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33화 (433/774)

433화. 움트는 씨앗 (3)

쨍그랑!

떨어진 접시가 산산이 조각났다.

호요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충격적인 일인가요?”

“시녀장님?”

“헉! 네?”

“접시 떨어트리셨습니다요.”

앵화가 화들짝 놀라서 바닥을 바라보았다.

“뜨헉!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게 죄송할 건 없는데⋯⋯ 괜찮으십니까?"

“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로군요. 허허.”

앵화가 서둘러 깨진 접시 조각을 쓸어 담았다.

"어? 그러다 다쳐요.”

“아, 괜찮아요, 총군사님.”

스르륵.

앵화의 손짓 한 번에 저 멀리 날아갔던 파편들이 저절로 모여들었다.

호요성의 눈이 커졌다.

“오? 굉장한데요? 그거 월음마공 아닙니까?”

“네, 맞아요.”

“월음마공의 상천수(天手)를 응용한 것 같은데⋯⋯ 대단합니다. 엄청 섬세하군요?”

호요성의 무공 경지는 빈말로도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다. 애초에 그의 장기는 머리였으니, 굳이 무공 연성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기도 했다.

다만 무공을 보는 안목까지 낮지는 않았다. 기실 신교의 십대마공은 물론, 백팔마학(百八魔學) 전부를 달달 외고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월음마공을 익히신 지 얼마 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벌써 그 정도면 앞으로 십 년 후에는 어엿한 고수가 되시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저⋯⋯.”

"하하, 본인의 단점을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장점을 아는 겁니다. 지나치게 겸손한 것도 좋은 게 아니에요.”

"아⋯⋯.”

“그냥 그렇다는 말입니다. 한데 괜찮으십니까?"

“네?”

“교주님께서 몰래 출교하셨다는 게 그렇게 큰 충격일 줄은 몰랐습니다."

앵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니에요. 그저 아무 말 없이 가셨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서⋯⋯.”

호요성이 빙긋 웃었다.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교주님이 얼마나 강한 분인지 아시잖아요? 게다가 신장부 전체가 함께하고 있으니, 오히려 위험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여, 역시 그렇겠죠?”

다소 밝아진 앵화의 얼굴을 보며 호요성은 생각했다.

'교주님.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지만, 돌아오시면 여러 사람 신경 좀 쓰셔야겠어요.'

서량이 교주가 되면서, 그의 전속 시녀였던 앵화 역시 지위가 올라갔다.

물론 앵화는 거부했다. 자신이 그만한 자리에 오를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량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전속 시녀이자 동료일 뿐, 그녀에게 부서의 장(長)으로서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요성은 서량을 설득해 앵화를 시녀장의 직책에 올려 놓았다.

교주의 말이 절대적이라지만 모시는 사람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 법이다. 서량이 교주가 되면서 여러모로 역사에 없던 관행을 깼으나, 담당 시녀를 아무렇게나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시녀를 교체하는 것은 서량이 바라는 바가 아니니, 부득불 앵화를 시녀장으로 승진시킨 것이다.

신교의 시녀들 사이에서도 앵화의 승진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물론 교주의 시녀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능력이 아닌 줄을 잘 타서 얻은 직책이니 고까울 수밖에 없었다.

앵화 역시 본인의 직책을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호요성은 앵화가 시녀장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시녀장의 덕목은 빠른 일 처리도, 휘하 시녀들을 잘 부리는 것도 아닌 겸손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끔 지나치긴 하지만.'

그렇기에 교주님께선 앵화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셔야 한다. 그것은 앵화의 문제 이전에 교주로서의 책임이다.

그때, 앵화가 물었다.

“한데 총군사님.”

“말씀하세요, 시녀장님.”

“아⋯⋯ 네. 다름이 아니라요.”

“다름이 아니라요?"

"교주님께서 가신 곳이 어딘지 궁금해서요.”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문제였다. 호요성은 서슴없이 알려 주었다.

"강서성입니다.”

“강서성이요?”

앵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요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 그게⋯⋯.”

“껄껄. 혹시 시녀장님 고향이라도 되는 걸까요?"

“네.”

“⋯⋯?"

“⋯⋯.”

“진짜요?”

“⋯⋯네에.”

호요성은 드물게 당황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건 몰랐군요. 하기야 본교 마인 중 강서성 출신이 꽤 있지요.”

희대의 천재라 불리는 호요성도 교내 마인들의 출신을 일일이 알진 못한다. 그걸 다 외우려면 제아무리 천재라도 머리가 쪼개질 것이다.

