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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95화 (395/774)

395화. 부조리의 교차 (1)

두우웅!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둔중한 울림.

신에 이른 능력을 지닌 자조차도 짐작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이 경지에 오른 이래, 이천상은 처음으로 당황했다.

'이것은?'

순식간에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든 그는 환하게 빛나는 구슬 하나를 보았다.

'중단전(中丹田)’

상중하의 삼단전이 하나로 합쳐져 더 이상 단전이 필요치 않은 지고의 경지.

그러나 한 번 생겨난 단전은 사라지진 않는다. 그저 단전의 의미가 없어졌을 뿐,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연마된 삼단전은 빛의 형태로 그의 몸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상을 일으킨 것은 그중 중단전이었다.

우우우웅!

순수한 빛으로 휩싸여 있던 중단전이 스스로 진동하며 빛을 안개처럼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얼음에서 흘러나오는 한기(寒氣) 같았다. 아주 느린 속도지만, 또한 확실하게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천상은 군림마황기를 집중시켰다.

이미 하단전을 넘어 중단전, 나아가 상단전까지 치고 올라간 군림마황기로 신체와 무공, 세상의 흐름을 엿보던 그였다.

같은 욕계문이라도 서량과는 차원이 다르다.

위잉!

이상을 일으켰던 중단전이 서서히 진동을 멈추었다.

만약 술가(術家)의 공부를 지극히 익힌 고수가 이것을 보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천상은 지금 마공지기(魔功之氣)를 이용, 깨달음으로 이루어 낸 단전의 붕괴를 봉해 버렸다.

당장 승천을 해도 모자람이 없는 반선(半仙)이라도 아직은 육신을 지닌 사람임이 분명한데,

강제적인 천명(天命)을 제 의지로 막아 버린 셈이었다.

승천 혹은 죽음 중 하나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이천상은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은 채 현재의 상태를 끊임없이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역천(逆天)이다. 순리에 반하는 짓이었다.

하늘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아 인간으로 남은 이들도 있었고, 수개월을 기다리다 마침내 오른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오랜 기간, 더하여 세상에 나와선 안 될 힘까지 써 가면서 버틴 이는 이천상이 최초일 것이다.

보다. 못한 하늘이 강제로 끌어 올리려 했으나, 이천상은 그조차도 거부해 버렸다.

남은 것은 파멸뿐이다.

살아온 인생, 살아가는 인생 전부가 역천이다. 하늘은 이런 존재를, 이런 비인(非人)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삼단전에 고루 형성한 양신(養神)을 거두어 승천의 기회를 앗으려 했건만, 그것도 막아 버렸다.

콰르르릉!

굵은 눈송이를 뿌려 대던 하늘 너머에서 천둥이 쳤다.

진짜 천둥인지, 그저 환청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천상은 그 소리가 마치 하늘의 분노를 상징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치이이익!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중단전을 틀어막아 붕괴를 막았지만, 문제는 중단전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하단전이다. 정(精)으로 가득한 하단전의 빛이 서서히 흩어지려 하고 있었다.

흡!

우우우우웅!

중단전을 봉인한 군림마황기가 순식간에 하단전으로 내려와 흩어지는 기를 막았다.

이천상의 의지는, 힘은 막강하기 그지없었다. 더 오를 곳이 없는 군림마황기가 정기(精氣)의 흐트러짐을 완벽하게 막아 냈다.

거의 봉인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 삼기(三氣)를 안고 그대로 흩어진다면 진정 영겁의 신이 될 수 있다. 조금 흐트러졌지만, 이 정도면 승천에 무리는 없었다.

그렇다. 지금 이 상태면 앞으로의 일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남은 한 부분만 멀쩡하다면,

번쩍!

순간 한 줄기 벼락이 정수리, 백회혈(百會穴)을 관통하여 전신의 신경으로 퍼져 나간 것만 같았다.

'신(神)이....’

