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광기의 필요성 (4)
“후우.”
내뱉는 숨결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단리후(段里侯)는 그 냄새를 맡고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익숙한 것인지 감정이 없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사부님, 약을 달여 왔습니다.”
“괜찮다.”
“알겠습니다.”
한 번 더 권할 만한데도 단리후는 가지고 온 사발을 그대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럼.”
“앉거라.”
평소 치료가 끝나면 곧장 내보냈거늘, 오늘은 따로 하실 말씀이 있는 모양이었다.
단리후가 자리에 앉았다.
표정 없는 얼굴에, 움직임이 딱딱하면서도 부드럽다. 그 모습이 마치 전설 속의 강시를 보는 듯했다.
푹신한 의자에 눕듯이 앉은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그것을.”
단리후가 탁자 끝에 놓인 곰방대를 노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노인이 곰방대 끝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화르륵!
푸른 불꽃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연초가 충분했는지 금세 뿌연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찼다.
연초의 향기는 무척이나 독했다.
냄새만 독한 것이 아니라 실제 곰방대에 넣은 연초는 독초(毒草)였다. 독과 암기의 조종(祖宗)이라 불리는 사천당가에서조차 쉽게 취급하지 못하는 상아암초(象牙巖草)가 그것으로, 제대로 가공하면 무형지독(無形至毒)에 필적하는 극독을 만들 수 있는 독초였다.
그 독한 풀을 연초 피우듯 빨아들인다면 속이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설령 내공의 고수라도 폐장이 썩어 문드러질 것이 자명했다.
“후우우.”
내뱉어지는 연기의 양도 일반 연초보다 두 배는 더 많았다.
신기하게도, 독초를 흡입하는 노인의 얼굴은 점점 더 맑아지고 있었다. 이 독초가 노인에게는 약으로 작용하는 모양이었다.
"위지 회주가 비문으로 빠지는 걸 반대했다고?”
“정확히는,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맞습니다. 사부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기는 듯했습니다.”
“그래?”
“예.”
제법 자극적인 얘기인데도 두 사제지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상식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야. 상상을 초월한 존재는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하는 법이지.”
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회한이 어려 있었다.
가만히 노인을 보던 단리후가 물었다.
"다 나으셨습니까?"
"내 몸 말이더냐?”
“예.”
“그것은 네가 더 잘 알 것 아니더냐. 그간 내 몸을 살핀 것이 너이거늘.”
“의학적인 소견으로 봤을 때 사부님의 몸에 이상은 없습니다. 오히려 운공을 하지 않음에도 내력이 불어나고 있지요. 원인을 알지 못하는 현상은 언젠가 큰 해가 되기 마련이라고 하나, 사부님의 육체는 충분히 그것을 받아 낼 만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하냐?”
“그렇습니다. 또한 상아암초를 태워 혹시 모를 내력 폭파를 다스리고 계신 것 아닙니까?”
“물론 그렇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전에도 그랬듯, 오늘 진맥에서도 결과는 동일합니다. 알 수 없는 현상으로 내력이 증강하고 있지만 그 추세가 무척이나 안정적입니다. 상아암초는 내력의 폭발을 막는 것 외에도, 불어나는 내력을 사부님의 진기(眞氣)로 유도하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
“깨달음으로 순도를 높인 진기나 증폭되어 저절로 압축된 진기나, 성능 면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사부님께서 어찌하시느냐에 따라 고금을 넘볼 수도, 당대의 제일로 끝날 수도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금제일은 안 될 것이다.”
노인의 눈이 깊어졌다.
심연처럼 깊은 눈 속에 아무도 볼 수 없는 두려움이 깃들었다.
"나는 내 생전에 고금제일의 무력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최고가 되어 무쌍(無雙)의 무인으로서 기억되기를 바랐지.”
“⋯⋯."
“그러나 그날 나는 보았다. 진정한 무적(無敵)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하늘 아래 적수가 없는 자의 무공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설령 내가 이 자리에서 살아남아 기연을 얻는다 한들 결코 저와 같은 경지에는 오르지 못할 것임을.”
