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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82화 (382/774)

382화. 집결하는 거인들 (2)

철검마존과 광마대가 따라붙었다.

평소라면 왁자지껄 해우를 나눌 만도 할 테지만 서량도, 철검마존도, 위홍련도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다름 아닌 천마의 앞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중원을 종으로 가로지르는 마군(魔軍)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선두는 호왕에 탄 서량과 금호에 탄 마동필이 맡았고, 그 뒤를 천마군의 기마들이 따랐다. 그리고 천마군 사이에는 언제나처럼 마황거를 받쳐 든 역사(力士)들이 있었다.

후미엔 고루마존과 철검마존, 진마대와 광마대가 따랐다.

마도에 몸을 담은 사람이라면 가슴이 들끓을 광경이었다.

오직 천마군만 이끌고 나타난 교주에게, 중원에 나온 모든 마인이 따라붙어서 함께하고 있었다. 홀로 고귀했던 천마의 곁으로 수많은 추종자들이 붙어서 목적지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엄정했고 나아가는 길은 거침이 없었다.

오로지 전진, 또 전진하는 그들은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제 사람들은 알았다. 소문 속 귀신 부대를 이끌고 북상하는 이가 마교주라는 것을. 무려 삼십 년이 넘도록 대외 활동을 하지 않던 마교주가 직접 휘하 마인들을 이끌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천하가 뒤흔들렸다.

어디선가 마교주가 강시 부대를 이끌고 북상 중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왔었다. 그 소문은 곧 중원 전역으로 퍼졌으며, 수많은 무림인들이 마교주의 앞을 막으러 나섰다.

그리고 그의 앞을 막은 모두가 달아났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었다. 달아났다는 것.

미친 살인마처럼 다 죽인 것도 아니요, 사술로 사람을 홀린 것도 아니다.

그저 압도적인 존재감과 살벌한 기세만으로, 협명 자자한 정파 무림인들을 덤비지도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소문이었다.

어느 무림인이 안 그러겠느냐마는, 특히 정파 무림인들은 명분과 명성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천도(天道)를 역행하는 강시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주적인 마교주야 말할 것도 없었다.

죽음을 불사하고 덤벼야 옳았다. 실제로 마교주를 찾아갔던 이들 중엔 죽음을 각오하고 간 무림인들도 많았다.

그런 그들마저도 도망쳤다. 죽음의 공포보다, 마교주라는 존재가 주는 공포가 훨씬 더 컸다는 의미였다.

이제 사람들은 마교주가 강시 부대를 이끈다는 소문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마교주, 그리고 마교 그 자체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교주가 왜 적은 병력만을 대동하고 중원을 종단하는지, 마교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천상이 의창을 넘어 서북의 죽산(竹山)까지 가는 동안 마교주에 대한 온갖 소문이 중원 각지로 퍼져 나갔다.

“키가 십 척에 이르고 팔이 여섯 개나 된다던데?”

“믿을 만한 정보원에 의하면, 가히 천하제일이라는 말로도 형용하기 힘든 존재라고 합니다. 당금 무림에서 일대일 겨룸으로 이길 자가 없다고 합니다.”

“축융무후가 죽었다고! 그 축융무후가! 그것도 칼질 한 방에 반으로 쪼개졌다니까!”

“모두가 도망쳤어요. 그에게 덤볐던 이들은 저승으로 도망쳤고, 덤비지 못한 이들은 본인들의 거처로 도망쳤죠.”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해. 마교주가 천하제일에 가장 가깝다는 것.”

“그는 역병이야. 사람들이 전부 불안에 떨고 있잖나.”

“의창에서 대격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마교주가 구파의 전대 고수들을 모조리 죽였다고 합니다.”

“대체 교주 놈은 왜 중원에 나온 거야! 목적이 뭐냐고!”

그야말로 공황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마교주의 행보를 신경 쓰지 않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극히 적었다.

무림인들이, 중원이, 하늘마저도 주시하는 마신의 이동.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들끓는 세상의 관심 앞에서도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느긋하기까지 했다.

호북 죽산에서 섬서로 넘어가기 전, 병력은 인근 숲에서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천상은 서량을 데리고 아무도 없는 공터로 향했다.

뒷짐을 지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천상의 모습은 제법 신선했다.

천지를 뒤흔들었던 의창에서의 격전 때와 달리 밤하늘은 무척 맑았다. 날씨는 추웠지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별과 휘영청 뜬 달빛이 고왔다.

이천상의 뒷모습을 보며, 서량은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그날 서량은 이천상의 진짜 힘을 보았다.

극마에 오른 자신을 어린애 다루듯 상대해 준 것도, 네 개의 신병을 모아 순수한 내공만으로 천마도를 제련한 것도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이미 이천상을 반쯤은 신선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선의 경지니, 뭐니 하면서도 그러한 경지에 오른 자가 작정하고 힘을 구사했을 때의 상황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걸 며칠 전에 보았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神)의 영역으로 날아오른 무적자의 힘은 이미 전술과 전략, 세력이나 권력 따위로 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천상은 무적이다. 수만의 군세도, 귀신이 놀라 자빠질 계략도 그에게는 소용이 없다.

너무나도 높게 날아올랐기에 도리어 길을 잃어버린 무적의 패배자. 이승에서의 목표가 사라져 버린 패배한 무적자.

그런 그는, 과연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제법이더군.”

