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436화 (436/774)

436화. 광기의 필요성 (1)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회주님?”

“사람은 말일세.”

“예?”

“사람은 자기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네. 자네도 알지?”

"아, 예!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세상에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네. 책임이 주는 부자유란 이름의 좁은 감옥에서 사는 권력자들은 더더욱 그 책임을 망각하곤 하지.”

"⋯⋯."

“그러한 자들은 무섭지 않네. 가볍거든.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 높은 자리에 올라도 신용이 없어. 해서 나는 자신의 말을 지킬 줄 모르는 자가 가장 상대하기 쉬웠다네. 속아 주는 척하면서 다리를 분질러 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울고불고 애원하기 마련이거든.”

“⋯⋯예에.”

“그럼 천마는 어떨까?"

“예?”

“마도대종사, 십만마도의 종주, 하늘 아래 가장 강한 마(魔). 천마를 수식하는 말들은 그야말로 화려하기 짝이 없지. 일각에서는 천마가 나는 순간 무림을 주름잡는 강자들의 순위를 모조리 한 단계씩 내려야 한다고들 하네. 놀랍게도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일세."

“⋯⋯천마니까요.”

“그렇다네. 천마니까. 천 년 동안 단 한 번의 부침 없이 무림의 공포로 군림한 마교의 수장이니까. 해서 나는 천마가 본인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마교를 증오하는 것과는 별개로, 난 그것을 인정하네.”

“그렇다면 회주님 말씀은, 정말 천마가 강서성을 불바다로 만들 위인이라는 것입니까?”

"중원을 통째로 뒤집어엎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인인데 고작 강서성 따위가 눈에 차겠는가?”

“⋯⋯!!”

"한데 여기서 재미있는 걸 하나 발견했네.”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천마는 고고한 존재일세. 적어도 전대 교주는 그러했지. 나는 염라마제란 인물은 만난 적이 없지만, 그 역시 다르진 않을 거라 생각하네.”

“예에.”

“한데 그런 사람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주었어.”

“⋯⋯?!”

“쥐도 새도 모르게 찾아와서 본 상회의 총단을 파괴할 만한 힘이 있는 사람일세. 그런 사람이 선택지를 주었다? 굳이?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군요.”

“나는 천마가 피를 보기 싫어서 시간을 낭비한 것이라 생각지는 않네.”

“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야.”

“⋯⋯!!”

“이 시대의 천마는 그 고고함과는 별개로, 한 조직의 우두머리라기보다는 돌격대장에 가까운 사람일세. 아직은 그렇지. 그래서 강서성에 직접 나타났다고 했을 때 무척이나 놀랐네. 오히려 그런 사람이기에 더더욱 위정자로서의 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거라 생각했거든.”

“그러셨군요.”

“확실히 맹주의 말이 맞았구먼.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천재라더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어. 하지만 나는 또 알고 있네. 천재는 결코 쓸데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

“절강과 강소로 비격단(飛團)을 보내게.”

"비격단을요? 어찌⋯⋯?”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쪽을 거치는 무역 통로를 모조리 봉쇄하게.”

“⋯⋯!!”

“저쪽에서 음험한 비수를 꺼냈으니, 나도 화포 정도는 꺼내 놔야 하지 않겠는가.”

“전쟁을 벌이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전쟁을 택하지 않았네. 하지만 천마가 전쟁을 택하겠다면 최소한 기둥뿌리 몇 개는 뽑아 줄 생각이네.”

“⋯⋯.”

“가진 게 많은 자는 작은 손해에도 이문을 따지려 들지. 그러나 나는 아닐세. 난 마교에 한 방 먹여 줄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기반을 잃어도 상관없다네.”

"⋯⋯.”

“비격단을 풀게.”

“⋯⋯명을 받듭니다.”

*

*

*

남궁언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살벌해졌다.

"정녕 그리하겠단 말인가?”

