까지,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