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21화 (421/774)

421화. 십대천마(十代天魔) (1)

“헉!”

“크으으윽!”

열화마존과 한음마존이 깜짝 놀라서 술사들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마중팔부중은 물론 휘하 술사들 모두가 머리를 움켜쥐고 쓰러져 있었다. 개중에는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술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쓰러지니, 보는 사람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열화마존과 한음마존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광마존이 말했다.

“숙주의 주요술법이 파괴됐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교주님께서 궁주를 쓰러트리셨단 말이지.”

"아!”

열화마존과 한음마존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깃들었다.

광마존의 눈이 깊어졌다.

'종속술법이 확실했군.'

그는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머리에 쌓아 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비록 술법을 무공만큼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 대략적인 맥과 종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강한 거였어.'

술법은 크게 종속술법과 개성술법으로 나뉜다.

그중 종속술법은, 한 유파(流派)의 종주(宗主)가 하위 술법을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며 술력(術力)을 공급받는 것을 뜻한다.

타인에게 술력을 공급받으니 성장이 빠르고, 술법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해도 강력한 법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술법을 구사할 수 있다.

더하여 종주의 경지가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깨달음을 하위 술사들에게 전해 주어 종속된 이들의 경지를 손쉽게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하다.

하위 술법을 전수한 술사들이 일정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정신의 종속이 걸리지 않는다.

하여 하위 술사가 상위 술사를 공격하려 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지금처럼 술법의 종주가 지닌바 법력을 잃고 술법이 파괴당하면, 그에게 종속된 술사들도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때에 따라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며, 술법이 파괴되거나 법력을 소실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높은 경지를 이루었음에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한 번 움직이면 전부가 움직이며, 전투를 벌일 때도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지 않을 때는 손을 쓰지 않는다.

혹시라도 누구 하나가 죽으면 유파 전체에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궁주를 마신궁으로 보냈다.'

광마존이 미소를 지었다.

'멸법일마술인가 하는 술법을 그토록 믿고 있었군.'

종속술법을 익힌 자들 모두가 확신할 만큼 굉장한 술법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멸법일마술을 정면으로 깨부순 교주님은 대체 어떤 분이실까?

털썩! 털썩!

술사 중 무려 이십여 명이 그대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나머지 술사들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인 것 같았다.

“한음.”

“말씀하시오, 원주.”

“천마군을 불러 이들을 모조리 뇌옥에 수감하게. 당주에게 금해철갑(禁海鐵匣)으로 진기를 봉인해야 한다고 전하게.”

“아, 형법당주는 현재 교외에 있다고 들었소.”

"하면 최고 책임자에게 그리 전하게.”

“알겠소이다.”

그렇게 비궁의 진법과 건물을 모조리 파괴해 버린 천마군이 쓰러진 술사들의 마혈과 혼혈을 짚고는 형법당으로 향했다.

“끝났군.”

나름대로 걱정이 많았는데 잘 끝나서 다행이었다. 광마존은 마음 깊이 안도했다.

*

*

*

후우우우웅.

불어오는 바람이 대전에 깃든 무거운 공기를 산뜻하게 바꿔 주었다.

창과 문을 활짝 열고 마기로 격전의 흔적을 씻어 낸 서량이 태사의에 앉았다.

“보수 좀 해야겠군.”

공요요의 술법은 허상의 술법이었다. 상대가 그 허상을 조금이라도 믿어 버리면, 실제 당하는 것과 똑같은 피해를 보게 된다.

즉, 대전이 엉망이 된 것은 공요요 때문이 아니었다. 공요요를 잡기 위해 구유마공을 개방한 서량으로 인해 대전 곳곳이 금이 가고 부서진 것이다.

태사의에 몸을 누인 서량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힘든 상대였어.’

경지에 이른 고수가 고작 술법의 허실도 구분해 내지 못하냐는 질문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실제 고죽림이나 판마정 역시 진법이자 술법이니까. 천마도 홀로 제압하지 못할 술법이라면, 천하 누구라도 힘들다고 봐야 한다.

