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17화 (417/774)

417화. 신(神)은 하나다 (5)

“⋯⋯이상, 교주님의 전언이다.”

"⋯⋯.”

“선택하도록.”

“선택이라⋯⋯.”

"교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토록 하라. 교주님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한 번이라도 참아 주신 것 자체가 그분의 넓은 아량을 증명하는바, 그러나 재차 쓸데없는 수작을 부린다면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공요요의 눈이 음침해졌다.

쿠르릉!

채 지워지지 않은 진법 속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시커먼 먹구름 사이로 번뜩이는 번개와 천둥이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제관이 준비하는 대관만을 허락한다고?'

이쪽에서 외통수를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장기판을 엎고 칼자루를 뽑아 든 셈이었다.

“어떻게 하겠나.”

공요요가 광마존을 바라보았다.

광마존의 표정은 이전과 여일했다. 우쭐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교주가 어떤 명령을 내리든, 무조건 수행하겠다는 맹목적인 충신의 얼굴이었다.

문득 공요요는 서량이 조금, 아주 조금 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중팔부중은 궁주인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한다. 실제로도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충성은 서량이 받는 충성과는 달랐다.

비궁은 오랜 시간 평온함에 취해 있었다.

좋게 말하면 의식주 걱정 없이 수행할 수 있었기에 술법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세상과 부대끼지 않고 살았기에 경험이 극도로 부족했다.

삶에 대한 걱정이 없는 환경에서의 관계는 무르고 연약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대 비궁주는 팔부중들의 정신에 술법을 걸었다.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이른바 섭혼(攝魂)의 술법은 아니었다.

섭혼술에 걸린 대상은 술법의 연성 속도가 느려지며, 혹여 일정 이상의 경지를 구축하게 되면 섭혼술이 깨져 버리게 된다.

하여 선대 비궁주가 택한 것은 종속이었다.

비궁 술법의 총화는 오로지 궁주에게만 허가된 공부였다. 마중팔부중이 익힌 술법들은 궁주가 익힌 완성된 술법의 곁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술법 전부는 궁주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술법은 곧 정신을 어떻게 다루느냐부터 시작하는 공부이니, 자연히 팔부중은 궁주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밖에 없다.

즉, 자발적이지 않은 충성이다. 그러나 교주인 서량은,저 맹호와 같은 마존들로부터 절대적인 충성을 받는 모양이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벌써 저만큼⋯⋯.'

새삼 부럽고 놀랍다.

그러나 그만큼의 부담과 증오 또한 느껴졌다.

'세상이 다 네놈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술법은 무공보다 훨씬 더 대자연의 이치에 가까운 학문이다.

게다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비궁의 절대술법 성녀휘광(聖女輝光)은 물론 멸법일마술 역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천마지학(天魔之學)에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국 번복하지 않겠다는 뜻이로군.”

공요요가 턱을 세웠다.

그간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던 존재, 천마신교 성녀의 고고함이 묻어 나오는 몸짓이었다.

"마존과 천마군은 길을 열어라.”

“⋯⋯?”

"내 직접 마신궁으로 갈 것이다. 교주와 담판을 짓고야 말리라.”

광마존의 눈이 깊어졌다.

교주님을 저리 함부로 부르는 작태에 머리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화가 치밀었지만, 어찌 되었든 해결을 본다고 한다.

여기서 화를 내는 것은 오히려 손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대의 직위에는 특수성이 있었다.

“좋다. 그러나 마신궁에 들 사람은 오직 너 하나뿐이다.”

공요요가 피식 웃었다.

“어련하시려고.”

물끄러미 공요요를 보던 광마존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고루와 철검은 궁주를 마신궁으로 데리고 가게! 그 외에 열화와 한음, 천마군은 지금부터 비궁의 주춧돌 하나 남기지 말고 쓸어 버리도록!”

순간 공요요의 눈이 번뜩였다.

“멈춰라!”

광마존은 그녀의 외침에 반응하지 않았다.

“모조리 쓸어 버려라!”

