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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75화 (375/774)

375화. 천마(天魔)의 발아래 영광 있으라 (10)

광암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

피처럼 섬뜩한 빛깔의 화염을 뿜어내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청년.

타고 있는 호랑이는 어찌나 거대한지 땅을 박찰 때마다 대지가 뒤흔들렸다. 놀랍게도 불꽃은 청년만이 아니라 호랑이도 뿜어내고 있었다.

자살특공(自殺特攻)이라도 되는가? 아니면 환술?

화아아악!

진법이 만들어 낸 무형의 역장 안으로 기호무사(騎虎武士)의 기파가 전해져 왔다.

‘……!’

굉장하다.

적이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기파였다. 흉악하기가 말도 못 할 마기였지만, 섬뜩한 흉성보다도 대단한 전의(戰意)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저이도 필사적이란 말인가.’

광암자는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마음 깊이 경의를 표했다. 존재 자체가 악(惡)임이 분명한 마교도지만, 저 이름 모를 청년도 저만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진법의 힘을 분명히 느꼈을 텐데도 단기필마로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 그래도 마인은 마인일 뿐.’

광암자의 입에서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반개(半開) 인문(人門).”

순간 일백사십사 명의 노고수들이 방출하는 진기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지이잉!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무형의 기막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하늘색 구체가 반경 수십 장 거리로 늘어나며 공간을 뒤덮었다.

드디어 펼쳐진 멸마의 진법.

진을 형성한 고수들의 목숨을 담보로 형성하는 구대문파 최강의 비기(秘技), 찰극천멸마금진(刹克天滅魔禁陣)이 발동된 것이다.

쿠르르릉.

땅이 흔들렸다. 무거운 물체가 주는 충격으로 인한 진동이 아니었다.

꾸드득!

아직 거리가 백여 장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벌써 팔다리가 뭉근해지는 것 같았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엄청나군.’

정말이지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제각기 환경에 맞게 진법을 형성하는 위치에 서서, 내력을 끌어 올리고 진을 발동하는 것만으로 중력이 제멋대로 뒤틀리고 있었다. 질량을 가진 물체라면 무엇이라도 영향을 주는 중력이 힘의 방향을 전방위로 쏘아 내는 것 같았다.

저 반투명한 구체 밖에서도 이럴진대, 그 안으로 들어가면 칼질 한번 해 보지도 못하고 온몸이 찢겨 날아갈 것 같았다.

‘기(氣)로, 진법으로 이런 것도 가능하다니.’

두려움보다는 감탄이 나왔다.

이것은 또 다른 무(武)이자 그간 익혀 왔던 무학의 연장이며, 기(氣)를 다루는 자가 마지막에 도달하게 될 영역이었다. 기로 이치를 농락하는 것, 대자연의 흐름마저도 인신(人身)의 기를 활용해 통제하는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본 적이 있어.’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교주님이 이러셨지.’

손짓 한 번으로 대자연이 선사한 공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所有)해 버린 극치의 깨달음.

확실히 이천상은 인간이 아니다. 저들은 진법의 술식(術式)과 환경은 물론 영구적인 내공 소모까지 각오하며 행하는 일을, 이천상은 그저 숨 쉬듯 자연스레 구사했다.

그러나.

‘저놈들과 붙게 되면, 어떻게 되실지 모르겠어.’

이천상은 틀림없는 천하제일이며, 고금제일을 논해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일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러한 경지를 ‘강함’이라는 틀에 묶어 두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나 그런 반선의 강자라도 인간의 육신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상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서량은, 다소 불경하지만 이천상 역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시기 전에 체력이라도 좀 깎아 놔야…….’

순간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오시기 전이라……? 허! 그것참.”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어느새 나도 그 양반을 모셔도 부족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이천상을 향한 서량의 감정은 무척이나 복잡했었다.

처음 전생을 하고 만난 이천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너무도 강해서 존경할 마음도, 경외할 생각도 들지 않는 괴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서량은 이천상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았다. 때로는 엄히 꾸짖었고, 때로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분명하게 도움을 주었으며, 때로는 자신을 걱정해 주기도, 감탄해 주기도 했다.

