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79화 (379/774)

379화. 천마강림(天魔降臨) (4)

“지금쯤이면 도달했으려나?”

“……그럴 것으로 예상됩니다.”

담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교주가 그 진법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보는가?”

공야치가 고개를 숙였다.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하셨다면, 그들을 보내지도 않으셨겠지요.”

“허허허!”

너털웃음을 짓던 담사영이 손에 들린 십색지화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십색지화는 예전처럼 형형한 빛을 내지 못했다. 죽어 가는 꽃을 보고 있자니 묘한 안타까움이 일었다.

“나는 마교주를 죽일 생각이 없다네.”

“그러시겠지요.”

“이유를 아나?”

“마교주가 죽으면 전쟁이 벌어집니다. 전쟁은 맹주님께서 원하시는 그림이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은요.”

“허허, 과연. 수십 년을 함께한 녀석들보다, 고작 몇 달을 함께한 자네가 내 마음을 더 잘 아는구먼.”

담사영이 탁자에 꽃을 내려놓았다.

십색지화가 저 혼자서 파르르 떨었다. 마치 죽어 가는 짐승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천마를 살려 두라 말하지 않았네. 그리 말하면 분명 멸마금진을 펼치지 않을 테니까. 문드러져 버린 늙은이들은 본인들의 최후가 장렬하기를 원하지.”

“…….”

“심지어 난 마교주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네. 그가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진법에 대항할 인물인지, 목숨이 위험해지면 자존심을 접고 물러날 사람인지조차 몰라.”

“마교주가 살면 다행이지만, 마교주가 죽어 버리면 낭패인 상황이라는 말씀인지요?”

“그렇다네.”

공야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담사영은 확률이 낮은 도박에 판돈을 걸 만큼 무모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선택이라는 영역에서 도덕과 양심의 선(線)을 지워 버린 자였다. 정말 원하는 그림이 있다면, 죄 없는 양민 수천 명이 죽는다 해도 도박을 하진 않을 터였다.

“따로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네.”

“하면…….”

“그래도 마교주는 죽지 않을 것이네.”

“어찌 그리 장담하십니까?”

푸스스스.

십색지화가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담사영의 미소가 짙어졌다.

“마교주의 성격은 몰라도, 그의 위치는 알고 있기 때문일세.”

“예?”

“곧 알게 될 걸세,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 예.”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한다네.”

“어떤……?”

“설령 전쟁이 나면 어떠한가?”

“예?!”

“사람들은 전쟁을 두고 가장 폭력적인 정치라는 말을 하네. 전쟁은 곧, 조직 내부의 부조리함을 없애는 최후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뜻이야.”

공야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전쟁이란 결코 정치가 아니니까.

하지만 담사영은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늘따라 그의 목소리에선 진심이 유독 강하게 묻어났다.

“힘이 균등하지 않다면 애초에 분란도 일어나지 않아. 그저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될 뿐이지. 그러나 모두의 무력이 강하다고 하여 힘이 균등해지는 것은 아니라네.”

“…….”

“천마(天魔)라는 상징성을 잃어버린 마교는 주인 잃은 화포에 불과하네. 화력이 강하여 집 한 채를 홀라당 부숴 먹을 순 있지만, 정작 포신(砲身)이 겨눌 대상을 명확히 하진 못하지.”

담사영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런 상황이라면, 전쟁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네. 지금껏 쌓아 놓은 것도 많이 잃을 것이요, 수습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승리는 확실하게 챙길 수 있지 않겠는가?”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담사영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실린 솔직한 기쁨을 느낀 공야치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전쟁은…….”

“물론이네. 그저 최악의 경우, 전쟁도 나쁘지 않다는 말을 한 것뿐이야. 최선이 있는데 굳이 최악으로 갈 생각은 없다네.”

“……예.”

“그나저나 정말이지 궁금하군. 가능하다면 그 멸마의 진법에 당하는 마교주의 꼬락서니를 직접 보고 싶었거늘.”

그때, 천지각주가 허락도 없이 뛰어 들어왔다.

“맹주님!”

