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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13화 (413/774)

413화. 신(神)은 하나다 (1)

'무겁다.'

대전 안으로 한 걸음 내딛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상대가 마공을 개방한 것도 아닌데 몸이 무거워진 듯한 착각이 인다. 그렇다고 대전을 술법으로 봉쇄했다거나 상고의 진법이 둘러쳐진 것도 아니었다.

'굉장해. 이런 위압감은 실로 오랜만이로구나.'

사람 자체의 분위기가 남다르다. 마치 태어나기를 위정자로 태어난 것처럼, 한없이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느낌이었다.

'실력은?’

추측 불가다.

그는 멸법일마술(滅法一魔術)을 익히지 않은 유일한 팔부중이었다. 만일 일마술을 익혔다면 감히 교주라 해도 자신 앞에서 멀쩡히 있진 못했을 것이다.

용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감돌았다.

'당신이 군림마황기를 얼마나 깊게 익혔든, 감히 비궁의 상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천년의 세월 동안, 비궁을 없애려던 교주는 많았다.

그러나 역대 교주들의 시도는 모조리 실패했다. 그 어떤 교주도 비궁과 맞서 이길 수가 없었다.

이번 교주라고 다를 리 없다. 설령 역대 최고의 천마라 불리던 전대 교주 이천상이라 해도, 진심으로 비궁과 붙었다면 패배하고 말았으리라.

'그걸 알았으니 감히 덤빌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과연 당신이, 최강의 천마라는 전대조차 시도 못 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나마 비궁을 없애려 들었던 교주들은 대관이라도 받았다.

그러나 당대 교주는 대관식도 올리지 않은 반쪽짜리다.

교주가 진심으로 비궁과 싸우려 든다면, 그는 역사상 최초로 대관을 거치지 못한 반쪽짜리로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용이 태사의로 오르는 계단 밑까지 도달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교주, 서량을 올려다보는 용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대단하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군.'

충격적인 기도요, 입이 떡 벌어지는 무력이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라고 들었으며, 실제 보기에도 그렇다. 한데 이룩한 경지는 저 원로원주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과연 전대 교주가 극찬한 천재답군.'

저 나이에 저만한 경지를 이룩한 교주는 처음일 것이다. 그래서 더 괘씸했다.

'이 세상은 독존(獨尊)을 허락하지 않는 법. 그 괴물 같은 재능 덕분에 세상의 이치를 잊고 있는 당신에게는 교주의 자리가 어울리지 않아.'

용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중팔부중, 용이외다. 교주를 뵙소.”

그야말로 불경하기 짝이 없는 어조였다.

용과 함께 들어온 광마존의 눈에 무시무시한 살기가 일었다. 교주님 앞이라 차마 대놓고 기파를 발산하진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용을 찢어 죽일 기세였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많이 들었지. 마중팔부중이라...... 비궁 최강의 전력 여덟을 그리 부른다고?”

“그렇소이다.”

서량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의도를 알기 힘든 고갯짓이었다. 용은 상대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했다.

“한데 왜 자네가 왔나?”

“무슨 말씀이신지?”

“궁주가 오지 않고 왜 자네가 왔느냔 말이네.”

용의 얼굴이 굳어졌다.

시작부터 몹시 무례한 언사였다. 적어도 그에게는 서량의 말이 그렇게 들렸다.

"본궁의 궁주님께서는 몹시 바쁘신 분이외다. 해서 궁주님을 대신하여 내가 왔소.”

“그런가?”

“그렇소.”

"하면 나는 할 일이 없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나?"

“......?”

“궁주 대리 따위나 보자고 내가 이 불편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용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반면 서량의 표정은 점차 권태로워지고 있었다. 용도 용이지만, 서량 역시 상대를 존중하는 기색은 없었다.

“나는 분명 궁주에게 서신을 보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직접 찾아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 직접 쓸어 버리겠다고 말한 바 있지."

“그것은......!”

“대호법을 쑤셔 본 것까지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네.

기실 궁주도 나에 대해 아는 게 없고, 본인의 위치를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야.

한데 한 번 경고를 했음에도 또 직접 오지 않았다?”

