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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78화 (378/774)

378화. 천마강림(天魔降臨) (3)

호북은 냉대 기후인 화북 지역이나 무덥고 다습한 화남 지역보다는 기후가 상대적으로 온화하여 사람이 살기에 좋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었다. 날씨가 춥고 건조하여 눈이라면 모를까 비가 올 때는 아니었다.

툭. 투둑.

두꺼운 옷을 입어야 활동하기 편할 날씨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투두둑! 쏴아아아!

적당히 떨어지다 그칠 것 같았던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더니, 이내 상당한 양의 비가 쏟아졌다.

겨울비에 몸이 젖으면 그야말로 낭패가 따로 없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은 달갑지 않은 겨울비에도 아무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치이이이익!

저 멀리, 거대한 가마가 엄청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활화산 같은 열기에 빗물도 놀라서 달아나 버리는 것 같았다. 자욱한 연기가 뿜어지고 있지만, 희한하게도 다가오는 이들의 면면은 확인할 수 있었다.

두두두.

선두의 기마들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번쩍! 번쩍!

어두운 세상, 기마를 탄 마인들의 눈이 번갯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타고 있는 말들의 눈도 시뻘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평범한 마인, 평범한 기마가 아니었다. 특히나 기마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는 일개 전마(戰馬)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흉포하고 강력했다. 마치 기마들도 마공을 익힌 것처럼 살벌한 기세였다.

그런 기마가 무려 칠백에 가까웠고, 그들 중앙에 집채만 한 가마를 들고 있는 오십의 마인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고 있었다. 유독 체격이 좋은 이들이었기에 무사라기보다는 역사(力士)처럼 보였다.

하아아.

수많은 마인들이 신음을 흘리며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입을 벌리자 연기처럼 희뿌연 입김이 흘러나왔다.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분명 저들을 본 적이 있었다. 단 한 번을 제외하면 죄다 공석이었고, 그 한 번도 납치되어 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태였다.

저들의 진정한 힘을 본 적 없던 마동필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으며 다가오는 마군(魔軍)의 행렬을 보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충격을 맛보았다.

‘엄청나다.’

마공의 성취? 실전에서의 전투력?

그런 것으로 평가될 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저들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는 부대였다. 지극히 사악하고 흉포하게 제련된 천마의 칼날이었다.

신교의 부대 병력을 칭하는 사군(四軍), 오단(五團), 육대(六隊) 중 사군에 해당하며, 평소에는 내성과 외성에 각기 두 개 부대씩 나눠 대기하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저들은, 그 네 부대 중 하나이자 사군(四軍)의 수장으로 평가받는 천마신교 최강의 병력이었다.

“……천마일군(天魔一軍).”

천마일군, 달리 천마대군(天魔大軍)이라고도 불리는 이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신교에서 그 명칭이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무적의 부대가 나타났다.

무림 역사상 천마군이 세상에 나타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신교가 극심한 위험에 빠졌을 때, 혹은 몇 차례 터졌던 마정대전(魔正大戰)의 막바지에나 등장했던 괴수 집단이 천마군이었다.

특히 그중 천마일군의 전력은 압도적이었다. 그러기에 교주의 명만을 따르며, 천마대군장(天魔大軍長)은 호법원주, 대호법보다도 교주와 가깝다고 하였다.

천년 동안 불패(不敗)의 명성을 지켜 온 신교의 자존심.

너무나 대단한 기세를 피워 올려서, 뒤따라오는 고루마존과 진마대의 존재감마저 묻혀 버렸다. 중원 현세에 떨어진 천마의 군대는 진정 욕계의 악마군(惡魔軍)이라도 된 양 압도적인 기파를 발산하고 있었다.

철퍽!

마동필이 무릎을 꿇었다. 비에 온몸이 젖고, 진흙에 무릎과 손이 더럽혀졌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평소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목소리엔 무지막지한 격동이 깃들어 있었다.

“마(魔)의 자식이 성신(聖神)을 알현하나이다!”

빗소리만이 가득한 일대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품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욱!

차갑고도 습한 공기를 밀어 내는 기이한 열기가 있었다. 그 열기는 마황거 안쪽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량이의 호위로군. 마동필이라고 했던가?”

“예, 예!”

마동필의 얼굴에 희열이 깃들었다.

교주님께서, 마도의 신께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고 계신다. 그 사실이 마동필의 가슴을 용암보다도 더 뜨겁게 달구었다.

“제법이군. 대호법의 뒤를 이어 호법지장(護法至長)에 올라도 무방할 인재야.”

대호법 무담의 뒤를 이어도 충분한 인재라는 칭찬.

그도 그럴 것이, 마동필은 아직 불혹에도 이르지 못한 나이로 구파 장문인보다 강한 경지를 구축했다. 서량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남들이 보기엔 그도 한 세대에 한 명 나기 힘든 천재나 다름이 없었다.

마동필이 더더욱 감격하여 고개를 조아렸다.

“송구하옵니다!”

그는 호법지장, 대호법이 될 생각이 없었다.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서량의 개인 호위로 남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다만 교주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신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긴장과 흥분, 환희와 부담 속에서 마동필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황거에서 다소 흥미롭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좌를 바라지는 않는 모양이군.”

“저, 저는……!”

“대가를 바라는 신심(信心)은 부정한 법이지. 흑혈(黑血)이 용케 제 주인을 찾았다 싶었더니, 량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었어.”

더 이상의 극찬은 없었다. 마동필이 땅에 이마를 박았다.

“황송하옵니다!”

서량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마동필에게서 이런 모습을 다 보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묵직한 목소리가 툭 끊겼다.

마동필에게 향하던 서량의 시선이 마황거로 이동했다.

