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97화 (397/774)

397화. 부조리의 교차 (3)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궁주님?”

"......"

“왜 그러십니까?”

호요성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는 비궁주의 저런 얼빠진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궁주님?!”

“......바뀌었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질문을 던지면서도 호요성은 왠지 모를 초조함을 느꼈다. 비궁주의 표정에 깃든 지극한 슬픔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바뀌었네요. 미래가.”

“그러니까 그것이 대체.......!"

비궁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창가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떠올랐다.

“참으로 교주님다우십니다. 마지막까지도 강요받은 선택을 거부하시다니요.”

“......?”

"총군사.”

“말씀하십시오.”

비궁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교상(敎喪)을 준비하세요.”

*

*

*

우웅.

마기의 파동이 심상치가 않았다.

멍하니 의천맹을 바라보던 마동필과 위홍련이 서량을 돌아보았다.

“.......소교주님?"

마동필의 조심스러운 물음에도, 위홍련의 강렬한 시선에도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우우웅!

서량이 쥐고 있는 천마도가 더더욱 강렬한 울음을 발했다.

마기를 실은 것도 아니요, 서량의 살기와 공명한 것도 아니었다.

칼이 스스로 울고 있다. 초대와 칠대의 애병을 녹인 칼날에, 구대의 선천마기로 제련된 천하제일마병이 도명(刀鳴)을 터트리며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마치 돌아갈 곳을 잃은 아이처럼.

우우우웅!

기어이 천마도에서 은은한 마기까지 올라왔다.

칼날 자체에 봉인되어 있던 선천마기였다. 고금 최고의 순도를 자랑하는 마신의 마기가 서량의 장심(掌心)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전신을 휘돌았다.

그 마기가 외치고 있었다.

가자.

어서 저곳으로 가서 나를 멋들어지게 휘둘러라.

마치 영성(靈性)이라도 가진 것처럼, 천마도가 서량을 유혹했다.

그 유혹의 근간에 짙게 깔린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저 멀리 의천맹을 보던 서량이 입을 열었다.

“대군장.”

엄태경이 부복했다.

“예, 소교주님.”

"....."

다음 말이 나오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투를 준비하라.”

모두가 당황하여 서량을 보았지만, 엄태경은 아무런 의문도 표하지 않았다.

"소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엄태경의 명령에 따라 천마군이 도열했다. 흩어져 있다가 다시 모인 천마일군의 위용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고루, 철검.”

“예, 소교주님.”

"광마대와 진마대를 맡게.”

평소와 같은 존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고루마존도, 철검마존도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할 뿐이었다.

설령 십대천마로 인정받지 않았다 한들, 서량에게서 풍겨 나오는 위엄은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모든 부대가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준비가 끝났음에도 서량의 후속 명령은 없었다.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양, 깊고 깊은 눈으로 의천맹 측을 말없이 응시하는 서량.

그 깊은 눈에 실린 감정은 몹시 복잡했다. 그리고 그 복잡한 감정들은 이내 하나의 슬픔으로 모였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보였다.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천상의 말을, 이천상의 언행을, 그리고 이천상의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그는 신교의 위대한 천마가 진정 최후의 순간을 맞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주님.’

서량이 눈을 감았다.

멀찍이 떨어진 금호의 영기를 통해 지금의 이천상을 느끼는 그였다.

'그때부터였나?'

의천맹과 철혈성이 손을 잡았다는 의심이 일었을 때,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후, 이천상이 천마군을 대동하고 북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불안감은 점차 선명한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천상이 도달하기 전에 의창으로 향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신의 앞길을 막는 자들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도 분명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천상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왜?'

이천상은 반선의 강자다. 서량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작심하고 마공을 개방한 이천상의 털끝 하나 쉬이 건드리지 못한다.

그리 무모하고도 무례할 수 있는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찰의 목적이 컸으나, 기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이천상은 그를 나무라지 않았을 것이다.

다 알고도 의창으로 향했다. 가서 멸마금진의 힘을 느꼈고,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조금이나마 피해를 입히고자 했다.

이천상을 위해서였다.

그가 조금이라도 힘을 덜 쓰게 하고 싶어서.

그가 조금이라도 이승에 더 남아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더 가르침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그래서 서량은 목숨을 걸었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이천상을 위해서

그리도 날뛰었다.

'어쩌면 나는, 거기까지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천상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니, 언제라도 홀연히 사라질 수 있는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그를 흥미롭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소교주님.”

마동필이 조심스레 서량을 불렀다.

서량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그의 머리로, 군림마황기의 욕계문을 통해서 이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인지 실제인지 모를, 찌를 듯한 위엄이 사라진 인간적인 목소리가.

- 어찌하여 그리 슬퍼하느냐.

- ......

- 그리 슬퍼할 이유가 있느냐?

- 이유가 있어서 슬퍼해야 합니까?

- 청출어람이 따로 없군. 한 방 맞았구나.

- 바보 같으셨습니다.

- 무엇이 바보 같았다는 것이냐??

- 애초에 교주님께서는 이곳에 오셔서는 안 되었습니다.

- 천마에게 갈 수 없는 길, 가지 않아야 할 길 따위는 없다.

- 갈 필요가 없는 길은 있습니다.

- 갈 필요가 없는 길도 없다. 천마의 보보(步步) 자체가 필요요, 이유다.

걸었으면 돌아보지 않고, 보았으면 외면하지 않으며, 들었다면 흘리지 않는다. 그것이 천마다.

