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94화 (394/774)

394화. 천하를 논하다 (6)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예요.”

호요성이 고개를 들었다.

농염하기 이를 데 없는 비궁주를 마주하면서도 그의 얼굴은 순수한 의혹으로 물들어 있었다.

“당장 필요치 않다는 말씀은, 설마 소교주께서 십대천마의 마위에 오르는 날이 미뤄지게 될 거란 뜻입니까?”

“그대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에요. 소교주는 근시일 내에 본교의 새로운 신으로서 마도를 다스리게 될 테죠. 아마도요.”

아마도라니?

호요성은 비궁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술법(術法), 가히 신통력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만큼은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수준이란 건 알고 있었다.

비궁주는 한정적인 조건하에, 거의 예지에 가까운 능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한순간에 불과하며, 실제로 역대 비궁주의 예언과 예지가 빗나간 적도 제법 많았다.

그러나 당대 비궁주는 역대 최고라고 불리는 이였다. 만일 교주가 이천상이 아니었다면, 비궁주의 입김이 지금보다 훨씬 셌을 거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비궁주가 고개를 저었다.

“확신이 서지는 않아요. 교주님의 앞날은, 그분이 원한다면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는데 소교주는 아니에요.”

“......?”

“내 술안(術眼)으로도 소교주의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호요성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비궁주의 말은 마치, 소교주가 교주님보다도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그것은 아닐 것이다. 비궁주는 물론, 자신이 모르는 특별한 무언가가 소교주에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교주는 확실히 특이한 인물이에요. 한 번 본 적도 없지만요. 하기야 본인의 재능을 극한까지 발휘하여 신교 역사상 최연소로 천마가 되었으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죠.”

“무엇이 다릅니까?”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비궁주의 얼굴에 약간의 혼란이 깃들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여요.”

“.....예?”

“그냥 느낌이 비슷하다는 말이에요. 이미 죽은 사람이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을 리는 없죠. 그러나 술가(術家)에서 보는 소교주의 혼(魂)은 마치 강신(降神)을 당한 것처럼 모호해요.”

강신이라 함은 신이 내렸다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그러하지만, 실상은 다른 영혼에 씐 것처럼 보인다는 말과 같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알아요. 그럴 리는 없죠. 설령 그렇다고 해도 교주님께서 모를 리가 없어요. 천마가 되었다면 소교주 역시 군림마황기의 욕계문을 개방했을 터, 교주님이라면 영성이 실린 마기로 소교주의 내면을 꿰뚫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설령 소교주의 몸에 정말 다른 사람의 혼이 깃들었더라도 교주님이라면 그것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런 교주님께서 일언반구도 없이 소교주를 십대천마의 마위를 준비하라 했으니, 소교주가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이 믿고 따르면 될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소교주가 어떤 위인이건 간에 십대천마의 마위에 오르기는 시기상조예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비궁주는 호요성을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면 반문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지만, 그는 교주의 명령을 받아서 온 사람이었다.

“교주님께서 소교주에게 십대천마의 마위를 하루빨리 물려주려 한 이유를 알고 있나요?"

"예?"

"교주님의 경지는 가히 고금제일을 논할 만하죠. 기실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앞으로 두 세대는 더 통치할 수 있으실 테죠.”

“..?"

“그런데도 교주님께서는 소교주를 서둘러 십대천마로 만들려고 하세요. 왜일까요?"

호요성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신교의 마인으로서 감히 교주님의 의중을 알아보려는 것은 불경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

“다만... 그래도 짐작을 해 보자면.”

호요성이 한숨을 쉬었다.

“수십 년을 통치하셨으니, 이제는 쉬고 싶으신 것이 아닐는지요.”

“정확해요.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죠."

“다른 이유가 또 있다는 것입니까?"

“물론이에요.”

호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비궁주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지 않는군요. 역시 교주님의 책사다워요. 호기심이 많지만, 그만큼 충성심도 높아요. 선은 넘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어떻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알려 드릴까요?”

“제 귀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 따로 없군요. 하지만 좋아요. 알려 드리죠.”

의미심장한 미소로 물들어 있던 비궁주의 얼굴에 작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당신은 교주님의 경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죠?"

“그분의 경지가 유례가 없을 만큼 드높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유례가 없다? 맞는 말도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군요. 이미 이승에서 얻을 깨달음을 전부 얻고도 무려 십 년이 넘도록 하늘의 부름을 받지 않았으니까.”

“........!”

“사람으로 태어나 신(神)의 반열에 오른 절대자.....

고금에 그런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승에 육신을 묶어 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죠.

그런 부분에서 보면, 확실히 교주님은 대단한 분이에요.”

호요성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는 말씀은.......?"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교주님께서 설마, 돌아가신다는 뜻입니까?"

비궁주가 고개를 저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요.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 말할 수 없는 문제예요.”

“부디 이해시켜 주십시오.”

비궁주는 물끄러미 호요성을 바라보았다.

신교의 수뇌부들 중 그녀가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 호요성이었다.

보통 머리가 좋은 사람은 충성심이 얕기 마련이다. 그리고

스스로 똑똑하다는 걸 아는 사람치고 고지식한 자는 드물다. 충성 역시 고지식의 일면이라면, 확실히 호요성은 특별한 사람이다.