술법은 그렇게나 무서운 공부다. 술법을 십 년 익힌 술사 한 명이 수십 년간 무공을 익힌 고수들 수십을 농락하기도 한다.

만일 서량이 구유마공을 익히지 못했다면, 마황군림보를 대성하지 못했다면 공요요를 이리 쉽게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술법이든 무공이든 종국엔 하나라지만 신화(神化)의 경지에 이르기 전까진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까.

'만일이라는 가정은 필요 없어. 어찌 되었든 수월하게 이겼으니까. 그래도⋯⋯.'

서량의 마안이 번뜩였다.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는 있겠지.'

그때, 마동필이 물었다.

“교주님.”

“음?”

"괜찮으신지요?”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다 봤잖아? 안 괜찮을 게 뭐가 있냐, 유효타는 하나도 맞질 않았는데.”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갑자기 또 왜 이러셔?”

“당연히 교주님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저는 물론 마존이라도 십 합을 버티기 힘든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태사의 뒤에서 공요요와의 격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그였다.

마동필의 충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술법에 가까운 무공을 구사하는 자는 본 적이 있지만, 온전한 술법만 구사하는 고수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제야 그는 깨달았다. 왜 무림인들이 술사를 피하는 것인지.

그들의 힘은 상식을 벗어났다.

인간의 머리로는 떠올리기 쉽지 않은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여 상대를 압박하는데,

부동심으로 유명한 소림의 승려들도 당할 수밖에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마동필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아니라면 저런 상대와의 싸움은 무조건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을 갈고 닦은 무공이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넌 더 쉬울걸?”

“예?”

“물론 저 망할 년은 멸법일마술을 익히고 있었다.

군림마황기가 과거의 군림마황기가 아니듯, 저년이 구사하는 멸법일마술도 과거와는 다른 것 같아. 군림마황기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마공과 상극일 거야.”

"아, 예.”

“하지만 멸법일마술이 아니었다면 너도 해 볼 만했을 거다.”

“제, 제가 말입니까?”

"그래. 이유야 어찌 되었든, 너는 너 스스로 이룩한 경지를 정신력만으로 초월할 만큼 의지가 깊고 강단이 있어.

그 정신력은, 어떤 의미론 강철과 같지. 그 정도 정신력이 있으니 술사를 상대하기가 어렵진 않을 거야.”

"과찬이십니다.”

“과찬 아니다. 거기다 구유마공까지 익히게 되면 천하 술사(術士) 중 너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만한 자는 찾아보기 힘들 거다.”

“구유마공이 술법에 강하기 때문입니까?”

“정확히는 법력(法力)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내실이 좋은 무공이기 때문이지.”

구유마공은 태생부터가 평범한 마공과는 달랐다.

군림마황기라는 절대마공에 비견될 만큼 마기의 질이 높았지만, 그 기반은 구파의 비기를 모아 만든 암영기(暗影氣)였다.

암영기는 도불(道佛)의 신공들을 모아 만든 무공인 만큼, 사술이나 술법에 강한 저항력을 갖는다.

구유마공은 그 암영기의 장점 대부분을 가져간 마공이니만큼 대(對) 술법전(術法戰)에 강한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다.

서량이 멋쩍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크게 거리낌은 없지?”

“예?”

“구유마공의 기반이 된 암영기는 구파의 절학을 모아서 만든 무공이야.

살왕이었을 적에도 암영기 덕에 재미를 많이 봤어. 그래도 정공(正功)임을 부인할 수 없단 말이지.”

“아⋯⋯.”

“찝찝하진 않겠냐?"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무공의 기반이 무엇이 되었든, 강해질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하물며 교주님께서 직접 창안하신 무공인데 제가 어찌⋯⋯.”

“어쨌든 전혀 상관없다는 말이지?"

"예? 무, 물론입니다! 오히려 송구할 뿐입니다.”

“송구는 무슨.”

서량이 옷을 털며 일어났다.

"애들한테 대전 보수 좀 맡기고 곧바로 전수 들어가자.”

