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천마(天魔)의 발아래 영광 있으라 (6)
“뭐, 뭐라고?!”
흉악하게 일그러진 고루마존의 얼굴은 가히 압권이었다.
“감히 교주님의 앞길을 막는 놈들이 있었단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개 같은 놈들!”
위이이이잉!
고루마존의 몸에서 흑갈색 마기가 타올랐다. 마존들 중 인격자라고 소문이 난 고루마존답지 않은 분노였다.
“다행히도 불손한 이들의 칼날이 교주님께 닿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 아니더냐!”
“예, 예!”
천마신교의 안휘지부장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마인 인생에 평생 한 번 뵐 수나 있을까 싶은 마존께서 불러 한달음에 달려왔더니, 들입다 화부터 내신다. 등 뒤에 식은땀이 철철 흘렀다.
그때, 서량이 물었다.
“현재 교주님께서 계신 위치가 어딘가?”
안휘지부장이 허리를 접었다.
아무리 고루마존이 무섭기로서니, 감히 소교주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새로운 세대의 주인이 되실 분 앞에서 안휘지부장은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어, 어제 정오에 온 연락으로는 형산(衡山)을 넘으셨다고 했습니다!”
“속도는?”
“그리 빠르게 움직이진 않고 계십니다! 다만 산과 강을 그대로 뚫고 가시기 때문에, 북상이 길어질수록 이쪽에서 따라잡기가 더 힘들어질 것으로 사료됩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남지부장과 연락이 되나?”
호남성에는 수많은 지부가 있었다. 그중 누구를 물어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안휘지부장은 냅다 고개부터 박았다.
“그렇습니다!”
“지급(至急)으로 연락해 둬. 닷새 뒤부터 악양(岳陽)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며, 명을 받듭니다!”
서량이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급하게 오느라 연락을 못 했네. 고생이 많아.”
안휘지부장의 얼굴에 감격이 어렸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송구하옵니다! 신교의 교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앞으로도 수고해 주게.”
“예, 예!”
서량이 고루마존에게 말했다.
“다소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철검마존에게는 따로 연락을 받으셨습니까?”
“아직 전해 들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가 출발하기 전에 연락을 취했으니, 광마대와 함께 호남 북부로 오고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서량이 뒤를 돌아보았다.
진마대원들이 마안(魔眼)을 빛내며 도열해 있었다. 교주님께서 무려 삼십여 년 만에 중원으로 나오셨다. 신교에선 멀리서나마 한 번씩 뵈었던 분이지만, 중원에 나오셨다 하니 마음이 급했다.
서량이 외쳤다.
“악양에 도착하기 전까지 편히 쉴 생각은 버려라!”
“존명!”
“가자!”
파아아앙!
일행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앵화는 마동필의 등에 업혀야만 했다. 여상린은 진마대원들보다도 강하고 근래 큰 깨달음도 얻었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쿵! 쿠웅!
금호와 호왕이 진마대의 뒤를 따랐다.
두 영물은 뛰어난 전투력에 걸맞게 속도와 체력 또한 아주 좋았다. 특히 호왕은 그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지구력이 무척이나 강한 편이었다. 혹여 체력이 떨어진다 해도, 서량이 직접 마기를 주입해 주면 될 일이었다.
일행은 단숨에 호북으로 접어들었다.
신교의 주인, 구대천마 이천상을 이길 자는 천하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토록 급하게 움직이는 것은 이천상의 안전을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신(神)이기 때문이다.
신이 세상에 나왔다면 마땅히 달려가 무릎을 꿇어야만 한다. 또한 신을 이길 자는 없을 것이 분명하되, 삿된 무리를 신께서 직접 처리해서는 아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심장이 터져라 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신을 영접해야만 했다.
동시에 그들은 기대했다.
‘교주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신교의 대외 활동 억제 정책.
교주님께서 중원에 나오셨다는 것은, 거의 봉문에 가까웠던 정책을 깨 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이 마인들을 흥분시켰다.
그렇게 일행이 호북 악주(鄂州)에 접어들었을 때쯤.
“중소 문파는 물론, 명성 있는 고수들이 교주님의 앞을 막기 위해 호남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교주님께서는 어디쯤 계시지?”
“악록산(岳麓山)에 접어드셨습니다! 사나흘 후, 동정호에 도착하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정호라.”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맹성은 움직이지 않았나?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안심할 수는 없다.
이천상의 중원 진출은 신교의 마인들에게도 충격적인 사태였다. 하물며 의천맹과 철혈성은 어떠하겠는가. 맹주와 성주는 진즉에 이 일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휘하에 고수들까지 알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동정호는 크다. 아마 교주님은 서북쪽으로 돌아가시겠지.’
그 역시 소문은 들었다. 집채만 한 가마가 저 혼자 둥둥 떠서 강을 건넜다던가?
다들 허황된 얘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서량은 그 일에 일체의 과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천상이라면, 신교 역사상 최강을 논하는 고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의 소유자라도 동정호를 넘을 수는 없다. 게다가 북상 중이라면 도달하고자 하는 위치는 명백히 의천맹이었다. 의천맹은 섬서에 있으니, 슬슬 서북쪽으로 길을 틀 때가 되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서량이 일행에게 명을 내리려 할 때였다.
“소, 소교주님!”
“음?”
“익명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익명?”
그는 재빨리 서신을 받아들었다.
서신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고도 딱딱한 필체로 몇 개의 단어만이 쓰여 있었다.
고루마존의 눈이 흔들렸다.
“이것은……?”
“아미파와 청성파, 그리고 공동파의 고수들이 호북 의창으로 향한다는 전서입니다.”
