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12화 (412/774)

412화. 패왕(鬪王)의 면모 (7)

“원주?!”

“그리되었네.”

음야마존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그렇다면 대전에서 그 난장을 친 것이, 죽으려고 그랬던 것이란 말이오?”

광마존은 대답 없이 창가를 바라보았다.

평소 즐겨 피우던 곰방대는 이미 부러트린 후였다. 극마에 도달한 육체가 연초를 피운다고 상할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몸에 썩 좋은 것도 아니다.

‘핑계라.....'

옆에서 음야마존이 당황한 어조로 뭐라 말하는 게 들렸다. 하지만 광마존은 그의 말에 신경 쓸 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진실로 신교를 위한다는 대의 아래, 저열한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인가.'

이 계획을 처음 떠올렸을 때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당대 교주님의 살 떨리는 일갈을 듣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정말 교주님의 말씀대로 비겁한 안식을 얻기 위해 화려한 사형대를 만들었던 것인지 고민해 보았다.

결과는?

'...아니라고 말 못 하겠군.'

그렇다.

분명 그는 화려한 마지막을 원했다. 물론 신교를 위해 죽겠다는 생각 자체는 거짓이 아니었지만, 더 살아서 뭔가를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도 분명 있었다.

당대 마존 중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그는 전대 교주님이 교위에 오르기도 전에 마존이 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삼십 년이 훌쩍 흘렀다.

무공을 연마하고 천하의 정세를 읽었지만, 무려 삼십 년이 넘도록 신교 안에만 박혀 있었다.

분명 행복한 인생이었다. 전대 교주님의 치세 아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생각 역시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전대 교주님께서 이렇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태평성대는 좋지만, 그는 마인이었다. 적어도 기억에 남을 싸움 한 번 정도는 하고 싶었다.

그러한 호승심과 욕망은 마(魔)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광마존이라는 마인의 삶을 충족시켜 줄 축제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교주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어떻게 들여다보셨을까.'

군림마황기를 명숙의 반열에 오를 만큼 익히신 분이다.

천하 모든 마공의 정점에 서 있는 공부를 익히셨으니, 그보다 하위 마공을 익힌 자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주님은 자신의 마음을 마공을 통해서 들여다보신 게 아니었다. 그런 기색은 없었다.

'타고난 안목이었든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기술이었든, 참으로 대단하신 분인 것만은 분명하구나.'

씁쓸했다.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화려하게 죽겠다는 노욕 하나 제어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그를 괴롭혔다.

그런 노욕이 새 교주님께 단번에 들통났다는 사실 또한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동시에 묘한 활력도 솟았다.

'그래, 교주님은 신교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분이다.'

최강의 천마인 전대 교주님조차 자신보다 위대하게 성장할 후계자라고 하였다.

그 말을 왜 잊었을까? 전대 교주님이든 당대 교주님이든, 내가 모시기에 벅찬 분들인 것은 분명한데.

'아니, 잊은 게 아니지. 나는 그저 교주님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광마존이 한숨을 쉬었다.

‘마인 실격이로군.'

불충도 이런 불충이 없다. 놀랍게도 교주님은 죽어 마땅한 불충을 저지른 늙은 신하를 선뜻 용서해 주셨다.

이제 그에게 남은 삶의 목표는 하나다.

‘또다시 평화로운 삶을 산다 한들 어떠한가. 교주님 말마따나 오래오래 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일 테지.'

광마존은 한옆에 놓인 부러진 곰방대를 바라보았다.

이십 년 전부터 피워 온 연초였다. 연초에 깃든 자극적인 독소보다 습관이 더 무서웠다.

그는 거처에 돌아오자마자 곰방대를 부숴 버렸다. 교주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오래 살려면, 사소한 것 하나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때였다.

“원주 계시오?”

“고루인가?”

“그렇소.”

“들어오시게.”

고루마존이 들어왔다.

고루마존을 보는 음야마존의 눈빛은 살쾡이를 연상케 했다. 그는 마존 중 인격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고루마존에게 항상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광마존이 덤덤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

"대호법이 원주를 보자고 하오.”

“대호법이?”

“그렇소. 원주만이 아니오. 우리 마존 모두를 불렀소이다.”

광마존의 눈이 깊어졌다.

'무슨 일인가.'

교주님께 꾸지람을 들은 지 반나절이 지났다. 이미 석양이 내려앉기 시작한 이 시간에 볼 사람은 아니었다.

'혹, 교주님의 마음이 바뀌신 건가?'

광마존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교주님의 마음은 모르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형을 당해도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광마존이 의복을 털고 일어났다.

“가세나.”

그러나 광마존의 생각은 크게 빗나갔다.

실로 오랜만에 구대마존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대호법은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다.

모든 내용을 듣고 난 후, 광마존은 생각했다. 교주님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무서운 분이라는 걸.

적어도 심심한 노년을 보내지는 않겠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다시는 교주님의 심사가 뒤틀릴 만한 일을 저지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

*

*

용(龍)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약속한 장소에 나타나야 할 인물은 없고, 나타나선 안 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로원주?!”

“나를 아시는가?”

광마존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용은 침묵했다. 마중팔부중의 일인으로서 신교 모든 마인들의 신상 명세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아는 것에 불과했다.

그가 실제로 만나 본 마인은 손에 꼽혔다.

광마존이 미소를 지었다.

젊은 시절 꽤 많은 것을 이뤄 놓고, 행복한 노년을 위해 경치 좋은 아랫동네로 내려온 어느 노인의 웃음과 같았다.

담담하고 여유가 느껴졌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했다.

그러나 용은 저 미소에 속지 않았다.

광마존, 원로원주의 무공은 마존 중 제일이었다.