권태로움으로 가득하던 서량의 얼굴에 작은 조소가 깃들었다.

“어지간히 죽고 싶은 모양이로군.”

“교주!”

용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제아무리 교주라 해도 말씀이 너무 심하시오!”

“그래?”

“그렇소! 비궁은 본교의 시작부터 함께해 온 조직! 나아가 비궁주는 본교의 교권(敎權)을 상징하는 성녀(聖女)외다! 교주라도 예를 갖추어야 함이 마땅하오!”

“싫다.”

“교주!”

“당사자는 물론 그 수하조차 교주를 존중치 아니하는데, 어찌 나라고 그 이해력 부족한 여자에게 예를 갖춰야 하나?”

“이익!”

"나아가 자네도 실수했네.”

서량의 두 눈이 번뜩였다.

“비궁이 교주를 어떻게 보든, 기실 내 알 바는 아니야.

어차피 잡아먹거나 치워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궁주나 자네나, 나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있었어야 했네.”

우우우웅!

태사의 뒤에 감춰져 있던 거대한 칼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칼날이 어두운 자흑색인데도 이상하게 형형한 빛을 띠는 듯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광택이요, 살기였다.

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면전에서 칼을 뽑다니? 이 정도로 막 나가는 사람은 처음 봤다.

“당신...... 정녕 비궁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오?”

"왜? 그럼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비궁과 맞서게 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교주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오! 그걸 바라는 거요?"

“내가 죽긴 왜 죽어? 앞으로 살날 창창한 젊은이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군.”

용이 얼굴을 구겼다.

“전대 교주에게 본궁에 대해 제대로 전해 들은 것 맞소?”

“물론이다. 그래서 없애 버리려는 것 아니더냐.”

“뭐, 뭐라고?!”

“전대 교주, 나의 스승께서는 너희 비궁을 이렇게 말했다.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내는 밥버러지이며, 과거의 영광에만 취해 있어 본교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벌레 같은 놈들이라고,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권리만 챙길 뿐, 책임은 지지 않는 쓰레기들에 불과하다고 하셨지.”

“.......!!”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온 나란 인간이 보기에, 너희는 반역자들보다도 더 죽일 놈들이다.

반역자들은 이유가 어찌 되었든 본인의 삶을 위해서 투쟁하려는 이들이지.

죽을죄임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변화하기 위해 노력할 줄은 아는 놈들이란 말이다. 하지만 너희는 달라.”

우우우웅!

천마도에 군림마황기가 실리기 시작했다.

푸른 번갯불을 피우던 이전의 군림마황기와는 달리 지금의 마황기는 더 어둡고 진했다.

보는 이의 공포를 자극하던 번갯불은 사라졌으되, 훨씬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

군림마황기의 성취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 기공의 성취가 극에 이르면, 서량의 진기도 저 이천상의 마기처럼 시커먼 어둠으로 물들게 되리라.

“삶이란 변화의 연속이다. 너희는 권리를 포기하는 권리에 부끄럽지 않은 일을 찾는, 항상 움직였어야 했다.”

“비궁은 신교의 상징이오!”

“신교의 상징은 교주다. 그리고 너희 비궁은, 신교의 상징인 교주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것 외에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을 못 하는 똥 덩어리에 불과하다.

심지어 너희에겐 더 역동적인 삶을 선택할 시간이 천년이나 있었어.”

용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왜 네놈의 무례를 잠시나마 두고 본 줄은 아느냐?"

“......”

“너를 몰랐기 때문이다. 네놈이 무공을 익혔는지 술법을 익혔는지, 어떤 언행에 반응할 놈인지,

네놈이 정녕 궁주를 대리할 만한 자격을 갖춘 놈인지 몰랐기에 참고 있었을 뿐이야.”

"......!!"

“십만마도(十萬魔道)를 다스리는 마도 총본산의 주인조차 최소한의 조심성은 갖고 있거늘,

너나 궁주는 대체 뭘 믿고 이리 방자하게 나서는지 이해가 안 가는구나. 설마 내가 힘이 없어서 너의 같잖은 말투를 참아 준 줄 아느냐?"

용의 얼굴에 충격이 깃들었다.

