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화. 신(神)은 하나다 (7)
쿠구궁!
마신궁이 흔들릴 정도로 강대한 충격파는 궁문을 넘어 외부까지 전달되었다.
무담의 눈에 분노가 일었다.
단순히 무공을 발현했다고 이런 충격파가 전해질 리는 없다.
이것은 기와 기, 즉 경력(勁力)이 부딪치며 터져 나오는 진동이었다. 필경 교주님과 비궁주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리라.
'참으로 개탄스럽도다.'
마신궁은 신교제일의 신지(神地)요, 신전이다. 철천지원수라도 마신궁 안에서만큼은 일체의 분란을 일으켜선 안 된다.
한데 광마존 때에 이어 또다시 마신궁이 신음하고 있다. 그 사실이 무담을 분노케 했고, 또한 서글프게 했다.
어느새 그의 곁에 다가온 엄태경이 다소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괜찮을까요?”
“무엇이 말인가.”
“교주님께 듣기로, 비궁주의 술법 중 군림마황기와 천적인 공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비궁주 역시 술법으로는 누구 못지않은 위인이니만큼 교주님의 안위가 걱정스럽습니다.”
엄태경은 본디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주의 안위가 걸린 상황이었다.
마땅히 교주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몽땅 뒤로 빠져 있으니 걱정될 만도 했다.
무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서량을 믿었다. 그의 성품 이전에 그 능력을 믿었다.
판마정을 홀로 제압한 순간, 무담에게 서량은 이천상 못지않은 유능한 교주로서 마음 깊이 각인되었다.
하지만 상대는 비궁주였다.
신교, 아니 천하에서 유일하게 천마를 제압할 술수를 알고 있는 자란 말이다.
하물며 당대 비궁주의 술법은 지고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바, 제아무리 교주님이라도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담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교주님께선 홀로 판마정을 제압하셨네.”
"⋯⋯."
“본교 역사상 판마정을 단신으로 제압한 선대는 몇 분 없었네. 그 말인즉슨, 교주님의 무공이 본교 역사상 손에 꼽힐 만큼 대단하다는 것이야.”
물론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교주들이 단신으로 판마정에 도전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서량은 아직 이립도 되지 않았다.
천마라는 칭호는 단순히 재능이 있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공에 대한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범인(凡人)과는 세상을 달리 보는 안목이 중요했다.
저 나이에 저만한 깨달음.
애초에 사는 세상이 다르다. 무담은 자신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세상을 거니는 교주님이 자신들의 걱정을 완전히 분쇄해 줄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맞습니다. 비궁주는 절대 교주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무담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총군사?”
어찌나 고심하고 있었는지, 호요성이 다가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담의 눈에 의아함이 담겼다.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렇습니다.”
서량이 지지 않을 거라는 무담의 생각은 기실 바람에 더 가까웠다.
서량을 이전상만큼이나 믿지만, 적어도 능력적인 면에서는 아직 이전상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요성은 달랐다. 그에게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비궁의 멸법일마술은 군림마황기와 상극입니다.
천마지학에 대항할 수 있는, 아니 억압할 수 있는 유일한 공부지요. 하지만 교주님께서는 군림마황기만 익히고 계신 게 아닙니다."
“물론 그러실 게요. 하지만 군림마황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천하제일마공이오.
게다가 비궁주의 성녀휘광 역시 술법계에선 천하제일 소리를 듣는다고 했소.
교주님의 경지라면 마공의 수준에 상관없이 상대를 제압하는 데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군림마황기가 아니라면 여러모로 힘들 수도⋯⋯.”
“군림마황기에 필적할 만한 마공을 익히셨다면 어떻습니까?"
"⋯⋯?!”
“당대 천하에서 군림마황기와 비벼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마공을 익히고 계신다면 어떻습니까?
심지어 그 마공을 군림마황기보다도 오래 연성하고 계셨다면요?"
무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군림마황기에 필적할 만한 마공이라니? 그런 게 어디 있소?”
군림마황기에 근접할 마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던 무담이었다.
그의 믿음은 실로 타당했다.
