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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28화 (428/774)

428화. 투쟁을 읽는 자들 (2)

“대호법님!”

다급한 얼굴로 집무실에 찾아온 이군성을 보며 무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 그리 다급하신가?”

“호남으로 파견했던 조원에게서 지급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급으로?”

“이것을.”

이군성이 건넨 서신을 본 무담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 총군사는 어디에 있다고 하던가?”

"반 시진 전 입궁 후,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입궁(入宮)은 곧 궁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신교에 궁이라 불릴 곳은 마신궁뿐이니, 교주님과 한참 얘기 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무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파견 나간 호법들 전원에게 황색(黃色) 태세를 갖추라 하게.”

“명을 받듭니다!”

무담은 즉시 집무실을 나섰다.

*

*

*

무담이 마신궁을 찾았을 때였다.

쿠구궁!

마신궁이 한 차례 흔들렸다.

그 충격음은 누가 봐도 발경(發勁)에 기인한 것이었다. 무담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굳어졌다.

“교주님?!”

흑백쌍위 역시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언제 어느 때라도 무표정을 고수하던 그들이 최근엔 너무 자주 놀라고 있었다.

무담이 외쳤다.

“문을 열게! 어서!”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고집스레 막아설 때가 아니었다. 흑백쌍위가 허겁지겁 마신궁의 대문을 열었다.

파아아앙!

무담과 흑백쌍위가 순식간에 마신궁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대문 하나 넘는다고 곧장 대전이 나오진 않는다.

마신궁의 크기는 실로 굉장해서 대문을 넘고도 네 개의 문을 더 지나야 대전 앞에 이를 수 있다.

이후 문 하나를 더 통과하면 교주의 개인 거처에 이르게 된다.

쿵! 쿵! 쿵!

세 개의 문을 순식간에 돌파한 무담이 힐끔 주변을 둘러보았다.

'움직이지 않는다?'

호천마황단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은신술은 무담의 무공으로도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굉장했지만,

마신궁에서 충격파가 새어 나오는 사태라면 얘기가 달라져야 했다. 어떻게든 움직임이 포착되어야 옳다.

‘교주님께서?’

그다지 심각한 상황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나 무담은 좀처럼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새 교주님께서는 워낙에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분이라,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가 대전 입구까지 도달했다.

그때였다.

쿠우우웅! 쩌저저저적!!

대전의 문에 허연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실로 놀라웠다.

마치 기상 이변을 보는 것처럼 대전 문이 빠른 속도로 얼어붙는데, 손을 가져다 대면 순식간에 몸통까지 얼어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동시에 대전 안에서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와하하하! 이건 뭐 한기가 무지막지합니다그려!”

“허허, 아직 멀었소이다.”

쿠구구궁!

또다시 대전이, 아니 마신궁 전체가 울렸다.

무담은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교주님, 제발⋯⋯.’

빙궁주와 그의 아들, 그리고 검왕 남궁언이 왔다고 했다. 그걸 알려 드린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절대자들끼리 만나 중원 정세, 혹은 차후 무림의 동향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라도 나누는 줄 알았더니 냅다 비무를 벌인 모양이었다.

거기까지는 상관없다. 교주님께서 손을 섞고 싶다 하시는데 뉘라서 그것을 막을 것인가.

다만 장소가 문제였다. 판마정이나 교주만이 알고 있는 비처(祕處)에서 비무를 벌인다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크든 이런 진동이 새어 나올 리는 없었다.

'이러다가 마신궁이 남아나질 않겠구나.'

콰르릉!

한 줄기 굉음과 함께 교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소. 싸움을 더 이어 갔다간 문밖에서 서성이는 대호법의 수명이 반 토막이 날 것 같아.”

“충분하지는 않소이다. 훗날 내 몸이 다 낫게 되면, 그때 다시 손을 섞어 봅시다.”

“그거 좋소. 몇 번 더 붙어 보면 그럴싸한 무공 하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거든.”

“허허허.”

"대호법은 이만 들어와도 되네.”

무담이 대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우우우우웅.

강렬한 마기로 물든 손이 대문을 뒤덮은 서리를 한순간에 녹여냈다.

쿠구궁!

문을 열고 들어간 무담이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신교의 대호법이 교주님을 알현하나이다.”

