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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37화 (437/774)

437화. 광기의 필요성 (2)

여극도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공격에 대비했던 서량 역시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검?!’

가슴에 검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재하는 검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실재할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검이었다.

주르륵.

남궁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검으로 서량을 겨누고 있었다. 이름도 붙이지 않아 그저 무명검(無名劍)으로 불리는 남궁언의 검은 서량의 가슴에 박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이 검은?'

천하의 서량도 이때만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가슴에 박힌 검이 서서히 반투명해지더니, 이내 연기처럼 변해 흩어졌다.

서량이 고개를 들어 남궁언을 바라보았다. 남궁언의 얼굴은 이제 창백해져 있었다.

그야말로 급격한 변화였다. 마치 한순간에 모든 힘을 소진한 사람처럼 극도로 피폐해진 모습이었다. 심지어 호흡조차도 격해져 있었다.

서량이 자신의 가슴을 더듬었다. 검이 박힌 듯한 감각은 남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통증은 없었다.

여극도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심검(心劍)!”

그렇다.

이것은 검객이, 무인이 도달할 수 있는 무도(武道)의 종착지 심검지도(心劍至道)였다. 깨달음이 극에 이르러, 외물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마음으로 상대를 벨 수 있다는 지고한 경지였다.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사부님?!’

이것은 이천상의 경지다.

물론 심검지도에 달했다고 하여 이천상이 이처럼 환상의 검을 날리진 않았다. 이천상은 심검의 경지에서도 최종 단계에 이르러, 심검의 묘리를 이용해 자연재해까지 일으키는 지경에 다다른 진짜 무신(武神)이었다.

그에 비하면 남궁언의 경지는 너무나도 초라할 뿐이다. 그러나 당대 무림에 심검지도에 오른 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단순 전투력으로는 남궁언보다 위인 여극도도, 실전 능력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서량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깨달음의 극치.

철컹!

무명검이 땅에 떨어졌다.

남궁언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서량이 서둘러 그를 부축했다.

“허억! 허억!”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이런⋯⋯!’

남궁언의 몸은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이 거칠어졌고, 와중에 코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심지어 내상의 징후까지 보인다. 깨달음은 누구보다도 깊었지만 육체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한의 내공을 소모하여 심검을 구현했지만, 딱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괜찮소?”

“허억! 허억! 괘, 괜찮네. 차차 회복될 걸세.”

턱!

남궁언이 서량의 팔뚝을 잡았다.

"쿨럭! 어땠나.”

“⋯⋯?”

"괜찮은 일격이지 않았나?"

떨리는 눈으로 남궁언을 내려다보던 서량이 이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받아 본 공격 중 최고였소.”

“허허, 천하제일마가 인정해 준 것을 보니 그간 연마해 온 나의 검도(劍道)가 틀리진 않은 모양이로구먼."

“어떻게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했소이다.”

"아니, 그렇지 않네. 만약 내 심검에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면 자네가 의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겠지.”

그 말인즉, 심검을 날려 서량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뜻이다. 애초에 살심이 깃든 검으로는 서량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서량이 다시 한번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여전히 검에 맞은 감각은 있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검을 맞았다는 '사실'은 인지했지만, 그것이 환상의 검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궁언은 나직이 감탄했다.

"대단하네. 제아무리 살기가 없는 심검이라 한들 자네처럼 멀쩡히 서 있기도 힘들 게야. 검에 찔렸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실제로 그와 유사한 충격을 받기 때문이지."

“그렇군.”

“내 예상대로일세. 자네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면서도 그에 못지않은 냉철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일세."

서량이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그걸 확인하려고 심검을 날린 거요?”

"아닐세. 그저 심어 주고 싶었네.”

“무엇을 말이오?”

남궁언이 눈을 감았다.

“자네도 눈을 감게. 그리고 내가 무엇을 전해 주었는지 느껴 보게.”

가만히 남궁언을 내려다보던 서량 역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엇을 전해 주었는지 느껴 보라?'

이 늙은 검도의 고수가 심검에 살기가 아닌 무엇을 담았을까?

그때였다.

번쩍!

가슴 안쪽에서부터 태양처럼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역시 환상에 불과했다. 오로지 서량만이 볼 수 있는 환상.

눈을 감았는데도 볼 수 있고,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음에도 들린다.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그 빛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며, 사람이 아닌데도 감정이 공유되고 있었다.

'이것이 심검.’

마음으로 적을 베는 경지.

사람들은 심검의 경지를 그렇게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심검은 단순히 적을 죽이기 위한 검도가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을 전해 주기도 하며, 상대의 감정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거나 폭주시킬 수도 있다.

남궁언의 심검도 그러했다.

그는 서량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이 깨달은 세상을,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이치를 전해 주고 싶었다.

서량은 볼 수 있었다. 하늘까지 불탄 세상에서 절규하고 신음하는 피폐한 몰골의 양민들을.

피눈물을 쏟아 내며 절규하는 그들의 모습은 섬뜩하고도 안쓰러웠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광경이 아닐까.

“보았는가?”

“⋯⋯보았소.”

남궁언이 눈을 떴다.

제법 진정이 된 듯, 거칠던 호흡이 조금은 안정적으로 변했다.

"나는 한평생 검도에 매진한 사람일세. 가주가 되어 남궁을 이끌었지만, 기실 남궁의 부흥보다는 정(正)과 의(義), 협(俠)과 도(道)를 지키기 바빴네. 그러나 그러한 책임감도 검을 향한 내 애정에 비할 순 없었지.”