“지, 지금 말씀입니까?”

“그럼 언제 익히려고? 십 년 뒤에?"

“그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상황이 어수선하니 주변 정리를 하시는 것이⋯⋯.”

말을 하던 마동필이 재차 고개를 숙였다. 감히 교주님께 주제넘게 나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할 사람은 내가 아니지.”

“예?”

“여기서부터는 본교 수뇌부들의 몫이다. 나는 꼭 필요한 지시만 내릴 뿐,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 거야.”

서량이 피식 웃었다.

“이 거대한 단체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터지는데, 그걸 일일이 다스리는 게 말이 되나.

그저 믿을 만한 인선을 배치하고, 나서야 할 일에만 나서 주는 게 지금 내가 할 일이야.”

"아, 그렇군요.”

“가자.”

서량은 휘적휘적 회랑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동필은 생각했다.

'크시구나.”

지금의 교주님은 며칠 전과는 또 달라지셨다.

하루하루, 매시간 크고 넉넉해지시는 것 같았다.

저만큼 떨어져서 걸어가고 계신 걸 보고 따라잡으려 들면, 어느 순간 그보다 한참을 더 멀리서 걸어가고 계신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가고, 존경하게 된다. 교주가 되면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가 버리셨지만, 동시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시는 분이었다.

마동필은 그런 서량이 진심으로 좋았다. 사람으로서, 교주로서 좋았다.

“한데 교주님.”

“왜?”

“궁주는 왜 살려 두신 겁니까?"

"글쎄다? 이뻐서?"

"⋯⋯."

“농담이야, 인마. 이놈 새끼는 어째 옛날부터 농담 한마디 받아 주질 않네.”

“죄송합니다.”

“낄낄.”

웃음을 지워 낸 서량이 다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써먹을 데가 많은 년이거든. 그냥 죽이기에는 아깝지.”

“써먹는다는 말씀은⋯⋯ 혹시 그녀에게 따로 일을 맡길 생각이십니까?”

“일을 맡긴다고? 내가? 미쳤냐? 너도 걔 봤잖아, 팔다리 다 박살 난 거.

군림마황기나 구유마공 정도가 아니면 치료도 불가능해. 혈혼각 의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거다.”

“하면⋯⋯?”

“좋은 영약이잖냐.”

“영약이요?”

“응. 약속을 지키는 게 꽤 늦어졌으니, 그놈에게 어지간히 미안해야지. 그래서 선물 겸 살려 둔 거다. 멸법일마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기도 하고.”

영약? 선물?

마동필은 내심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다 생각이 있으셨으니 살려 두었겠지.

판마정으로 들어가는 서량의 눈에 살벌한 광채가 떠올랐다.

“사람이 알뜰살뜰하게 살아야지.”

*

*

*

주르륵.

어두운 뇌옥에 처박힌 공요요의 모습은 실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부러진 팔다리는 기이하게 비틀려 있고, 얼굴을 제외한 좌반신은 몽땅 화상을 입었다. 부러진 턱 또한 맞춰지지 않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충격으로 죽지 않은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물론 크게 흔들린 정신력 때문에 법력을 끌어올릴 수도 없었다.

거기에 금해철로 만든 수갑까지 찼으니, 기(氣)를 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공요요는 생각했다.

'죽는 건가?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더러운 뇌옥에서 팔다리가 다 부러진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죽는 건가?

한 번의 어긋난 선택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야? 당장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탑(塔)의 꼭대기에서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던 내가?

으드득!

이가 절로 갈렸다. 턱이 부러져서 제대로 갈지도 못했고 엄청난 통증에 눈앞이 아찔했지만, 그 모든 걸 무시할 만큼 분노가 컸다.

“두고 봐라, 서량. 내 반드시 너를⋯⋯.”

그때였다.

번쩍!

그녀가 수감된 뇌옥 구석에서 한 쌍의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공요요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누, 누구냐?”

“⋯⋯.”

“누구냐고!”

스르륵.

붉은 안광의 주인공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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