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01화 (401/774)

401화.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우다 (1)

"마위(魔位)?! 교주 대관식을 거행한단 말이냐?"

“예.”

“지금 이 시점에?”

“사실 달리 생각해 보면 지금만큼 괜찮은 시기도 없을 듯합니다.

삼십 년간 대외 활동을 축소했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전력은 강해졌습니다.

전대 교주는 강력한 위엄과 내정(政) 능력으로 교인들을 다독였으나, 그래도 그들은 살코기를 뜯는 야수지요.”

“즉, 네 말은 그들의 불만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새로운 마위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냐?"

“사람들이 왜 신(神)을 경애하겠습니까. 단순히 위대한 존재라서 신을 경애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 바라는 게 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지옥 같은 세상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존재,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줄 존재를 찾습니다.

그 바람이 모이고 모인 것이 종교 아니겠습니까.”

“신선한 시각이로구나. 신을 따르는 교도들에게는 기분 나쁜 말이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신을 믿고 따르는 교도들을 다독여 줄 존재는 필요합니다. 하물며 전대 교주는 역대 최고로 손꼽히는 천마였습니다.

그런 걸물이 적과 싸우다 죽었으니, 교도들의 분노는 필설로 형용키 어렵겠지요.”

“네 말이 옳다. 하기야 수장의 자리가 오래 비워져서 좋을 건 없을 테니."

“그렇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걸물인가 싶어 중원에 나왔거늘, 얼굴도 보기 전에 교주가 되려 한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기실, 본궁의 일이 다 처리되고 난 후 그를 도와 후계 자리를 공고히 하려 했는데, 어느새 혼자서 후계자 자리를 꿰차더니 벌써 교주직이 코앞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급하지 않은 추진력, 만용을 경계하는 용기, 소심함을 두른 신중함 등을 고루 갖춘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은 문무(文武)에 재능이 없어도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게 마련이지.”

"해서, 아버지께서도 그를 보러 가시겠습니까?"

“내 아들이자 후계자와 동맹을 맺은 사람 아니더냐.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 덕분에 몸이 이만큼이나 호전되었다. 그리 큰 도움을 받았거늘 마땅히 찾아가야지.”

"알겠습니다. 소교주에게도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천방지축은 왜 안 보이느냐?"

“수련 중입니다.”

“수련? 무공을?”

“예. 소교주와 함께 중원행을 하며 배운 게 많은 모양입니다.”

“이제야 철이 들려는가 보구나. 그래, 세상은 거칠지. 굳이 중원에서 살지 않더라도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무림이다.

하물며 재능이 있는데도 썩히고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다행이다.”

"......"

“왜 그리 보느냐?”

"굳이 중원에서 살지 않는다는 말씀은 ........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습니까?"

"포기라니? 시도도 안 해 봤는데 포기라는 단어가 왜 나오겠느냐?"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하니 소교주를 그리 생각하고 계실 줄은 몰랐거든요.”

“사람은 꼭 봐야만 아는 게 아니다. 게다가 본궁은 사궁(四宮)의 수좌라 불리고 있었음에도, 남은 삼궁의 견제를 받고 있어.

견고한 연을 맺어 두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쩝, 린이는 몰라도 소교주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가는 김에 그것도 확인해 보도록 하자꾸나.”

"그러시지요.”

쏟아지는 햇빛에도 녹지 않은 만년빙(萬年水)의 수정궁(水晶宮)에서 사는 신비 문파의 수장이 중원으로 나왔다.

그야말로 천하가 깜짝 놀랄 일이지만, 중원 정세가 워낙 혼란한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북쪽에서 내려온 손님이 있는가 하면, 서량이 본 가장 정파인다운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도 약간의 소동이 일었다.

“교주?”

“예, 아버님.”

“허! 그때 보았던 그 젊은 천재가 벌써 교주가 된단 말이지?"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전대 교주가 중원 땅에서 죽었으니, 교도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그 분노를 잠재워 줄 사람이 필요치 않겠습니까.”

“그렇기야 하겠지. 내 아직도 황산에서의 비무가 생각나는구나.

젊지만 풍부한 연륜을 쌓은 괴물 같은 신진(新進)을 보며 마침내 새 시대가 열렸음을 실감했거늘, 벌써 그이는 태산의 정상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구나.

참으로 빠르도다.”

“그렇습니다.”

"해서, 가주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신고?"

“저는 언제나 바름과 의로움을 쫓습니다. 그 길을 걷는 데에 있어, 주변의 시선 따위는 필요치 않지요.”

"맞는 말일세.”

"그러나 한 가문을 맡은 입장에서, 가인(家人)들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음.”

"해서 부탁드립니다. 전대 가주가 아닌 남궁세가의 일원으로서, 대신 축하를 전하러 가 주실 수 있으신지요?"

"으잉? 이 늙은이가?"

“그렇습니다.”

"내 가기 싫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님을 미리 말해 두고 싶네.

나도 그렇고 가주께서도 그 마룡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우리는 명백히 걷는 길이 다르다네. 서신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네만.”

“물론 그렇습니다. 다만 저는 그와 친분을 나누었기에 서신으로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하면?”

“목숨의 빚이 있지 않습니까.”

“.....!”

“마음 같아선 제가 직접 찾아가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천하가 어지러운 이때, 가주인 제가 자리를 비워선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가주께서는 다 생각이 있으셨구먼."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검도(劍道)에 매진하실 시간을 빼앗은 건 아닌지.....”

