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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84화 (384/774)

384화. 집결하는 거인들 (4)

허양(虛養) 일행은 신교군(神敎軍)의 십 장 거리 밖에서 멈추었다.

‘이런……!’

우우웅.

저절로 무당장운기(武當長雲氣)가 피어올랐다.

‘엄청나구나!’

처음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제법 한 수가 있는 인물인 줄로만 알았다. 구파 장문인보다도 막강한 경지를 이루었다고들 했지만, 아직 이립(而立)에도 채 이르지 못한 젊은이가 그만한 경지에 오를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제 눈으로 마교의 소교주 염라마군을 본 그의 놀라움은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것이었다.

화르르륵!

마치 불지옥 한가운데 홀로 고고히 서 있는 것 같았다.

손에 들린 대도(大刀)는 영롱하게 빛나고 있음에도 피에 젖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범의 등을 꽉 조이고 있는 굵고 긴 두 다리는 철탑처럼 단단해 보였다.

분명 젊어 보이는 외양이지만, 도무지 후기지수라 부를 만한 인상이 아니었다. 젊은이의 얼굴을 한 광기의 괴수가 거기에 있었다. 번개를 품은 듯, 불꽃을 품은 듯 모호한 안광(眼光)으로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었다.

‘소문이 과장이 아니었다. 아니, 소문을 한참이나 상회하는 무력……!’

난생처음 마교의 병력을 보고 있음에도 서량 외에는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기세였다.

멍하니 서량을 보던 허양의 귀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으르릉.

퍼뜩 놀란 허양이 호왕을 바라보았다.

‘괴물이로구나.’

크기만 봐도 평범한 호랑이가 아니다. 지옥의 홍염을 담고 있는 두 눈이 폭발적인 흉성을 드러내는데, 놀랍게도 뿜어내는 위압감은 자신에 비해 모자람이 없었다.

영물인지, 마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개 짐승이 내뿜을 만한 기세가 아니었다. 만약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이 서량이 아니었다면 제세구민(濟世救民)을 위해서라도 검을 뽑았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량에서 호왕으로 시선을 돌린 허양은, 그제야 비로소 신교군 전체를 볼 수 있었다.

꾸드득.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선두에 선 서량과 호왕이 지옥에서 막 올라온 듯한 날것 같은 기세를 뿜었다면, 그 뒤에 도열한 신교군의 위세는 잘 벼린 한 자루 신병이기와 같았다.

철저하게 훈련된 군대.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죽음을 불사하고 맹목적인 살육을 벌일 것 같은 살벌한 기도.

허양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나는, 무당은, 세상은 너무나도 안일했다.’

마교 병력 일부에 불과함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력이 느껴졌다. 만약 천마신교 전체가 들고일어난다면 천하가 피로 물들 것이 분명했다.

마교가 얼마나 지독하고 강인한 집단인지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십 년간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힘을 너무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비로소 허양은 깨달았다.

만약 마교가 진심으로 중원을 쓸어 버릴 생각이라면, 지금이 가장 큰 위기일 것이다. 안전을 제일로 여기는 자신조차도 마교의 힘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심리의 빈틈. 어느새 희석되어 버린 공포는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만든다.

‘어쩌면 마교가 진정 원했던 것은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는지…….’

그때, 서량이 물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념에서 벗어난 허양이 서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퍼런 뇌광을 머금은 젊은 마왕의 눈빛에 허양은 고개를 돌려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필 우리가 이동하려던 곳 인근에 무당의 도사들이 나타났다? 결코 우연일 수 없지.”

“…….”

“말하라. 왜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거짓을 말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말라는 듯.

불편한 심기에서 비롯된 무시무시한 기도가 허양을 그대로 찍어 눌렀다.

그래서일까? 허양은 서량의 날 선 말투에도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작게 보면 나이 많은 어른이요, 크게 봐도 강호의 대선배가 분명한데 말투가 너무 오만했다. 그러나 허양은 서량의 그런 말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그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말투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서량이 고개를 돌렸다.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한 중년 도사는 허자 배의 막내인 허강(虛康)이었다.

“제아무리 마교의 소교주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길 바라네. 이분은 무당의 장문인일세. 일파의 종주에게 그 어인 말버릇이란 말인가!”

서량의 눈이 빛났다.

“장문인? 무당의 장문인은 허정(虛靜)이 아니었던가?”

살왕 시절에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허정은 탁월한 경영 능력과 뛰어난 무재로 불혹에 이르기 전에 무당파의 장문인이 된 천재였다.

그러나 허정 역시 담사영의 혓바닥에 굴복한 이였다. 원무검신 현천진인을 필두로, 전대 고수의 대다수를 몰아내는 데에 앞장서는 패륜을 저지른 이가 바로 허정이었다.

허강의 얼굴이 붉어졌다.

“새로이 장문인에 오르신 분일세. 그걸 알았다면, 마땅히 예를 취해야 함을 아시게.”

“새로운 장문인이라…… 검신께서 일을 제대로 하신 모양이군.”

세상에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권신 적송대사는 실로 존경받아 마땅할 위인이었고, 그렇다면 검신 현천진인 역시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무당의 새 장문인은 왜 여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허강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마교의 소교주는 자신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허강은 허자 배의 막내이며 그들 중 가장 정의롭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지만, 성정이 불같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론 그 감정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어 거친 말을 쏟아내려 할 때였다.

“인사드리오. 무당의 새 장문인 허양이외다.”

허양이 먼저 고개를 숙이니 허강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량이다.”