군림마황기는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라 불린 수십 명의 교주들이 수백 년 동안 고심해서 완성시킨 불세출의 마공이었다.
역사 깊은 문파라면 그러한 무공들을 제법 보유하고 있기 마련이지만, 군림마황기는 그 깊이와 위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학의 경지로 천마의 칭호를 받느냐 마느냐를 따질 만큼 고차원적인 무학이거늘, 그러한 마공에 필적할 만한 무공을 익히고 있다니?
"교주님께서 삼공자 시절, 입마에서 벗어나신 후 고죽림에서 창안하신 무공입니다.”
“직접 창안하셨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물론 오롯이 삼공자님만의 힘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전대 교주님께서도 약간의 도움을 주셨다고 하지요.
전대 교주님께서 평하시길, 깊이와 방대함에 있어선 군림마황기에 견줄 수 없으나 무학의 강약만 본다면 능히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무담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그때, 엄태경이 침음했다.
"하면 그때 그것이⋯⋯”
두 사람이 엄태경을 보았다.
엄태경이 말했다.
“저희 천마군이 전대 교주님을 모시고 의창으로 향했을 때, 교주님의 마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군림마황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면?!”
“피처럼 붉고 불처럼 뜨거운⋯⋯ 마치 지옥의 불길을 형상화한 듯 흉포하기 이를 데 없는 마기를 발산하고 계셨지요.
이제 보니 그것이 바로 그 마공이었던 모양입니다.”
“허⋯⋯!”
무담이 고개를 저었다.
“입마에서 벗어나셨던 때라면 고작해야 이, 삼 년밖에 되지 않았거늘, 그사이에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군림마황기에 견줄 만한 마공을 만들어 내셨다고?”
불경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무담은 그 말을 쉬이 믿기가 어려웠다.
세상에 수많은 천재가 태어나고 스러지길 반복하지만, 그들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명백한 한계를 지녔다.
희대의 천재라도 역사와 경험의 무게를 감당해 낼 수는 없는 법이다.
한데 수백 년 역사를 고작 몇 년 만에 따라잡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당대 교주님은 진정 무신(武神) 소리를 들어야 마땅했다.
동시에 무담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호요성의 말대로 교주님께서 그만한 재능의 소유자라면? 역사상 최고의 천마라는 전대 교주님조차도 넘어설 만한 분이라면?
“본교의 역사가⋯⋯.”
쿠르르릉!!
또 한 차례 마신궁이 흔들렸다.
이번 진동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당장이라도 마신궁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그리고,
화르르륵!
대전이 있는 곳, 그곳의 창가 인근에서.
샛노란 안개를 불태우는 핏빛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
*
'이럴 수가?!’
공요요는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술법이 극에 이른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사방 천지를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을 개방할 수 있었다.
심안이란 곧 오감을 뛰어넘는 육감이다. 오감이 닫혀 있어도 육감의 문이 열리면 주변 사물의 형태는 물론 기의 흐름, 위협까지도 단박에 꿰뚫어 볼 수 있다.
한데 지금 그 심안이 막혀 버렸다.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불길 때문에.
화르르르륵!
공요요를 중심으로, 반경 삼 장에 달하는 불의 벽이 생겨났다.
그것은 실재하는 불이 아니었다. 마기가 유형화되어 불처럼 타오르는 것일 뿐, 실제로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열기가 아니라 살기가 느껴졌다. 이 원형의 화벽(火壁)을 건드리는 순간 숨통이 끊어져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머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지종열화벽(地從熱火壁)이란 수법이다.”
공요요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작 시전자인 서량은 이 살기 넘치는 화벽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뒷짐을 진 채 불의 벽을 뚫고 나타났다.
“판마정의 환상, 유진도형결을 보고 떠올린 수법이야.
군림마황기로 펼치기엔 다소 딱딱할 것 같더군. 하지만 구유마공(九幽魔功)에는 제격일 것 같았지. 혹시나 해서 펼쳐 보았거늘,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군.”
“구유마공?”
“그래.”
“그게 뭐지?”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핏빛 화광을 받아 일렁이는 그의 얼굴은 도무지 인간의 그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직접 창안한 마공이다. 물론 사부님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공요요의 눈이 흔들렸다.