“감히!”

분노에 찬 공요요의 목소리에 마중팔부중과 술사들이 제각기 전투를 준비했다.

그때였다.

"교주님의 명령은 무조건 완수되어야만 한다.”

어느새 공요요의 옆으로 다가온 고루마존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주의 말씀대로, 교주님의 절대명령을 바로 행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것 자체가 신의 위엄을 상케 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마음 같아선 당장 네놈들을 찢어 죽이고 싶었으나, 비궁이란 존재의 특수성과 교주님의 아량 덕분에 참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교주님의 명을 거스른다면⋯⋯”

차차차창!

천마 삼 군 칠백 고수들이 일제히 도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술사들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엄정한 기세로 도열해 있을 때도 굉장했지만, 도검을 뽑고 마공을 개방한 천마군의 위용은 거대한 해일을 연상케 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적의 전설. 무려 천 년 동안 신교 최강 병력이라는 명성과 전통을 이어 온 욕계의 마군이다.

"더는 봐주지 않겠다. 너희 모두를 죽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시 화신보옥을 개방해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 주마."

"⋯⋯."

“너희의 위치를 자각하라. 너희 역시, 교주님을 모시는 교도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는 그 살벌한 내용과는 달리 어조의 변화도 없이 침착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이러나저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그들의 생사와 처우는 교주와 공요요의 손에 달린 것이다.

이전에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공요요의 기지에 분위기가 달라진 후였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하고, 싸울 명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이 천마신교라는 집단에서, 교주와 얽힌 일에 명분 따위는 필요 없다. 교주의 말이 법이요, 진리다.

만일 교주가 정성스레 답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화신보옥을 개방하라 명했다면, 이미 그들의 목숨도 사라졌을 것이다.

“뭣들 하고 있는가! 모조리 쓸어 버리지 않고!”

“명!”

쿠구구구궁!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진군하는 천마군의 위용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마중팔부중과 술사들은 저도 모르게 길을 비켜 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콰르르르릉!

거대한 건물 하나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요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비궁이⋯⋯'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비궁이 어리숙한 교주를 신봉하는 무뢰배들의 손에 무너지고 있었다.

유구한 역사가, 드높은 권위가, 찬란한 빛이 추락한다.

공요요가 몸을 돌렸다.

두 마존과 함께 마신궁으로 향하는 그녀의 얼굴은 형용할 수 없는 흉악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넌 실수했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교주를 죽일 생각은 없다.

교주를 죽이면 자신은 물론, 자신을 따르는 술사들도 모조리 죽을 것이다. 나아가 자신은 천마신교 역사상 최악의 궁주로 불리게 될 것이다.

다만.

'괴뢰로 만들어 주마.'

죽음보다도 못한 인생을 살게 만들 것이다. 평생을 노예처럼 부려 줄 것이다.

먼저 건드린 것은 교주이니,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을 것이다.

우우우웅.

공요요의 손에 샛노란 기운이 피어올랐다.

*

*

*

"교주님. 비궁주가 출발했다고 합니다.”

“알았네. 대호법은 이만 나가 보게.”

“예.”

무담이 나가자 서량이 마동필을 힐끔거렸다. 태사의 뒤, 어두운 그림자 속에 서 있는 마동필은 있는 듯 없는 듯 미약한 존재감만을 드리우고 있었다.

"흐음.”

마동필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동필아.”

“예, 교주님.”

“좀 갑작스럽기는 하다만, 요새 정체기냐?"

“무슨 말씀이신지⋯⋯?”

“무공 말이다.”

“아!”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제 재능에 비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분수에 넘치는 속도로 경지에 올랐으니,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괜찮군.'

멈추지 않고 성장하던 자가 무공의 정체를 겪으면 누구라도 당황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중단전의 폭발, 오욕칠정에서 힘을 얻는 마공을 익힌 자라면 더더욱.

화도 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야 정상이다. 심하면 무기력에 빠져 수련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놀랍게도 마동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이룩한 경지가 진심으로 축복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 독하게 노력했음에도 이리 겸손하기는 쉽지 않은데.’