정기신의 마지막이자, 인간의 몸으로 하늘에 오를 수 있도록 해 주는 유일한 통로,

영혼의 안식처이자 의념의 개척지, 만능(萬能)을 가능케 하는 가장 깊은 잠재력을 안고 있는 장소.

우우우웅.

상단전이 조금씩, 조금씩 떨림을 발했다.

중단전과 하단전의 흩어짐은 상단전에서 뽑아낸 군림마황기로 단숨에 휘어잡았지만,

정작 상단전이 흔들리기 시작하니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감이 서질 않는다. 온통 빛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흐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도 뜬금없이, 너무나 갑작스레.

그간 쌓아 둔 모든 것을 잃게 된 위기의 순간.

그런 순간에도 이천상은 평정을 잃지 않았다. 당황했고, 당혹스러웠지만 감정의 변화가 크진 않았다.

'왜?'

왜 지금 와서야 이러는가.

원한다면 국소적인 영역 내, 자연재해에 가까운 힘을 발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진신진력을 발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멸마금진을 부술 때 군림마황기의 비기를 썼지만, 자신의 넘치는 기를 끌어다 썼을 뿐 하늘의 힘은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이 무한대에 가까운 힘을 수도 없이 쓴다면 언젠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겠지만, 고작 '한 번 썼다고 영육(靈肉)이 붕괴할 만큼 얕은 깨달음이 아니었다.

왜? 왜지?

'또다시 나의 희망을 막는가.'

마치 과거 마도천하를 향한 자신의 발길을 끊어 내려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막으려 드는가? 강호를 강호답게, 무림을 무림답게 만들려는 나의 바람을 막으려 드는가?

나의 손이 아닌, 후계의 손으로 마도천하를 이루게 하려 했거늘, 저 참견쟁이 하늘은 그조차도 내게 허락지 아니하는가?

번쩍!

그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또다시 그의 백회혈을 강타했다.

'그렇군.

이유 정도는 알려 주겠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본래 알았을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인지.

마침내 이천상은 알 수 있었다. 왜 지금에야 자신의 존재'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인지.

이천상이 담사영을 바라보았다.

방금과는 다소 다른 이천상의 눈을 보며, 담사영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요?"

문제가 있지.

'참으로 우습구나.'

이래서 세상은 재미있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십 년이 넘도록 천하의 이치를 꿰뚫어 보며 세상이 무엇인지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엄한 곳에서,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아니, 그건 아닌가.’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담사영과 송금백은 그것을 문제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둘의 착각이었다.

그의 고갯짓은 씁쓸함과 놀라움, 감탄과 허무함을 담고 있었다.

'그저 나의 오만함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 나라는 천마의 삶이 세상과 맞지 않았을 뿐이다.'

찰극천멸마금진은 실패했다.

'모조리 흩어 냈다고 생각했거늘, 정작 나라는 과정은 남아 버렸군.’

동시에, 찰극천멸마금진은 성공했다.

북상하는 고금제일인을 막는 것은 실패했다.

그러나 진의 축이 무너진 뒤에도 끊임없이 힘을 불린 멸마금진의 진력은 기어이 이천상의 발목을 붙들고야 말았다.

가만히 놔두었다면 호북의 현 네다섯 개를 날려 버렸을 극한의 파괴공력. 그 모든 힘을 끌어안아 축정의 기술로 대자연에 환원했다.

문제는 힘의 통로인 이천상이었다.

멸마금진의 힘을 빨아들인 게 아니라, 그 섭리를 뒤흔드는 힘을 빨아들여 대자연에 생기(生氣)를 되돌려 준 이천상이라는 거름망이 남아 버린 것이다.

이천상이든 멸마금진이든, 애초에 세상에 나와선 안 될 존재다.

이천상 하나라면 어떻게든 세상에 머무를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역천의 힘을 잠시나마 몸에 받아들인 '지금의 이천상'은 결코 남아 있을 수 없다.

언제고 세상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하늘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어찌 그리 골똘히 생각에 잠겨 계시오?”

"....."

“이보시오, 교주.”

담사영의 말에도 이천상은 미동이 없었다.