가마를 보는 서량의 표정은 묘했다. 반가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안타까워하는 것도 같았다. 신교의 신(神)을 보는 눈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야말로 신의 뒤를 이어, 차세대 신교의 주인이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람이지만, 훗날 신(神)이 되어 부족한 마(魔)의 자식들을 돌봐야 할 인재이기 때문이다.

사르르륵!

묵직한 휘장이 좌우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신이 있었다.

서량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그들 사이에 신마경어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아니, 무릎을 꿇는 행위조차도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서량은 그저 꿇고 싶었고, 동시에 어제 만난 부모를 대하듯 인사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온 천하에서 서량의 무릎을 꿇릴 수 있는 단 한 사람.

이천상이 몸을 일으켰다.

스르륵.

그가 허공을 날아와 서량의 앞에 도달했다.

쏟아지는 빗방울도 이천상의 몸에 닿지는 않았다. 딱히 진기를 방출하거나 공간을 장악하는 한 수를 쓴 것도 아닌데 그러했다.

마치 빗물이 이천상이란 존재를 통과해 버리는 것 같았다. 이승보다 하늘에 가까운 사람이기에, 빗물이 그를 이승의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처럼 보였다.

물끄러미 서량을 내려다보던 이천상이 특유의 무심한 어조로 명했다.

“일어나라.”

서량이 몸을 세웠다.

고개를 들어 이천상을 보니, 문득 그는 눈이 부신 것을 느꼈다.

‘크다.’

중원 한복판에서 마신을 보는 것은 마신궁 안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이천상은 거인이었다. 키와 덩치가 커서가 아니라, 존재감 자체가 차원을 달리했다.

서량은 생각했다. 이천상은 좁은 마신궁이나 환상의 세계인 판마정에서 봐야 할 사람이 아니라고.

드넓은 천하에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중원 땅에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섭고, 든든했다.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으면서도, 입김 한 번으로 천하를 불태울 것 같은 흉성(凶性)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량은 이미 인간이라 불릴 이유가 없는 이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거창한 행렬 아닙니까?”

장난스러운 어조였다. 그의 목소리가, 말투가 이천상이라는 숭배의 대상을 단숨에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약소한 것이다.”

“이게 약소하다고요? 세상 존귀함이란 존귀함은 다 뽐내고 다닐 기센데요?”

“천마(天魔)의 행보다. 본교 전체가 나서도 부족하지 않을 일이야.”

“하긴, 무려 삼십 년 만에 중원 땅을 밟으신 거니까요. 그럴 만도 하죠.”

서량의 말은 친근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도발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너무 빨리 오셨습니다.”

“안다.”

“더 한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더군요. 하지만 힘은 빼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또한 알고 있다.”

“이리 무리해서 오실 길이 아니었습니다.”

“틀렸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내 후계자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제아무리 나라도 여유를 가질 일이 아니지.”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말씀을 드리긴 좀 그렇지만, 저는 제가 죽을 묏자리도 못 찾을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닙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멍청한 놈을 후계로 세울 만큼 만만한 인사가 아니다.”

“거 보십…….”

“하지만 오늘의 넌 분명 멍청했다.”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이천상은 더는 서량을 보지 않았다.

스륵.

한 발자국을 내디딘다 싶더니, 그가 어느새 금호의 옆에서 나타났다. 눈으로 보고도 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를 만큼 자연스럽고 빠른 신법이었다.

우우우우우웅!!

금호의 털이 몽땅 하늘로 곤두섰다.

전신에서 뿜어지는 영기와 요기가 거칠게 요동쳤다. 금빛 영기와 분홍빛 요기가 마구 뒤섞이며 불꽃처럼 타오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여서 놀라웠다.

이천상은 말없이 금호를 보았다. 금호 역시 시시각각 힘의 크기를 키웠을 뿐, 이천상을 보는 눈에 흔들림은 없었다.

이내, 두 신선(神仙)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돌렸다.

금호가 서량 곁으로 다가와 그의 상처를 핥았다. 이천상은 뒷짐을 진 채, 저 멀리 진을 형성한 구파의 전대 고수들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말했다.

“강합니다.”

“강하구나.”

그야말로 솔직한 평가였다.

서량도 이천상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놀라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섭리를 농락하는 진법입니다. 본인들의 생명력까지 깎아서 쓰고 있어요. 단발성일지언정, 그 위력은…….”

“고금제일은 아니지.”

“예?”

“섭리를 농락하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중심으로 구궁팔문(九宮八門)을 수레바퀴처럼 돌리고 있으니, 진법의 기둥이 되는 이들의 생명력까지 빨아들여 힘을 극대화한다. 이치가 어그러지고 혼란이 극에 달해 도리어 안정을 찾으니, 그것이 바로 무극(無極)으로 빚어낸 혼원(混元)이다.”

이천상의 얼굴에 흥미가 떠올랐다.

중원의 정세, 서량이 저지른 황당한 일들 앞에서나 가끔 보여 주던 표정이었다.

“제법이군. 선대 조종(祖宗)을 억압했다던 구파 최후의 비기가 바로 저것이었나.”

서량은 더는 저 진법의 위력에 관해 물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왜 세상에 나오셨는지, 가장 묻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도 잠시 잊기로 했다.

다만 한마디를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천상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가 오른팔을 뻗었다.

번쩍!

한 줄기 빛이 번뜩이더니, 어느새 그의 손에 길쭉한 보검이 들렸다.

황금빛 용문이 새겨진 검신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했다. 중원의 여느 패검보다 한 자가 더 길고, 검신 역시 훨씬 넓고 두꺼운 그 검은 마황보검(魔皇寶劍)이라 불렸다.

“나는 천마(天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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