“그나저나 강서성 어디 출신이십니까? 본교에 들어오셨으니 어지간하면 남부 출신⋯⋯.”

“도창(都昌)이요.”

호요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창이요? 거긴 강서성 북부 아닙니까? 파양호에 있는?"

"네에.”

“허!”

파양호는 동정호(洞庭湖), 태호(太湖), 홍택호(洪澤湖), 소호(巢湖)와 함께 중원의 오대 담수호 중 하나다. 위로는 장강(長江)과 연결되어 있으며, 장강의 수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하는 큰 호수였다.

상업이 크게 발달한 강서성에서도 가장 물류의 흐름이 활발한 지역이 바로 파양호 인근이다. 당장 파양호 주변으로는 호북, 안휘, 절강이 둘러싸고 있어서 지역 사람들은 그곳을 장사꾼의 천당(商堂)이라고도 한다.

'강서상회의 총단도 그쪽인데?'

호요성의 얼굴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언제 입교하셨다고요?"

앵화는 내심 의아했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제가 열 살이 넘어서니까 대충 육칠 년 전이에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강서성의 지리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하시겠네요?”

"네에.”

호요성이 입맛을 다셨다.

“아쉽게 됐군요.”

“네?”

"아,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입니다.”

"네에.”

하지만 덕분에 도움도 됐다.

지금껏 호요성은 작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인들의 보고와 여러 정보를 통해서 일을 처리해 왔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곳 출신 마인들의 얘기를 들어 보는 것도 정보 취득과 지역 생활상을 파악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별것 아닌 대화에서 얻은 바가 컸다. 내심 고개를 끄덕인 호요성은 문득 앵화에게 물었다.

“가끔 고향으로 가고 싶진 않으십니까?”

"⋯⋯."

“제가 괜한 질문을 드린 것 같군요.”

“아니에요. 정말이지 한 번씩 고향 생각이 나요.”

“그럴 겁니다. 저야 여기저기 길 따라 바람 따라 살아왔던 인생이지만, 시녀장님은 분명한 고향이 있으니까요.”

"네에.”

“그래도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은 잘 안 나시겠어요.”

우울한 얘기일 수 있지만, 뜻밖에도 앵화의 표정은 밝았다. 지금처럼 타인과 과거 얘기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맞아요. 하지만요, 기억나는 것도 많아요. 유독 저를 예뻐해 주셨던 포목점 관 아저씨, 만날 제 당과를 뺏어 먹던 천인상단(千人商團)의 이현이, 글을 알려 주던 홍 언니 등등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요.”

호요성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발랄하게 얘기하는 앵화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을 짓게 했다. 신교제일인 교주의 시녀지만, 이렇게 보면 아직도 꿈 많은 소녀 같았다.

“나중에 교주님께서 돌아오시면 한번 휴가나 내 달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앗! 그, 그러실 필요 없어요!"

“좋은 시녀장은 강호 경험도 풍부해야 하는 법입니다. 공부라 생각하고 고향 한번 다녀오십시오.”

"아⋯⋯ 가, 감사합니다.”

"뭘요. 이런 것밖에 해 드릴 게 없어서 민망하죠.”

호요성이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하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웃으며 몸을 돌린 호요성이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도 잠시.

서서히 보행 속도를 줄인 그가 이내 멈춰 섰다.

“한데 시녀장님.”

파편을 다 치우고 일어난 앵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조금 전에 그 말씀 말입니다.”

"어떤 말이요?”

“어렸을 적 시녀장님과 추억을 쌓았던 사람들이요.”

"아, 네!”

호요성이 몸을 돌렸다.

“혹시, 그 사람들을 지금 다시 봐도 기억할 수 있으십니까?”

앵화가 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분들의 얼굴은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해요. 제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 준 사람은 얼마 없거든요.”

“아하? 그렇군요.”

호요성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한데⋯⋯ 그중 천인상단의 친구 말입니다.”

"네? 아, 네네!”

“그 친구 이름은 기억하십니까?"

“누구요? 아, 이현이요?”

“친구분 이름이 이현이군요?"

"네! 장이현(張移入)이요!”

장씨.

호요성은 천인상단의 주인, 즉 강서상회 제이(第二)상단주의 이름이 장형서(張衡書)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천인상단이라면 강서성에서도 손꼽히는 상단이고, 장씨면 필경 상단주의 자식이거나 친척일 확률이 높겠군요.”