“천마의 말은 가볍지 않소."

“자네!”

“오직 그것만을 확인하러 오실 것임을 알았기에, 선배가 이곳으로 오면 안 된다고 했던 거요.”

“무슨 말인가?”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시오.”

"이보게!”

“본교의 총군사는 무서운 사람이외다.”

남궁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뜬금없이 총군사는 왜 들먹이는 것인가?

“나를, 천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악랄해질 수 있는 사람이외다. 그리고 난 그런 그를 이해하오. 아니, 오히려 부추기고 있소. 총군사란 인물은 본교에서 가장 비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가 빙궁주와 노선배를 나와 함께 보낸 이유를 알고 있소?"

“⋯⋯?”

“단순히 교주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보냈을 것 같소? 그렇게 생각했다면 대단한 착각이외다. 총군사는 알고 있소. 내게 있어 가장 무서운 적은 나보다 강한 상대가 아닌,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라는 것을.”

“⋯⋯!”

“빙궁주는 나와 적대할 생각이 없소. 사적인 호기심이나 호감을 떠나,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오. 그러나 선배는 다르지. 선배는 선배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바름에서 벗어난다면 언제든지 나를 향해 검을 겨눌 사람이외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깊고 깊은 그 눈빛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포식자의 살기였다. 천하의 검왕이라도 그 순간만큼은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 없을 만큼 무서운 기운이었다.

“총군사는 그래서 궁주뿐 아니라 선배에게도 부탁을 드린 거요. 나와 함께 가 달라고.”

“이 나를 통해 자네를 제어하라는 의미로 보냈다는 뜻인가?”

"아니오.”

“하면?”

"총군사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 있으니, 이러한 갈등이 날 것도 알고 있었소.”

우우우웅.

서량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퍼져 나왔다.

여극도의 눈이 흔들렸다.

'더 강해졌다?’

아니다.

마신궁의 대전에서 서량과 손속을 나눠 봤지만 그때의 서량은 이런 마기를 보여 준 적이 없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깊고 살벌한 마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듯했다.

'제대로 힘을 발산한 게 아니었나⋯⋯? 아니군. 살심을 품었을 때와 품지 않았을 때의 격차가 큰 것이야.'

굉장하다.

이제는 마의 제왕이라고까지 불리는 십대천마의 살의는 그 자체로 상상 초월의 압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의지 자체가 중압감이요, 공격이다. 진심으로 살기를 드러내는 서량의 존재감에 여극도는 단전이 들끓는 듯한 긴장을 느꼈다.

“총군사는 내가 당신을 죽이길 바라고 있소.”

"⋯⋯!!"

“신교에서라면 더 쉽고 확실하게 죽일 수 있었겠지. 그러나 그리되면 본교는 정파 최고의 어른이라는 검왕을 비겁하게 죽였다는 오명을 안아야 하오. 이 어수선한 시국에 굳이 그러한 짐을 안을 필요는 없지.”

“⋯⋯.”

"마도를 대표하는 자, 천마. 정파를 대표하는 검객, 검왕. 두 사람의 갈등으로 벌어진 승부라면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지. 총군사가 내게 당신을 딸려 보낸 것은 그런 의미였소."

남궁언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하니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문사가 자신을 죽일 생각을 품고 있을 줄은 몰랐다. 괴짜 같기는 해도 나름의 인의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선은 나와 당신이 어떠한 분란도 없이 잘 지내는 거요.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다르다 하나, 적어도 당장의 적은 같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굳이 칼을 뽑을 필요가 없소.”

“⋯⋯."

“하지만 사사건건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이라면 차라리 베어 버리는 게 낫소. 총군사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으며, 그건 나라고 다르지 않소이다.”

이왕이면 싸우지 않는 게 좋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쓸데없이 사건이 커질 테고, 사건이 커지면 전력 손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때는 베어 죽이는 수밖에 없다. 서량의 생각은, 호요성의 생각은 그러했다.

