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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35화 (435/774)

435화. 움트는 씨앗 (5)

도객의 수장, 호일도(湖一刀)가 말했다.

“우리는 강서상회에서 온 게⋯⋯.”

“역시 무리인가?”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나름의 충심이 있는 자들이군. 뭐, 이 정도 되는 놈들이니 보냈겠지만."

상대의 말을 들어줄 필요는 없다. 서량은 이미 이 네 명의 도객들이 강서상회에서 보낸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호일도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상대는 자신과 대화할 생각이 아예 없어 보였다. 그저 단정 짓고 판단한다. 이래서야 상회주의 말씀을 전하기도 힘들었다.

“귀하께서 진정 천마신교의 주인이 맞소?"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응.”

“⋯⋯."

첫 충격이 사라지자 사대호도(四大湖刀)는 물론 주루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어리둥절함을 느꼈다.

그들이 상상하는 마교주는 절대 이렇지 않았다. 삼두육비의 괴물까지는 아니어도 무시무시한 마기를 뿜으며 광소를 터트리는 모습을 상상해 왔다.

한데 지금 서량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 악명 자자한 염라마제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유연한 모습을 보여 준다. 존재감은 범상치 않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소탈해 보이기도 했다.

염라마제의 행보는 이제 와선 전설 비슷하게 취급되고 있었다.

중원을 가로지르며 온갖 화끈한 사건을 터트린 것도 그렇지만, 특히나 수천 마귀들을 이끌고 철혈성을 밀어붙였던 염왕(王)의 광기는 정사(正邪) 양도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오죽하면 광마(狂魔)라는 말까지 붙었겠는가.

한데 아무리 봐도 지금의 서량은 염라마제나 광마로 불릴 만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있었다.

서량은 사람들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나저나 역시 생각보다 빠르구만."

“⋯⋯?”

“적어도 반나절은 걸릴 줄 알았는데 한 시진도 안 되어서 이리 찾아왔다⋯⋯ 강서상회의 정보망이 대단하긴 해. 강서상회가 강서성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로군."

용포에 보검까지 차고 보란 듯이 저잣거리를 활보한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서량은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생각이었다.

요(要)는 시간이었다.

한 지역을 지배하는 영향력 있는 문파의 경우, 영역 내 특이 동향을 파악하는 데에 평균적으로 한 시진에서 반나절 사이가 걸린다.

이들은 그 평균치보다도 훨씬 빨리 자신에게 접근했다. 호남의 일 때문에 날이 서 있다 해도 빠른 속도였다.

‘천하 어떤 문파보다도 정보력이 좋아. 적어도 자신의 영역권 안에서는.'

보통 상단의 경우 어지간한 무림 문파보다도 정보력이 좋을 수밖에 없다. 정보가 곧 생업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호일도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떻게 생각해도 좋소만⋯⋯."

“너희가 날 상회주에게 데려가도록 만드는 방법은 수백 가지나 되지.”

뜬금없는 말이었다. 호일도는 이번에도 자신의 말을 끊은 서량에게 화가 났지만, 역시나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방법들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하면 어떤 방법을 쓰는 너희의 인생이 박살이 나기 때문이야. 나는 내게 적대하지 않은 자들의 피는 굳이 보고 싶지 않아.”

뜻밖의 말이었다.

이 역시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교주의 인상과는 다른 발언이었다. 마교주라면 피를 보길 두려워하지 않는, 오히려 좋아할 거라는 고정 관념이 있기 때문이었다.

서량이 중원에 나가 천마신교의 인상을 바꿨음에도 사람들은 아직 마교주를 악마처럼 생각했다. 기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돌아가서 전해라.”

"⋯⋯"

"내일 아침 동이 트기 전까지 상회주가 이곳으로 찾아오지 않으면 강서성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안 그래도 적막했던 주루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다시 말한다. 강서상회의 회주가 내일 아침 동이 트기 전까지 날 찾아오지 않으면 강서성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겠다. 상관없으면 꼭꼭 숨어 있도록 하고, 그게 싫으면 날 직접 찾아오라 전하라.”

호일도의 눈이 흔들렸다.

“농담도⋯⋯.”

퍽!

“컥!”

순간 호일도의 몸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놀랍게도 서량은 직접 손을 쓰지 않았다. 그저 지긋이 노려보았을 뿐인데, 호일도가 알아서 허공에 떠올라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차아아앙!

남은 세 명의 도객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본능적인 대처에 불과했다. 그들은 자신들로는 상대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뒷짐을 진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농담?”

“컥컥!”

“이 내가,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강서성까지 온 줄 아느냐?”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카카캉!

도객 셋의 칼이 뚝 부러져 버렸다.

어떻게 칼을 부러트렸는지 본 사람은 여극도 한 명뿐이었다. 여극도조차 순간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지공(指功)? 굉장하군!’

털썩!

“커헉! 허억! 허억!”

바닥으로 떨어진 호일도가 목을 움켜쥐며 헐떡거렸다.

서량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사람들은 그에게서 소탈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천마(天魔)가 허언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면, 어디 한번 꼭꼭 숨어 보도록.”

서량이 몸을 돌렸다.

펄럭!

고풍스러운 장포가 호일도의 눈에 비쳐 들었다.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천(天)?!’

위엄 넘치는 붉은 용포의 등판에는 웅장한 필치로 천(天) 자가 쓰여 있었다.

