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92화 (392/774)

392화. 천하를 논하다 (4)

황당할 정도로 개인적인 이유였다.

신교의 대의를 위한다거나, 천하 정세를 주무르기 위한 발판이라는 등의 말이 나올 줄 알았던 두 사람은 더더욱 당황했다.

송금백이 물었다.

“서 소교를 위해 그러셨다는 말씀이오?"

“그렇다.”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그들이 보는 이천상은 가히 신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신선에 가까운 이가 그였다.

그런 그가 속세의 정리(情理)에 얽힌 말을 한다. 괴리감이 컸다.

"모순이로군.”

담사영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내게는 명분을 따지지 말라면서 교주는 미래를 산다는 둥, 제자를 위한다는 둥 도리에 얽매인

말을 하고 계시오. 참으로 재미있는 분이외다.”

“그러면 안 되나?"

“무슨 말씀이오?”

"내가 왜 너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이천상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삼류라는 말이 그리도 충격적이었던가?"

담사영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를 억제하지 않았다면 욕설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폭언을 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네놈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움직였느냐가 아니지 않나?"

그렇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담사영으로 인해 이천상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담사영의 생각과 달리 이천상이란 존재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여,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재앙과 같았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 이천상이 마음만먹으면 당장이라도 목이 날아갈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적어도 생사(生死)를 눈앞에 둔 담사영에게는

그게 제일 중요했다.

“듣고 싶소.”

송금백이 불쑥 입을 열었다.

"명분을 이용했든 뭐든, 교주께서 세상에 나오신 이유가 있을 것이오. 그 이유가 듣고 싶소.”

“이유라.”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범이 제 영역을 둘러보는 데에 특별한 이유랄 것이 있겠느냐?”

무시무시한 발언이었다.

이천상의 말은, 이 중원 전체가 자신의 것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천마신교는 중원 남부에 있지만, 교주의 집은 천하(天下) 그 자체다.

온 세상이 이미 내 것인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심심해서, 혹은 오랜만에 둘러볼 겸 나왔다는 데 할 말이 없었다.

송금백의 눈이 흔들렸다.

'참으로 오만하군.

오만하지만, 그 오만한 발언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게 섬뜩했다.

약육강식이란 곧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바. 이천상은 당대 무림의 정점, 아니 고금 무림의 정점에

서 있다. 세력으로도, 섭리를 뭉개는 하늘의 힘으로도 그를 막지 못했다.

천하가 내 손 안에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았다.

“교주께서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은 나도 담 맹주도 충분히 알았소.

하지만 교주께는 이곳 섬서 의천맹이라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소.”

“그랬지.”

“이유는 중요치 않다고 하셨소만, 그래도 듣고 싶소. 굳이 이곳으로 오신 이유가, 나아가 이 사람에게 섬서로 오라 하셨던 이유도.”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하군.

담사영과 송금백은 얼핏 닮은 구석이 있었다. 감히 자신에 비할 순 없지만, 그들 역시 천하 정점에 있는 절대자들인바. 어떤 영역이든 극에 이르면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둘은 분명히 달랐다.

담사영이 독사라면 송금백은 늑대다. 담사영은 독랄하고, 송금백은 사납다.

“호랑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산에, 어느새 독사와 늑대가 으르렁대고 있더군."

“......”

“잘 됐다 싶었지. 어느새 산에 드리워진 범의 공포는 옅어지고, 저희끼리 산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던 두 짐승은 주인의 존재를 잊어버렸어.”

이천상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전광(電光)이 터져 나왔다.

“고고했던 학들은 뱀처럼 변했고, 고독했던 늑대들은 무리를 이루어 생존의 방식을 터득했다.

산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고, 규칙도 법도도 사라져 버렸지.”

“.....?!"

“참으로 매혹적인 사냥터가 아니더냐. 그렇지 않아도 좁다고 느꼈던 산이 점차 엉망으로 변해 가고 있으니, 이참에 모조리 물어 죽이고 진짜 산주가 누구인지 만천하에 알리는 것처럼 속 시원한 일도 없겠지.”

담사영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교주의 말은, 귀하가 이런 상황을 유도하기라도 했단 뜻이오?"

이천상이 서늘하게 웃었다.

“만나면 도망치기만 바빴던 얄미운 놈들을 한데 모아 잡아 죽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바라 마지않던 일이다.”

사아아악.

담사영과 송금백의 몸에서 강렬한 기파가 솟구쳤다.

긴장감이 묻어 나오는 그 기파는 불안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가만히 그들을 보던 이천상이 말을이었다.

“그러나.”

“......”

“너희는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내게는 너희 모두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후계자가 있다. 그 녀석을 보며 삼십 년이나 세상에 나오지 않은 나의 마음도 파랑을 일으켰다. 하니, 너희 식대로 간단히 말해 주지.”

".....”

“원래대로 돌려놔라. 이 강호를."

".....!”