말을 할 때마다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대전 안의 온도는 무척이나 낮았다. 단순히 온도만 낮은 것이 아니라 곳곳에 낀 서리가 의지를 가진 듯 제멋대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만일 대전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가 작정을 한다면, 그 즉시 서리가 모여 누군가의 몸에 침투할 것이다.

극한의 침투경(浸透勁), 극한의 빙공(功).

북해의 제왕 여극도의 무공은 그처럼 무서웠다.

“왔나.”

화르르르륵!

서량의 손이 크게 휘둘러졌다. 동시에 곳곳에 어린 서리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여극도가 힘을 푼 탓도 있겠지만, 이만한 영역에 드리워진 서리를 손짓 한 번으로 녹여 버린 것도 인간의 힘은 아니었다.

혹한의 절대자와 욕계의 마왕이 만들어 낸, 그리고 만들고 있는 광경은 그처럼 비현실적이기만 했다.

무담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량은 계단에 여유롭게 걸터앉아 있었고 여극도는 붉은 융단 위에 정좌한 상태였다.

검왕 남궁언은 팔짱을 낀 채 흥미진진한 얼굴로 창가에 섰고, 호요성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원망 가득한 눈으로 서량을 보고 있었다.

무담이 헛기침을 했다.

"보고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직접 온 걸 보니 급한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파견을 나가 있는 호법 일 조에서 지급으로 온 정보입니다.”

남궁언이 헛기침을 했다.

“궁주, 우리는 잠시 나갑시다.”

"그럽시다.”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밖으로 가시면 흑백쌍위가 두 분을 안내해 드릴 것이오. 일이 끝나면 곧장 연락하겠소.”

여극도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두 사람이 대전을 나섰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대단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 보통이 아니로군. 새외제일의 패자(覇者)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야. 몸이 정상이었다면 혼쭐이 났겠어.”

무담의 눈이 빛났다.

“그 정도였습니까?”

“음.”

서량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저쪽 소궁주와 연수 관계에 있긴 하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소궁주 놈과의 관계일 뿐이었지. 그래서 한번 손을 섞어 봤네. 궁주의 마음을 알고 싶었거든.”

“그러셨군요.”

“저 정도 고수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은 아직 내 능력으로는 부족하네.

가장 확실한 것은 손속을 나눠 보는 것이지. 겸사겸사 상대의 수준도 알고, 새로운 무공도 접할 기회이니만큼 나에게도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네.”

무담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교주님은 분명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이지만, 생각 없이 움직이는 분은 아니다.

얼핏 보기엔 대책 없이 사고를 치는 것 같아도 그 행동에 언제나 남들이 모르는 치밀한 고뇌가 함께하고 있다.

새삼 그 사실을 깨닫자 마음에 부담이 없어졌다.

'그래, 마신궁은 그저 건물일 뿐이다. 교주님이 계시기에 신성시되어야 마땅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교주님이야.'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무담의 기도가 미세하게 바뀌는 것을 느낀 그였다. 변화의 폭은 작았지만, 지금까지의 무담이 갖고 있던 틀에 금이 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서량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사부님께서 사람 보는 눈이 있었군.'

수십 년을 고지식하게 살았지만 모시는 사람에 따라 충성의 방식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서량은 무담이 좋았다. 무담은 달라지지 말아야 할 것은 놔둔 채, 달라져야 할 부분만 변화시킬 줄 알았다.

“하면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빙궁주의 마음?"

“그렇습니다.”

“전부는 모르겠네. 그러나 하나는 알겠더군.”

서량이 일어나 태사의로 걸어가며 말했다.

"은원(恩怨)이 확실한 사람이야.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당한 걸 절대 잊지 않지. 적으로 두면 골치가 아프겠더군.”

교주님께서 저리 평가하셨다면 분명 위험한 사람이리라.

“그래서 걱정이 없지.”

“예?”

푹신한 태사의에 앉은 서량이 장난스레 낄낄거렸다.

“원한은 싹 죽여 놓고 도움만 잔뜩 줬거든. 앞으로 우릴 얼마나 도와줄지 벌써부터 짜릿하구먼!”

무담이 헛기침을 했다.

권위의 상징인 태사의에 앉아서 애처럼 낄낄거리는 모습은 아직도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어쩐 일로⋯⋯.”