“신교의 차기 교주를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허양의 위치와 나이를 생각하면 저자세도 그런 저자세가 없었다. 함께 온 사형제들도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해서, 내 질문에 대한 답은?”

훅.

무당 도사들의 몸에서 강력한 기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허양만은 달랐다.

“본도는 반정회의 일익을 담당하는 무당의 대표로서, 천마신교의 병력과 함께 움직이라는 상부의 명을 받았소이다. 해서 이리 직접 찾아온 것이오.”

물끄러미 허양을 보던 서량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에서 진심을 읽은 것이다.

“그렇다면 본교는 귀 도사들을 친구로서 맞이할 것이오.”

확실한 아군이라 판단하니 그제야 말투를 달리한다.

허양이 미소를 지었다. 왠지 이 젊은 마군(魔君)의 성격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상부로부터 명은 받았지만, 어디로 오라는 말씀은 없었소이다. 그 말인즉, 귀교가 나아가려는 곳에 함께하라는 뜻. 불편함 없는 동행이 되도록 노력하겠소.”

“본교는 친구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소. 비록 잔혹한 역사로 얽힌 사이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대들을 믿겠소.”

“감사한 말씀이오.”

“도사분들이지만 말은 몰 줄 아시리라 믿소.”

“물론이오.”

서량이 뒤를 돌아 외쳤다.

“천마군에서 말을 몇 마리 내어 드리게.”

이천상과 함께 북상하는 내내 단 한 번도 표정 변화가 없었던 천마군들의 얼굴에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일었다.

서량은 천마가 아니다. 소교주라도 천마가 아닌 이상 천마군에게 명령을 내릴 순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천상이 서량을 얼마나 총애하는지 보았다. 그 총애가 적당한 수준이었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이 무시했겠지만, 이천상은 서량을 마황거에 태우려고도 했다.

즉, 이천상은 소교주를 천마로 인정했다는 뜻이다. 아직 교주가 아닐 뿐, 소교주는 이미 천마라 해도 무방했다.

천마군의 마인들이 서로를 돌아보고 있을 때였다.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천마대군장 엄태경(嚴泰硬)이 말했다.

“일 군(一軍)의 칠 조(七祖) 중 여섯은 하마(下馬)하라.”

군장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칠 조원 중 여섯 마인이 말에서 내렸다.

엄태경이 천마군을 돌아보며 말했다.

“교주님께서 계신 자리니만큼 이번 한 번은 무례를 용서한다. 하나 차후에도 소교주님의 명에 즉각 움직이지 않는다면 일 군 전원을 엄벌에 처할 것이다.”

위엄 넘치는 목소리에 천마군의 마인 전원이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는데.’

천마대군장은 대호법 무담 이상으로 딱딱한 사람이다.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그냥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고지식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런 사람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리 말했으니, 앞으로 천마군은 자신을 이천상 대하듯 극진히 따를 것이다. 서량에게는 저 발언 자체가 큰 도움이었다.

여섯 마인이 본인이 타고 있던 기마를 도사들 앞까지 데려왔다.

허양이 헛기침을 했다.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친구를 소홀히 했다고 동도들에게 욕먹고 싶지 않소. 도장들은 물론 우리를 위해서이기도 하니 편하게 타시길.”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잘 타겠소이다.”

도사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기마에 올랐다.

기마들은 하나같이 육중했다. 누가 마인 소굴의 기마 아니랄까 봐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도 엄청났다. 마치 기마가 마공을 익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서량이 다시 선두에서 외쳤다.

“가자.”

히히히힝!

신교군이 다시 이동했다.

마황거 안에서 서량을 내려다보던 이천상은 생각했다.

‘훌륭하군.’

욕계문을 통해 느끼긴 했지만 확실히 서량은 달라졌다.

과거 신교에서의 서량은 일파의 종주가 되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번뜩이는 기지와 파격적인 행동력은 선봉장으로서의 미덕으로만 발휘되었을 뿐, 거대 단체를 이끄는 수장으로서의 매력이 되진 못했다.

지금은 달랐다.

중원에 나와 제 사람들을 챙기고, 단기간에 무수히 많은 성과를 올리며 서량도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이제야, 자격을 갖추었어.’

거대한 호랑이를 탄 채 신교군을 이끄는 서량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든든해 보였다. 창칼이 날아와도, 태풍이 불어닥쳐도 모조리 헤치고 나아갈 수 있을 듯한 위엄이 느껴졌다.

자신이 원했던, 자신과는 다른, 그렇기에 기특함을 느끼는 저 모습을 보며.

비로소 이천상은 구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시대의 막이 열렸음을 깨달았다.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올랐으니, 추억조차 되지 못할 퇴물은 슬슬 사라져도 되겠지.’

물론 물러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자신의 후계자를 위해, 스러져 간 영혼들을 위해.

그리고 어느새 그 꿈에 함몰되어 버린 자신의 열망을 조금이라도 엿보기 위해서.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서량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던 이천상은 문득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부르르르.

그가 자신의 손을 들었다.

큼직한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적당히 튀어나온 손등의 핏줄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맥동했다.

그리고.

‘…….’

환상인가, 실제인가.

손끝이 살짝 반투명해졌다가 다시 제 색을 찾길 반복했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후웅.

아무런 기세도 풍기지 않는 선천마기가 치솟았다. 그러자 반투명해졌던 손끝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갔다.

이천상이 주먹을 쥐었다.

꽉 쥔 주먹에서 은은한 진동이 느껴졌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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