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83화 (383/774)

383화. 집결하는 거인들 (3)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잠시.”

“예?”

“잠시 나가 있게.”

물끄러미 담사영을 보던 공야치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공야치가 집무실에서 나갔다.

잠시 후.

콰앙!

담사영의 주먹이 그대로 벽을 뚫어 버렸다.

쾅! 콰앙! 콰아앙!

몇 번의 주먹질이 단단한 돌벽에 큼직한 구멍을 만들었다.

후두두둑.

부스러진 돌 조각들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후욱.”

담사영이 한껏 움켜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돌가루가 잔뜩 묻은 그의 주먹은 무척이나 강인해 보였다.

내공을 운용하지도 않은,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만 돌벽에 구멍을 내 놓았다. 비록 자신의 무위를 제대로 드러낸 적은 별로 없었지만, 확실히 그의 육체는 농도 짙은 기(氣)를 담을 만한 그릇으로서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여섯 번의 주먹질로 감정을 다스린 담사영이 탁자 앞에 앉았다. 어느새 그의 눈빛은 본래의 냉정함을 되찾았다.

“멸마금진을 깨부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찰극천멸마금진의 진본(眞本)을 직접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진법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멸마금진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진법이었다.

힘과 세력은 크면 클수록 좋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그리도 탐욕스러운 담사영조차 멸마금진을 봤을 때는 경이로움보다 이질감을 먼저 느꼈다.

이런 것은 안 된다. 세상의 섭리니, 뭐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사람이 써서는 안 될 힘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설령 진법이 아닌 무공이었다 해도 익히지 않았을 것이다. 담사영은 멸마금진을 그리도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보고 싶었다. 만일 멸마금진이 제대로 펼쳐진다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이 나올는지 궁금했다.

어차피 평생 써먹을 일 없는 진법이니, 북상하는 마교주를 상대로 써 보자 싶었다.

비록 수하들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담사영은 마교주의 파격적인 행보에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를 세상에 끌어들이기 위해 무색사를 보냈으나 이런 형태의 행보를 보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교주는 믿기 어려운 신위를 보여 주며 무서운 속도로 북상하고 있었다.

제재를 걸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멸마금진을 펼칠 노고수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투입한 것이었다.

한데 멸마금진이 깨졌단다.

탐욕이 극에 달한 자신조차 차마 휘두를 생각을 못 했던 그 무적의 진법을.

‘속임수? 화약? 암기?’

순간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올랐지만, 담사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떤 속임수도 멸마금진을 해체할 수는 없다. 화약이나 암기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진법이었다면, 애초에 그리 확신을 갖고 움직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마교주가 죽어 버리면 어쩌나, 즐거운 걱정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정녕 힘으로, 마공으로 진법을 부쉈다는 겐가.”

냉정은 되찾았지만 놀라움은 여전했다.

“대체 얼마나 무서운 무공을 쌓았기에?”

아니, 그것은 무력(武力)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신선(神仙)의 영역이다. 멸마금진처럼,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힘이란 것이다.

담사영은 문득 송금백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좋소. 당신과 손을 잡겠소. 하지만 알아 두시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당신은 지금 수백 년간 중원 땅과 단신으로 싸워 온 괴물 같은 조직의 수장을 불러들이겠다는 거요.

- 알고 있소이다.

- 아니, 모르는 것 같소. 모르니 그런 짓을 저지르려 드는 것이겠지. 그는 마인들에게 천마(天魔)라 불리고 있소. 심지어 그게 삼십 년 전이었소.

- 그게 뭐, 문제라도 되는 것이오?

- 삼십 년 전, 그의 나이는 불혹이었소. 그는 그 나이에 마교 역사상 여덟 명밖에 없었다는 천마라는 칭호를 받아 구대천마가 되었다는 것이오.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난 지금, 그가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상상키 어렵소.

- 물론 그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고수일 수도 있겠지. 그래, 어쩌면 그가 초대천마에 비견될 만한 걸물일 수도 있소.

- 알면서도 그런……!

- 한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이오?

- ……?!”

- 초대천마도 구파의 힘 앞에 퇴각했던 역사가 있소. 내 지금껏 강호를 살아오며 느낀 무수히 많은 진리 중 하나가 바로 독보천하(獨步天下)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외다.

- 후우.

- 성주도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 나와 손을 잡는 것 아니겠소?

- 말도 안 되는 소리.

- 만일 정말 그가 재해와도 같은 힘을 갖고 있다면, 중원 전체가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고수라면 성주는 이 자리에서 날 공격했을 것이오. 아니면 동맹을 빌미로 뒤에서 날 치려 들 수도 있지. 그러나 성주는 그럴 생각이 없소. 내가 틀렸소?

- …….

- 결국, 한 사람은 열 사람의 힘을 감당할 수 없는 법이오. 하니 너무 그리 걱정하지 마시오.

- 나는 우리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오.

- 음? 하면 누굴 걱정하시오?

- 천하요.

- 허! 천하를 걱정하신다? 왜?

- ……천하도 멀쩡해야만 손에 넣을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소.

그때는 속으로 송금백을 비웃었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하지만, 결국 마도(魔道)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 내지 못한 사파의 종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송금백은 상대적으로 약한 세(勢)인 사파의 총수여서, 마도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이천상을 경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를 직접 봤기 때문에 경계한 것이다.

‘정국을 혼란으로 물들일 희대의 호수(好手)가 아니라, 명을 재촉하는 악수(惡手)였다고?’

담사영은 인정할 수 없었다.

섣부른 말일 수 있지만 그는 중원 천하에 안 다녀 본 곳이 없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봐 왔고, 이 세상의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림 최고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떤 길을 모색해야 모두에게 인정받는 권력자가 될 수 있을지를 차근차근 확실하게 알아 왔다.