"어?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시녀장님은 어릴 때부터 천인상단주의 핏줄과 연을 맺은 셈이로군요.”

“그, 그게 그렇게 되네요?"

“유독 친했습니까?"

“아⋯⋯ 네. 입교하기 전까지는 가장 친했어요⋯⋯"

“만약 지금 시녀장님이 연락을 하면, 그 친구는 시녀장님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네!”

자신 있는 대답이었다.

반쯤은 긴가민가했던 호요성도 그 확신에 찬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 확신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요.”

“느낌상?”

“네. 현이는 제가 입교하기 전에 상단 일을 배운다고 외출이 금지됐거든요. 아마 현이에게는 제가 어린 시절 마지막 친구일거예요.”

확실히 그런 인연이라면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잠시 고민하던 호요성이 히죽 웃었다.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여러 작전을 강구했으니까.”

“네?”

“시녀장님.”

"네에.”

“오래간만에 어린 시절 친구와 차라도 한잔 나누실래요?”

*

*

*

일행의 이동 속도는 그야말로 바람처럼 빨랐다.

서량이나 여극도, 남궁언은 이미 궁극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다. 마음만 먹으면 며칠 안에 중원을 횡단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셋을 제외한 나머지 고수들도 만만치 않았다. 백팔마장은 물론 여강휘 역시 초절정고수로, 무림 어느 곳에서는 대접받을 만한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누구 하나 약자가 없고, 정신력이 부족한 사람도 없었다. 하물며 그들의 선두에 신(神)이 함께하고 있으니 지닌 능력 이상의 결과를 보여 주었다.

광동 십만대산에서 강서성의 성도인 남창(南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닷새였다.

산은 물론 강까지 건너야 함에도 고작 오 일 만에 남창까지 다다른 것이다.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속도였다.

남창은 파양호와 지척이었다. 말하자면 일행은 오일 만에 적지 한가운데까지 파고든 격이었다.

“잘 부탁하네, 지부장.”

“군림성교! 천마불사! 성신의 명을 받듭니다!”

강서성 남창에도 신교의 지부가 있었다. 물론 남들은 알 수 없는 비밀 지부로, 총 네 단계에 해당하는 암어(暗語)와 정통마기를 보유한 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지부의 지하 거점으로 들어온 일행은 저마다 짐을 풀었다. 한계를 넘어선 속도로 달려온 만큼 그들 모두가 지쳐 있었다.

“푸하! 아, 밥도 먹기 싫어. 그냥 바로 자고 싶다.”

여강휘는 생각보다 푼수기가 있었다. 처음 서량과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빙궁의 일이 잘 풀리고, 듬직한 아버지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본래 성격이 나오는 것 같았다.

서량이 웃으며 여극도에게 물었다.

“저 녀석, 원래 저렇습니까?"

“가끔 내 아들이 맞나 싶네.”

"외양만 보면 누가 봐도 빙궁의 후계자긴 합니다.”

“그래서 걱정이지. 외양과 성격의 괴리가 너무 심하잖나.”

이곳까지 오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편히 대하기로 했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선 절대 그럴 수 없겠지만.

서량이 철무정에게 말했다.

“다들 지쳤으니 오늘 하루는 푹 쉬도록 하게.”

“예, 교주님.”

“나는 잠시 저잣거리 좀 쏘다니다 오겠네.”

"예?!”

철무정은 당황했다.

“그, 그럼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됐네. 자네도 일 치르기 전에 쉬어 둬.”

“하, 하지만⋯⋯!”

“명령일세.”

철무정이 무릎을 꿇었다.

"하면⋯⋯ 편히 다녀오십시오.”

서량이 눈을 찡긋거렸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되네. 내가 어디 가서 맞고 올 만큼 약하진 않아.”

“소, 송구하옵니다!”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극도가 기다렸다는 듯 따라붙었다.

“같이 가시렵니까?”

"물론이네. 아직 팔팔하거든.”

“좋습니다. 안 그래도 말동무가 필요했는데.”

“그리 말하면 내가 섭섭한데?”

“하하.”

“검왕께서는 어디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따로 연락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냥 들어오시지, 그래도 천마신교의 지부라고 거절하신 걸 보면 확실히 공사가 분명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나라도 그러겠네. 그나저나 자네도 좀 쉬지 뭣 하러 저잣거리로 가려는가.”

서량이 눈을 찡긋거렸다.

“영업장 사전 조사 겸, 화끈한 사고를 유발하고자 함입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