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399화 (399/774)

399화. 부조리의 교차 (5)

"문주님.”

"오셨는가.”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바쁜 거야 예전에도 그랬지. 배꿇을 일 없고, 잠자리도 푹신하니 못 지낼 건 또 뭔가.”

"산해진미가 차려져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고, 비단 침상에 누워도 흙바닥에 눕는 것 같다면 그것이 어찌 편안한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 못 보던 사이에 풍류가 늘었네.”

“문주님께서도 많이 밝아지셨습니다. 다행입니다.”

“사실, 자네 말이 맞네. 이렇게 웃지 않고서야 버티기 힘들기는 했네.”

“굳이 할 말은 아니었군.”

“죄송합니다. 다 저희가 못난 탓입니다.”

“못난 수장 때문에 고생하는 부하들은 있어도, 열심히 하는 부하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수장은 없다네.

자네들이 그간 나 이상으로 고생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아닙니다.”

“됐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런 얘기로 분위기 죽이진 마세.”

“예.”

“그래, 알아보라고 한 것은 어떻게 됐는가?"

“전부 알아보았습니다만........”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 있군.”

"그렇습니다. 문주님께서 명을 내리신 것 중 두 가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럼 그것부터 들어 보세.”

"우선 첫째, 의천맹주의 행방입니다.”

“보고하게.”

“당시 의천맹 본진에 있었던 의천맹주가 홀연히 사라져 버렸지요.

죽었다면 시체라도 있어야 하고, 살았다면 맹을 수습해야 함이 마땅한데, 귀신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심지어 의천맹의 남은 정보단이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의천맹주가 천마를 따라 등선했느니, 천마의 공격에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렸느니 별 얘기가 많았어.”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사해 본 결과, 의천맹주가 천마에게 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확실한가?”

“그 부분은 확실합니다. 무림맹 외성 수비대원들의 증언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증언이라면 어떤?”

“천마가 곤룡포만을 남기고 사라졌을 때, 그 앞에 의천맹주가 서 있었다고 합니다.”

“서 있었다?”

"그렇습니다. 손속을 나눈 것 같진 않았다고 합니다.”

“으음.”

“하지만 그 이후의 행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정도 고수가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뉘라서 쫓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문제는.......”

“굳이 그리 홀연히 사라질 필요가 있냐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의문입니다. 생존해 있을 확률은 높은데 어디에 있는지, 살아 있다면 왜 일언반구도 없이 사라졌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예.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사를 좀 더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게. 다음 두 번째는?”

“철혈성주의 침묵입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았지.”

"예. 철혈성주 수라제 송금백은 강골호한입니다. 그 특유의 호탕한 성정으로 사파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지요.

심지어 그 무공보다 성격에 반해 휘하로 들어간 고수들이 더 많다는 평가를 받는 이가 송금백입니다.”

“그렇지.”

“그런 그가 이 사태에 아무런 반응도 없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송금백은 호탕하면서도 적당히 세속적이며, 자존심 역시 강합니다. 사파인답게 약해 보이는 것은 죽어도 싫어하지요.”

"그래, 그래서 명을 내린 것이네.

철혈성주가 침묵하는 이유를 알아보라고, 평소 그의 성정대로라면 자신의 손발을 자른 마교를 무너트리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거나,

하다못해 여론을 통해 성토라도 해야 했네.”

“저 역시 그것이 의아했습니다. 낙정혈사와 광마혈사로 인해 혼돈의 도가니가 된 중원 땅에서, 가장 먼저 움직일 사람은 철혈성주라고 보았습니다.”

"한데도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예. 다만 그로 인해 하나는 알 수 있습니다.”

“철혈성이, 정확히는 송금백이 뭔가 꾸미고 있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본문과 철혈성은 우호 관계는 아닐지언정 가끔 상부상조 정도는 해 왔습니다.

하여 이번에도 뒷골목을 통해 접선을 시도해 봤지만, 그들과 관련된 모든 정보 조직의 문서 교환이 통제되어 있었습니다.”

“음.”

“이건 그저 제 생각입니다만...... 혹시 철혈성주가 겁을 먹은 것은 아닐는지요?”

“겁을 먹었다?”

"그렇습니다. 당대 마교주는, 아니 이제는 사라져 버린 전대 천마는 단신으로 믿기 어려운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낙정혈사라는 사건은 아마 전무후무한 혈사로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

“하물며 서 소교 역시 천마의 후계자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요.

비록 교주를 잃었다고는 하나, 당대 마교의 힘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게다가 철혈성주는 천마의 신위를 코앞에서 봤으니.......”

“그럴 리는 없네.”

"......”

“말했듯, 송금백은 호탕하면서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세. 또한 본인의 어떤 모습이 휘하 사파인들에게 잘 먹히는지도 알고 있어.

그런 그가 제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가만히 숨죽인 채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한다? 절대 그럴 리 없네.”

“문주님 말씀대로라면 정말 겁을 먹었다 한들 본인이 겁먹지 않았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더 과격하게 움직였겠군요.”

“그렇지. 결국 의천맹주와 철혈성주, 두 사람 모두 상식 밖의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네.”

“그렇습니다.”

“이토록 모호했던 적은 또 처음이로군.

중원 무림을 좌우하는 두 거인이 이해 못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향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상상이 되질 않아.”

“문주님.”

“말씀하시게.”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의천맹도 와해가 된 판국에 이만 그분께 돌아가시는 것이..........”

“안 돼.”

"아직 의천맹주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막말로 생사 확인도 안 된 판국인데 이런 때에 기다렸다는 듯 그분께 돌아가면, 의천맹주는 다시 한번 본문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기반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이제는 본문을 건드릴 힘도, 정신도 없을 것입니다.”

