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03화 (403/774)

403화.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우다 (3)

"들어가셨나요?"

“그렇소.”

멀리서 마신궁을 보는 소연심의 얼굴에 한 줄기 근심이 일었다.

“더 빨리 와 볼 것을.........”

지금 마신궁의 대전 안에는 원로원의 마존들과 군사부의 수장 호요성,

그리고 천마대군장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곳에 호법원의 수장인 무담은 없었다.

수뇌부의 모임이라면, 특히나 새로운 교주님께서 처음 나서시는 자리라면 필히 참석해야 할 사람인데도 대전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혹시, 대호법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는지 아시는지요?"

"그건 이 사람도 모르겠소이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 사내는 탄탄한 체격의 중년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신장부(神將部)의 주인, 철무정(鐵無情)이었다.

구대마존이 신교의 무력을 상징한다면, 실질적으로 신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고수들인 백팔마장(百八魔將)을 다스리는 사람이 그였다.

동시에 그 역시 백팔마장의 일원으로, 최강의 마장인 일마장(魔將)이기도 했다.

차기 원로원주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남자이며, 이 년 전 극마에 올라 마존급 경지까지 오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이였다.

그런 사람도 마신궁 앞으로 나왔다. 무담이 오지 않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대호법께서는 충신 중의 충신이세요. 아마 이유가 있을 거예요.”

“이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오. 기실 우리도 우리지만, 대호법만큼 충격을 받은 분도 없을 것이오. 교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으니.”

철무정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일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건 아니지만, 그 역시 대호법 무담의 충심과 단호한 무공을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자신 또한 전대 교주님께서 타계하셨다는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거늘, 무담은 오죽하겠느냐 생각이 들었다.

소연심이 철무정을 힐끔거렸다.

“부주님께서는 어떠세요?"

“무엇이 말이오?”

“새로운 교주님을 도와 드릴 생각이 있으신가요?"

철무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대 교주님께서 극찬하셨던 분이오. 이 사람의 도움이 필요치는 않을 것이오.”

“제 말은...”

“내게 교주님을 도와 드릴 각오는 없소. 다만 교주님의 명령을 받들 각오만이 있을 뿐이오.”

소연심은 새삼 철무정을 다시 보았다.

그는 이름만큼이나 무정한 사내였다. 주변에 큰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 말수가 많지도 않았다.

'참으로 마인다운 마인이었구나.”

환희원에는 교내 마인들에 대한 신상 정보가 있다. 그러나 그 정보란에도 철무정에 관한 내용은 극히 적었다.

이제야 알겠다. 철무정은 신교에 뼈를 묻을 사람이었다. 머릿속이 오로지 그 생각과 무공만으로 가득 차서, 다른 것에는 여유를 둘 여력이 없는 듯했다.

소연심은 그런 철무정이 부러웠다. 자신이 정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단호함이, 고지식하다고 욕을 먹어도 신경 쓰지 않는 무던함이 부러웠다.

"부주님을 통해 많이 배우네요.”

“별말씀을 다 하시오.”

그녀가 다시 마신궁으로 눈을 돌렸다.

눈은 마신궁을 보되, 머리는 서량으로 꽉 차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될까.’

천하가 혼란으로 가득하다지만 그것은 신교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서량은, 새로운 교주님은 이 혼란으로 물든 정국을 해결하고 교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을까?

*

*

*

쿠구궁!

대전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들어왔다.

잔뜩 긴장한 채 모여 있던 이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뭐지?'

조금 전, 대전 밖에서부터 퍼져 나왔던 기파는 그야말로 마신궁을 통째로 무너트릴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문이 열리자마자 그 강렬했던 마기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마공을 개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개방한 마공을 갈무리하면 공기 중에 마기의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이들 모두가 느꼈음에도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 사실이 이곳에 모인 수뇌부들의 마음을 묘하게 옥죄었다. 딱히 두려울 건 없었지만,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찝찝함을 안겨 주고 있었다.

“꽤나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를 보는 호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달라지셨다.'

중원 정세를 살피느라 서량이 천마군과 광마, 진마를 이끌고 다시 입교했을 때 그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수개월 만에 만난 셈이었다.

'더 커지셨어.’

키도, 체격도.

그리고 존재감도 수개월 전 출교하셨을 때보다 더 커지셨다.

곤룡포는커녕 장포도 없이 편한 무복 차림이었다. 기다란 머리는 묶지도 않았고, 어떠한 병장기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크다.

크고, 왠지 모르게 무거운 존재감을 드리운다. 두 눈은 웃고 있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호요성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신교의 총군사 호요성이 교주님을 뵙습니다.”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는 목소리였다.

서량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오랜만이군. 그간 잘 지냈나?"

“예, 교주님.”

“예전보다 살이 좀 빠진 것 같아. 업무 강도를 줄일 수 없다면 밥이라도 잘 챙겨 먹게.”

호요성이 읍했다.

“유념하겠습니다, 교주님.”

호요성에게서 눈을 뗀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마대군장 엄태경과 여섯 마존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러나 원로원주 광마존과 벽력마존(露靂魔尊), 음야마존은 허리만 굽히고 있었다.

서량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저벅저벅.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대전 중앙을 가로지른다.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곤룡포 자락처럼 보인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의 젊은 사내였지만, 존재감만큼은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거대했다.

그렇게 말없이 걸어간 그가 태사의 앞에 섰다.

태사의를 내려다보는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크군.'

이천상이 앉았던 자리다. 그리고 역대 교주들이 앉았던 자리였다.

그 자리가 바로 자신의 앞에 있다.