"아닐세. 무도(武道)란 곧 천리(天理)를 쫓는 일이며, 천리는 곧 인리(人理)와 맞닿아 있다고 했네.

허구한 날 골방에 틀어박혀 칼질만 해 대서야 어찌 도(道)에 이르겠는가.”

“그 말씀은?"

“가주의 마음은 충분히 알았네. 간만에 이 늙은이도 중원 공기 좀 맡고 오겠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북해의 거인, 중원 무가의 상징이라 할 만한 가문에서도 사람을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서량이 중원에 나와 연을 맺은 이들은 은근히 많았다.

그러나 그중 대부분이 악연이었고, 그나마 좋은 인연으로 엮인 이들도 거의 전부가 정파 측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본인이 속한 조직 때문이라도 쉬이 축하 서신을 보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천마신교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이다.

의천맹이 반파되고 철혈성이 침묵하는 지금의 무림은 혼돈 그 자체였다.

공고하던 힘의 균형이 깨지자 중원 각지에서 온갖 문파들이 새로이 창설되었다.

본래 하루에도 수백 개의 문파가 나고 스러지는 게 무림이라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심했다.

문파 대 문파의 전쟁이 빈번해졌고, 그러자 법도(法道)보다 힘이 우선시 되었다.

심지어 민간인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는 문파들도 하나둘 튀어나오고 있는 시점이었다.

천하가 흉흉해지는 때에 마도대종사가 바뀐다고 하니, 무림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불안과 공포, 분노와 긴장이 가득한 시선이 향하는 십만대산.

그곳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천마신교를 넘어 천하를 뒤흔들, 태풍이 될 바람이.

*

*

*

기다란 향에서 희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신교에서 직접 제조한 향이었다. 그 향내는 어딘지 불당을 연상케 했지만, 그와는 조금 달랐다. 더 무거웠고, 진했다.

'그래도 한 번 해 봤다고 익숙하군.'

후계자가 되기 직전, 전생하기 전의 서량 때문에 죽은 이들을 위해 처음으로 추모라는 걸 해 봤다.

그 이후, 다시는 누군가를 추모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설령 마동필이나 위홍련, 앵화가 죽더라도 추모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도 깊은 연을 맺었다면 죽은 뒤에라도 꼭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이천상은 아니었다.

하늘에 이르지 않고 인간으로서 죽었다 한들 저승에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걸 떠나, 이천상은 서량이 처음으로 모신 스승이었다. 첫 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인 것이다.

고인(故人)에게, 제자로서 예의를 갖추는 것은 당연했다.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곳은 편하십니까?"

눈을 뜬 서량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어두운 허공만이 서량을 맞아 주고 있을 뿐이었다.

서량이 고소를 지었다.

입을 열어 육성으로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 이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았다.

그간 꿈에서도 종종 나타났고, 군림마황기 욕계문을 통해서도 목소리를 들려주던 그가 아닌가.

“진짜 가시긴 가셨군요.”

아직 군림마황기를 대성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왜 욕계문을 연 자만이 천마라 불리는지, 그 진짜 이유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어렴풋이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이천상이 욕계문을 통해 수천 리 밖에 떨어진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지.

'영기(靈氣)라.'

욕계문을 연 자는 마기에 영성이 실린다.

영성, 영기는 곧 상단전(上丹田)의 영역이다. 이천상은 한계를 벗어난 상단전의 영력으로 욕계문을 연 자의 상황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전생도 알 수 있었겠지.

“다 쓸모없는 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이 있으면 뭐 한답니까? 결국 하늘을 상대할 수는 없는 것을.”

하긴, 하늘의 유혹을 그리 오래 견뎌 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우물쭈물하던 서량이 이내 한숨 쉬며 말했다.

“제기랄,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말이 나오질 않네요.”

천마신교의 교주로서 앞으로 신교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 마도천하를 이루기는 할 것인지 등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미래를, 떠난 사람에게 위로랍시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열심히는 할 것이다.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래서 그는 이리 말했다.

“잘하겠습니다. 사부님 말마따나, 한 번 더 치열하게 살아 보도록 하지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사부가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탑을 깨 먹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업보다, 생각하고 이해하십시오.”

그때였다.

“소......... 아, 죄송합니다. 교주님."

문밖에서 마동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전에 수뇌부들이 모였습니다.”

"알았다.”

“예.”

향이 피워 낸 연기를 가만히 바라보던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전, 과거의 저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말했지요.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다시는 당신들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신교를 뿌리부터 뜯어고친 후, 자신이 있으면 그때 찾아가겠다고 했지요.”

아마 그것은 먼 훗날이 될 것이다. 이천상처럼 후계자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어도 괜찮다 싶을 때나 들를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여긴 자주 찾아올 겁니다. 왠지 이 교주라는 자리가 제법 외로울 것 같단 말입니다.

멋대로 그리 가셨으니, 최소한 제자 말동무 정도는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환청처럼 이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엄살떨지 마라.

웃으며 향을 내려다보던 서량이 양손으로 얼굴을 두들겼다.

짝! 짝!

“자, 가 볼까.”

휙 소리가 나도록 몸을 돌린 서량의 두 눈은 마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시끌시끌 난장 치는 노친네들부터 진정시켜야겠군.”

쿵!

문이 열리고,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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