"⋯⋯."

“하나 아들에게 가주직을 물려주고 오로지 검을 바라보며 살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네.”

“그게 무엇이오?”

"다르지 않다는 것.”

“⋯⋯.”

“검에 미쳐 살든 가문의 부흥을 위해 불철주야 날뛰든, 결국 세상이 세상답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네. 한 길에 매진한 대가들이 자연을 벗 삼아 말년을 보내는 이유도 거기에 있네.”

“지나치게 먼 얘기로군.”

“멀지만 가까운 얘기일세. 세상이 세상답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네.”

남궁언의 눈이 깊어졌다.

“자네는 강서성을 불태우겠다고 했네. 그러나 그것은 진정 쉬운 일이 아니야. 명령을 내리는 것은 쉬울 수 있어도, 휘말려선 안 될 사람들이 흘린 피를 무시하기는 힘들지. 자네는 정녕 그 많은 사람의 절망과 회한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나는⋯⋯.”

“내 검이 준 환상을 보며 자넨 무엇을 느꼈나? 즐거움을 느꼈나? 아니면 안타까움을 느꼈나?”

“⋯⋯.”

서량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남궁언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보게. 자네는 누구보다도 독해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여린 사람이기도 하네.”

“그런 광경을 보고도 안타까움을 느끼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외다.”

“그렇다네. 즉 자네는 사람이야. 마신이니 괴물이니 불린다고 하여, 스스로가 사람임을 잊어서는 아니 되네.”

서량의 팔을 쥔 남궁언의 손에 강한 힘이 깃들었다.

“자네가 강서상회를 없애겠다는 걸 반대하진 않네.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정 그것이 싫다면 본가의 무사들을 소환해서라도 자네와 대적하겠지. 그것이 나와 자네가 사는 무림의 해결 방식일세."

"⋯⋯."

“그러나 양민들은 아닐세. 그들은 무림인이 아니야. 개인의, 집단의, 세상의 밑거름이 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일세."

"⋯⋯"

"자네가 정녕 양민들을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말장난 같지만, 자네는 강서성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했을 뿐 양민들을 건드리겠다고 말한 적은 없으니까.”

서량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 알고 있었소?”

“그렇다네. 나는 자네가 이 일을 철저히 무림의 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네. 아니, 믿고 있었고 지금도 믿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이리 무리했소?”

“나는 자네를 과거에도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네. 하지만 미래의 자네를 믿지는 않네.”

“⋯⋯”

“자네,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진짜 괴물이 되네.”

“나쁘지 않은 미래로군.”

"힘 있는 권력자가 피 흘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세상은 지옥이 되는 게야. 자네도 알잖나?”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남궁언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이미 삐뚤어진 채로 다 자라 버린 거목일세. 그리고 내게는 그 거목을 뿌리까지 뽑아낼 힘이 없네. 하니 별수 있나? 밑동만 남겨 놓고 베어 버릴 수밖에.”

미소 짓던 그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너무 많은 힘을 쓴 모양일세. 눈이 감기는군."

“방을 잡아 두겠소. 편히 쉬고 있으시오.”

“유씨상가라고 있네. 본가의 분가이자 강서의 상가지.”

“아오.”

“유 가주에게 강서상회의 수뇌부에게 연락하라고 부탁해 두었네. 아마 나를 찾으러 올 것이야.”

"⋯⋯."

"나 대신 자네가 그들을 맞이해 주게."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또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면 어느 산골 골방에 가둬 버릴 거요.”

“허허! 죽을 때까지 검과 함께할 수 있겠군.”

그 말을 끝으로 남궁언은 정신을 잃었다. 심검을 사용한 후유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망할 노친네 같으니. 차라리 칼질을 하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마음 쓰이게 만드냐고.”

여극도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그를 살려 주었으니까.”

“예?”

“자네는 그를 죽일 기회가 많았네. 하지만 죽이지 않았잖은가.”

"⋯⋯."

"아마 일대일 겨룸이라 해도 검왕이 자네를 이기기는 힘들었을 걸세. 하나 그는 패배가 무서워서 생사결을 포기한 게 아닐세.”

“압니다.”

“그가 자네에게 무엇을 전해 주었는지는 모르겠네만, 그 깨달음을 무시하지는 말게. 적어도 자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되진 않을 거라 보네.”

서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충분히 해가 됐습니다. 심사가 어지러워졌거든요.”

그날 밤.

호롱불을 켜 놓고 술을 마시던 서량의 귀로 호천마황단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교주님.]

[무슨 일이냐.]

[강서상회의 총단에서 황금빛 마차가 출발했다고 합니다.]

[회주?]

[통째로 황금으로 만들어진 마차는 회주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씨상가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실패한 모양이군. 하긴, 회주가 직접 나섰으니 누구와 만날 정신이 아니겠지.”

그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제지하지 마라.”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호천마황단은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삐걱. 삐걱.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 한 걸음에 강한 긴장과 흥분이 느껴졌다.

서량이 맞은편에 빈 잔을 두었다.

“와서 한잔하지.”

“⋯⋯천마시오?”

“그렇다.”

어두운 계단 위로 올라온 노인의 얼굴 위로 호롱불 빛이 드리워져 섬뜩하게 보였다.

“강서상회의 회주, 위지노백(尉遲魯相)이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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