마(魔)가 아니라 하늘 천이다.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교주라면 마(魔)가 적힌 용포를 입는다. 그러나 교주를 넘어 천마(天魔)의 칭호를 받게 되면, 천(天)이 새겨진 용포를 입는다.

용포에 하늘 천 자.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역적 중의 역적이다. 그러나 수백 년 전, 황궁의 힘이 강성했을 때도 그들은 천마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할 수 없었다.

천마는 무적의 상징이기 때문에.

단신으로 제국의 군대 하나를 멸할 수 있는 무적의 위용을 자랑하는 인외(人外)의 극치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우우우우웅!

천하에서 가장 신비롭다는 음양천잠(陰陽天蠶)의 실과 천마신교 고유의 술법을 가미하여 완성한 교주의 의복은 그 자체로 신묘한 공능을 발휘하는 보의(寶衣)였다.

도검수화불침(刀劍水火不侵)의 기보(奇寶). 마도대종사를 상징하는 신물.

마황보의(魔皇寶衣)에 새겨진 한 글자가 군림마황기를 받아 화려한 빛을 발했다.

"가라. 다시 만나게 되면 너희 모두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

*

*

“뭐라?”

남궁언의 얼굴은 확연히 굳어져 있었다.

“강서성을 초토화시키겠다고?”

"그렇습니다. 아예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 듯합니다."

"⋯⋯."

“어르신?”

남궁의 분가(分家)이자 강서성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상가(商家)인 유씨상가(柳氏商家)의 가주 유인강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어르신께서는 현역에서 물러나신 분. 이런 일로 부탁을 드려서는 아니 되겠지.'

유씨상가는 상업 못지않게 무공으로도 유명했다. 적어도 한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일류의 무가(武家) 수준은 되었다.

그러나 감히 천마신교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아닌 말로 천마신교의 부대 하나만 보내도 유씨상가는 몰살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물며 마도 최강자라는 마교주가 강서성에 있다 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마교주가 진정 그리할지는 상회주가⋯⋯.”

“끌어들이는 것이로구먼."

“예?”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바짝 굳어 있던 남궁언의 얼굴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물론 심각함까지 없어지진 않았다.

"다소 속물적으로 접근하자면, 무림인에게 최고의 가치는 명성일세. 하면 상인에게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상인의 최고 가치⋯⋯.”

유인강의 눈이 반짝였다.

“신용입니다.”

“그렇다네. 그리고 그 신용은 소문에서 나오지. 당대 천마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상회주를 불렀네. 만일 내일까지 상회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는 향후 사업에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네.”

“그렇군요.”

“즉, 상회주는 좋든 싫든 무조건 천마를 만나러 나와야만 하네. 그가 여전히 상인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말일세."

하지만 방법이 너무 거칠다.

게다가 천마 정도 되는 사람이 지키지도 못할 말을 내뱉지는 않을 것이다. 남들 보는 눈 때문에라도 본인의 약속은 지켜야만 한다.

즉, 정말 상회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천마는 강서성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그리할 수밖에 없다.

남궁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 강서상회의 수뇌 중 아는 사람이 있는가?"

"예? 아, 예! 몇 명 있습니다. 강서성에서 사업을 하려면 강서상회 상인들을 모를 수가 없지요.”

"하면 자네가 아는 가장 높은 사람에게 연락하게. 검왕이 보잔다고.”

“헉! 예! 알겠습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연통은 바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다만 그쪽에서 답변이 오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남궁언이 창가를 바라보았다.

해를 보니 얼추 신시(申時) 말쯤이었다. 촉박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있었다.

“잠시 나갔다 오겠네. 곧 돌아올 테니 최대한 빨리 연락을 취하도록 하게.”

남궁언이 찾아간 곳은 호연루였다.

이제 막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몰린 손님들로 왁자지껄해야 할 호연루는, 안타깝게도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럴 만도 한가.'

호연루의 최상층에 천마가 있다. 천마신교에 대한 인상이 많이 유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사람들에게 천마신교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불바다를 만들어 버리겠다는 말까지 뱉었으니, 이곳에 손님이 찾아올 리가 없었다.

남궁언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주인장도, 숙수들도, 점소이들도 남궁언의 눈치를 보았다. 누가 봐도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감정을 읽을수록 남궁언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이윽고 그가 최상층에 다다랐다.

“오셨소?”

“그렇네.”

최상층에는 서량과 여극도가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시원하게 술을 넘긴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검왕 선배는 여기 오셔선 안 되었소.”

“왜 안 되는가?”

“모르지 않을 거라 믿소.”

남궁언은 검왕이라 불리는 일대검호다. 무림인만이 아니라 일반 양민들에게도 남궁언의 협명과 무공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천마가 있는 곳에 올랐다. 아마 벌써부터 많은 사람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기대감과 걱정이 뒤섞여 있을 터였다. 검왕이라면 어떻게든 해 줄 거라는 기대감과 천마에게 당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남궁언이 이대로 조용히 물러난다면 사람들은 그의 명성에 흠집을 낼 것이다. 조금 과격한 사람들은 천마에게 겁을 집어먹었다며 호들갑을 떨 수도 있었다.

남궁언이 차갑게 말했다.

"내 일평생 살아오며 단 한 번도 남의 시선을 신경 써 본 적이 없네. 적어도 나의 평판에 관해선 말일세."

“그렇소?”

“나는 그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일세. 자네처럼.”

서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뼈가 있는 말이로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남궁언의 눈이 번뜩였다.

“상회주가 오지 않는다면, 자네는 진정 강서를 불바다로 만들 참인가?”

서량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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