남궁언은 호요성을 떠올렸다.

-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와 그를 따르는 초절정고수들을 호위 삼아 돌아가실 생각 없으십니까? 어차피 강서성이면 안휘성과도 가까운데요.

장난스러운 얼굴로, 짓궂은 표정으로 말하는 호요성.

'이 무서운!’

남궁언은 내심 몸서리를 쳤다.

두 수, 세 수 앞을 내다본 호요성도 무섭고 그의 의도를 단숨에 꿰뚫어 본 서량도 무섭다.

자신이 아는 강호가 아니었다. 그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한 가문의 주인으로서 온갖 평지풍파를 겪었지만, 적어도 그의 삶에 음모와 귀계는 없었다. 그는 오로지 협의(俠義)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악인들의 흉계를 힘과 정의로 무너트렸다.

그러나 이들은 달랐다.

충분한 힘을 갖고 있음에도 머리를 쓰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의 최고 가치는 승리였고, 그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남궁언이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가 데리고 온 전력이라면 차라리 강서상회의 본단으로 직접 쳐들어가는 것이 속 시원한 방법이지. 한데도 굳이 그러한 엄포를 놓은 것이 의아했네. 단순히 상대의 신용을 시험하기 위함은 아닌 것 같았어.”

"⋯⋯."

"상회주를 공략함과 동시에 나도 시험대 위에 올려놓기 위함이었나?”

“착각하지 마시오.”

“착각?”

“물론 그런 목적이 없진 않았소. 그러나 내 최종 목적은 강서성에 있소. 선배는 곁다리에 불과해.”

모욕적인 언사였다. 그러나 서량은 상대를 모욕할 생각이 없었고, 남궁언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대체 자네는⋯⋯.”

그때였다.

남궁언은 순간 뒤통수를 관통하는 충격을 느꼈다.

“왜지?”

“무슨 말씀인지?”

“강서상회를 무너트릴 확실한 방법은 아무도 모르게 쳐들어가 힘으로 짓눌러 버리는 것일세.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지.”

“⋯⋯."

"자네와 백팔마장이라면, 이런 고달픈 대화 없이 날 죽일 수 있었네. 한데 어찌 그러지 않았는가?”

서량이 얼굴이 씁쓸해졌다.

남궁언은 서량의 그 얼굴에서 절대자의 나른함과 수장의 고독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교주직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젊은이에게서 저런 얼굴을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원하는 마도천하는 무조건적인 파괴를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오.”

“⋯⋯?!”

"쓸데없이 대화가 많았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묻겠소. 날 막을 것이오?”

남궁언의 눈이 깊어졌다.

“그 이전에, 다시 한번 묻겠네. 강서성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 진심인가?”

“진심이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까지 다 죽일 생각인가?”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죄가 없는 사람?"

“그렇다네.”

“일일이 죄를 물어 베어 넘기는 전쟁은 없소이다. 한 번 칼을 뽑으면 적지에 풀 한 포기도 남기지 않고 쓸어 버리는 게 내 방식이오.”

스르르릉.

남궁언이 검을 뽑았다.

여극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궁주께서는 잠자코 계셨으면 하오.”

남궁언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오만한 모습이었다. 한데 지금은 그 모습이 제법 잘 어울렸다.

“내 선친께서 말씀하시기를, 기울어진 나무는 부목을 대서라도 똑바로 자라게 해야 한다고 하셨네. 그만한 정성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딱딱한 분이로군.”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채로 거목이 되었으니 어쩌겠나? 밑동만 남기고 베어 넘길 수밖에.”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의미를 알기 힘든 웃음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의 웃음이 마냥 밝지는 않다는 것.

"마음을 잡았소?”

"자네가 그 폭탄 발언을 했을 때부터, 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일을 하시오.”

쉬이익!

남궁언의 검이 서량의 중단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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