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93화 (393/774)

393화. 천하를 논하다 (5)

“시작됐군.”

“예?”

서량은 저 멀리 의천맹을 보고 있었다.

의천맹의 본성은 확실히 보이지만, 천하의 고수인 그조차도 이 정도 거리에서 사람을 식별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느끼고 있었다. 저곳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신교의 위대한 교주와, 정사(正邪)를 대표하는 거인들이 드디어 만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교주님께서 맹성의 주인들과 만나셨다.”

마동필의 얼굴에 긴장의 기색이 흘렀다.

“괜찮을까요?”

“뭐가? 설마 교주님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절대 아닙니다. 교주님께서는 절대무적이 아니신지요.”

그저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리 말한 게 아니었다. 마동필은 멸마금진을 상대한 이천상의 무공을 직접 본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 무시무시한 기파에 얼이 빠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굳어 있지 않았던가.

마동필이 걱정하는 것은 하나였다.

“혹여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서량이 웃었다.

"전쟁이 무서우냐?”

“아! 그건 아닙니다.”

“사람이 덜됐군.”

“예?”

“천하제일고수라도 전쟁은 무서워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쉬이 죽지 않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전쟁을 무서워하지.”

“무슨 말씀이신지 속하는 이해가.......”

“진짜 끔찍한 삶은 내가 죽는 게 아니야. 나는 죽지 않았는데, 내 소중한 사람들은 다 죽어 버린 삶이지.”

".....!"

“교주님께서는 사람보다 하늘에 더 가까우신 분이다. 그렇기에 전쟁을 벌이지 않으려 하실 거야.”

본인은 이승을 벗어나면 그만이지만, 탈각의 유혹마저 이겨 낼 만큼 진한 욕망을 안고 있는 이천상에게 신교가 타격을 받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일 것이다.

그가 서량의 성장을 끊임없이 독촉한 이유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빨리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후계임을 떠나, 천마로서의 책임감을 누구보다 깊게 가질 만한 인물은 서량이 유일했다.

만일 전쟁의 기미가 보인다면?

그때부터 이천상은 진짜 마신이 되어 천하를 휩쓸어 버릴 것이다. 그것이 이치에,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리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등선을 막는 길일지라도 그리할 것이다.

“어찌 됐든 그게 걱정이라면 안심해라. 어지간해선 전쟁이 일어나진 않을 테니.”

“아, 예.”

"한데 궁금하군. 전쟁이 무섭지 않다면서, 왜 전쟁이 일어날 걸 걱정한 거냐?”

마동필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런 말은 다소 불경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만.......”

"뭔데?”

“소교주님께 전쟁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물론 전쟁에 어울리는 사람이 천하에 얼마나 되겠습니까마는.”

흥미로운 말이었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 전쟁은 어울리지 않는다? 왜?"

“소교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끔찍한 것은 내가 죽는 것이 아닌, 내 사람들은 죽었는데 나만 살아남는 것이라고.”

“......"

“소교주님께서는 결코 의미 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를 갈망하셨고, 하루하루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아가길 원하시지요.”

“........그렇지.”

"그래서 걱정됩니다. 전쟁이 날까 봐.”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너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구나.”

“부끄럽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는 전쟁을 원하지 않아.”

서량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쩌면, 나는 교주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놈일지도 모른다.”

“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마도천하(魔道天下)에 흥미가 없는 교주잖느냐.”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씁쓸했던 그 얼굴에 한 줄기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문제는 살아생전 내가 풀어야 할 한과 목표로 가는 길에 전쟁의 위험이 다분하다는 것이지만."

“.......소교주님.”

“나 역시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왕 터진 전쟁 앞에, 물렁물렁하게 대처할 생각도 없다.”

"......"

“전쟁이 터지게 되면,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수를 총동원해서라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씁쓸했던 표정도, 서늘했던 살기도 사라진 얼굴이었다.

“명분의 문제로는 결코 쉽게 터지지 않는 게 전쟁이야. 그러니 일단은 기다려 보자고, 뭐가 됐든, 멱살잡이하면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웃으면서 살아가는 게 백배 낫잖아?”

마동필은 참으로 소교주님답다고 생각했다.

중원에 나온 이후, 소교주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빠르고 과격하게 움직이셨다. 와중에 적도 많이 만났고, 헤아릴 수 없는 전투가 벌어졌다.

덕분에 많은 위업을 이루셨으나, 알게 모르게 여유가 사라져 가는 소교주님을 보며 내심 안타까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의 소교주님은 그때와 또 달랐다.

'모든 일이 끝난 이후, 누구 못지않게 행복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때였다.

쿠구구궁!!

“뭐, 뭐야?!”

히히히힝!

“워어! 워워!”

“지진인가? 뭐지, 대체?”

서량이 말했다.

“지진이 아니야.”

벌떡 일어난 그가 의천맹을 바라보았다.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그래서 더더욱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이 먼 거리에서, 거대한 전각 몇 개가 날아가는 광경이 생생하게 보이고 있었으니까.

“교주님께서 검을 뽑으셨다.”

*

*

*

그것은 실로 환상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한 자루 휘황찬란한 대검이 허공에 둥둥 떠오르더니,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세상이 흔들렸다.

시커먼 돌풍을 일으키며 나아간 검은 사람이고 외물이고 가리지 않고 모조리 날려 버렸다.

떨어지던 눈송이가 증발하고, 무지막지한 풍압에 단단한 돌벽이 으깬 두부처럼 흩어졌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르르르릉!