- 어찌 그리 무모하십니까? 제게 천방지축처럼 날뛰지 말라고 하셨으면서, 어찌 예까지 와서 훌쩍 떠 나려 하십니까.

- 나의 삶은 십 년 전에 끝이 났다.

- ......

- 지금껏 이승에 육신을 가둬 두고 있었던 것 자체가 역천이었다.

- 참으로 천마답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고작 이것입니까? 끝끝내 천명(天命)을 거부하시더니, 고작 이런 황량한 땅에서 최후를 맞으려 하십니까?

- 내가 선택한 무덤이다.

- 무덤에 몸을 될 분이 아니잖습니까!

- .....

- 당신은 천마입니다, 천마! 한풀이에 목을 매는 이천상이 아니란 말입니다! 당신이 진짜 천마라면 본 교를 위해서...!

- 네가 있잖으냐.

- ......!

- 나에겐 네가 있다. 그리고 네겐 자격이 있다.

- 그래서 제게 깨달음을 주셨습니까? 수십 년 동안 안고 있던 짐을 내팽개치고 싶어서 저를 이 자리로 이끌었습니까!

- 오해하지 마라. 나는 그저 한 명의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었을 뿐, 널 그 자리로 이끈 것 은 너 자신이다.

네가 원했기에 가르침을 주었고, 네가 원했기에 그 자리를 줄 수 있었던 것이다.

- 다 말장난일 뿐입니다! 저는 한 번도.........!

- 외면하지 마라.

- 너의 강점은 무공의 재능도, 뛰어난 머리도 아니야. 너는 나아가려는 이다.

- ......

- 자유를 얻기 위해 수백의 고수를 죽이면서까지 탈출을 감행했던 살수지왕,

진정한 자신을 깨닫고 후계자가 되기 위해 날뛰었던 삼공자, 한을 풀기 위해 누구보다도 빨리 중원에 진출하여 무림을 뒤 집은 천마신교의 소교주.

- ......

- 그것이 바로 너, 서량이다. 그런 너를, 제아무리 나라 한들 내 입맛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었을 것 같으냐?

- ......

- 지금의 넌, 지금 네가 서 있는 그 자리는 모두 네가 노력하여 쟁취한 것이다. 이전 생에서도, 지금도 네 삶의 주인은 너라는 것이다.

- .....

- 하지만 너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게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

오늘 이후로도 너의 삶은 또 다시 역동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연을 맺은 이들과 좌충우돌하며 미래를 살아가게 될 것 이다.

- 그러니 그리 울지 마라.

마동필은 숨을 죽였다.

서량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두덩이와 코는 빨갛게 물들었고, 목은 희미하게 떨렸다.

천마도를 쥔 손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소리 높여 울지 않음에도 지극한 슬픔이 묻어났다. 마동필은 서량이 저리 우는 것을, 저리 슬퍼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마동필만이 아니었다.

호왕도, 마존들도, 부대원들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서량이 슬퍼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그들은 복잡한 눈으로 말없이 서량을 볼 수밖에 없었다.

- 너는 내가 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온 남자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 ......

- 본교를 잘 이끌 수 있을 것이다.

- 제가 날고 긴다 한들, 교주님만 하겠습니까.

- 나보다 더 잘하겠지.

- .....

- 이제 교주는 너다.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환청처럼 들려오는 이천상과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슬픔이 커졌다.

서량은 눈을 감았다.

지극히 슬펐지만, 이걸로 되었다. 슬픔이라는 감정 하나로 보내기엔 너무나도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때였다.

콰르르릉!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의천맹 본성이 수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번쩍!

그와 동시에 천마도에 군림마황기가 실렸다.

서량은 땅에 천마도를 박아 넣었다.

확!

칼을 땅에 박은 그가 천천히 절을 올렸다.

일배, 이배, 삼배....... 마지막 구배까지 지극한 공경을 담은 절을 올렸다. 바로 스승께 올리는 구배지례(九拜之禮)였다.

아련하게 느껴졌다. 이천상의 감정이.

목소리로는, 단어로는 담을 수 없는 그 거대한 감정은 순수한 기쁨이었다. 서량에게 구배지례를 받았다는 걸 안 이천상의 감정이 욕계문을 통해 느껴졌다.

그거면 됐다.

서량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병력을 몽땅 끌고 가서 스승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가 원치 않을 것이다.

저곳은 더 이상 의천맹이 아니었다.

바로 이천상의 무덤, 구대천마의 신릉(神陵)이었다. 스스로 원해서 홀로 들어간, 오직 이천상만을 위한 자리였다.

서량은 그의 마지막을 난잡한 광기로 얼룩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찾아뵈는 날 크고 따스한 이불을 덮어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추워도 참으십시오.”

이천상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 돌아가는 길에 사자의 발톱이나 몇 개 뽑아 두어라. 그래야 편할 것이다.

콰득!

절을 마친 서량이 천마도를 뽑았다.

그가 의천맹을 바라보며 외쳤다.

“마황거를 내려라!”

쿠구궁!

거대한 가마가 천천히 내려섰다.

몸을 돌린 서량이 마황거에 올랐다.

"우린 이대로 철혈성으로 향할 것이다!"

모두가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붉어진 눈과 코는 그대로였지만, 좌청우홍의 뇌화마안(雷火魔眼)을 피워내는 서량의 모습은 가히 천마(天魔)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위용을 자랑했다.

“불에 타 신음하는 적도들의 공포를 제물 삼아 교주님의 넋을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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