비로소 그는 깨달았다. 이 흉포하기 그지없는 교주가 진심으로 비궁을 잡아먹으려 들 생각임을.

이곳으로 올 때까지는 몰랐다. 아니,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역대 교주들이 감히 비궁을 건드리지 못했듯, 이번 교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저 새로 등극한 교주가 원하는 것이 있기에 기 싸움을 벌이려 드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부러 강하게 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비궁 모두가 틀렸다.

새 교주는 진심으로 비궁을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본인 휘하에 사제관으로 두겠다는 말은, 상대를 자극하기 위함이 아닌 기회를 준 것에 가까웠다.

“널 보니 새삼 더 확신했다. 비궁은 정녕 쓸어 버리는 것이 나은 조직이라는 걸.”

"본궁과 싸우면 교주는 죽소.”

충격으로 물들었던 용의 얼굴이 본래의 서늘함을 되찾았다.

“전대 교주가 말해 주지 않은 것 같은데, 본궁은 단순히 성녀를 위해 세워진 탑이 아니외다.

본궁은 교주의 대관과 교상을 주관하며, 나아가 교주의 폭주를 막는 집단이기도 하오.”

“그래서 너희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오?”

“전전대 교주는 본교 역사상 최악이라 불리어도 하등의 문제가 없는 폭군이었다.

그러나 스승님께 듣기로, 너희는 전전대 교주의 폭정에 신음하는 교도들을 보고도 나 몰라라 했다더군.”

용은 기가 막혔다.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한 거요? 본궁에게 어찌 그런 권리가 생긴 줄 생각하지 못하는 거요?

무림 천하에서 천마를 억압하고, 나아가 죽일 수 있는 집단은 오직 본궁뿐이오!"

서량의 눈에 마기가 일었다.

열에 받친 용의 마음이 단숨에 두려움으로 물들 만큼 끔찍한 마기였다.

“세상 천하에 천마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도, 집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

“비궁의 역사는 내 대에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그 종말의 첫 제물로 너 정도면 그럭저럭 적합할 것 같군.”

순간 용의 몸이 희미해졌다.

마치 연기로 화하려는 듯, 형상 자체가 흐려지고 있었다. 서량의 마안이 불을 뿜었다.

"어딜.”

콰득!

“크으윽!”

광마존은 놀라서 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용은 기척도 없이 대문까지 도달해 있었다. 강제로 문을 열고 도주하려 했던 것인지, 뻗은 손이 걸쇠로 향해 있었다.

그러나 용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달려 나가며 손을 뻗은 모습 그대로 돌처럼 굳어진 채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쥐새끼 같은 놈.”

콰득!

“크아아악!”

용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다리가 꺾여선 안 될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허공섭물의 비기였다. 술법계로 치면 용의 실력은 구파 장문인급이라 봐도 좋을 터인데, 그런 사람의 다리를 허공섭물로 부러트렸다.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은 뻗어 용의 몸을 휘어잡은 서량의 눈에 비로소 살기가 어렸다.

“축하한다. 네놈은 내가 교주로 등극한 이후, 처음으로 죽인 적(敵)으로서 사서에 기록될 것이다.”

“으아아! 자, 잠시 기다.....”

퍼어어억!

용의 눈이 그대로 풀렸다.

허공을 접고 날아온 천마도가 단숨에 그의 가슴을 뚫어 버린 것이다. 칼날이 워낙 큰 탓에 장기 대부분이 짓이겨지듯 반으로 갈라졌다.

피를 머금은 천마도에서 마침내 시퍼런 전광이 이글거렸다.

파지지직!

용의 몸뚱이가 시커멓게 타올랐다.

타들어 가는 용을 보며, 서량이 말했다.

“원로원주.”

“예, 교주님.”

"이놈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나?"

공손히 고개를 조아린 광마존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모조리 죽여 마땅하옵니다.”

"하면 간만에 몸 좀 풀겠나?”

“예?”

“교주의 권위를 무시하는 놈들에게, 자네가 쓴맛을 보여 주지 않겠냔 말일세. 물론 가장 맛있는 먹이는 남겨 둬야겠지만."

광마존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신(臣), 원로원주가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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