비궁주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인복은 있어요.”

“예?”

“아니에요.”

의자에 등을 묻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하늘에 오른다 함은 다른 게 아니에요. 말 그대로 승천(昇天)이죠.”

“그러니까.......”

“다른 말로 등선(登仙) 혹은 열반(涅樂)에 드는 경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호요성의 눈이 커졌다.

“등선? 열반?”

“그래요. 도불의 수행자들은 깨달음의 극치를 그렇게 표현하죠.

그것은 범인(凡人)의 눈으로 보기엔 죽음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죽음과는 차원이 달라요.”

비궁주가 눈을 감았다.

이승에서의 효율적인 강함을 추구하는 무(武)와는 달리 술법(術法)은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만류귀종이라 종국에는 하나가 된다지만, 세상의 본질에 더 가까웠던 자신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깨달음을 얻은 교주의 존재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죽음이란 축복이자 재앙이에요. 세상에 난 모든 생명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죠.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고약하기까지 하죠. 극단적인 염세주의자들은 생명의 탄생 이유가 죽기 위해서라는 말로 조소하기도 해요.

그런 의미로 보면 죽음이란 곧 재앙이나 마찬가지죠.”

"....."

“그러나 죽음은 축복이기도 해요. 들숨 한 번에도 세상의 번뇌가 나를 어지럽히는데, 그리 고통 가득한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방법은 오직 죽음뿐이에요.

자연의 축복으로 태어났으니 죽음 또한 축복인바. 그래서 생(生)은 찬란할 수 있는 것이고, 세상은 변화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런 심각한 자리에서 느낄 감정은 아니지만, 호요성은 문득 석학에게 가르침을 받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어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진다.

하나는 확실했다. 비궁주는 호요성의 생각보다 훨씬 깊은 연륜을, 경험을,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축복이든 재앙이든, 예기치 못한 순간에 다가온다는 건 똑같죠.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에요.”

"하면.......”

“등선, 열반, 승천. 어떤 단어로 표현하는 하늘에 오르는 것은 죽음과 달라요. 생명의 죽음은 대자연을 살찌우지만, 승천은 세상의 이치로 화하게 되죠.”

“이치라니요?"

“대자연의 흐름, 세상의 섭리, 마땅히 그리되어야만 하는 법칙.”

"...."

“교주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경지에 오르신 것이에요. 이미 완전한 세상에, 또 하나의 이치가 되어 운명에 관여하는 것.”

비궁주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 표정이 신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말 그대로 신(神)이에요. 신에게는 육신이 필요치 않은 법,

그래서 육신이라는 겉옷을 벗고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뭔가 엄청난 얘기를 들어 버린 것 같았다.

호요성은 비궁주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말하는 내용을 머릿속으로는 이해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오감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자신의 호기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궁주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교주님께서는 무려 십 년이 넘도록 하늘의 부름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이로군요.”

“맞아요.”

“그것이 어떤 경지인지 저 같은 범부는 상상도 하지 못하겠습니다만, 막연히 이해하기로 하늘의 부름을 거부하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건 알겠습니다.”

"몹시 힘들지요. 그것은 일종의 생리 현상과 비슷해요. 마땅히 잠을 자야 하는데 수면에 들지 않는 것과 같지요. 무려 십 년이 넘도록 말이죠.”

“그렇다면 교주님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하늘에 오르고 싶으시겠군요.”

“그렇지요.”

"한데 어찌하여 소교주님의 마위가 늦춰질 거라고 하신 겁니까?

궁주님의 말씀대로라면, 교주님께선 하루라도 빨리 마위를 물려주시고 신(神)이 되시면 그만입니다.”

비궁주가 눈을 떴다.

“교주님께서 역천(逆天)을 저지르셨기 때문이지요.”

"예?"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것,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것은 마땅한 순리(順理)예요. 한데 교주님께선 십 년이 넘도록 순리를 거부하고 계세요.

사람이라면 죽었겠지만, 너무도 높이 올라 쉽게 죽지도 못하죠.”

“......!!”

“심지어 교주님께서는 세상의 섭리를 뒤흔드는 힘을 몇 차례나 쓰셨더군요.

애초에 이승에 존재해서는 안 될 분께서, 이승에 허락되지 않을 힘을 두 번, 세 번 휘두르셨어요. 하늘이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요?”

“그, 그럼 교주님께서는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둘 중 하나겠지요. 하늘의 강제적인 부름을 받게 되거나 아니면... 하늘에서 멀어지거나.”

호요성의 눈이 충혈되었다.

비궁주가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언뜻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아마 하늘은 몇 번이고 그분을 데려가려 했을 거예요. 강제로 육체를 지워 버리려 했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제 눈에는 아직 교주님이 보여요. 끝까지 거부하신 거죠.”

"...."

“참 바보 같은 분이죠? 영겁(永劫)을 살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찰나의 속세에 미련을 두다니.”

*

*

*

...?'

송금백의 눈이 흔들렸다.

'뭐지?'

담사영과 대화를 나누는 이천상을 살피던 그는 문득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주르륵.

천하무적, 고금제일일 것이 분명한 마신의 목덜미.

그 강인한 목에 한 줄기 땀이 흐르고 있었다.

우웅.

품 안에 화신보옥이 은은한 떨림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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