담사영과 송금백의 얼굴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재차 술을 한 모금 마신 이천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 모두를 죽일 것이다.”

무시무시한 협박이었다.

강호를 원래대로 돌려놔라? 그 뜻을 정확히 간파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그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당장 너희를 죽이겠다는 말에서 살벌한 진심이 느껴졌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너희'라는 단어의 범위였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천상이 말하는 너희의 범위가, 단순히 둘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그는 의천맹과 철혈성을 전부 날려 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능할 것 같소?”

송금백이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교주의 무위가 고금제일을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소. 교주의 힘이 이 세상의 섭리를 무시할 만큼 규격 외라는 것도 이해했소. 그러나, 제아무리 교주라도 본성과 의천맹을 동시에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오.”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이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송금백에게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천상은 느꼈다. 송금백이 자신의 힘을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님을, 그는 자신이 작정하고 움직이면 단신으로 천하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반선(半仙)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리 말한다.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무슨 이유로?

순간 하늘 저편에서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천상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화신보옥.”

“......!”

"화신보옥이로군. 그것도 최상품이야. 제대로 발동되면 수천 고수의 생명력도 쉬이 빼앗을 정도의.”

송금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담사영도 깜짝 놀라서 이천상을 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 리가 없겠지, 너희로서는,

하늘은 당대 천하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선 자를 유혹한다.

그러나 그 유혹을 참고 또 참아 내며, 스스로 봉우리를 키워 진정 하늘까지 닿은 이가 자신이었다.

세상이 말해 준다. 감춰진 진실을.

이 세상이라는 개념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대자연의 이치란 실로 오묘하고도 단순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 준다.

그 힘을 좁히고 좁히면, 영육(靈肉)은 잠시나마 섭리 안으로 들어오되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 준다.

무림의 절대자도 사람이요, 사람은 세상의 구성원 중 한 종(種)일 뿐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인간 역시 개미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하며, 그런 열등한 존재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천상이 보는 천하는 그러했다.

그토록 무의미했고, 그래서 미련이 생기며, 그렇기에 초탈할 수 있는 것이다.

“최상급의 화신보옥이라....... 그래,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나라도 버틸 수 없겠지.”

이천상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에게는 어떠한 협박보다도 두렵게 느껴지는 초월자의 웃음이었다.

“한데 네놈이 화신보옥을 개방하는 것을 내가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으냐?"

“...!”

“네놈이 그것을 개방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철혈성은 중원에서 사라질 것이다.”

부르르,

송금백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대화를 이어 갈수록 시시각각 충격을 받는다.

이 살아 있는 마신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었고,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었다.

공포는 느꼈으되 절망은 느껴 본 적 없던 송금백은 지금 이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발을 디딘 듯한 착각을 느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이미 늪에 몸에 빠져 버린 것이다.

송금백이 허망한 얼굴로 이천상을 바라볼 때였다.

“과연.”

이천상이 담사영을 바라보았다.

깜짝 놀랐던 담사영은 어느새 마음을 다잡은 듯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신화경, 반선의 경지라...... 교주께서 한눈에 만천하를 내려다보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구려.”

“쓸데없는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본디 깨달음이란 조화경이니 신화경이니, 하는 단어 따위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처럼 대오(大悟)하지 못한 중생들에게는 그러한 구분이 필요하외다. 교주처럼 천하 만물을 보지 못하니까.”

담사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송 성주가 화신보옥을 가져왔을 때, 나는 실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소. 화신보옥이 정말 소문대로의 물건이라면, 설령 신선이라도 죽일 수 있을 테니까.”

“한데?”

“다만 정녕 신선을 상대로 쓸 생각이라면 신선의 눈을 피해서 써야 함이 옳을진대,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은 있었지.”

“똑똑하군.”

“이제야 알았소. 당신에게 필요 이상의 정보를 주는 것은 자멸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당신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그 능력에 확실한 제한이 있소.”

이천상의 미소가 짙어졌다.

“날카롭기도 하고.”

담사영의 말대로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볼 수 있었다.

다만, 정말로 모든 것을 보려면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조금 전 송금백처럼 스스로 뭔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그런 것도 없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면 애초에 이천상은 이승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신선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지만, 분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나는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소.

하나 당신이 지금껏 일구어 놓은 천마신교란 단체는 멸망시킬 수 있소이다.”

가만히 담사영을 보던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진정,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알 만큼은 알게 되었소이다만."

"아니, 모른다.”

스르르릉.

마황보검이 허공에 떠올랐다.

담사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송금백의 얼굴은 확연히 굳어졌다.

“본인의 운명을 시험해 보고 싶나? 하면 지금의 대화를 조금 조정해 보도록 하지."

이천상이 하얗게 웃었다. 그 웃음 위로 삼두육비 괴물의 얼굴이 환상처럼 덧씌워졌다.

“네놈은 나를 반선으로만 보았지, 내가 아직 '사람'임을 보지 못했군."

번쩍!

마황보검이 의천맹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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