"속단하지 말게. 내가 옆에서 본 의천맹주는, 의천맹이 통째로 증발한다 해도 세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네.

게다가 그에게는 아직 소림과 무당을 제외한 일곱 문파가 함께하고 있잖은가.”

“그렇긴 합니다만.”

"본문을 봉쇄한 것은 의천맹의 병력이 아니라 칠파였네.

그들의 힘은 아직도 건재해. 게다가, 혹여 의천맹주가 돌아온다면 필시 많은 준비를 하고 나서야 돌아올 걸세.

그분을 위해서라도 난 그때까지 의천맹주에게 붙어 있는 것이 좋아.”

“오래 걸릴 것 같으십니까?"

“글쎄. 그 시기가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 같군. 그때까지 자네가 고생 좀 해 줘야겠네.”

“물론입니다.”

"오랜만에 만났네만, 벽에도 귀가 있기 마련일세.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네. 그때 보세.”

"예, 문주님.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자네도.”

스르륵.

사내가 사라지자, 이내 문주라 불리던 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바삐 움직여야 할 시기에, 참으로 막막하구나.”

*

*

*

적송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확실히 공기가 다르군."

북부는 추위가 한창이었다. 봄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 동장군이 마지막 힘을 내며 삭풍과 폭설을 마구 흩뿌리고 있었다.

그러나 호남으로 들어서자 확실히 추위가 덜해졌다.

남쪽으로 갈수록 기후가 온화해지고 습도가 높아진다.

한서불침의 경지는 까마득한 과거에 돌파했지만, 그래도 겨울날 따스한 곳으로 오니 기분이 한층 좋아졌다.

하지만.......’

적송이 저 멀리 떨어진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흉흉하구나.'

호남 형산은 중원오악(中原五岳) 중 하나로 꼽히는 명산 중의 명산이었다.

그런 명산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흉살(凶殺)의 기운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일반인, 아니 절정고수라도 느끼기 힘든 이 기운은 이미 무공의 형과 식을 초월한 고수만이 발산할 수 있는 초고밀도의 기(氣)로 꽉 차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외천의 살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주변에서 수백의 고수들이 무지막지한 마기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다만 그 많은 고수의 마기가 한 명의 절대자가 발산하는 기에 가려졌을 따름이었다.

적송의 눈이 깊어졌다.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구나. 그리고.......'

흉흉해졌다.

이 압도적인 기파에는 허무(虛無)와 살기, 슬픔과 광기 등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한 줄기 이성으로 꽉 틀어막은 느낌이었다.

'그럴 만도 하겠지.'

한숨을 내쉰 적송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공간을 접고 이동하는 그의 신법은 소림제일의 신법이라는 금강부동(金剛不動)의 신기(神技)였다.

마도 무림에서는 마황군림보(魔皇君臨步)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정파 최고의 신법으로 평가받는다.

그러한 신법을 극치에 이르도록 익힌 적송의 이동 속도는 가히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투! 투우웅!

몇 개의 봉우리를 순식간에 지나치고, 마침내 흉흉한 기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한 봉우리 앞에 적송이 섰다.

그때였다.

후욱.

봉우리 밑, 저 멀리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한 줄기 강렬한 예기가 느껴졌다.

굉장한 고수였다. 십대고수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는 예기는 파멸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마검(魔劍)의 위용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존인가?'

적송의 추측은 정확했다.

뚜벅뚜벅 걸어온다 싶더니, 어느새 십 장 너머에 도착한 마인은 철탑 같은 체격을 한 노검사였다.

노검사, 철검마존이 고개를 숙였다.

“적송 선배를 뵙소, 철검이오.”

"반갑네. 자네가 마존 중 검도(劍道)에 가장 정통했다는 철검이로구먼."

“과찬이시오.”

무뚝뚝하다.

비록 걷는 길은 다르지만 정무쌍신의 이름을 존경하지 않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파인들은 물론 마도 무림의 고수들도 정무쌍신은 존중해 준다.

그럼에도 철검마존의 얼굴에선 상대에 대한 공경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날이 잘 선 칼과 같다. 투박하면서도 꼿꼿하니, 철검이라는 칭호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군.'

적송이 입을 열었다.

“안내해 주게.”

“후배를 따라오시오.”

철검마존이 몸을 돌려 봉우리를 올랐다.

적송은 그의 뒤를 따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봉우리 곳곳에 마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줄 맞춰 도열한 게 아니라 각기 흩어져 형산 전체를 감시하고 있는 듯했다.

적송이 물었다.

“서 소교는 어떠한가. 큰 전투를 치렀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은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적송은 무안해하지 않았다. 이들의 기분이 최악이라는 것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이각이 넘도록 걷고서야 두 사람은 정상에 도달했다.

철검마존이 몸을 돌렸다.

“저곳에 교주님께서 계시오.”

교주님?

적송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교주라니? 서 소교가.......”

“만에 하나.”

몸을 돌린 철검마존이 적송을 노려보았다.

시퍼런 안광에서 수천 자루의 보검이 화살처럼 쏘아지는 것 같다.

비록 자신보다 몇 수 아래인 하수지만, 적송은 철검마존의 눈빛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교주님의 심기를 어지럽히거나 그분에게 일말의 해라도 가한다면, 선배는 오늘 살아 돌아갈 수 없소.”

"....."

“하면 이만."

철검마존이 걸어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멀어지는 그를 보던 적송의 얼굴에 혼란이 일었다.

“......교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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