실질적으로 교주 다음이라고 평가받는, 이제 막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지금의 신교에서는 신교제일이라 불리어도 부족하지 않을 무공의 소유자가 그였다.

제아무리 비궁의 실력자인 용이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 나는 상대를 모르는데, 상대는 나를 보자마자 안다?”

“......”

“자신의 유명함에 흐뭇해하는 시절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지나친 늙은이로서는, 이 상황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

용은 여전히 침묵했다. 불편한 표정 역시 변하지 않았다.

광마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듣기로, 자네는 비궁 마중팔부중의 일원인 용이라지?"

“......그렇소.”

“제법 괜찮은 실력을 갖추고 있군. 무공이야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지만, 그 신비로운 기도는 필시 술법(術法)을 연성한 이의 술기(術氣)가 분명하다?”

“......”

"허기야, 경지에 이르면 무공과 술법에 차이도 없어지는 법이지. 마중팔부중 하나하나가 전부 자네와 같다면,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일세.”

"대호법이 나를 마중하러 올 것이라 들었소.”

“그랬지.”

“한데 어찌 원주가?”

"나를 알 정도면 대호법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겠지. 그이는 항상 바쁘다네.

나 같은 골방 늙은이와는 달라. 고작 사람 하나 마중하자고 그이의 시간을 뺏는 것은 옳지 않은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 직접 왔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용은 불쾌함을 느꼈다.

바쁘기로는 마중팔부중 역시 마찬가지였다.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쪼개서 왔거늘 저따위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만일 상대가 원로원주가 아니었다면 경을 쳤을 것이다.

“왜? 불만인가?”

“........아니오.”

“좋네. 하면 이만 가도록 하세."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소?"

“말씀하시게.”

“교주가 어디까지 말했소이까?"

번쩍!

순간 용은 눈앞에서 벼락이 친 것 같은 환상을 보았다.

주르륵.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광마존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답지 않게 맑고 투명한 두 눈에는 끔찍한 마기가 이글거렸다.

"다시 질문하게.”

“.........”

“다시.”

“......교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다 말씀하셨소?"

광마존은 그제야 흡족하게 웃었다.

“그렇다네. 비궁이 어떤 조직인지, 천 년 동안 그들이 수행한 역할은 무엇인지, 또한 지금에 와서 그들이 얼마나 쓸모없어졌는지도 들었다네.”

용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우리는.......”

“괜히 시간만 뺏었구먼. 자네도 알다시피 교주님께서는 바쁘시다네. 이만 마신궁으로 가세나.”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더는 대화를 이어 가기 어려울 듯했다. 결국 용은 광마존을 따라 마신궁으로 향했다.

광마존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본교에 이런 샛길이 있는 줄은 몰랐구먼. 허허, 본교에서 칠십 년이 넘도록 살아왔음에도 말이야.”

용은 그의 말에 긴장했다.

웃음기 서린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전해지고 있었다. 마치 웃음으로 폭발 직전의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진법 같기는 한데 단순한 진법은 아닌 것 같고...... 술법을 가미했나?"

"......"

“참으로 대단해. 이래서 세상은 재미가 있는 법이지.

쓸데없이 목숨을 버렸으면 이런 것도 몰랐을 것 아닌가. 교주님의 하해와 같은 성은에 어찌 보답해 드려야 할꼬.”

광마존은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용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용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싸워 보자는 것인가?'

불쾌함을 떠나, 용은 이해할 수 없었다.

비궁을 적으로 돌리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교주다. 마존도, 대호법도, 총군사도 멀쩡할 수 있지만 교주만큼은 절대 멀쩡할 수 없다.

그런데도 어찌 이런 악수를 두는가? 혹시 당대 교주가 미쳐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아직 교주라고 할 수도 없지.'

교주의 대관과 교상은 전적으로 비궁이 관리한다. 비궁 주체하에 대관을 치르지 않은 교주는 교주가 아니다.

용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반쪽짜리 교주라? 그러고도 이리 오만방자하다니, 전대 교주도 안목이 없구먼.’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생각에 빠진 채로 마신궁에 도착했다.

흑백쌍위가 광마존을 바라보았다.

광마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구구궁!

마신궁의 대문이 열렸다.

일전,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마신궁으로 들어간 그였다. 하물며 데리고 온 사람은 시커먼 두건 비슷한 것으로 얼굴을 전부 가리고 있었다.

수상쩍은 조합을 찾자면 이만한 조합이 또 없을 것이다. 미리 언질을 받았다 해도, 수문위사라면 당연히 경계해야 옳다.

그러나 흑백쌍위의 얼굴에는 일말의 불안감도 엿보이지 않았다.

“드시지요.”

광마존과 용이 마신궁으로 들어갔다.

몇 개의 문, 몇 개의 방을 지나 마침내 대전 문을 눈앞에 두었다.

광마존이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신(臣), 원로원주가 아뢰옵니다. 비궁 측 사람이 당도하였습니다.”

쿠웅!

대전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문만 열렸다. 광마존이나 용이 손을 댄 것도 아니요, 안에서 사람이 연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천둥소리를 방불케 할 만큼 거친 소리를 내며 열린 대문에 용은 내심 깜짝 놀랐다.

“왔나?”

서늘하고도 묵직한 목소리가 용의 귓가를 간질였다.

누구라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듯한 위엄으로 가득한 목소리였다. 분명 젊은 목소리인데, 그 안에는 추측기 힘든 연륜과 진한 마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대전은 어두웠고 목소리는 무거웠으며, 풍겨 나오는 기도는 살갖이 찢어질 만큼 거칠고 무서웠다.

용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멀리서 붉고 푸른 눈동자가 연신 번쩍거렸다.

“앞으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