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26화 (426/774)

426화. 십대천마(十代天魔) (6)

사람들에게 정파 무림을 대표하는 집단을 묻는다면 십중팔구 소림사(少林寺)라 답할 것이다.

태산북두(泰山北斗)라 칭송받는 소림사의 무공은 명실공히 정파 무림의 토대라 봐도 무방하다.

천하공부출소림(天下工夫出少林), 천하 모든 무공이 소림사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래서 소림사는 결코 무너져선 안 되는 집단이었다.

소림이 얼마나 강하냐를 떠나, 그들에게는 그러한 상징성이 있었다.

정파 무림과 전쟁을 치렀던 수많은 집단이 소림사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마도 무림을 대표하는 집단은 어디인가.

천마신교다.

역사상 몇 차례 부침을 겪었던 소림사와는 달리,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무너져 본 적이 없는 마도의 신화다.

그리고 그 신화를 이끌어 간 것은, 잊을 만하면 나타났던 천마(天魔)라는 존재였다.

천마는 하늘 아래 누구도 견줄 수 없는 무력의 화신이며, 만마(萬魔)의 제왕이다.

그리고 역대 천마들은 영광의 시대를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상징, 즉 병장기를 후대에 남겼다.

초대천마의 참룡마도(斬龍魔刀)가 그러했고, 사대천마의 용곡신편(龍哭神懷)이 그러했으며 칠대천마의 칠야도(漆夜刀)가 그러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내려오면서도 녹슬지 않은 그들의 병장기는 천마의 위대함을 상징했다.

그렇다면 역사상 최고, 최강의 천마라 불리는 구대천마 이천상의 애병 마황보검(魔皇寶劍)은 어떠한가?

놀랍게도 마황보검은 다른 천마들의 애병과는 달리 특출난 병기가 아니었다.

마황보검은 이천상의 전 세대, 최악의 교주라 불리던 자전신마(紫電神魔)의 검이었다.

타락할 대로 타락해 버린 자전신마는 무(武)의 본질에서조차 멀어져 버렸다. 해서 기능에 충실한 병기보다는 외양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병기를 좋아했다.

애초에 그의 주 무공은 검법도 아니었다. 한 쌍의 육장(肉掌)으로 구사하는 수공(手功)으로 그 자리에 올랐음에도, 단순히 위엄 있어 보이기 위해 보검을 찼다.

그렇게 모은 수많은 보검 중 하나가 바로 마황보검이었다.

여느 철검보다는 단단하고 예리했지만, 화려함에 치중했기에 겉보기만 그럴듯할 뿐 실속이 없는 장식용에 가까웠다.

자전신마를 몰아낸 이천상은 바로 그 마황보검을 자신의 애검으로 사용했다.

화려하기만 할 뿐 실속이 없는 마황보검은 마치 당시의 신교를 상징하는 듯했다.

이천상은 그 검을 쥐고 천마신교를 마도 무림의 총본산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절대무적의 집단으로 성장시켰다.

같은 검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검.

타락을 원치 않았기에 타락의 상징인 보검을 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던 구대천마의 고뇌로 제련된 검.

고금제일의 무공과, 그만한 무력을 갖추기 위해 연마된 심혼(心魂)으로 새로이 제련된 고금제일마검(古今第一魔劍).

그 검이 지금 이곳, 천마신교의 삼십육대(三十六代) 교주이자 십대천마(十代天魔) 서량 앞에 나타났다.

금호가 입을 벌렸다.

자연스레 바닥으로 떨어지려던 마황보검이 둥실 떠올라 서서히 서량에게로 다가왔다.

철컥!

검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실질적인 무게라면 천마도가 훨씬 무겁겠지만, 마황보검에는 이천상의 인생이 담겨 있었다. 그의 고뇌와 꿈, 역경과 성공이 담겨 있었다.

서량이 마황보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는 소리가 한 줄기 노래처럼 매끄러웠다.