“그렇습니까.”
“그 생각은 지금도 같다. 그는 하늘에 이르렀음에도 승천을 거부하고 끝없이 무력을 불린 자야. 인간으로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을 전부 얻었음에도 더 강해지려고 했어. 그런 것은 전설로 불리는 달마나 장삼봉이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
“그때 이후, 나는 생각했다. 고금제일은 불가능하니 분명한 천하제일만큼은 되어야겠다고, 수많은 조직을 거느려 천하를 삼킨다 한들, 그 정도 재앙이 들이닥치면 속수무책일 뿐이지.”
“그렇습니다.”
“해서 난 위정자로서도, 무인으로서도 최고가 되려고 한다.”
"⋯⋯."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너에게 물려줄 것이다.”
단리후가 고개를 숙였다.
“누릴 것은 전부 누리고 가십시오.”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무림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도 좀처럼 보여 주지 않던 미소였다. 그가 이런 미소를 보여 준 이는 채 다섯도 되지 않았다.
"네 사제들은 아직도 폐관 중이더냐?"
“셋째가 나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몇 달 더 걸릴 것으로 추정됩니다.”
“셋째가 빠르구나.”
“예.”
“달포 뒤에 다시 폐관에 들라 하거라.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네 사제들 셋을 다 합친다 한들 어찌 너 하나에 비견할 수 있겠느냐. 앞으로도 정진에 힘쓰거라.”
“명심하겠습니다.”
"후우우.”
연기로 가득 찬 방 안은 이제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집은 연기 속에서 노회한 절대고수의 안광이 번뜩였다.
“모시거라.”
“알겠습니다.”
단리후가 방에서 나갔다.
잠시 후.
드르륵.
"흐음, 못 뵌 새에 괴상한 취미가 생기셨소이다. 독초라니? 이참에 독공(毒功)이라도 익힌 것이오?”
“오랜만이외다."
“그러게나 말이외다.”
"대접할 것이 마땅치 않소이다. 이해해 주시오.”
“바라지도 않았소.”
중년 사내가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이런 산골에 숨어서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소이까?”
“⋯⋯.”
"담 맹주.”
노인, 담사영의 눈이 살짝 휘어졌다.
“나야 독 품은 구렁이라 불리는 인간 아니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중이라오."
"와신상담치고는 지나치게 편해 보이는군. 당장이라도 털고 일어날 것 같소이다.”
“허허. 그러는 성주의 신색도 훤하오. 도무지 패배자의 얼굴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밝소.”
중년 사내, 송금백이 씨익 웃었다.
정파 무림의 정점이라는 담사영과 흑도의 사자왕이라는 송금백이 다시 만났다. 이천상이라는 규격 외의 재앙이 의천맹을 박살 낸 지 석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고금제일인이 사라졌으니, 이제는 내가 활개를 쳐도 누구 하나 막을 수 없지 않겠소?"
"과연, 그럴듯하오.”
“해서 나를 왜 불렀소이까?”
“왜 불렀겠소?”
“나는 제법 기분이 좋은 상태외다. 그러나 여전히 농담으로 시간 죽이는 건 좋아하진 않소.”
“허허, 여전하시구려.”
훅.
담사영이 송금백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짙은 연기가 밀려나며 섬뜩한 뱀의 얼굴이 드러났다.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소?”
“무슨 말씀이오?”
“재앙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재앙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소이다. 하물며 그 반선이 직접 키운 마교 역사상 최고의 괴물이 교주직에 올랐다고 합디다.”
“음.”
“잡초는 벤다고 죽지 않소. 뿌리째 뽑아야지.”
송금백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 소교, 아니 서 교주를 죽이자는 것이오?”
“괴물을 죽인다고 끝이 나겠소? 괴물이 자란 곳에 얼마나 많은 알이 있을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소이다.”
“하면⋯⋯?!”
담사영이 하얗게 웃었다.
“마교를 지웁시다.”
*
*
*
위지노백이 침을 꼴깍 삼켰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든가? 황금 백만 냥을 토해 내거나 목숨이 날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보상이라고 생각하는데.”