그때 호요성이 손을 들었다.

“제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십니까?”

“응.”

"⋯⋯."

“그래서, 대호법은 어인 일로 오셨는가?”

무담이 고개를 숙였다.

“현재 호남 동부에서 마도 문파들끼리의 분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분쟁?”

“그렇습니다.”

"지급으로 연락이 올 정도면 보통 규모는 아니겠군.”

“자칫 잘못하다간 호남 동부 전체가 초토화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합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여유와 장난기가 가득했던 청년의 얼굴 위로 군림자의 위엄이 덧씌워졌다. 무담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사정은 알고 있나?”

“정확한 사정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문파 간의 영역 다툼이라기엔 싸움이 지나치게 격해진 감이 있습니다.”

“문파 간의 다툼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던가.”

"문제는 시간입니다.

혈서방(血書房)과 구궁문(九弓門)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난 지 불과 이틀 만에 호남 동부에 자리 잡은 마도 문파 대부분이 분쟁에 참여했습니다.

벌써 사상자가 일백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서량의 눈이 재차 번뜩였다.

"확실히 빠르군. 단순한 영역 다툼이라기엔 도를 지나쳤어.”

“그렇습니다.”

“영역 다툼의 원인은?”

“파악 중입니다만, 아무래도 사업체 문제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서량이 호요성을 바라보았다.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마도나 사파는 정파 무림처럼 의(義)와 협(俠)을 근간으로 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문제가 생겼다면 돈 때문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대체 어떤 사업체에, 얼마나 큰 돈이 걸려 있기에 이틀 만에 호남 동부 전체가 들썩이게 된 걸까?

“호남 동부는 북부 다음으로 환락가가 많습니다. 아마 그쪽 문제가 아닐는지⋯⋯.”

“대호법.”

"예, 교주님.”

“거경가(巨鯨家)에 연락을 취해 보게. 지금 당장.”

무담이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교주님께서 제대로 움직이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담은 서둘러 대전을 나섰다.

서량이 호요성을 바라보았다. 호요성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총군사.”

"예, 교주님.”

“자네, 강서상회라고 아나?"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면 그들이⋯⋯.”

“의천맹주의 수작으로 탄생한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 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습죠.”

서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요성은 자신이 교주의 말을 끊어 버린 것도 인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서량의 말에 일일이 반응은 하고 있지만, 눈빛을 보아하니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했다.

“어떻게 알고 있나?"

"예? 뭘요?”

“강서상회가 의천맹주의 수작으로 탄생한 집단이라는 거.”

그제야 호요성이 서량을 돌아보았다.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신기했습니다.”

"신기했다니?”

“저는 본교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의 거의 모든 문파와 상단을 조사해 봤습니다.

한데 강서상회가 제법 특이하더군요. 그 상회를 이룬 수뇌부들의 면면을 보면, 본교와 악연으로 얽히지 않은 자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거든요.”

“⋯⋯그걸 다 조사해 봤다고?"

“물론이지요. 총군사의 당연한 소임입니다.”

괴물은 따로 있었구먼.

서량은 혀를 내둘렀다. 말이 쉽지, 신교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의 모든 집단을 조사한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조사의 어려움 이전에 그 막대한 양의 정보를 머리에 정리해 두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거기에 엄청난 금력(金力) 소모는 덤이다.

"한데 왜 의천맹주를 의심했나?"

“의천맹주와 철혈성주의 성격만 알면 간단한 일입니다.”

“자체적으로 성장했을 수도 있잖은가?”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금력, 무력, 일 처리 방식 자체가 상단보다는 무파의 그것에 가깝거든요. 게다가 그들의 주 거래 상대는 사파와 마도 측이지요."

서량은 기어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네, 진짜 똑똑하긴 한가 봐?"

호요성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괜히 총군사겠습니까.”

“그래, 총군사는 바빠야지.”

“물론 그렇⋯⋯ 예?”

“강서상회 좀 탈탈 털어 봐.”

호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강서상회가 약을 쳤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 놈들 뒤에 있는 누군가가 움직였다고 생각해.”

“뒤에 있는 이라면⋯⋯?!”

서량의 눈에 마기가 치솟았다.

"슬슬 피로가 풀릴 때가 되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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