중원의 여느 패검보다 더 넓고 긴 검신(劍身)은 천마도만큼이나 웅장해 보였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사부님.’

우우우웅.

검명(劍鳴)이 터져 나왔다. 마기를 쏟아붓지 않았음에도 검이 스스로 울음을 토해 낸다.

치이이이익!

검신에서 시커먼 마기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 연기를 본 마인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저, 전대 교주님!"

“헉!”

그렇다.

마황보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바로 이천상의 마기였다. 그 어떤 마기와도 수준을 달리하는 초고밀도의 선천마기였다.

스르륵.

편히 앉아 있던 마인들이 자연스레 무릎을 꿇었다.

이천상은 죽었지만 그의 분신은 남았다. 저 검이야말로 이천상의 분신이었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마의 유물 앞에서 예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눈으로 마황보검을 쓸어 보던 서량이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츠츠츠츠.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선천마기가 서량의 미간으로 스며들려 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었다. 백회와 미간은 상단전의 통로였다.

정제되지 않은 외부의 기가 들어오게 되면, 자칫 정신착란 등의 광증(狂症)을 겪거나 심할 경우 뇌사(腦死) 상태에 빠질 수도 있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치이이이익!

전진하던 마기가 일순 벽에 막힌 듯 그 자리에서 꿈틀거렸다.

“싫습니다.”

담담한 목소리가 교도들의 귀로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저는 당대 신교의 주인입니다. 사부님을 존경하지만, 이미 권좌에서 내려오신 당신께서 제게 개입하셔선 안 되지요.”

치이익! 치이이익!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단 한 명의 천마(天魔)로서, 본교가 하늘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치이이익!

“역사상 최고라 칭송받은 당신께서 유일하게 인정한 후계자입니다. 당신보다 잘할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교주라는 자리를 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담담한 목소리에 강철 같은 자신감과 자연스러운 위엄이 묻어 나왔다.

다른 집단과는 달리, 마도와 사파의 수장에게 겸손함은 필수 덕목이 아니다.

하지만 역대 최고의 천마를 앞에 두고 당신보다 잘하겠다는 말을 뱉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서량의 목소리에선 별다른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하건, 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건.

담담하게 읊조린 그 말이 머지않아 현실로 이뤄질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믿으십시오. 천마의 말입니다.”

스스스.

연신 꿈틀거리던 선천마기가 다시 마황보검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서량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 놀라운 광경에 마인들은 입을 쩍 벌렸다.

가만히 검을 들여다보던 서량이 납검 후 교도들을 둘러보았다.

"근래, 썩 유쾌하지 못한 나날들을 보냈지?”

마인들이 고개를 들어 서량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처럼 무겁고 까마득한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다.

서량은 이천상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마치 진흙 위에서 핀 연꽃처럼 고고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

“너희는 신(神)을 잃었다.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상상도 해 본 적 없던 적지에서.”

마인들의 눈이 흔들렸다.

그렇다. 그들은 이천상을 이렇게 잃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누군가와 싸우다 죽을 거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슬픔보다도 혼란을 느꼈다. 그들이 아는 신은, 적어도 그렇게 스러져선 안 될 존재였기 때문이다.

신의 의도가 어떻든, 그는 그렇게 떠나서는 안 될 이였다. 이천상 사후, 그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 가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 뛰어난 사람들은 종종 단명키 마련이다.

게다가 그분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고, 우리의 잣대로는 가늠할 수 없는 분이셨지.

칠십 년이 넘도록 사셨으니 단명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기실 영원불멸의 삶을 사셨어야 옳다. 그런 분께서 그리 가셨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겠지."

"⋯⋯."

“한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

의미를 짐작하기 힘든 말이었다. 마인들은 숨죽이며 서량의 말을 경청했다.

“슬퍼할 수 있다. 우울해질 수 있어. 화가 날 수도 있고, 허망함에 몸부림칠 수도 있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의 사실을 간과했더구나.”

여유롭고 담담했던 서량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너희에게 신(神)은 하나가 아니야.”