만일 마동필이 정파 무림에서 태어났다면 최고수 소리는 못 들었을지언정 대협 소리는 들었을 것 같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소박하고 선한 성품을 지녔다.

'저러한 성품이 위기를 위기로 만들지 않는 것이지.'

서량은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

교주가 되고 난 후 처음으로 적(敵)이라 할 만한 존재와 대면하려는 때에 할 고민으로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미 수개월 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던 바였다.

그간 선택을 내리지 못했던 것은 그가 소교주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건네주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이제 천마신교의 정점인 교주가 되었다. 신교의 법보다도 위에 있는 지고한 자리에 앉았으니,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금강야차마공이 너의 깨달음을 버거워하고 있다."

“예?!”

"내가 판마정에서 나오기 전, 원로원주를 상대로 아주 인상적인 무공을 보여 주었지?"

“아, 그것은⋯⋯.”

"너의 수준으로, 네가 이룩한 경지로 원로원주에게 상처를 입히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그런데도 넌 그걸 해냈다. 너의 깨달음이, 의지가 마공과 경지의 차이를 뛰어넘었기 때문이야.”

말은 쉽지만 그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은 누구라도 힘들다.

사람의 의지로 못할 게 없다고들 말하지만,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당시의 마동필은 교주를 지키기 위해 한순간이나마 무언가를 초월했다.

문제는 초월의 정도였다. 극마에 이르지 못한 진기로, 극마에서도 거의 끝자락에 도달한 자의 육신에 상처를 입혔다?

“금강야차마공은 분명 훌륭한 마공이야. 본교의 십대마공 중 하나이니, 그대로 간다면 언젠가는 극마에 이를 수 있겠지. 하지만⋯⋯.”

서량이 눈을 빛냈다.

“내 감히 말하는데, 너의 그 정체기는 십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유인즉, 한순간이나마 마공이 쫓아가지 못할 깨달음을 선보였기 때문이야.

그 차이가 너무 커서 네 심신(心身)의 수준을 마공이 쫓아가기 힘들 수밖에 없어.”

마동필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제 그릇이 그 정도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쉼 없이 벽을 두드릴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 너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다. 차분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이지.”

“⋯⋯.”

"문제는 네가 나의 호위라는 것이다.”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너 정도 경지에 도달한 자에게, 미래를 위해 더 힘들게 단련하라는 말 따위는 필요치 않아. 그래서 내 너에게 새로운 마공을 전수할까 한다.”

“교, 교주님?!”

“본교의 십대마공에는 딱히 순위가 정해져 있진 않아. 마공의 특성이 다를 뿐이지. 하지만 십대마공보다도 뛰어난 마공을 나는 두 개나 알고 있다.”

화르륵.

서량의 왼손에서 흉흉한 핏빛 화염이 타올랐다.

“군림마황기는 오로지 교주와 후계자만이 익힐 수 있는 천마지학. 그러나 구유마공은 달라.”

“⋯⋯!!”

"너에게 구유마공을 전수하겠다.”

“교,교주님! 저는 그 귀한 무공을 받을 자격이⋯⋯.”

“이견은 용납하지 않겠다. 나와 마찬가지로, 너 역시 지금의 수준으로 만족해선 안 돼. 앞으로 내가 어떤 길을 걸을지 알고 있잖아?”

"⋯⋯."

“이번 일이 끝나면 바로 전수에 들어가도록 하지."

쿵!

마동필이 땅에 이마를 박았다.

"교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어찌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그만큼 날 잘 지켜 주면 돼. 그러니 지금부터 잘 봐 두도록 해라.”

“⋯⋯예?”

그때, 대전 밖에서 고루마존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 고루마존이 교주님께 아뢰옵니다! 비궁의 주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서량의 눈빛이 바뀌었다.

“앞으로 네가 익힐 마공이 얼마나 수준 높고 난해한 마공인지, 지금부터 두 눈 똑똑히 뜨고 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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