“무슨 일인가?”

“반정회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기분 좋은 웃음을 단숨에 지워 버리는 소식이었다.

“반정회에서?”

“예!”

천지각주의 표정이 실로 심상치가 않았다. 담사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내용인가?”

“현천진인이 맹주님과의 독대를 청하고 있습니다! 무당의 검수들을 대동하고 십 리 밖에 도착해 있습니다!”

“……!”

* * *

더 놀랄 것도, 긴장할 것도 없다.

찰극천멸마금진을 형성한 전대 고수들 모두가 이천상의 존재감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진을 형성하지 않고 개인으로 그 앞에 섰다면, 그 폭풍 같은 마기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들이 목숨을 다해 형성한 진법은 마교의 조사를 상대했던 무적의 진법이었다. 다가오는 상대의 강함이 상상을 초월했지만, 감정에 동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구파의 이름은 찬란한 태양이 되어 세상을 비출 것이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마도천하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존재해서도 아니 되는 법!’

광암자가 외쳤다.

“천문(天門) 개방!”

일백삼십칠 명의 전대 노고수들이 일제히 원정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쿠르르르릉! 치이이익!

쏟아지는 빗물이 그대로 증발했다.

뭉친 듯, 흩어진 듯 보였던 먹구름이 서서히 진법이 펼쳐진 곳으로 몰려드는 듯했다. 자연 만물의 기(氣)를 끌어와 중력(重力)에 이상을 일으키는 진법임에, 불어오는 바람을 제멋대로 조종해 하늘 끝까지 쏘아 내고 있는 것이다.

천문 개방.

하늘의 문을 개방한다. 모여든 먹구름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진법이 일으킨 용권풍(龍卷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르르릉!

대지가 뒤흔들렸다. 노한 하늘이 수십 줄기의 벼락을 떨어트렸고, 저 멀리 떨어진 강물은 제멋대로 철썩이며 당장이라도 땅 위를 휩쓸 것만 같았다.

기상 이변이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고수들이, 신선이 만들었다던 비인의 진법을 펼쳐 자연을 농락하고 있었다. 천하의 드넓음을 생각한다면 극히 국소적인 영역이지만, 애초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콰르르릉!

사람들이 말하는 천둥은 진짜 천둥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번개와 번개가 친 이후 들려온 천둥소리는 그 자체로 막대한 힘을 갖고 있었다. 무림인들이 구사하는 음공(音功)의 위력을 수백 배 확장한 것 같았다. 천둥소리만으로도 땅이 퍽퍽! 소리를 내며 실금을 만들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서량의 몸에서 구유마기가 치솟았다.

금호 덕에 순간적으로 회복되었지만, 아직 마기를 공격적으로 방출할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 장 거리가 떨어졌음에도, 소리만으로 내상을 입을 것 같았다. 심지어 공기의 흐름이 뒤바뀌며 기묘한 역장(力場)까지 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 소멸한다. 내력으로 몸을 고정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저 진법에 휘말릴 것 같았다.

‘이런 망할!’

자신이 상대했던 힘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멸마금진이었다. 국소적인 영역 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외물을 무(無)로 돌려 버리는 파괴의 진법인 것이다.

오감으로 직접 느끼고 있음에도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

후우우우웅!

금호의 폭풍 같은 요기가 서량과 마동필, 호왕을 그대로 에워쌌다. 그러자 불어닥치는 기파에서도, 무지막지한 인력(引力)에서도, 천둥이 만들어 낸 음파에서도 다소 자유로워졌다.

히히히힝!

서량 일행보다 진법에서 한참 더 떨어져 있던 천마군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마공을 개방했다. 기마들이 용음을 터트리며 발을 굴렀지만, 천마군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두보다도 더 앞에.

이천상이 홀로 서 있었다.

천문이 개방된 멸마금진을 보며, 이천상은 생각했다.

‘마치 나와 같군.’

이승에 존재해서는 안 될 힘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섭리를 거스르는 진법이었다. 사람의 생명력으로 유지된다는 것만으로도 역천(逆天)이라 불릴 만하다.