“⋯⋯!!"

“신은 죽었으되, 또 다른 신을 점지해 주고 갔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을 신은 젊은 나이에 천마가 되어, 한 세대에 천마가 둘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낸 괴물이다.”

후우우웅!

맑고 시원했던 바람이 조금씩 무겁고 텁텁해졌다.

서량의 왼쪽 눈이 시퍼런 전광을 뿜어냈다.

“그런 괴물이 자신의 후계자였기에, 당신께서는 하늘이 될 기회를 박차고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택했다.

훌쩍 떠나 버리면 그만일 것을, 새로운 세상을 열 후계자를 위해 중원을 뒤집어 놓고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셨지.”

"⋯⋯."

"나는 그분의 마음을 안다. 그분도 내 마음을 알아. 해서 난 개인의 꿈을 뒤로 하고, 생명을 불태워서라도 본교를 천하에 이르게 할 작심을 했다.”

“⋯⋯.”

"너희는 어떠하냐?”

“⋯⋯?!”

“새로운 천마는 너희에게 신세계를 보여 주려 하는데, 너희는 구세계의 환상에 파묻혀 그리 의욕 없이 살고 싶은가?"

서량이 턱을 치켜들었다.

한없이 부드럽던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숨쉬기조차 불편할 만큼 공기가 무거워졌다.

쿠르르릉.

맑게 갠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

콰르르릉!

구름과 구름이 부딪치며 귀청을 멀게 하는 천둥과 시퍼런 벼락을 흩뿌렸다.

“말해 봐라.”

파지지직! 화르르륵!

두 눈에 천상의 벼락과 지옥의 화염을 담은 절대자가 물었다.

“내가 누구냐.”

마인들의 얼굴에 격동이 깃들었다.

쿵!

마황보검으로 악귀상의 머리를 내리찍으며 일어난 서량이 다시 한번 물었다.

"너희 앞에 선 내가 누구냐!”

무릎을 꿇고 있던 모든 마인이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하였다.

“군림성교(君臨聖敎)! 천마불사(天魔不死)!"

원로원주 광마존이 모두를 대표하여 외쳤다.

"미욱한 마의 자식들이 십대천마(十代天魔)를 알현하나이다!"

“십대천마를 알현하나이다!”

마인들이 연이어 외쳤다.

“십대천마를 알현하나이다!”

“십대천마를 알현하나이다!”

외치고, 또 외쳤다. 새로운 천마가 비로소 강림(降臨)했음을 깨달은 그들의 외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진한 격동으로 물들어 갔다.

엎드렸던 호요성이 상체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십대천마를 알현하나이다!”

“아아아!”

“새로운 신을 뵙습니다!”

마치 단체로 약에 취한 것만 같았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랄 것 없이 일제히 천마를 부르짖는데, 마치 광신도(狂信徒)들을 보는 것 같았다.

호요성이 다시 고개를 돌려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서량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좌청우홍의 절대마안을 빛내며 사방을 굽어보고 있었다.

중앙 광장의 거대한 악귀상 위에 서서 이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실로 마신(魔神)을 연상케 했다.

호요성이 웃으며 입을 작게 달싹였다.

“십대천마를 뵙습니다.”

대관식과 마위 이양을 준비해 줄 사람은 필요치 않다.

지금 이곳, 모든 마인이 보는 앞에서 서량은 스스로 신교의 새로운 신임을 공표했다.

스스로 능력이 있음을 알려 주었고, 그 능력에 걸맞은 위엄도 보여 주었다.

콰르르릉! 쏴아아아아!

어두워진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서량도, 수뇌부들도, 휘하 마인들도 모두가 비에 젖었다.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고 자욱한 습기로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천둥보다도 컸고, 그들의 광기는 번개보다도 강렬했으며, 그들의 눈빛은 소나기마저 증발시킬 듯 뜨거운 염원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교도들은 반나절이 지나도록 외치고 또 외쳤다.

천마신교에 새로운 천마(天魔)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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