그는 그렇게 의천맹주가 되었고, 무림 최고수 중 하나가 되었다.

살아온 방식은 파격적이었으며, 오른 자리는 지고(至高)하였다. 그래서 그는 항상 자신이 있었고,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절묘한 기지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삶이었다. 그리고 그 삶의 방식은 그가 죽을 때까지 지속될 만큼 인이 박인 것이었다.

“이 내가, 실패가 아닌 실수를 했다는 것인가?”

살아오며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 실수를 진짜 실수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껏 실수한 적이 없었다.

한데 인제 보니, 이번 한 수는 진짜 실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머리가 멍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탁자를 노려보던 담사영이 숨을 골랐다.

‘나는 아직 그를 본 적이 없다. 멸마금진이 깨졌다는 것은 충격적이지만, 그가 어떤 수법으로 진법을 무너트렸는지는 보지 못했어.’

심지어 보고도 받지 못했다. 현천진인이 선안으로 본 것을 그대로 들었을 뿐이었다.

현천진인의 말이 진정 사실이라면 아마 내일 정오가 지날 무렵 서신이 날아올 것이다.

‘물론 사실일 확률이 높겠지.’

현천진인은 거짓을 입에 담는 자가 아니었다. 실력을 떠나 인품이 그러했다.

‘어찌해야 하나.’

고수들을 집결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함정을?

골똘히 고민하던 담사영은 순간 머리를 관통하는 묘수를 떠올렸다.

잠시 후, 천지각주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야겠네.”

“예? 어디로 말입니까?”

“관부(官府).”

“……!”

“섬서 상주(商州)의 공효(孔曉) 대인께 사람을 보내게. 지금 당장!”

* * *

하룻밤을 쉰 신교의 병력이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동 속도는 이전처럼 빠르지 않았다. 선두에 선 호왕이, 정확히는 서량이 속도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를 따르는 천마군도, 마존들도 서량을 재촉하지 않았다. 교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한, 아랫것인 자신들은 감히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엄한 짓이었다.

선두에 선 서량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랬군.’

그는 어젯밤, 이천상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전대가 그런…….’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량은 이천상이 전대 교주의 제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물론 자세히 알려고 들지도 않았고, 딱히 관심도 없었다. 그저 다른 제자들을 누르고 소교주가 된 자신처럼, 이천상 역시 모두를 제치고 당당하게 교주 자리에 오른 사람이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과거의 천마신교는 그야말로 부패의 온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신교를 바로잡기 위해 뜻이 맞는 이들이 모여 싸움을 벌이고, 나아가 이천상이 정상을 차지했단다.

교주가 된 그는 일 년도 되지 않아 신교를 개혁해 버렸다.

피의 숙청이 있었고, 자격이 되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쫓아냈으며, 새로운 인재들을 받아 마도의 동량으로 키웠다.

그리고 중원으로 진출했다.

서량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의 그를 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가 무슨 심정으로 살았는지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주님의 삶은, 교주님의 것이 아니었어.’

이천상의 어깨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짊어져 있었다.

신교의 개혁, 신교의 중원 진출, 신교의 성장.

그리고 초대천마 이후 최초로 마도천하(魔道天下)를 이루는 것까지.

이천상은 죽어 가는 동료들을 가슴에 묻고, 그들의 뜻을 모아 교주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풀이를 하기 위해 중원에 나섰고 이내 삼십 년 동안 신교를 봉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이천상은 모든 것을 이룰 능력을 갖췄지만, 모든 것을 행할 수 없는 제재를 받았다.

‘정말이지 그 무공만큼이나 경탄스러운 생이로군.’

힘도, 능력도, 의지도 있는 한 천재 마인의 질주.

그러나 나의 환경만을 바꿨을 뿐, 결국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제한된 불운아.

지독한 한과 크나큰 꿈이 있었지만 무엇 하나 풀지도, 이루지도 못하고 스러져 버린 인생.

서량의 머리로, 어젯밤 이천상의 말이 떠올랐다.

- 나는 신(神)으로서 인간이 되기를 갈망했던 자다. 허물을 벗고 날아올라도 무방할 깨달음을 얻고도, 허상이 되어 버린 한(恨)의 그림자를 쫓아 내려온 반쪽짜리 신이다. 한이란 그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 내려놓지 말고 풀어라. 온 세상이 불타올라 지옥이 된다 해도 거침없이 나아가라. 생(生)의 가장 고귀한 가치는 희생이 아닌 나 자신의 완성에 있다. 사람은 그렇게 ‘조각’된 생명체다.

- 그래서 사람은 마(魔)가 될 수 있다.

“한이라…….”

서량이 탄식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마동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알아, 이놈아.”

상념에 젖었지만, 칼같이 날 선 육신의 감각은 그대로였다. 금호의 끊임없는 치료와 마공 본연의 힘, 나아가 이천상의 군림마황기에 자극받은 그의 신체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회복되었다.

서량이 저 멀리 북서쪽을 바라보았다.

야트막한 야산 정상에 서 있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무당, 무당의 도사들입니다.”

“안다.”

서량이 마황거를 돌아보았다.

마황거엔 여전히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이천상은 서량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숨을 푹 내쉰 서량이 고개를 들었다.

우우우우웅!!

잠잠했던 바다가 한순간 폭풍우를 만난 것처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순식간에 크기를 불린 군림마황기가 사방 천지로 뻗어 나갔다.

파지지지지직!

차가운 공기를 통째로 달궈 버리는 천하제일마공의 위엄.

서량이 내공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구경 그만하고 볼일 있으면 냉큼 튀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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