귀청을 떨어 울리는 폭음은, 신기하게도 아련하게 들렸다.

날아간다. 건물들이.

테두리가 수십 리나 되는 의천맹의 성안, 전각 예닐곱 개가 통째로 부서져서 날아갔다. 관통당한 성의 외벽에 돌풍의 영향으로 반경 삼 장이 넘는 구멍이 생겨났다.

그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즉사였다. 수십 명의 사람이 하늘을 날았지만, 이미 그들의 목숨은 끊어진 후였다. 죽은 사람들 대다수가 몸통이 갈기갈기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압축된 용권풍이 들이닥친 것만 같았다.

초식의 틀, 무공의 틀에서 벗어난 검격이지만 그 특성만큼은 확실히 살아 있는 무공.

고대 천마들이 즐겨 썼던 죽음의 검도(劍道), 나락검풍진(奈落劍風震)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아홉.”

스르릉.

어느새 의천본성을 한바탕 휘젓고 돌아온 마황보검이 검집에 들어갔다.

“칼질 아홉 번이면, 얼추 외성은 지울 수 있겠군.”

담담한 말과 함께 술로 목을 축이는 이천상.

그저 날벌레를 잡기라도 한 양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였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힘을 보여 주고도, 힘든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고대로 신선이라 함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속세에 미련이 없다고들 하지. 그것은 실로 맞는 말이다.”

어느새 술을 다 비운 이천상이 수통을 던져 버렸다.

“너희가 말했듯 나는 반선이다. 신선이 되다 만 반쪽짜리지. 그래서 하늘에 가깝되, 사람이기도 하다.”

이천상의 얼굴이 서늘해졌다.

“사람은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 그렇기에 난 이 무한한 힘을 내 욕망대로 휘두를 수 있다.”

"....."

“본교를 멸망시킨다고 했더냐?"

담사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떨림이라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조차도 일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경악한 얼굴로, 완전히 굳어 버린 표정으로 마신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

“누가 있어 본교를 멸망시킬 수 있단 말이냐? 본교가 스러지기 전에, 이 나부터 상대해야 할진대.”

이천상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담사영과 송금백은 더 깊은 공포를 느꼈다.

“너희가 바라는 것이, 내가 중원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냐?”

“...... ”

“물론 아니겠지. 일시적으로 손을 잡았다만, 너희 각자가 원하는 것은 천하일통임이 분명할 터. 그러나 천하를 얻으려 해도 그것이 존재해야 얻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순간 담사영은 과거 송금백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나는 우리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오.

- 천하도 멀쩡해야만 손에 넣을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소.

그렇다.

그때는 그저 웃어넘겼지만, 그리고 멸마금진을 단신으로 부쉈다는 소문을 듣고도 설마 싶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 자는 진정 단신으로 천하를 지워 버릴 수 있는 자였다.

담사영은 자신의 우매함을 저주했다.

이천상을 직접 보고야 사람이 진정 신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비범한 능력을 보며,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쓴 이상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간파했다.

그러나.

상대가 아직은 사람이기에 더 무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이제야 담사영은 깨달았다.

'나는 이미, 이 마신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그는 타인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지언정, 담사영이라는 인간 근본의 영악함을 잃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이천상을 본 순간부터, 그가 등장한 순간부터 담사영은 스스로를 잃어버렸다. 이미 대자연과 하나가 된 인간, 자신이 무엇을 해도 통하지 않을 괴물이라는 걸 인식한 순간부터 평정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천상의 말 몇 마디에 화가 나기도 했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비록 성정은 악랄한들, 그가 익힌 것은 부동심을 추구하는 정공(正功)임이 분명한데도 감정이 들쑥날쑥 제멋대로 출렁거렸다.

"이제야 알았느냐?”

“......”

“너희는 무슨 짓을 해도 나를, 본교를 넘어설 수 없다.”

담사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패배감 가득한 표정을 상대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때, 송금백이 말했다.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소만, 다시 한번 묻고 싶소.”

이천상이 그를 바라보았다.

송금백의 얼굴에는 포기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 복잡하게 만들 필요 없이 그 힘으로 본성과 의천맹을 날려 버리면 그만일 텐데, 왜 이 자리를 만드신 거요?"

"....."

“교주 말마따나 매혹적인 사냥터가 아니오?"

이천상이 미소를 지었다.

“네놈의 질문은 타당하군. 그러나 알려 줄 생각은 없다.”

혹시라도 그 힘에 또 다른 제약이 있는 게 아닌지 생각했지만, 송금백은 떠오르는 생각을 곧바로 지워 버렸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천상이 의천맹과 철혈성을 지워 버리겠다고 작정을 한다면, 당장 눈앞의 자신부터 죽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죽은 이후의 세상은 궁금하지 않았다.

“돌고 돌아서, 결국 또 이 얘기를 꺼내는군. 미리 말하지만, 다시 한번 내 심기를 건드린다면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나게 될 것이다.”

"......"

“강호를 원래대로 돌려놓아라.”

“.......그게 무슨 말씀이오?"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을 텐데.”

“나는 도무지.......”

이천상이 중심부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는 의천맹의 성벽을 바라보았다.

또다시 그 말도 안 되는 파괴 행위를 벌이려는 건가 싶어 두 사람은 잔뜩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어진 이천상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잠시나마 쓸어내렸던 가슴이 다시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이 중원이라는 땅, 강호의 세상에서 무림을 떼어 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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