서량은 태사의를 쓰다듬었다. 비단이 아닌데도 감촉이 아주 좋았다.

그때였다.

“소교주님.”

서량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굽힌 허리를 편 광마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늙은이의 인사가 늦었습니다. 무사히 입교하셔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그는 광마존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대하는 데에 어떠한 어색함도 없었다.

광마존이 입을 열었다.

“중원 놈들의 무도함에 혹여 해를 입지는 않으셨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큰 해를 입지 않으심은 선조들의 홍복입니다.”

호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광마존의 말은 참으로 묘했다.

하필 서량이 태사의에 앉으려는 순간에 하는 말이라서 묘했고, 마치 혼자서만 살아 돌아온 것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이었기에 불편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재미는 없었지만 수확은 있었지. 좋은 중원행이었어.”

수뇌부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광마존의 말은 묘했으되, 서량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전대 교주가 중원에서 죽었다. 그런데도 좋은 중원행이라고 한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위험한 발언이 될 수도 있었다.

가만히 서량을 올려다보던 광마존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크게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전대 교주님께서 한목숨 바치시어, 절반밖에 열리지 않은 마도천하의 문을 활짝 열어 두셨다.”

“......?!"

“신교 역사상 최고의 천마. 명실공히 고금제일이라는 칭호를 가지신 분다운 최후였다.”

대전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표정 변화가 없던 광마존의 얼굴마저 확 굳어졌을 만큼 민감하고도 위험한 얘기였다.

음야마존이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지금 그 말씀은......!”

“그분의 일생은 자신의 삶마저 붕괴시킨 지독한 목적의식과 신교를 사랑하는 고상한 위대함으로 가득했다.

그분은 마도천하를 원했고, 동시에 신교를 사랑했다. 당신께서는 신교를 위해 많은 것을 주셨음에도, 더 줄 것이 없어서 안타까워하셨다."

서량이 눈이 깊어졌다.

“그 안타까움에, 당신의 목숨을 바쳐 중원 땅을 우리에게 안겨 주려 하셨다.”

“........”

“우리는 그 숭고한 희생을 슬퍼해선 안 된다. 우리의 슬픔은 그분의 슬픔이요, 우리의 좌절은 그분의 좌절이다.

진즉에 하늘에 올라도 무방할 깨달음을 얻으시고도 십 년이 넘도록 신교를 다스리며 때를 기다리매, 마침내 당신의 무덤을 직접 만들어 들어가셨다.”

"......"

“그분은 기쁘게 가셨다. 우리가 당신의 죽음을 이용해 더 넓고 높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셨고, 그럴 것임을을 확신하셨다.”

서량의 마안이 불을 뿜었다.

“그렇기에, 난 나의 스승의 죽음마저 이용할 것이다. 그것이 그분의 명예를 빛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

“그러니 천마대군장에게 화낼 필요가 없다. 천마대군장은 언제나처럼 그분의 명대로 행했을 뿐이니까.”

그다지 고양된 목소리가 아니었음에도 일동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무섭도록 진지한 얼굴로 좌중을 내려다보던 서량이 일순 미소를 지었다.

“원로원주.”

“예, 소교주님.”

끝까지 그는 서량을 소교주라고 불렀다. 서량은 그의 호칭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마존들을 데리고 이만 원로원으로 돌아가게.”

“하지만 소교주님.”

“이곳에 죄가 있는 사람은 없네. 설령 죄가 있어도 그것은 형법당의 소관일 뿐, 자네들이 모여서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야.”

광마존이 재차 입을 열려 할 때, 서량이 곧장 말을 이었다.

“닷새 뒤, 원로원에 들를 것이네.”

“예?”

"그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리게.”

"황공하옵니다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

"아직 교주님의 교상(敎喪)도 치르지 못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성대한 교상으로 교주님의 넋을 위로해 드려야 함이 마땅하거늘, 어찌 엉덩이 무겁게 거처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교상은 없네.”

모두가 놀라서 서량을 보았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분이 돌아가신 곳은 저 먼 중원 북부라네. 그곳이 그분의 신릉이야.”

“하나.....!”

“내 다시 중원으로 나가 무림의 질서를 바로 세울 때, 바로 그때 교상을 치를 것이네. 그러기 전까지 우리에겐 하늘로 가신 그분의 장례를 치를 자격도 없네.”

“.......”

“돌아가게.”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광마존이 고개를 숙였다.

"소교주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저희는 그리 생각지 않지만, 일단은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네.”

“예?”

“저희가 아니라 자네 혼자겠지.”

“......”

“닷새 뒤에 보세.”

결국 마존들은 광마존을 따라 마신궁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서량은 피식 웃으며 계단에 앉았다. 태사의가 앞에 있는데도, 그는 그곳에 앉지 않았다.

“시작부터 알싸하구만."

"대단하셨습니다.”

“응?”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의 기지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들은, 특히 광마존은 속을 알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런 그를 말 몇 마디로 돌려보내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 대단하다고 칭찬받을 만한 일인가? 시끄럽게 짖는 개 몇 마리 쫓아내는 거야 누구라도 할 수 있어.”

호요성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천하의 구대마존에게 시끄럽게 짖는 개들이라니? 이 자리가 마신궁의 대전이 아니었다면 폭소를 터트렸을 것이다.

“참으로 교주님다우십니다.”

서량이 웃었다.

“자네는 나를 교주라 부르는군."

"물론입니다.”

“내게 교주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는가?"

“당연하지요.”

"좋아. 일어나게.”

호요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서량이 그의 곁에 다가왔다.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네. 대군장 자네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