“⋯⋯.”
“하긴, 상인은 신용으로 먹고사는 법이라고 했지. 자네는 중원 남부를 주름잡는 거상(巨商)이니, 쉬이 뒷배를 내놓기야 힘들겠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알고 있다? 어떻게?!'
위지노백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뒤에 담사영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일은 극비 중의 극비로, 애초에 강서상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담사영 덕분이었다.
만약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때는 진짜 끝장이다. 단순히 자신만 끝나는 게 아니라 함께 상회를 일으켜 세운 모든 상인이 신용을 잃고 추락하게 될 것이다.
거상(巨商)은 신용을 잃어도 수 대를 먹고 산다고 했다. 하지만 담사영이 뒤를 봐주고 있었다는 것은 사건의 크기가 달라지는 일이다.
최대한 마음을 다잡은 위지노백이 서량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런⋯⋯!'
눈을 보고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은 위지노백 최고의 장기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서량의 눈동자는 투명함과 모호함이라는 모순된 요소로 꽉 차 있었다. 백 년, 아니 이백 년을 더 산다 해도 꿰뚫어 보지 못할 흐린 안개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속내를 알아챈 듯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의아한가? 내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지?”
“⋯⋯.”
“알고 싶나? 넘겨짚은 건지, 진짜로 알고 있는 건지?”
그 말을 들은 위지노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정녕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담 맹주는⋯⋯.”
“그래, 담사영은?”
“⋯⋯.”
“계속 말해 봐.”
위지노백이 이를 악물었다.
“이쪽에서 먼저 연락할 수 없습니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항상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주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보상의 방법으로 무엇을 선택할 거냔 말이야.”
“건드리지 않으실 겁니까?"
뜬금없이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건드리지 않아?”
위지노백의 눈이 점점 충혈되었다.
"담 맹주와 연결되도록 해 드리면, 강서상회를 건드리지 않을 것입니까?”
서량이 차갑게 웃었다.
“상인 기질 어디 안 가는군. 나와 흥정을 하자?"
“선택지를 주신 분은 교주님이십니다.”
“그렇지. 하지만 알아 두게. 난 기분이 뒤틀리면 지금 당장이라도 자네를 허수아비처럼 만든 후, 강서상회의 모든 자금을 뺏을 수도 있다네.”
“⋯⋯!!”
"괜히 날 자극하지 말고 선택이나 해.”
위지노백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는 별개로 분노가 치솟았다. 대화가 여기까지 이어지니 정말이지 없던 용기도 생길 판이었다.
'그래, 어차피 목숨 내놓고 여기까지 왔다.'
상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손짓 한 번이면 지금껏 자신이 이룬 금자탑을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의 힘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위지노백은 자신이 만만하지 않은 사람임을, 먹잇감에 불과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맹수의 다리 하나 정도는 분지를 수 있는 사람임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교주님은 나를 죽일 수 없습니다. 나를 허수아비로 만들 수도, 강서상회의 자금을 빼돌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서량의 얼굴에 흥미가 일었다.
위지노백이 애써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절강의 모든 교역로를 봉쇄했습니다.”
“호오?”
“제 명이 있기 전까진 누구도 그것을 풀 수 없습니다. 게다가 명령서도 저의 인장과 암어(暗語), 친필 확인까지 되어야만 유효합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무역 통로를 막겠다⋯⋯ 자네를 건드리면 본교의 사업에도 제법 타격이 온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제법 준비를 했군.”
“그냥 죽어 줄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지, 그럴 수야 없겠지. 하지만 말일세, 자네의 그 준비는 하등의 쓸모가 없는 짓이었네.”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스르륵.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히들 하는 실수라네. 담 늙은이도, 송 성주도 나와 사부님에 대해 잘 몰랐기에 박살이 났더랬지. 하나 희대의 거상이라는 자네까지 이럴 줄은 몰랐네.”
“⋯⋯?!”
“적을 상대하려면 적이 얼마나 미친놈인지 정도는 미리 알아봤어야지?”
서량의 위지노백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화아아악!