“대체 누구에게 온 것인지요?”
서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고마웠고, 한편으론 걱정스러웠다. 이런 서신을 다급히 보낼 정도라면 정말 위험한 고수들을 파견했다는 뜻일 테니까.
“고루마존.”
“말씀하십시오, 소교주님.”
“저와 금호, 호왕은 여기서 빠지겠습니다.”
“예?”
모두가 깜짝 놀라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등에 비스듬히 메고 있던 천마도를 빼서 어깨에 걸쳤다.
“의창으로 구파의 고수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정확히 언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다급하게 보낸 것으로 봤을 때 수 일 내로 의창에 도착해 진을 칠 것 같습니다.”
“이……!”
“제가 가서 사태를 지켜볼 테니, 마존께서는 이들을 이끌고 교주님께 가 주십시오.”
고루마존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서량이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따라올 거냐?”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서량이 여상린과 앵화에게 말했다.
“사태가 급박해. 너희는 이곳 지부에서 대기하고 있는 게 좋겠다.”
여상린과 앵화는 저희들도 따라가겠다 떼를 쓰지 않았다. 어차피 함께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래, 고맙다.”
서량이 호왕의 위에 올라타고, 마동필이 금호의 등에 올랐다.
“가자!”
커허허헝!
두 영물이 포효하며 달려나갔다.
* * *
“무후가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송금백의 눈이 흔들렸다.
축융무후는 십대고수에 꼽히는 고수였다. 비록 자신에 비하기는 어려우나, 무상인 신창 언극과 겨뤄도 좋은 승부를 낼 수 있을 만한 실력자였다. 직접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단 일격에 죽었다고 합니다.”
“일격.”
송금백은 눈을 감았다.
들려오는 소문이라 했지만, 황곤은 한낱 뜬소문을 보고할 만큼 물렁물렁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격까지는 무리더라도, 다섯 합 안에는 죽였다는 소리이리라.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무후를.’
살왕이 죽은 뒤 기다렸다는 듯 십대고수의 위에 오른 축융무후는, 여인의 몸으로 열양공(熱陽功)을 대성한 천고의 기재였다.
지금의 무공도 충분히 대단한 수준이지만,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고수기도 했다. 축융무후의 나이는 이제 오십이 갓 넘었고, 그만한 재능을 가진 이는 무림 전체를 뒤져도 한 줌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고수가 일격에 죽었단다. 설혹 그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한들, 진정 다섯 합을 넘진 않았을 것이다.
송금백에게는 불가능한 무위였다.
축융무후도 십대고수라는 명성을 도박으로 딴 게 아니다. 생사결이 벌어지면 첫 합부터 송금백이 압도하겠지만, 다섯 합 안에 죽일 자신은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익히고 있는 무공과 전투 방법의 차이도 있겠지만.
“성주님.”
“말씀하시게.”
황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있지만, 쉽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송금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말씀하시게.”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리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결단이라? 어떤?”
“의천맹과의 연수를 파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송금백이 날카로운 눈으로 황곤을 바라보았다.
황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는 꼿꼿한 자세를 풀지 않았다.
“왜지? 마교주가 축융무후를 일격에 죽일 만한 고수이기 때문인가?”
“아닙니다. 설혹 그만한 고수라고 한들, 맹성이 연합한다면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데 어찌 연수를 끊어 내라 하는가.”
잠시 망설이던 황곤이 이내 한숨을 쉬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이성이 아닌 느낌에 의한 것이었다.
황곤은 솔직하게 말했다.
“성주님께서 맹주가 내민 손을 잡으신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불안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마교주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천하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 모든 사람이 마교주의 북상을 주시하고 있지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네. 비록 삼십 년의 세월 동안 공포가 희석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마교의 악명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
“삼십 년 동안 칩거했다고 하여 이만한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솔직한 발언이었다. 그 말은 자칫, 송금백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발언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송금백은 황곤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황곤과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다.
‘대체…….’
황곤이 특유의 안목과 지략으로 깨달았다면, 송금백은 극에 이른 무도(武道)와 숱한 경험 끝에 쌓인 느낌으로 깨달았다.
마교주와 일대일 겨룸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전무(全無)하다.
그는 그것을 진심으로 인정했다. 속은 좀 쓰리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자신보다 강한 자가 있다면, 그자를 넘어서기 위해 다시 한번 열정을 불태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송금백과 황곤이 불안해하는 것은 마교주의 무위 때문이 아니었다.
‘절대로 휘말려선 안 될 것 같은…….’
순간 송금백은 깨달았다. 자신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마교주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자연재해다.
강철 건물도 날려 버리는 폭풍이요, 수십 장 크기의 해일이고, 하늘과 땅을 쪼개 버리는 벼락 세례다.
사람의 손으로, 지혜로는 막을 수 없는 존재다. 송금백은 진정 마교주를 그리 느끼고 있었다.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천마(天魔)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옴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차 선명해져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성주님. 이번은…….”
“안 되네.”
송금백의 눈빛이 형형해졌다.
“나는 이미 선택을 내렸네. 몰아치는 바람이 매섭다고 잡은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나의 선택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이네.”
그때였다.
“서, 성주님!”
“무슨 일이냐?”
“마교주, 마교주에게서 서신이 왔습니다!”
다급하게 뛰어온 무인이 황곤에게 붉은 서신을 전했다. 황곤은 서신을 열어 보지도 않고 송금백에게 전했다.
서신을 펼친 송금백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서신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아미(蛾眉), 청성(靑城), 공동(空洞), 의창행(宜昌行).
섬서로 오게. 나보다 늦지 않았으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