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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31화 (431/774)

431화. 움트는 씨앗 (1)

무담의 반응은 생각보다 그리 격하지 않았다.

“그러셨군요.”

고개를 조아린 무담은 그 대답 이후 묵묵부답이었다.

태사의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던 서량은 슬쩍 다리를 꼬았다.

침묵은 여전했다.

무담의 눈치를 보던 서량이 살살 다리를 풀었다. 은근슬쩍 팔짱을 꼈다가도, 영 불편했는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허험.”

들으란 듯 헛기침도 했지만 무담은 요지부동이었다.

엉거주춤 일어난 서량은 괜스레 일어났다 싶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불편함은 여전했다.

또다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결국 서량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어, 그 뭐랄까⋯⋯.”

"⋯⋯."

“허허험! 같이 갈까?"

“예?”

무담이 고개를 들어 서량을 보았다. 늙은 충신의 얼굴에 의아함이 담겼다.

서량은 기회다 싶어 냉큼 말을 늘어놓았다.

"교주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출교를 한다고 하니 자네로서는 충분히 답답할 수 있네. 내 그거 이해 못 하지 않아. 사실 자네처럼 교주와 가까운 사람이 또 어디 있겠나? 교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자네의 충정은 마도 무림 전체가 알고 있을 걸세.”

“황송하옵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교주가 되기 전까지는 자네와 나 사이에 별 접점이 없었잖나? 실제로 자네와 손발을 맞춰 본 건 한 달도 되지 않지. 그런데도 내게 자네는 누구와도 비하기 어려운 충신이요, 측근일세.”

"교주님의 성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러니 이만 노여움을 풀었으면 좋겠구먼.”

“예?”

“⋯⋯?”

“노여움이라니요?"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화난 거 아니야?”

무담이 고개를 넙죽 숙였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신(臣)이 감히 교주님께 화를 낼 수 있겠습니까.”

"어, 그런가?”

“그저 교주님께서 더 말씀이 없으시기에⋯⋯.”

서량의 얼굴에 화색이 어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무담은 정말 화가 난 것 같진 않았다.

본래 자신을 욕하는 사람보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더 대하기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서량은 삼공자니, 소교주니 대우받고 살긴 했어도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걱정 많은 아랫사람을 무시할 만큼 독해지진 못한 것이다.

“그러면 나 나간다?”

“예에.”

“같이 안 가도 돼?"

무담의 얼굴에 갈등이 일었다.

“명을 내려 주신다면 기꺼이 교주님을 모시겠습니다.”

“아? 따로 할 일이 있는 건가?"

“⋯⋯.”

"괜찮네. 기탄없이 말해 보게.”

“그리 말씀하시니,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래그래.”

"교주님께서는 대관을 치르신 후, 마도 무림의 진정한 태양이 되셨습니다. 놀랍게도 그 여파는 상상 이상인지라, 그간 의욕 없이 살아왔던 교도들의 생활이 단번에 바뀔 정도였습니다.”

“허허, 그런가?”

"예. 그래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문제라니?”

“저는 마인이지만, 과함은 모자람만큼이나 나쁘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물론 교주님을 향한 교도들의 신심(信心)은 깊어질수록 좋습니다만, 교도들의 의욕이 지나치게 과잉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음, 그렇긴 하지.”

"내성은 아직 괜찮지만, 외성의 교도들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황입니다. 외성의 교도들 역시 창칼을 다루는 이들인지라 자칫 큰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담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없어도 어떻게든 잘 무마는 되겠지만⋯⋯ 교주님께서 출교하신다면 교도들이 어찌 반응할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전 남아 있는 것이⋯⋯.”

“아? 그것 때문이었구만?"

“예?”

서량이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하지 마. 몰래 나갈 생각이니까.”

무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몰⋯⋯ 래 말입니까?”

“응. 안 그래도 어수선한 때에 뭐 하러 일을 거창하게 벌이겠나? 그냥 슬그머니 나가서⋯⋯.”

"안 됩니다!!”

순간 대전이 쩌렁쩌렁 울렸다.

우웅 하고 울리는 발성에 서량도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무담은 아차 싶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감히 교주님 면전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이는 백번 죽어도 모자랄 대죄이옵니다!”

“아, 아냐! 대죄 아냐. 근데 왜 안 된다는 거야?"

“예?”

“왜 안 되냐고. 그냥 슥 나갔다가 돌아오겠단 건데, 그게 그렇게 큰일인가?”

이 또한 불충하다고 생각하지만, 무담은 황당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마도대종사이자 십만마도의 주인이신 교주님께서 어찌 교도들 몰래 하산하신단 말입니까? 마땅히 전 교도들에게 교주님의 출정을 알리시어 무사 귀환을⋯⋯!”

“안 그래도 어수선하다면서? 오히려 대놓고 나가는 게 교도들에게 더 안 좋은 일 아닌가?”

무담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냉정하게 봤을 때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도들의 환영을 받는다면 나도 좋기야 하겠다만⋯⋯.”

거짓말이다. 서량은 분명 교도들을 위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애정과 믿음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래도 괜히 더 어수선해지게 할 필요는 없잖아? 본인들 할 일 하고 있는데 교주 나간답시고 모이게 만들면 그것도 나름대로 피해를 주는 거 아니겠⋯⋯.”

“안 됩니다!!”

순간 대전이 다시 한번 우웅! 하고 울렸다.

어찌나 박력 넘치는 발성인지 서량도 순간 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입까지 살짝 벌리고 눈을 끔뻑이는 걸 보니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무담이 덩달아 놀라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뭘 또 죽기까지⋯⋯. 아니, 그것보다 그게 그렇게 큰일인가?"

"예?!”