느닷없이 들려온 이천상의 목소리에 서량은 깜짝 놀랐다.

“예?”

“네 무공 말이다.”

“아…… 제 무공 말입니까.”

서량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제법 노력한다고 했는데, 교주님의 진신무공을 보니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 말하지 말라. 지금 네 무공은 중원 정점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그 정도면 능히 일대종사로서 무림사에 기록될 만한 경지다.”

“그런 것에 흥미 없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게다가 저는 무적이 아닙니다. 중원 정점을 논할 때 낄 만한 놈은 될지 몰라도, 진짜 중원제일은 아니지요.”

“네가 중원제일이 되어서는 안 되지. 내가 아직 네게 교주직을 이양하지 않았으니.”

무시무시한 자신감, 상상을 초월하는 자존감이었다. 중원제일은 천마일 수밖에 없고, 천마 이외의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 내포된 말이었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뭐, 중원제일이라는 호칭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의천맹주를 말함이냐?”

“……예.”

서량의 대답은 한 박자 늦었다.

‘알고 있나? 아니면 모르고 있나?’

비요왕과의 치열한 접전 후 정신을 잃은 그의 세계로 이천상이 들어왔었다.

서량은 그때의 생생한 꿈, 혹은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의식의 세계에 나타났던 이천상을 의심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그에게만큼은 속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은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이천상의 다음 말을 듣고, 서량은 그 의심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그에게 당한 한(恨)만큼은 풀지 못한 것이냐?”

“…….”

“나는 네게 말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저 네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마(魔)라고 말했다.”

“그러셨지요.”

“한이 사라진다 한들, 네가 의천맹주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어찌 아십니까?”

“너를 아니까.”

서량이 입을 다물었다.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너는 사람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다. 네 본질은 누구 못지않은 마(魔)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넌 사람의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사람이니까요.”

“마를 품은 사람이겠지.”

“…….”

“그런 너에게, 이유는 그리도 중요한 것이었나보구나.”

서량이 눈을 감았다. 이천상 역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렇게 일각의 시간이 지났다.

“사실 말입니다.”

“…….”

“어쩌면, 저는 의천맹주에 대한 한을 내려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을 내려놓았다…… 재미있는 표현이로군.”

“그렇습니까?”

“풀리지 않는 한은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그것은 너 역시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내려놓았다고 말한 까닭은 무엇이냐?”

“요 이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수십 년간 쌓인 한에 대항할 만큼의 즐거움을 쌓았거든요.”

“그런가.”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천상이 고개를 내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서량을 돌아보지 않았다.

“후계자가 아닌, 강호의 후배에게 한마디 해 주마.”

“예?”

“한(恨)은 해소를 해야지,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달빛의 마력 때문일까, 겨울이 주는 적막함 때문일까.

이천상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공허하게 들렸다.

“누군가는 말한다. 한이 깊으면 골병이 든다고. 의원들은 그러한 증상을 심상(心傷)이라고 하지.”

“…….”

“그러나 한이 땅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람은 움직인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지. 이 깊고 깊은 한을 없애지 못하면 나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 누구 못지않은 삶을 산다 해도, 정작 자아(自我)의 완성은 이루지 못한다는 걸 아는 것이다.”

“…….”

“너도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천하를 뒤엎으려 한 것 아니더냐?”

서량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천상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처음 신교의 삼공자 몸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끝없이 자유를 갈망했다. 공포로 가득한 마교에서가 아닌, 자유가 살아 숨 쉬는 중원에서의 삶을 꿈꿨다.

그것은 살수 시절, 그가 지독히도 열망했던 꿈이었다. 그러한 꿈은 몸이 바뀌고, 환경이 바뀐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칠가(七家)를 감찰하러 내려가, 적사가에서 비요왕의 제자 방령을 보았을 때.

비로소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품고 있는 한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게 파고들었기에 그것이 한인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이 품은 한의 크기와 그 깊이를 깨달은 이후, 자신이 진정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로 뻗어 있는지를 알았다.

천하(天下).

자신을 지옥에 끌어들인 의천맹주를, 자신의 죽음에 일조했던 철혈성을, 자신의 목을 뽑아 버린 비요왕을 몽땅 날려 버리고 싶었다. 말하자면 한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마저도 하지 못하면, 몸은 자유로워도 마음은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천상식으로 말하자면, 자아(自我)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은 해소되어야 한다.”

“세상을 갈아엎으라고요?”

“그래야 네 한이 없어진다고 믿는다면, 그래도 좋겠지.”

무시무시한 말을 너무도 쉽게 한다.

물끄러미 이천상을 보던 서량이 한마디를 던졌다.

“저를 알아서가 아니로군요.”

“…….”

“교주님도 한이 있으십니까?”

“있었다.”

“과거형이로군요. 해소하신 모양입니다.”

“있었지만, 해소하지 못한 채로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예?”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서량은 깜짝 놀랐다.

몸을 돌린 이천상,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두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천상의 감정이, 영혼이 우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육신에 얽힐 이유가 없는 감정과 영혼의 흔적이었다. 육체가 저 스스로 우는 것에 가까웠다.

아마 그가 지금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했다면, 그가 진정 사람다운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그 역시 슬픔에 몸부림쳐 오열했을 한(恨)이었다.

“알려 주마. 이전 세대, 내가 살아왔던 세상이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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