서량은 생각했다.

‘그 양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지.’

단순히 신교의 소교주가 되어서가 아니었다. 군림마황기를 익혀서도 아니었다.

이천상이라는 존재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서량의 삶에 스며들어 그의 가치관을 조정해 주었다. 서량은 이천상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미망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으며, 샛길로 빠지지 않고 지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담사영 역시 서량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거기에 그를 향한 진심은 없었다. 전장에서 칼을 가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일 뿐, 칼을 위해서가 아니니까.

이천상은 담사영과 달랐다. 아니, 서량이 봐 왔던 그 누구와도 달랐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흥.”

서량은 코웃음을 쳤다.

“어우,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싸움 앞두고 이게 무슨 심마(心魔)냐? 남이 보면 욕한다, 이놈아.”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떤 그가 히죽 웃으며 천마도로 적들을 겨누었다.

“그 양반이 어떤 사람이든 뭐, 다치는 걸 보고 싶진 않으니까.”

웃으며 적들을 노려보던 서량의 얼굴이 점차 무표정하게 변했다.

쿠구궁! 쿠구구궁!

시야가 흔들렸다. 대지의 진동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화르르륵!

서량의 두 눈에도 화염이 담겼다.

그 화신(火神)의 마안(魔眼)은 포착했다. 반투명한 진기의 막 가운데가 동그랗게 회오리치고 있는 것을.

‘자신 있으면 들어와 봐라 이건가.’

서량이 다시 씨익 웃었다.

“힘만 빼 놓고 버티려고 했는데, 역시 안 되겠군.”

시원한 맛이 느껴지는 멋들어진 표정과 달리, 그의 읊조림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죽여야겠어.”

더 이상의 사자후는 없었다. 서량의 마음을 알아챈 듯, 잔뜩 웅크렸던 호왕이 폭발적인 질주를 시작했다.

콰아앙!

놀랍게도 호왕의 속도는 종전의 속도를 아득하게 능가하고 있었다.

네발 달린 짐승이 발휘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불어오는 바람도 그런 속도를 낼 순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한 줄기 화선(火線)이 되어 나아간다. 백여 장 밖에서 땅을 박찼던 호왕은 어느새 삼십 장 안쪽까지 치고 들어갔다.

서량이 악귀처럼 외쳤다.

“그대로 부숴!!”

콰르르릉!

호왕의 거체가 진기의 막을 통째로 때려 부쉈다.

광암자의 눈이 커졌다.

창날처럼 날카로운 마기의 덩어리가 반만 전개된 멸마금진을 강제로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강하다! 그러나…….’

진법 바깥의 외기(外氣)가 진식의 방어막을 뚫을 수 있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깜짝 놀랐지만, 동시에 마음이 편해졌다. 진식 안으로 들어온 이상 목표물은 반드시 죽는다.

“완개(完開)! 지문(地門) 일식(一式) 발동! 표적은 오행중화(五行中火)!”

콰르르릉! 쿠르르릉.

보이지 않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했다.

진식을 이루는 신기(神氣)가 제대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땅에 금이 가고, 먹구름 가득했던 하늘이 요동을 쳤다.

‘흡!’

서량의 눈이 순식간에 충혈되었다.

콰지지직!

호왕의 네 발이 발목까지 땅에 박혀 들었다. 쏟아지는 진법의 압력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이다.

‘엄청나다!’

푸화악!

호왕이 왈칵 피를 토했다. 어린아이 손목보다도 굵은 송곳니가 온통 붉게 젖었다.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서량은 구유마공을 완전히 전개했다.

퍼어어엉! 화르륵!

솟구치던 화염이 주춤거리더니, 이내 용암처럼 흘러내리며 역행했다. 구유마공의 폭발적인 마력 방출이 중간부터 막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서량은 마공의 출력을 끝까지 올려 호왕에게 주입했다.

부르르르!

호왕의 몸이 떨려 왔다.

일순 흐려졌던 호왕의 눈이 재차 활력을 되찾았다. 무지막지한 압력에 내장이 다쳤지만, 몸 전체를 꽉 채운 구유마기가 순식간에 내상을 다스리고 근골(筋骨)에 힘을 더했다.