“아니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게 그 뭐랄까⋯⋯. 혹시 교도들에게 실례가 되는 건가?”

혼란이 가중되고 황당함이 배가 된다. 무담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충격에 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렸다.

서량이 볼을 긁적이며 딴청을 피웠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구먼."

“교주님.”

“음?”

“소신이 감히 간언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어어, 그래. 얼마든지.”

“간언을 드리기에 앞서, 하나만 여쭙고자 합니다. 교주님께서 교도들 몰래 출교하시려는 까닭은, 교도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 하심입니까?”

“물론 그렇⋯⋯.”

"아니면 교주님께서 부담스러우시기 때문입니까?”

순간 서량은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무담의 충심과 성격을 생각하면 교주의 말을 끊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작심한 듯 무담이 힘을 주어 말했다.

“송구하옵니다만 교주님. 교주님께서는 본교의 신이시고, 마도 무림의 태양이십니다. 교주님께서 교도들을 아끼시는 성심(聖心)은 실로 후대의 본보기이자 만인의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만, 교주님께서 교도들에게 부담을 가지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는 단순하고도 명확합니다. 황공하옵니다만, 교주님께서 지배자가 되신 것은 피지배자인 교도들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교주님께서 직접 대관과 마위 이양의 장을 열어 교도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신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 아닌지요?"

“그렇지.”

“지배자는 피지배자들의 실질적, 암묵적 허용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배자인 교주님께서 교도들을 아끼는 것은 교주님의 선택입니다만, 피지배자는 본인들의 희망으로 세운 지배자란 존재에게 고개를 조아려야만 합니다.”

그야말로 신선하기 짝이 없는 시각이요, 해석이었다. 어떤 부분에선 궤변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서량은 무담의 말을 이해했다.

제아무리 서량이 무담보다 강하고 지혜롭다 한들, 교리(敎理)와 신교라는 집단의 특이성만큼은 그보다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무담은 단순한 지배, 피지배의 관계를 빌어 천마신교의 교주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주님께서 교도들을 아끼는 마음에 암행출정(暗行出征)을 선택하시는 것은, 신(神)의 권리를 떠나 지배자로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주님께서 교도들이 부담스러워 그와 같은 선택을 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것을 지배자의 올바른 덕목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목숨을 내걸고 하는 말이었다. 교주가 길을 엇나갔을 때 목숨이 날아갈 위험을 무릅쓰고 간언하는 것이야말로 대호법의 소임이기 때문이다.

서량 역시 그것을 알았기에 무담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모든 것은 교주님의 선택이옵니다. 신교의 신민(神民)으로서 저는 교주님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디 이 늙고 무례한 신하의 간언을, 한 번만 고민해 주시길 바라옵니다."

그것으로 무담은 할 말을 끝냈다. 오체투지한 자세로 미동도 안 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부탁이었다.

가만히 무담을 내려다보던 서량이 일순 미소를 띠었다.

"일어나게.”

“예.”

무담이 공손한 자세로 일어났다.

"대호법의 말은 잘 알아들었네. 그래도 나는 암행을 해야겠네.”

“⋯⋯준비해 두겠습니다.”

“다녀온 후에, 이 건에 대해서 확실하게 정리하도록 하지. 마음 깊이 이해하지도 못한 주제에 알겠다, 틀렸다 말하고 싶진 않거든.”

“송구하옵니다.”

비록 확답을 받진 못했지만 무담은 내심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교주님은 신하의 간언을 세심히 듣고 고민하실 줄 아는 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교주님께서 다스리실 앞으로의 신교는 태평성대를 맞이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출정은 금일 자정일세. 자네는 어쩌겠나?"

“예?”

“명령이 아니라 선택을 하라는 걸세. 나를 따라 강서성으로 향하겠나? 아니면 이곳에 남아 있겠나?”

잠시 고민하던 무담이 말했다.

“저는 남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마 모든 일을 제치고 서량을 따라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길지 않았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돌아와서 보세.”

“부디 옥체 건강히 다녀오시길 간곡히 바라옵니다.”

그렇게 무담이 나가고 서량 홀로 대전에 남았다.

태사의에 등을 묻은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사람은 위하되 부담은 갖지 말고 눈치도 보지 마라⋯⋯.”

순간 그는 이천상의 말을 떠올렸다.

- 억울하게 죽은 그 마인을 위해 화를 내는 것은 오히려 그의 신심을 더럽히는 짓이다.

- 그래서 난 신(神)이라 불리는 것이다. 신은 억울함을 풀어 주는 존재가 아니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서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신 노릇도 참 못 할 짓이군. 도무지 성격에 안 맞아서 원."

*

*

*

끼이이익!

서량이 연무실을 열었다.

동시에 연무실 안쪽에서 짙은 피 냄새가 훅 끼쳐 들었다. 오래된 냄새가 아닌 생생한 혈향이었다.

서량이 연무실 중앙을 바라보았다.

“허억! 허억!”

“후우."

그곳에는 흑혈마검을 뽑아 든 채 상대를 노려보는 마동필과 피투성이가 된 관평이 있었다.

굉장한 집중력이었다. 연무실의 문이 열렸는데도 두 사람 모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서로를 향한 살의와 투지만이 그득할 뿐.

'잘 되어 가고 있군.'

피투성이가 된 몸뚱이와 지칠 대로 지친 육신.

그러나 관평의 두 눈은 이전보다 더 맑아져 있었다. 마동필의 흑혈마검을 통해 체내의 잡스러운 마기를 모조리 뽑아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두 사람을 보던 서량이 이내 연무실의 문을 닫았다.

곧바로 연무실이 뒤흔들렸다. 폭발적인 무공을 구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서량이 어깨를 빙빙 돌렸다.

“각자 할 일들 잘하고 있으니, 나도 내 할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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