이천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섭리의 안정과 순리를 추구해야 마땅한 도불(道佛)의 수행자들이 정작 역천의 비학을 만들어 내다니.’

우습다.

진정한 역천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천상이 엿본 신화의 세계 정도엔 들어서야 하며, 진정한 역천을 이루는 것은 곧 소멸을 뜻한다.

지금의 이천상은 분명한 역천이었다. 순리를 거스르고 세상을 활보하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로 저 진법 역시 역천이었다. 대자연이 허락하지 않은 힘이니까.

‘너희는 너희의 손으로, 너희가 추구하는 이치를 깨부술 힘을 만들었다. 그 모순의 참상을 깨닫지 못하는 한, 너희는 영원히 해탈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지이이이이잉.

마황보검이 둔중한 검명을 터트렸다.

치이이이익!

황금빛 용문이 조금씩, 조금씩 검게 물들었다. 이천상의 군림마황기가 마황보검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슬슬 일검을 가하려던 이천상은,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붉은 마기를 피워 올리는 유일제자가 있었다.

“하늘에 오른 마(魔)든 지저 깊숙한 곳의 염라(閻邏)든, 극치에 오르면 종국엔 하나가 되는 법.”

이천상의 목소리가 백 장 거리를 격하고 서량의 귀로 파고들었다.

“보여 주마. 네가 익힌 군림마황기로 어떻게 또 다른 역천을 깨부수는지.”

화르르륵!

천천히 들어 올린 왼손에 소천겁화가 타오르고, 바닥으로 내린 묵직한 보검에선 시커먼 뇌광이 타올랐다.

서량의 눈이 커졌다.

오로지 군림마황기만을 익힌 이천상이 뇌화(雷火)를 피워 내고 있었다. 마치 군림마황기와 구유마공을 동시에 운용하는 자신처럼, 이천상 역시 비슷하면서도 상이한 성질의 힘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빼앗기지 않고 있다?!’

진법의 십 장 안으로 들어간 이천상은 저 엄청난 인력을 발휘하는 진법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불도, 번개도, 나아가 빛까지 빨아들일 것 같은 멸마의 공간을 앞두고도 기(氣)를 강탈당하지 않고 있었다.

그 놀라움은 서량보다 진을 형성한 노고수들이 훨씬 더 컸다.

‘이럴 수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감정의 동요가 있어선 안 될 상황이지만,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광암자가 발악하듯 외쳤다.

“일 식이 끝나면, 곧장 이 식으로 넘어가라!”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왼발을 땅에 내디뎠다.

쿠웅!

가볍게 땅을 밟았는데 진법이 뒤흔들렸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인력도 순간 크게 출렁였다.

마황군림(魔皇君臨)의 일보(一步)였다.

서량도 익히고 있는 보법, 마황군림보를 진정한 천마(天魔)가 펼치니 단 한 걸음에 세상이 흔들렸다.

“멸법욕화(滅法欲火).”

콰지지지직!

이천상의 왼발을 중심으로, 땅이 수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퍼어어엉! 화르르륵!

갈라진 땅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땅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불꽃은 환상과 실체의 경계를 허무는 유황불이요, 그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악마왕의 입김이었다.

세상이 일그러졌다.

대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신선들의 대진(大陣) 위로, 욕계마왕 이천상이 지옥의 실체를 끌어와 덮어씌웠다. 마치 멸마금진 위로 판마정의 환상을 씌워 버린 것 같았다.

왼손으로 지옥 불을 일으킨 이천상이 마황보검에 실린 천마의 힘을 휘둘렀다.

“기오참륜(棄悟斬輪).”

부처가 되기 직전의 석가(釋迦)를 포기시키고, 불가의 윤회마저도 끊어 버리는 군림마황기 최종비기. 제석천(帝釋天)의 힘을 빼앗은 마라파순(魔羅波旬)의 진신진력.

삼대비기의 마지막, 합(合)의 천상천하멸가종무(天上天下滅迦終無)였다.

번쩍!

검의 궤적을 따라, 하늘 높은 곳에서 시커먼 번개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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