조심스레 입을 열려던 송금백은 순간 품에서 무언가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바로 화신보옥이었다.

'왜?'

송금백은 저도 모르게 보옥 위에 손을 얹었다. 아직 개옥(開玉)의 구결에 따라 진기를 운용하지도 않았는데, 보옥이 저 스스로 떨리고 있었다.

발동의 위험은 없다. 그럼에도 보옥이 떨림을 발한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화산을 눈앞에 둔 것처럼 공포에 떠는 듯했다.

'대체 왜 이러는.......’

그때, 이천상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

“그래, 무림을 강호에서 떼어 내라는 말을 하고 있었지.”

까먹었던 사실을 다시 확인하듯 이천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홀로 수긍하고 있었다.

담사영과 송금백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육성의 대화도, 전음도 오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을 보며 상대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천상은 뭔가 달라졌다. 하늘 높은 곳에서 거하던 초월자에서, 산 정상으로 내려온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짐작하고들 있군.”

“......?”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네놈들의 명운은 아직 끊어지지 않을 모양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놀랍게도 이천상은 자신의 상태를 숨기려 들지 않았다.

“나의 힘이 흩어지고 있다.”

“뭐, 뭐라고?!”

“멸마금진의 힘을 봉인하는 과정 자체가 문제였군. 멸마금진은 날 막지 못했지만, 멸마금진을 부순 나를 하늘이 제지하는구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다소 어렵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담사영은 물론이거니와 송금백 역시 이천상의 말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결국 하나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약해진다고? 이 괴물이?

너무도 뜻밖의 상황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이천상이 미소를 지었다.

방금까지 보여 주던 미소와는 다른, 조금은 지치고 씁쓸해 보이는 그 미소는 분명 인간적이었다.

“달라질 게 있나? 승천의 길이 막혀도 인간의 도(道)는 남을 텐데.”

한순간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시간이 별로 없군. 애초에 길게 끌 문제도 아니겠지. 하니 속히 판단을 내리도록.”

“........달라진 게 왜 없다고 생각하시오?"

이천상이 담사영을 보았다.

아직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듯한,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희망의 싹이 올라오는 그의 얼굴이 점차 사악함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힘이 흩어진다고 하오. 그것만으로도 내게, 우리에게 큰 가능성이 생겼음을 모르시오?”

이천상은 아무런 말도 없이 담사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후좌우가 전부 막힌 곳에서 마침내 살 수 있는 길을 발견한 병사처럼, 그의 얼굴이 해사해졌다.

“무림을 강호에서 떼어 내라고 하셨소?"

“그렇다.”

“관부와 황실, 민초와 상단, 모든 영역으로 뻗은 손을 끊어 내고 무림인들끼리 한판 승부를 벌이자는 말씀이오?"

"그렇다.”

“오로지 칼과 힘으로 승부를 내자는 말이로군. 정사마, 세 곳으로 나뉜 무림의 지파들을 하나로 통합한 무림황제(武林皇帝)가 되고 싶으신 게요?"

“그따위 지위에 흥미 없다.”

"그러시겠지. 그러나 교주의 후계자는 법도를 갖춘 패왕이 되어 중원 천하를 경영하겠지.”

담사영이 씨익 웃었다.

“마도천하(魔道天下)를 그런 식으로 이루어 보시겠다는 것 아니오?"

이천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후계자를 이길 자신이 없는 모양이로군.”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게다가 이천상의 힘은 아직 건재했다. 담사영은 이천상의 말에 울컥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담사영은 이전보다 훨씬 더 침착해졌다.

마치 이천상이 진정으로 세상을 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늘이 본 것처럼.

담사영 역시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천상의 저 능력이, 삶이 흩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내 대답을 들려 드리리다.”

담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절하오.”

이천상의 미소가 짙어졌다.

스르릉.

마황보검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 무시무시한 마검을 보면서도 담사영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당장 목숨이 날아갈 순간임에도 어떻게든 평정심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먼저 지옥으로 가거라.”

피이이이이잉!

마황보검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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