쾅! 쾅!

호왕이 한 발, 한 발 앞으로 향했다.

그것을 본 광암자의 얼굴에 충격이 어렸다.

‘이럴 수가?!’

언뜻 보아도 영물이라 불리어도 부족하지 않을 호랑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영물이라도 진법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찰극천멸마금진은 까마득한 고대의 신선(神仙)들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올 만큼 강력한 진법이었다. 도가의 청정기나 불가의 항마기를 익혔어도, 구파 내공의 뿌리를 갖지 않으면 순식간에 골육이 상하고 혼과 백이 분리될 수밖에 없다.

한데 저 호랑이는 어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크아아압!”

서량이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질렀다.

‘더! 더 강하게!’

지금껏 싸워 오며 마공을 한계까지 끌어 올린 적은 많았다. 당장 얼마 전 비요왕과의 전투에서도 군림마황기와 구유마공을 끝까지 끌어 올려 싸우지 않았던가.

지금은 그 정도로 부족하다.

진법의 압력에서 ‘생존’하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자유롭게 움직여서, 저들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필요했다.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의지,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추진력.

한순간이나마 반선(半仙)의 힘을 낼 수 있어야만 했다.

‘끌어 올려라! 출력을 더 올려!’

쿵! 쿵! 쿵!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점점 거세졌다. 동시에 구유마공도 더 강하게 몸부림쳤다.

동공을 핏빛으로 물들였던 마기의 화염이 어느새 흰자위까지 침범했다.

‘더!!’

그때, 천마도가 번쩍였다.

추구하는 무극(武極)의 길, 경외하는 반선(半仙)의 힘.

모든 잡념을 잊고, 적들을 죽이겠다는 강한 욕망에서 기인한 내력의 폭발이 천마도에 봉인되어 있던 마기(魔氣)를 깨웠다.

파지지지직!

화염에 휩싸였던 자흑색 칼날 속, 시커먼 번갯불이 타올랐다.

그것은 군림마황기였다. 그러나 서량의 군림마황기가 아니었다.

선천(先天)에 달한 마신의 기, 바로 이천상이 주입한 군림마황기였다.

번쩍! 치지지지직!

장심(掌心)을 통해 들어온 흑마(黑魔)의 뇌기(雷氣)가 눈 깜짝할 새에 전신의 신경을 타고 들어갔다.

서량의 핏빛 안광 중심에 작은 점 하나가 찍혔다.

그리고 그 순간, 선천의 마기가 구유마공의 출력을 일순간 대폭 상승시켰다.

“……딱 좋아.”

콰아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호왕의 모습이 사라졌다.

퍼어어억!

“크아아악!”

“커허억!”

광암자가 깜짝 놀라 진의 우측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짐승의 앞발에 청성의 전대 고수 두 명의 몸이 그대로 찢겨 나갔다. 그리고 회전하는 칼날 아래, 다섯 명의 고수들이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진 채 쓰러졌다.

“축진(縮陣)!”

쿠르르릉!

진세가 다시 요동을 쳤다.

진을 이루는 고수들이 적의 공격에 죽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지만, 그럼에도 광암자의 지휘는 빨랐다.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고수들의 움직임도 신속했다.

“헉헉!”

서량의 호흡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빌어먹게도 강한 힘이다.’

광목림에서 개방되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저 표면의 힘을 쥐고 흔드는 것과 그 힘을 온전히 내 육신으로 받아 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끔찍할 만큼 강한 구대천마의 힘.

절대적으로 위험한 마기였다. 준비되지 않은 자가 써서는 안 될 힘이었다. 심지어 서량을 매개로 선천마기에 닿지 않았던 호왕조차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간다.’

찰나에 일곱 고수가 황천을 건넜지만, 진법의 위용은 건재했다. 진세의 힘이 미세하게 줄어든 것 같기도 했으나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지문(地門)의 삼식(三式)으로 건너뛴다! 당장 저놈을 죽여라!”

번쩍! 콰르르릉!

시커먼 뇌전과 핏빛 화염의 광채가 진법 안을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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