얼핏 느끼기로, 이 마기의 순도는 군림마황기에 필적했다. 단순히 깨달음이 깊어서가 아니라 무학 자체의 수준이 마황기와 비교해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마공을 직접 창안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이 되고 말고를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서량이 손을 들었다.
화르르르륵!
원형을 이루던 화벽에서 한 줄기 불길이 치솟아 그의 손목을 휘감았다.
마치 생명을 가진 것만 같았다. 꼭 머리처럼 보이는 곳은 보다. 어두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화사(火蛇), 혹은 화룡(火龍)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화사는 화룡이든, 유형화된 기를 의지만으로 자유롭게 조종한다는 것은 무학에 대한 장고(長考)가 없었다면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낼 일이다.
하지만 서량은 단순히 무학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깨달음은 이미 궁극의 경지를 엿보고 있었고, 특히나 기(氣)에 대한 이해력은 천하제일을 논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런 그이기에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이다.
신(神)과 마(魔)의 본질을 넘어 기(氣)의 운용 원리, 진기(眞氣)의 흐름을 누구보다 선명히 볼 수 있기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마기를 기공화(氣功化)할 수 있다.
떠올려 구현해 내니 이미 초식이다. 군림마황기와 구유마공을 동시에 연성하며 얻은 창의성과 이해력이, 천부적인 감각과 결합하여 꽃을 피웠다.
“자아, 어디 한 번 받아 보거라.”
화아아악!
공요요의 눈이 커졌다.
가볍게 손을 내미니 뱀인지 용인지 모를 불꽃의 생명체가 날아든다. 놀랍게도 서량의 손을 떠난 불꽃은 순식간에 크기를 키웠다.
화르르륵!!
찰나지간 거대해진 불꽃의 용이 단숨에 공요요를 삼킬 듯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핏빛 화염으로 생성된 용의 질주였다.
‘헉!’
이미 무공의 한계를 넘어섰다. 기겁한 공요요는 곧바로 멸법일마술을 펼쳤다.
지이이이이잉!
공요요의 가슴 앞에서 생성된 시커먼 구슬이 눈 깜짝할 새에 거대한 쟁반 만큼 커졌다. 마치 기공으로 방어막을 형성한 것처럼 보였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거대한 화룡이 흑색 원형 방패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신음도 흘리지 않는다. 공요요는 낭패한 기색으로 십여 걸음가량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통하지 않는다!’
멸법일마술이 통하지 않는다.
저 마공이 군림마황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충돌이었다. 동시에 저 마공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공부인지도 깨달았다.
'이법(二法)에 불과하다곤 해도 충격을 거의 해소하지 못했다?'
군림마황기와 성녀휘광이 천년의 세월을 거쳐 발전한 것처럼, 멸법일마술 역시 천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멸법일마술은 일종의 금제술법(禁制術法)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철저하게 군림마황기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교주가 군림마황기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 왔듯, 멸법일마술 역시 수 대에 걸쳐 더 강하게, 더 범용적으로 개량되어 왔다.
그렇게 성장한 지금의 멸법일마술은 군림마황기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마공은 세 합 이내에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진화했다.
마인(魔人)을 대상으로는 거의 불패의 명성을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한 것이다.
“⋯⋯재미있어.”
화르르륵!
왼손에는 샛노란 성녀휘광을, 오른손에는 시커먼 멸법일마술을 피워 내는 공요요.
“그간 익혀 왔던 술계 최강의 공부들을 모조리 시도해 봐도 무방할 상대를 만났어. 네놈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서량이 짓궂은 표정으로 검지를 까딱였다.
“누군가를 후회하게 할 만큼의 실력은 되나?"
“주둥이 하나만큼은 전대 교주를 넘어서는구나!”
퍼어억!
공요요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복부에는 서량의 주먹이 박혀 있었다.
"내가 사부님보다 나은 게 하나 더 있지."
“우웨엑!”
"나는 그분처럼 자비롭지를 못해.”
서량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공요요의 복부에 박힌 주먹에서 붉은 광채가 폭발했다.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